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70% 지지로 자민당 총재 당선…모레 총리 등극>
일본 차기 총리를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정부를 계승하겠다”고 밝힌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72)이 이변 없이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됐다. 자민당은 14일 오후 2시부터 중·참의원 양원의원총회를 열고 총재 선거를 실시한 결과, 스가 장관이 전체 534표 중 377표(70.6%)를 얻어 총재로 당선됐다고 밝혔다. 스가 신임 총재는 오는 16일 임시국회에서 제99대 총리로 지명된다. 임기는 아베 총리의 잔여 기간인 1년이다. 스가 신임 총재는 후보 출마를 선언하기 전부터 자민당 내 파벌 7개 중 5곳의 지지를 받으며 당선이 유력시됐다. 선거 방식도 당원을 뺀 국회의원 중심의 약식 선거로 결정돼 민주주의 위배 논란이 있었다.
스가 총재는 지난 2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노력을 확실히 계승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스가 정부가 ‘아베 정부 시즌2’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스가 총재는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둘러싼 한-일 관계와 관련해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한-일 관계의 기본”이라며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 한일협정 : 1965년 한국과 일본이 다시 국교를 맺은 협정이다.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일제의 식민 지배 피해에 대한 배상 문제를 말끔히 처리하지 않은 채 국교를 맺어 지금까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한일 회담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당시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고, 한국은 청구권 3억 달러와 경제 차관 2억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식민 지배의 피해에 대한 모든 배상을 포기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1964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일 회담 반대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특히 6월 3일에 ‘굴욕적 한일 회담 반대’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자,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이를 진압했다. 그런 다음 1965년 마침내 한일 협정을 마무리 지었다.
<‘짓무른 들판’엔 탄식만…밥상 덮치는 이상기후>
전례없는 작황 부진은 더위 대신 물난리만 잦았던 여름 날씨 탓이 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 자료를 보면, 누적 강수량은 716㎜로, 평년(263㎜)의 두배를 훌쩍 웃돌았다. 사상 최장 장마와 집중호우, 연쇄 태풍이 지나간 가을 들판에 시름이 깊다. 도시민들 사이에서는 장바구니 물가가 걱정스럽다. 실제 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농촌경제연구원의 가격동향을 종합하면, 고추·오이·호박·사과·배·포도 등 농산물값이 예년보다 25% 이상 오른 시세가 한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문제는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이 올해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성재훈 부연구위원은 “기온, 바람, 강수 등 예측자료로 볼 때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는 되풀이될 것이다. 이상기후에 취약한 지역과 작물을 찾아내 두루 알리고, 재해대책 법령을 고쳐 보상에서 예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