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장사(南地藏寺)는 최정산(最頂山) 남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지장 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고승 무학대사가 수도한 곳이기도 하며,임진왜란 때 사명 대사(四溟大師)와 의병장 우배순의 의병들이 훈련한 장소이기도 하다.
684년(신문왕 4)에 양개 조사(陽价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1263년(원종 4)에 일연(一然)이 중창하였으며, 1653년(효종 4)에 승려 인혜(印惠)가 대규모 사찰로 다시 건립하였다. 이때 세워진 전각이 11개에 달한다. 또한 인혜의 명으로 거사 손응적(孫應迪)이 삼존상과 조사의 진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676년(숙종 2)에는 승통 관숙 등이 법당을 수리하였다. 1680년(숙종 6)에는 대덕 승민이 남지장사 청련암(南地藏寺靑蓮庵)을 창건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승통 태순이 시왕전을 서쪽 산기슭으로 옮겼으며, 1689년(숙종 15)에 팔도 도승통 영남도 총섭 가선대 부인 축부가 현당을 중창하였다. 1694년(숙종 20)에 승려 승민이 신륵사로 가서 지공, 나옹, 무학 등 삼화상의 영정을 모사하여 이곳에 봉안하였고, 아울러 나옹 화상이 고려왕으로부터 받은 발우와 지공이 받은 향완 등을 이곳으로 가져와 함께 봉안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점령되어 화재로 소실된 후에 인혜가 1653년(효종 4년) 중건하였고, 1767년(영조 43) 모계(慕溪)가 중창한 뒤 팔공산 내의 북지장사와 서로 대칭되는 곳에 위치한 절이라 하여 남지장사라 하였다. 그전의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남지장사는 산중턱 축대를 성벽처럼 높이 쌓아 지대를 2단으로 조성한 후 건물을 세웠다. 즉, 북쪽 정면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그 전면에 누각을 두고 다시 대웅전과 누각 좌우에 요사를 배치하고 있다. 법당은 3칸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구성되었으며 기둥에는 배흘림 수법이 나타나 있다. 전면의 문창살에는 격자문의 조각을 부착하였다. 대웅전의 축대는 잘 다듬은 고식을 유지하였으며 그 전방에는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현재 대웅전(大雄殿), 명부전 누각 요사채 극락보전(極樂寶殿), 삼성각(三聖閣), 광명루(光明樓), 요사채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광명루 동쪽에는 운계당 대선사 휘축인 송덕비(雲溪堂大禪師諱竺寅頌德碑), 모계당 대선사 휘취례 송덕비(慕溪堂大禪師諱取禮頌德碑)」, 경운당 대선사 휘영화 선덕비(景雲堂大禪師諱永化善德碑) 등 남지장사 비석군(南地藏寺碑石群) , 남지장사 경자갑계유공록(庚子甲稧有功錄)을 비롯, 전우소화중수기(殿宇塑畫重修記) 등의 현판이 즐비하다. 동구에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전형적인 석종형(石鐘型) 부도 여러 기가 있다.이 위치해 있다. 부속 암자로는 남지장사 청련암 1995년 대구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34호로 지정 . 남지장사 백련암(南地藏寺白蓮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