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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정재근판
<중머리>
집이라고 돌아오니 부엌은 적막허고 방안은 텡텡 비었는디 심봉사 실성발광(失性發狂_제정신을 잃고 미침) 미치는대 얼싸 덜싸 춤도 추고 허허 웃어도 보며 지팡이 막대 흩어 짚고 이웃집을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혹 우리 마누라 여기 안 왔오. 허허 내가 미쳤구나.”
방으로 들어 통곡 자탄(自歎)헐제 그 때에 귀덕어미 아해_아이) 안고 돌아와서
“여보시오 봉사님 이 아해로 보더라도 그만 진정허시오.”
“거 귀덕어민가 이리 주소 어디 보세. 종종 와서 젖 좀 주소.”
귀덕어미는 건너 가고 아이 안고 자탄헐제 원촌(遠村)레 닭이 울고 찬바람은 스르르 어린 아해 놀래 젖 달라고 슬피 운다.
심봉사 기가 막혀우지마라 내 자식아 너이 모친 먼데 갔다. 낙양동촌이화정(洛陽東村梨花亭_중국 낙양성의 동쪽마을에 있는 배꽃에 둘러 싸인 정자)에 숙낭자(淑娘子_숙향은 송나라 때의 미인인데, 난리를 만나 부모와 헤어지고, 천태산에서 마고선녀를 만나, 이화정에서 수를 놓으며 살게 되었다고 함)를 보러갔다. 죽상지루(竹上之淚_대나무 위의 눈물. 순임금이 창오산에서 죽자 두 부인인 아황과 여영이 쫓아와 슬피 울다 죽었는데, 그 피눈물이 소상강 가의 대나무에 묻어 소상 반죽(알록무늬가 있는 대)이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음) 오신 혼백(魂魄) 이비(二妃_중국 고대 순임금의 두 비로 아황과 여영) 부인을 보러 갔다.
“가는 날은 있다마는 오마는 날은 모르겄다. 너도 너의 모친이 죽은 줄을 알고 우느냐 배가 고파 우느냐 강목수생(羌木水生_바짝 마른 나무에서 물이 남. 곧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지야 내가 젖을 두고 안 주느냐.”
아무리 달래어도 어린 아해는 그저 우짖듯이 응아 응아 응아 심봉사 화가 일어나 안었던 아해를 방바닥에다 미다치며
“죽어라 썩 죽어라 니 팔자가 얼마나 좋으면 초칠(初七) 안에 어미를 잡아 먹어라. 너 죽어도 나 못살고 나 죽어도 네 못 살리라”
아해를 도로 안고
“우지마라 이 자식아 어서 날이 새면 젖을 얻어 먹여주마 우지마라 내 새끼야.”
<아니리>
그날 밤을 새노라니 어두운 눈은 더욱 침침허고 눈물로 날을 새었거다.
<잦은몰이>
우물가 두리박 소리 얼른 듣고 나설제 한 품에 아해를 안고 한 품에 지팽이를 흩어 짚고 더듬더듬 우물가에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초칠 안에 어미 잃고 기허(氣虛)하여 죽게 되니 이 애 젖 좀 먹여주오.”
우물가에 오신 부인 철석(鐵石 _쇠나 돌처럼 감정이 메마른 부인을 뜻 함)인들 아니 주며 도척(盜拓_중국 춘추 전국시대의 큰 도둑으로 공자와 같은 시대를 살며 구천여 명의 도둑을 엄한 규율을 정해 이끌며 부자집만 털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준 의적)인들 아니 주랴 젖을 많이 먹여 주며, 한 부인이 하는 말이,
“여보시오 봉사님. 예. 이 댁에도 아해가 있고 저 집에도 아해가 있으니 자조자조 다니시면 내 자식 못 먹인들 차마 그 애를 굶기리까.”
심봉사 좋아라고,
“허허 감사하고 수복강녕(壽福康寧_장수하고 복을 많이 받고 건강하고 안녕함)허옵소서.”
이집 저집 다닐적에 삼베 길삼허노라고 히히하하 웃음소리 얼른 듣고 들어가,
“여보시오 부인님네 인사는 아니오나 이애 젖 좀 먹여주오.”
오뉴월 뙤약 볕에 김매고 쉬는 부인 더듬더듬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젖 있는 부인들을 젖을 많이 먹여 주고 젖 없난 부인들은 돈 돈씩_돈은 금전의 단위로 열돈이 한 냥임) 채워 주고 돈 없난 부인들은 쌀 되씩 떠주며,
“암쌀_간난아이가 먹는 묽은 죽으로 암죽을 끓일 쌀)이나 하여주오.”
심봉사 좋아라고,
“허허 감사허오 만수무강(萬壽無疆)하옵소서.”
젖을 많이 얻어 먹여 집으로 돌아올제 어덕 밑에 숙으려 앉어 아히를 어른다.
“허허 이 자식이 배가 뺑뺑허구나.”
<중중머리>
“둥둥 내 딸이야 허허 둥둥 내 딸이야 이 덕이 뉘 덕이냐 동네 부인의 덕이라 너도 어서 자라나서 너의 모친의 본을 받어 현철(賢哲)하고 얌전하야 아비 귀염을 보여라.”
“둥둥 내 딸이야 백미 닷 섬에 뉘 하나_쌀 다섯 섬 속의 뉘 하나처럼 아주 귀한 것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 열소경 한 막대로구나”
“둥둥 내 딸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옥을 준들 너를 사랴 어덕 밑에 귀남(貴男)이 아니냐 슬슬 기어라 둥둥 내 딸이야.”
“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댕기 끝에는 준주실 옷고름에는 밀화불수(密花佛手_보석의 일종인 밀화로 부처 손같이 만든 패물)달 가운데는 옥토끼 쥐얌 쥐얌 잘강 잘강 엄마 아빠 도리 도리 허허 둥둥 내 딸,”
“서울가 서울가 밤 하나 얻어다 두리박 속에 넣었더니 머리 깜한 새양쥐가 들랑날랑 다 까먹고 다만 한 쪼각 남은 것을 내가 먹고 한 쪽은 너를 주마, 어르르르.”
<아니리>
아해 안고 돌아와 포단 덮어 뉘어 놓고 동냥차로 나가는디 중고조로 나가것다.
<중머리>
삼배 전대_헝겊으로 만든 긴 자루인데 한쪽을 묶어 많은 물건을 넣을 수 있음) 외동지어 왼 어깨 들어 매고 동냥차로 나간다.
여름에는 보리동냥 가을이면 나락동냥 어린 아해 암죽차로 쌀 얻고 감을 사서 허유허유 돌아 올 제 그 때에 심청이난 하날이 도움이라 일취월장(日就月將) 자라날 제 육칠세 되어가니 모친의 기제사(忌祭祀_삼년 상이 끝난 후, 해마다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를 아니 잊고 헐 줄 알고 부친의 공경사(恭敬事)를 의법(依法_법에 맞게)이 허여 가니 무정세월이 이 아니냐.
<아니리>
하로난 심청이 부친전 단정히 앉어,
“아버지.”
“오냐.”
“오날 부터는 아무데도 가시지 마옵시고 집에 앉어 계시오면 지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공양(朝夕供養)하겠네다.”
심봉사 좋아라고
“원 이 자식아 내 아무리 곤궁헌들 무남독녀 너를 내보내어 밥을 빌단 말이 될 말이냐 오라오라 그런 말은 말어라.”
<중머리>
“아버지 듣조시오. 자로(子路)난 현인으로 백리를 부미(負米_백리를 부미하고, 자로가 부친 봉야을 위해 백 리나 떨어진 곳에서 쌀을 구해 짊어지고 온 일을 가리킴)허고 순우의(淳于意) 딸 제영이난 낙양옥(洛陽獄)에 갇힌 아부 몸을 팔아 속죄허고 말 못허는 가마귀도 공림(空林) 저문 날으 반포은(反哺恩_새새끼가 자란 후에 늙은 어미새에게 밥을 물어다 은혜를 갚는 일)을 헐 줄 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비금만 못 허리까. 다 큰 자식 집에 두고 아버지가 밥을 빌면, 남이 욕도 헐 것이요. 바람 불고 날 치운날 천방지축(天方地軸) 다니시다 치워 병이 날까 염여오니 그런 말씀은 마옵소서.”
<아니리>
“원 자식, 그런 말은 어데서 들었느냐 너의 어머니 뱃속에서 죄다 배워 가지고 나왔구나, 네 효성이 그렇거든 한 두어 집만 다녀 오너라.”
<중머리>
심청이 거동 보아라 밥을 빌러 나갈적에 헌 베 중의(重衣_바지) 다님 매고 청목(靑木_검푸른 물을 들인 무명) 휘양_추울 때 머리에 쓰는 모자의 한가지. 남바위 같이 생겼으나, 뒤가 훨씬 길고 목덜미와 뺨까지 싸게 되었음) 눌러 쓰고 말만_말기. 치마나 바지 따위의 맨 위. 허리에 둘러맨 부분) 남은 헌 초마에 깃 없난 헌 저고리 목만남은 길 보선에 짚신 간발 정히 하고 바가지 옆에 끼고 바람 맞은 병신처럼 옆걸음 쳐 건너갈 제 원산(遠山)의 해 비치고 건너 마을 연기 날 제 추적추적 건너가 부엌 문전 당도하여 애근히 비는 말이,
“우리 모친 나를 낳고 초칠 안에 죽은 후에 앞 못 보신 우리 부친 저를 안고 다니시며 동냥젖 얻어 먹여 이만큼이나 자랐으나 구환(求患)할 길 전혀 없어 밥을 빌러 왔아오니 한 술씩 덜 잡수시고 십시일반(十匙一飯_열 숟가락의 밥이면 한 그릇 밥이 된다는 말) 주옵시면 치운_추운) 방 우리 부친 구환을 하겠네다.”
듣고 보는 부인들이 뉘 아니 칭찬하랴. 그릇 밥 김치 장을 아끼잖고 후이 주며 혹은 먹고 가라 허니 심청이 여짜오되
“치운 방 저의 부친 나 오기만 기다리니 저 먼저 먹사리끼 부친 전에 가 먹겄네다.”
한두 집이 족한지라 밥 빌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심청이 허는 말이 아까 내가 나올 때는 먼 산에 해가 아니 비쳤더니 발써 해가 둥실 떠 그새 반일(半日_반 나절)이 되었구나.
<잦은몰이>
심청이 들어 온다. 문전에 들어 서며
“아버지 칩긴들 오직 허며 시장킨들 아니리까. 다순 국밥 잡수시오. 이것은 흰밥이요 저것은 팥밥이요, 미역튀각 갈치자반. 어머니 친구라고 아버지 갖다 드리라 허기로 가지고 왔사오니 시장찮게 잡수시오.”
심봉사가 기가 막혀 딸의 손을 끌어다 입에 넣고 훅훅 불며
“아이고 내 딸 칩다. 불 쬐어라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니가 이 지경이 웬 일이냐. 너의 모친이 살았으면 이런 일이 있겄느냐.”
<아니리>
심청 나이 그렁 저렁 십오세 되어 가니 얼굴은 국색(國色_한 나라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요. 효행이 출천(出天)이라. 이런 소문이 원근에 낭자허니 그 때에 무릉촌 장승상 부인이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것다. 심청이 부친전 여짜오되,
“아버지.”
“오냐.”
“무릉촌 승상부인이 저를 다녀 가라 허옵시니 어찌 하오리까.”
“아차 잊었구나. 그 부인은 일국의 재상의 부인이시다. 너의 어머니 생전 별친(別親)허게 지냈는디 네가 진즉 가서 뵈올 것을 여태 찾도록 있었구나. 네가 오날 건너가 뵈옵되 아미(蛾眉_미인의 눈썹을 이르는 말)를 단정히 숙이고 묻는 말이나 대답허고 수이 다녀 오너라.”
<진양조>
시비 따라 건너간다. 무릉촌을 당도허여 승상댁을 들어 갈 제 좌편은 청송이요 우편은 녹죽(綠竹)이라 정하(亭下)에 솟은 반송(盤松) 청풍이 건듯 불며 노룡(老龍)이 굼니난듯 뜰 지키는 백두루미 사람 자최 일어나서 나래를 땅에다 지르르 끌며 뚜루루 길룩 징검 징검 왕룡성_학이 우는 소리)이 기이허구나.
<중머리>
계상에 올라서니 부인이 반기허여 심청 손을 부여 잡고 방으로 드러와 좌를 주어 앉은 후에 네가 분명 심청이냐 듣던 바와 같은지라.
“무릉에 내가 있고 도화동(桃花洞) 네가 나니 무릉에 봄이 들어 도화동 계화(桂花)로다. 이 내 말을 들어 봐라 승상 일즉 기세(棄世)허시고 _세상을 버리시고) 아달이 삼형제나 황성(皇城)가 미혼허고_‘유환(遊宦)하고’의 잘못임. ‘유환’은 다른 나라 또는 먼 곳에 가서 벼슬살이를 함 이라는 뜻) 어린 자식 손자 없어 적적한 빈방 안에 대하나니 촛불이요 보난 것이 고서(古書)로다. 너의 신세 생각하면 양반의 후예로서 저렇듯 곤궁하니 나의 수양딸이 되면 여공(女工)도 숭상허고 문필(文筆)도 학습시켜 말년자미를 볼가허니 너의 뜻이 어떠허뇨.”
<아니리>
심청이 대답허되,
“모친 별세헌 연후에 아버지는 저를 아달 겸 믿사옶고 소녀는 아버지를 모친 겸 믿사와 대소사를 의론허고 지내오니 분명 대답 못 하겠네다.”
부인이 칭찬허고,
“기특타 내 딸이야 나도 너를 딸로 여길테니 너도 나를 어미로 알려므나.”
부인이 놓지 아니 허시고 이야기로 벗 삼으실새 심청이 일어서며,
“치운 방 저의 부친 저 오기만 기다리니 어서 건너 가겠네다.”
부인이 허락허고 비단과 양식을 후이 주어 시비 함께 보낸지라 그 때에 심봉사는 적적한 빈방안에 딸 오기만 기다릴제,
<진양>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치워 한기 들제 원산사(遠山寺) 쇠북소리 날 저문 줄 짐작허고,
“내 딸 청이는 응당 수이 오련마는 어찌 이리 못 오는고 부인이 잡고 안 오느냐 길에 오다 욕을 보느냐 새만 피르르 날아 들어도 내 딸 청이 네 오느냐 나무잎만 버썩 떨어져도 심청인가 반기는구나 아무리 불러도 적막공산(寂寞空山)에 인적이 끊졌으니 내가 분명 속았구나. 이일을 장차 어찌를 헐그나”
자진 복통_自盡腹痛. 뼈에 사무치도록 원통하게)으로 울음을 운다.
<잦은몰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
닫은 방문 펄쩍 열고 지팽이 흩어 짚고 더듬더듬 나가면서
“청아 어이 이리 못 오느냐.”
그 때에 심봉사는 딸의 덕에 몇 해를 가만히 앉어 먹어 놓니 도량 출입이 서툴구나. 지팽이 흩어 짚고 이리 더듬 저리 더듬 더듬더듬 나가다가 길건너 개천에 미친듯이 풍.
“어푸 사람 살리오.”
나오랴면 미끌어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랴면 미끌어져 풍 빠져 들어가고,
“아이고 도화동 심학규 죽네. 정신은 말끔헌디 숨도 못쉬고 아픈데 없이 작 죽는구나.”
<아니리>
한참 이리 헐제 때 마침,
<엇머리>
중 올라 온다. 중 하나 올라 간다. 저 중이 어디 중인고. 몽은사(夢恩寺) 화주승(化主僧_속세에 나가서 불교를 포교하며, 부처에게 바칠 공양물과 중들의 음식과 옷 따위를 대주는 책임을 맡는 중)이라. 절을 중창(重창_낡은 건물을 헐기도 하고 고쳐서 새로 지음)허려허고 시주집 나려 왔다
날이 우연히 저물어서 서산에 비낀 길로 급급히 올라 갈제 저 중의 차림 보소. 저 중의 거동 보소. 굴갓 쓰고 장삼 입고 백팔 염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고 용두(龍頭) 새긴 육환장(六環杖_도가 높은 중이 짚고 다니던, 고리가 여섯 개 달린 지팡이) 쇠고리 많이 달아 처절절 뚝뚝 짚고 흔들 흔들 흔들거리고 올라 갈제 원산은 암암(暗暗)허고 설월(雪月)리 돋아 오는디 백포장삼(白布長衫)은 바람결에 펄렁펄렁 염불하며 올라간다.
“아아 아아 상래소수공덕해(上來所修功德海) 회향삼처실원만(廻向三處悉圓滿_옛부터 닦아온 공덕은 바다처럼 넓으니, 이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어, 자타가 공히 부처님의 은덕을 입어, 각 부처가 다스리는 삼천의 세계 곧 온 우주가 다 원만하길 바람) 원왕생(願往生) 원왕생 제궁종실각안녕(諸宮宗室各安寧_임금의 친족과 왕실이 두루 평한하기를 바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허고 올라갈제 한곳을 당도허니 어떠한 울음소리 귀에 얼른 들린다. 저 중이 깜짝 놀래,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마외역(馬嵬驛) 저문날에 하소대로 울고 가는 양태진(楊太眞)의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여우가 변하여 날 후리려는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죽장을 들어 메고 이리 끼웃 저리 끼웃 한곳을 살펴보니 어떠한 사람인지 개천에 풍당 빠져 거의 죽게 되었거늘, 저중의 급한 마음 저 중의 급한 마음 굴갓 장삼 훨훨 벗어 되는대로 내던지고, 행전 다님 끌르고, 보선을 얼른 벗어 고두누비 바지가래 똘이똘똘 말아 자개밑 딱 붙이고 무논의 백로(白鷺) 격으로 징검징검 걸어서 들어가 심봉사 꼬두래상투 에잇후리쳐 건져 놓고 보니 전에 봤던 심봉사라.
<아니리>
심봉사 정신 차려,
“거 뉘가 날 살렸소.”
“예 소승은 몽은사 화주승(化主僧)이온데 시주집 나려왔다 절을 찾어 가는 길에 다행이 봉사님을 구하였나이다.”
“허허 활인지불(活人之佛)이로고 죽을 사람 살려 주니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요.”
저중이 허는 말이,
“심봉사님 좋은 수가 있읍니다마는.”
“수는 무슨 수꼬.”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 절 부처님이 영검(靈驗_사람의 기원에 대하여 신이나 부처가 베풀어 주는 영묘한 효과))이 많사와 빌면 아니 되는 일이 없고 구하면 다 응하오니 공양미 삼백석만 불전에 시주허면 정녕 눈을 뜨오리다마는.”
“아니 이렇게 먼 눈을 떠.”
“예 눈을 뜨옵지요.”
“예잇 남녀간에 거짓말하는 사람 비위에 마땅찮드라.”
“아니올시다. 대자대비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소승으로 어찌 허언을 하오리까.”
“그래 꼭 눈을 뜬다.”
“예, 꼭 눈을 뜨옵지요.”
심봉사는 눈 뜬단 말을 듣고 반가워 후사는 생각잖고 대번 일을 저지는디,
“여보시오 대사 그러면 공양미 삼백석을 권선(權善_절을 짓거나 불사(佛事)를 하기 위하여 선심있는 신자들에게 보시를 청함. 여기서는 권선책(勸善冊)임. 권선책은 시주의 이름과 시주한 재물의 액수를 기록한 장부)에 기재허오.”
저 중이 어이 없어,
“심봉사님 가세를 헤아리면 삼백석을 커녕 단 삼백 주먹이 없는 이가 어쩔라고 그러시오.”
심봉사가 화를 내어,
“무엇이 어쪄, 칼부림 나기 전에 썩 적어. 내 수단을 어찌 알어서 하는 말이여.”
“여보시오. 봉사님 부처님전 허언을 허게 되면 도리어 앉은뱅이가 될터이니 부대_부디) 명심허오.”
내월 십오일까지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시키기로 권선에 기재허여 중을 보내 놓고 집으로 돌아와 곰곰 생각허니 백계무책(百計無策)이로구나.
<중머리>
“허허 내가 미쳤구나. 정녕 내가 사(邪_요사스러우며 나쁜 기운)들렸네 공양미 삼백석을 내가 어이 구할거나. 살림을 팔자헌들 단 돈 열량 뉘라 주며 내 몸을 팔자헌들 앞 못보는 봉사놈을 단돈 서푼을 누가 주리. 부처님을 속이며는 앉은뱅이가 된다는디, 앞 못 보는 봉사놈이 앉은뱅이 마저 되거드면 꼼짝없이 내가 죽겠구나.”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될지라도 내가 차라리 죽을 것을. 공연한 중을 만나 도리혀 내가 후회로구나. 저기 가는 대사. 대사 대사 쌀 삼백석 에우고_지우고) 가소. 대사 대사 대사 대사 저 놈 봐,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가련마는 못 들은 체허고 뒤바탕에 손 넣고 거덜거리고 가제. 대사, 아이고, 내 신세야. 내 딸이 이 말을 듣고 보면 복통자진(腹痛自盡_뼈에 사무치게 원통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 됨)을 헐것이고 이 일을 장차 어쩔거나?”
실성발광 기가 막혀 홀로 앉어 탄식을 헌다.
<잦은몰이>
심청이 들어온다. 문전 들어서며 저의 부친 모양 보고 깜짝 놀래 발 구르며,
“아버지 이게 웬 일이요. 살 없는 두 귀 밑에 눈물 흔적 웬일이요. 나를 찾어 나오시다 개천에 넘어져서 이런 일을 당하셨오? 이웃집 가시다가 무슨 변을 당하셨오. 승상댁 노부인이 굳이 잡고 만류허여 어언간 더디었오. 말씀이나 허여 주오 답답허여 못 살겄오.”
<아니리>
심봉사 공연한 일을 저지르고 먼저 화를 내것다.
“나 아버지 아니다. 너 알아서 쓸데 없는 일이다.”
“아버지 이게 웬 말씀이요. 모친 별세한 연후에 아버지는 소녀를 아달 겸 믿사옵고 소녀는 아버지를 모친 겸 믿사와 대소사를 의론터니, 오날 말씀이 ‘너 알어 쓸데 없다’ 허시니 아무리 불효여식인들 마음이 설사이다.”
훌적 훌적 울음을 우니,
“이 자식아 내가 너를 무슨 일을 속이랴마는 네가 승상댁에 간 후에 천상 와야지. 그래 내가 너를 찾어 나가다가 개천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을 적에 몽은사 화주승이 나를 건져 살려 놓고.”
“아이고 아버지 몽은사 화주승이 살려 주다니 그런 고마운 일이 어데가 있오.”
“내 말 들어 봐라. 아 그놈이 살려만 주고 갔으면 고마웁지. 그런데 나를 건져 살려 놓고 나를 살살 꼬인단 말이여. 공양미 삼백석만 불전 시주허면, 이 눈을 뜬다하기에 눈 뜬단 말이 어찌 반갑든지 후사는 생각잖고 공양미 삼백석을 내월 십오일까지 바치기로 권선에 기재허여 중을 보내 놓고 생각허니, 백계무책이로구나.”
심청이 이 말 듣고 부친을 위로하되,
<중머리>
“아버지 듣조시오 왕상(王祥_진나라 임기 사으로, 일찌기 모친을 잃고 계모 주씨밑에서 크며, 효도를 다했다. 계모가 추운 겨울에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므로 왕상이 옷을 벗고 얼음을 깨고 강물에 들어가려 하니, 얼음이 저절로 깨어지며 잉어 두 마리가 뛰어 올라와서 그것을 가지고 계모를 봉양하였다고 함)은 고빙(叩氷)허여 어름 궁기_구멍) 잉어 얻고 맹종(孟宗_중국 삼국시대 사람으로, 어머니의 병환에 쓸 죽순을 얻으려고, 한 겨울에 대나무밑에서 밤낮 울고 있었더니, 죽순이 솟아나와 병환을 고쳤다고 함)은 읍죽(泣竹_대나무를 붙들고 욺)허여 눈속에 죽순 얻어 사친성효(事親誠孝_어버이를 섬기는 효도)를 허였삽고 곽거(郭巨)라는 옛 사람은 부모 반찬허여 놓면 제 자식이 먹는다고 산 자식을 묻으랴 땅을 파다 금을 얻어 부모 봉양을 허였으니 사친지 효도가 옛 사람만 못 허여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깊이 근심은 마옵소서.”
<아니리>
“대처 그런 말은 어데서 들었느냐.”
심청이 이렇듯 부친을 위로하고 그날부터 목욕 정히 재계하고 지극신공(至極神供)을 드리난디,
<진양>
후원의 단을 뭇고_모으고 쌓아 올리고) 북두칠성 자야반(子夜半_한 밤중에)의 촛불을 돋오키고 새 사발으로 정화수를 떠 소반우에다 받쳐 놓고 두손 합장 무릎 꿇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전 비나이다. 천지지신 일월성신 화우동심(和佑同心_화합하여 한 마음이 됨) 허옵소서. 무자생(戊子生) 소경 아부 이십 이후 안맹(眼盲)허여 시물(視物)을 모르오니 아부의 허물은 심청 몸으로 대신허고 부친 눈을 밝히소서 공양미 삼백석만 불전에 시주허면 정녕 눈을 뜬다허니 명천이 감동허사 공양미 삼백석을 지급하여 주시소서.”
<아니리>
이렇듯 빌어 갈제 지성이면 감천으로,
<중머리>
하로난 문 밖으로 외는 소리 우리는 남경선인(南京船人)일러니,
“임당수(臨塘水) 인제수(人祭需)를 드리고저 십오 세나 십륙 세나 먹은 처녀를 살랴허니 몸 팔 일이 뉘 있읍나.”
이렇닷이 외는 소리 원근 산천이 떵그렇게 들린다.
<아니리>
심청이 이 말 듣고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짐작허고 동리 사람도 모르게 은신허여 도사공(都沙工_뱃사공의 우두머리) 청해들여,
“나는 이 마을 사람으로 부친이 안맹하여 공양미 삼백석만 불전으 시주허면 정녕 눈을 뜬다 허오나 가세 극빈허여 내 몸을 팔자허오니 저를 사감이 어떠하오.”
선인들이 이 말을 듣고,
“출천대효(出天大孝)로다. 공양미 삼백석은 염려마오 그러나 내월 십오일이 행선일(行船日)이니 그날 떠나 가겄오.”
“중(重)값_많은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내 뜻대로 하오리까 그난 염려 마옵소서.”
선인들과 단단 약조하고 보낸 후 방으로 들어와,
“아버지.”
“왜야.”
“공양미 삼백석을 몽은사로 올렸으니 아무 염려 마옵소서.“
심봉사 깜짝 놀래,
“아니 니기 어떻게 해서 공양미 삼백석을 올렸단 말이냐.”
“다름이 아니오라 전일 승상댁에 갔을 때 부인이 저를 수양딸로 정하신다 하온 것을 분명 대답 못허고 왔었지요. 지가 오날 건너가 아버님 사정을 여쭈었더니 부인이 들으시고 공양미 삼백석을 몽은사로 올리면서 저를 수양딸로 다려간다 허옵니다.”
“야 그 일 잘 되었다. 양반으 자식으로 몸 팔린단 말은 외인소시난처(外人所視難處_다른 사람 보기에 난처하나)허나 그 부인으게 수양딸로 가는게야 뉘가 날 딸 팔아 먹었다고 정개 허겄느냐. 그 일 잘 되었다. 그러면 어느 날 다려간다 허시드냐.”
“내월 십오일 다려간다 허옵디다.”
“날짜도 잘 받었다 달도 밝고, 여봐라 청아 나는 어쩐다 하시더냐.”
“아버지도 모셔간다 하옵디다.”
“그럴 것이다. 그 부인이 어떠한 분이라고 눈 먼 나 혼자 두겄느냐 잘 되었다. 너는 가마 태워 갈 것이다마는 나는 무엇을 타고 갈거나. 오오. 나는 김장순댁 껌은 암소나 좀 얻어 타고 가게.”
심청 같은 효성으로 부친을 어이 속일리가 있으리요마는 속이는 것 또 효성이라. 이렇듯 부친을 속여 놓고 눈물로 날을 보내는디 하로는 문듯 생각허니 행선 날이 하로 밤이 격한지라.
<진양>
그때의 심봉사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근근부지(僅僅扶持_겨우 견디어 나감) 지낼 적에 도화동 사람들이 심소저 효행에 감동되어 강두(江頭)에다 타루비(墮淚碑_눈물을 흘린 비. 사마염이 서진을 세우고 무제가 되었을 때, 명장인 양호가 죽은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양양현 현산에 비를 세웠는데, 그 비문을 보는 사람마다 울어서 붙은 이름)를 세워놓고 비문에 허였으되,
지위노친평생한(知爲老親平生恨)허여
살신성효행선거(殺身成孝行船去)라.
연파만리상심벽(烟波萬里常深碧)허니
방초년년환불귀(芳草年年還不歸)라.
_늙으신 어버이께서 두 눈이 다 없는 것을 지극히 근심하여,
자신을 죽여 효를 이루고자 배를 타고 떠났네.
멀고먼 안개 낀 물 늘 깊고 푸른데,
꽃다운 풀은 해마다 다시 피어나지만 (심청은) 돌아오지 못 하는구나.
승상부인도 망사대(望思臺)를 지어 놓고 춘추로 제지낸다. 이렇듯 비문을 하여 세워놓니 오고가는 행인들도 뉘 아니 슬퍼허랴. 심봉사도 딸 생각이 나거드면 지팽막대 흩어짚고 타루비 찾어가서 비문 안고 우드니라. 일일도 심봉사 마음이 산란허여 지팽이 흩어 짚고 망사대를 찾어 가서,
“후유 아가 청아 내가 또 왔다. 너는 내 눈을 띄우랴고 수중 고혼이 되고 나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내가 이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날 다려 가거라. 나를 다려 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찮허고 눈 뜨기도 내사 싫다.”
비문안고 엎더져 나리둥글 치둥굴며 머리도 질끈 가삼을 ‘쾅쾅’, 두 발을 굴며 남지서지(南之西之_남쪽과 서쪽인 듯)를 가르치는구나.
<아니리>
밤이면 집에 돌아와 울고 낮이면 강두에 가서 울고 눈물로 세월을 보낼제 그 마을 사는 묘한 여자가 하나 있으되 호가 뺑파것다. 심봉사 딸 덕분에 전곡(錢穀_돈과 곡식)간에 있단 말을 듣고 동리 사람들 모르게 자원출가(自願出嫁_자기가 원하여 시집을 감)하여 심봉사 그 불상헌 가산을 꼭 먹성질_음식을 먹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망하는디,
<잦은몰이>
밥 잘 먹고, 술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떡 잘 먹고,
쌀 퍼주고 고기 사 먹고, 벼 퍼주고 술 사 먹고,
이웃집 밥부치기, 동인 잡고 욕 잘 허고,
초군(樵軍_나무꾼)들과 싸움허기,
잠자며 이갈기와 배 끓고 발 털고 한밤중 울음 울고,
오고 가는 행인 다려 담배 달라 실랑허기,
술 잔뜩 먹고 정자 밑에 낮잠 자기,
힐끗허면 핼끗허고, 핼끗허면 힐끗허고,
삐쭉허면 빼쭉허고, 빼쭉허면 삐쭉허고,
남의 혼인허랴허고 단단히 믿었난디
해담(害談)을 잘 허기와 신부 신랑 잠 자는디 가만가만 문 앞에 들어서며 불이야.
이 놈의 행실이 이러허여도 심봉사는 아무런줄 모르고 뺑파한테 빠져서 나무칼로 귀를 외어가도_칼 따위로 도려내듯 베어가도) 모르게 되었것다.
<아니리>
심봉사 하루난 돈궤를 만져보니 엽전 한 푼이 없것다.
“여 뺑파 돈 궤를 만져보니 엽전 한 푼이 없것다.”
“아이고 그러니 외정(外丁)은 살림 속을 저렇게 몰라. 영감 드린다고 술 사 오고, 고기 사 오고, 떡 사 오고 하는 돈이 모두 그 돈 아니요.”
“나 술 고기 떡 많이 잘 사주더라. 여편네 먹은 것 쥐 먹는 거이라고 할 수 있나.”
“영감아, 지난 달부터 밥 구미는 뚝 떨어지고 신 것만 구미가 당기니 어째서 그런가 모르겄오.”
“파아하하, 거 그러면 태기가 있을란가부네. 어찌튼 하나만 낳라. 그런디 신 것이 구미가 당기면 무엇을 먹는가.”
“아, 살구 먹었지요.”
“살구는 얼마나 먹었는고.”
“아, 씨 되어 보니 닷말 서 되입디다.”
“거 신 것을 그리 많이 먹어. 그 놈은 낳드라도 안 시건방질가 몰라. 이것 농담이요.”
하로난 관가에서 부름이 있어 들어 가니 황성서 맹인 잔치를 배설허였는디 만일 잔치 불참허면 이 골 수령이 봉고파직(封庫罷職)을 당할 것이니 어서 급히 올라가라 노비(路費)까지 내어 주것다. 그 노비 받어 가지고 돌아 와,
“여보 뺑덕이네 황성서 맹인잔치를 배설하였는디 잔치에 불참허면 이 골 수령이 봉고파직을 당한대여. 그러니 어서 급히 올라 가세.”
“아이고 여필종부(女必從夫)라고 영감 따라가지 누구 따러 갈 사람있오.”
“아닌게 아니라 우리 뺑파가 열녀(烈女)도 더 되고 백녀(百女)다 백녀. 자 그럼 어서 올라가세. 의복 챙겨 있는 것 자네는 맡아서 이고 가고 나는 괘나리 띳빵해서 질머지고 가세.”
막상 떠날라고 허니 도화동이 섭섭하든가 보드라.
<재편집: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