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 홍 (61세, 목사, 법학박사)
세월이 유수 같고 화살같이 빠르다더니 마음은 아직 ‘이팔청춘’처럼 젊디젊은데. 벌써 환갑을 넘은 人生 60년이 넘어가고 있다
나는 6.25 사변 때문에 일찍이 父母 잃은 외롭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슴에는 부푼 꿈을 간직했지만 늘 험로의 세상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과는 달리 일찍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하여주시고, 환란 가운데서도
죽음의 고통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오뚝이 人生으로 살게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에 힘입어 일찍이 국가공무원과 전문대학의 교수(교목실장) 그리고 목회자라는 직분을 갖고
다양한 人生을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하늘을 추구하는 영적인 삶보다는 출세지향주의의 세상에서 이러한 직임을 자랑하며
스스로 잘났다는 오만에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주님 영광을 위한 말씀의 삶 보다는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세상노예가 되어 방황하고 넘어져 허우적거리다가 마침내 이제
60세라는 환갑이 넘어 대장암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나는 그 수술과 항암 치료의 고통으로 죽음의 세계를 맛보면서, 오히려
회한의 삶을 돌이켜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이제라도 주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안도와 기쁨과 감사를 느끼면서 행복을 깨닫는다.
이런 행복. 기쁨, 감사함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와 주위의 여러분의 도움 때문이다. 대장암 3~4기에 임파선으로 전이되었다는
초기 진단. 그리고 장폐쇄와 대장암으로 인한 2차례의 큰 수술을 지방의 종합병원의 젊은 주치 의사에게 맡기고 나는 주님께 묵상기도
할 뿐이었다. 처음 시한부로 선고되었을 때는 하나님께 너무나도 죄인 된 모습이 부끄러웠고, 구원 받고 싶다는 간절함과 처와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그들 영혼구원을 간구하는 심령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두려움보다 차츰 마음이 평안해지고 무조건 범사에 웃음
으로 감사가 흘러 넘쳤다.
오산한국병원의 청소부를 비롯한 간호사들, 의사들, 모두가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해 단합하고, 유명종합병원에 지지 않는 친절, 성실,
섬김의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두 달간의 입원기간에 나는 그들과 가족 같은 사귐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나에게
암은 큰 병이니 큰 병원으로 옮겨가라고 충고를 하고 성화를 했다. 나는 차마 그것을 주치 의사께 직접 말 할 수는 없었지만, 가까운
목사와 처가 주선하여 두 달여의 수술과 치료에 따른 영상 등 모든 자료와 의사 소견서를 가지고 유명한 A대학종합병원으로 옮겼다.
그곳은 내가 입원했던 조용한 지방종합병원과 달리 장터같이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원무실 수속부터 차례를 한참 기다렸다가,
예약한 외과의사 선생님을 만나 12차례의 항암치료를 결정한 후, 2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았다. 한 번에 3박4일간의 입원을 하는데
보험혜택이 주어지는 6인실(1일 1만원)은 모자라서 무조건 4人실(1일 9만원) 혹은 2인실(15만원)에 입원한 후 다시 6인실 신청하여
옮기도록 되어있었다.
그곳에서의 2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체계적이고 친절함은 차치하고라도 높은 입원료 때문에 90여만 원 진료비가
청구되어 도저히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매스컴 TV에서도 치료비가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24% 정도나 된다는 내용(대부분의 암 환자의 고민이 죽음보다 치료비 걱정이
우선이라는) 방송내용이 실감되기도 했다.
큰 A병원으로 옮겨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중에도 나는 나를 수술해주고 정성껏 치료해 주던 가까운 오산한국병원 주치 의사를 찾아서
상담을 해왔는데, 하루는 우편으로 배달된 암진단의 첨단 장비인 pet-ct 기계의 도입에 대한 병원 안내문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주치의를 찾아 항암치료를 오산한국병원에서 받을 수 없냐고 물었더니 A대학종합병원의 처방전과 소견서 등 자료를 갖고 오면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그리하여 A대학병원에서 모든 자료를 받아 다시 수술한 오산한국병원으로 옮겨 제3차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복잡한 A대학병원과 달리 6인실 병실에서 인정 넘치는 환우들을 만날 수 있었고 친절한 간호사들의 반가워하는 모습에 마음이 더 편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나갔다 돌아온 환자를 더 정정성스럽게 진료하고 힘든 항암치료를 더 편안하게 받도록 배려를 해 주는 주치의사의 태도에 위안을 받으며 감사를 느낀다.
더욱 감사한 것은 진료비였다. A대학병원에서는 한 번 항암치료에 40만원이 넘었는데, 여기서는 약값을 포함하여 3차에는 96,000원,
4차에는 63,000원이 청구되어 놀라웠다. 입원 기간도 A대학병원에서 3박4일하는데 여기서는 2박3일로 하루가 단축되었고, 내가 교회성도
라는것을 알고 주일예배에 지장이 없도록 주치 의사는 편리한 날짜로 조절해주고, 교회에서 큰 행사가 있어 항암을 잠시 중단하고
외출허가를 받아 봉사 후 치료를 계속하기도 하는, 정말 환자중심의 진료를 위해 노력하는 지방 종합병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체험하고 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큰 병원, 유명한 병원을 지향한다. 사정이 있어 지방종합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면서도 불신하고 불만하여
다른 큰 병원으로 옮겨가며 재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보면서 지방병원을 불신하는데, 사실은 그 불신 자체가 병을 스스로 키우는 모습
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감사하다. 스스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병원의 모습도 귀하지만, 무엇보다도 환자를 주, 야로 직접 관찰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의사에게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나는 작은 성의지만 병원을 들릴 때 마다 병원 내 구내차집에 들러 홍삼대추차를 배달하여 나의 진정한 감사의 표를 기쁨으로 드린다.
또한 목사로서 육체의 구원이상으로 영혼구원이 더 중요하기에 주치 의사께 예수의 사랑과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웃으면서 자신도
예수님 믿는 교회성도라고 대답하여 더 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60세 회갑을 넘어 장폐쇄증과 같이 온 대장암! 두 차례의 대수술과 함께 12차례나 되는 항암치료의 육제적인 고통도 있지만, 나는
주님께 눈물 흘려 회개하며 끊임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런 나에게 주님께서는 빛의 모습으로 두 번 찾아주셨고 영적치료와 함께
무한한 기쁨, 행복, 소망을 넘치게 해 주신다. 또한 암 3~4기의 임파선 전이로 어려운 상태라는 초기 진단은 조직검사 결과 2기 후반으로
아직 전이되지 않은 상태로 진단이 되었고, 생활 속에서도 만사가 형통하게 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늘 체험하고 산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산한국병원 감사합니다. 주치 의사님 감사합니다. 주위의 이웃들의 사랑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모든 영광 예수님께 올려 드립니다.
------------------------------------------------------------------------------------------------------------------------------------------------------------------- 오산시 가수동에 거주하시는 석 홍 님의 사연이였습니다. 퇴원을 하시던 날, 직접 쓰신 편지를 전해주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저희 오산한국병원은 앞으로도 환자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과 정성으로 가족과 같은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석 홍 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아래 신문기사는 2011년에 위의 글을 요약하여 보도한 내용으로서 오산한국병원
에서는 이를 복사,코팅하여 에리베이트와 각층 간호사실게시판에 게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