[고친 글] 길을 만드는 사람 / 정희연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이 ‘길’이다.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다. 사회 간접 자본 중 하나로, 길을 만들면서 우선적으로 결정 하는 것은 시작과 끝, 폭, 노선 등이다. 그중에서도 도로 노선의 확정은 가장 어렵다. 기하 구조(도로를 형성하는 기하학적인 구조를 통틀어 이르는 말) 측면에서 안전하고 원활하면서 쾌적한 교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요소를 검토해야 한다.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고, 문화재도 보호해야 한다. 땅값이 너무 비싼 곳이나, 완공을 하고서 소음이나 진동으로 2차 피해가 생길 수 있는 축사, 양식장도 피하는 것이 좋다.
사람의 눈은 원거리와 근거리를 번갈아 보면서 초점을 맞춘다. 한곳을 계속 바라보게 되면 눈이 지속적으로 수축 상태를 유지해 쉽게 피로해진다. 몸도 그렇다. 한자세로 장시간 동안 머무르면 목과 어깨 근육이 긴장해 피곤이 몰려와 졸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빨리 이동할 목적으로 직선화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항목 중 하나다.
도로는 기능별로 주간선도로(고속도로, 일반국도, 특별시도, 광역시도) 보조간선도로(일반국도, 특별시도, 광역시도, 지방도, 시도) 집산도로(지방도, 시도, 군도, 구도) 국지도로(군도, 구도)로 구분되고, 그 따라 설계 속도를 달리하게 된다. 주간선도로는 60~120 km/h, 보조간선도로 50~70 km/h, 집산도로 50~60 km/h, 국지도로 40~50 km/h로 나뉜다.
자동차가 설계 속도로 주행하며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달릴 수 있어야 한다. 굽은 길에서 차량이 원심력으로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도록 알맞은 경사를 둔다. 그리고 물이 고여서 차가 미끄러지거나 다른 차에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도로 중앙을 가장자리보다 높게 하여 비가 많이 와도 빨리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도심지에서는 횡단 구배와 종단 구배를 같이 준다.
치산치수(治山治水), 예부터 산림을 효과적으로 경영하고 물을 잘 관리하는 것을 정치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중 치산은 산림녹화 정책과 경제 성장으로 땔감으로 사용하는 나무를 화석연료로 바꾸면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물을 다스리는 일은 쉽지 않다. 기후 변화로 해마다 집중 호우가 발생해 인명 피해까지 이르게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하천을 설계할 때는 도로보다 높은 100~200년의 강우 빈도(일정 기간에 내린 비의 빈도)를 적용하였고, 지금은 500년으로 바꾸고 있다. 도로는 장소에 따라 30~50년으로 규정하여 물이 막히지 않고 하천까지 원활하게 빠져 나갈 수 있도록 한다.
대전광역시에서 일반 산업 단지 진입도로를 건설 중이다. 과선교(철로 따위를 건너갈 수 있도록 그 위에 놓은 다리) 시공이 한창이다. 교량의 길이는 275m다. 하천위로 열차가 지나가고 그 위로 또 다리가 지나가 그 높이가 꽤 된다. 상부공사는 도로의 뼈대가 되는 강재 슬래브를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으로 옮기고 조립해서 대형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다. 철도를 횡단하는 구간은 지보 없이 한 경간이 95m로 국내 최대이면서 최초다. 안전을 고려해 열차가 다니지 않는 야간에 설치한다. 며칠 동안 이루어지는 난도가 높은 공사다.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대전광역시는 산림 경관 보전(계족산, 보문산, 계룡산, 구봉산, 식장산, 금병산), 역사 문화재 보전(유회당, 이상동, 질현성 일원), 주요 관문 거점 강화(계룡로, 계백로, 북유성 대로, 금산로, 산내로, 대둔산로, 옥천로, 남대전·안양·남세종 아이씨(IC), 농촌 생활 중심지(대청, 세동, 흑석, 정생, 상하소), 매력적인 경관 도로(대청 호반길, 산내길, 산서로, 벌고~장안로), 수변 경관 보전(대청호, 방동 저수지, 금강, 누루벌), 과학 벨트 및 산업 단지 경관(신동, 둔곡, 기성·, 평촌) 지구로 지정해 조화로운 경관을 형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 현장은 산, 철도, 하천을 횡단하고 때론 같이 접하면서 농촌을 지나 산업 단지로 이어진다. 도로, 교량, 절토 사면, 마을 진입 도로, 가로등, 방음벽 등 경관을 설계하고 ‘대전광역시 경관 심의’를 거쳐 시공하고 있다. 자연 환경을 고려하고 여러 규정을 지키며 길을 만든다. 자동차가 과학 기술의 집약체라 한다면 토목 또한 과학과 기술이 녹아든 거대한 시설물이다.
나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길이 완성되면 새로운 길을 찾아 이곳을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