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만나’(Manna
for five days) (679)
주님의
사랑 받는 오뚝이 선교사! ……
⑫
-1-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시기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 “
(삼상2:
6)
한나의 입을 통해 기록한 인생의 생사를 주관하신다는
증언이다.
Ⅰ.
심장병의
발병
모스크바에서
한 시간대의 숄코바 시내에 신학교를 개강하고부터는 모스크바 시내에서 아침출근 을 해서 매주 3일간 매일
4시간씩 강의를 하고 남은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공지를 이용하여 부식을 자체 해결하려고 풀밭을 개간하고 딱딱한 땅을 일궈 채소를
심고 거름 주어 가꾸며 하는 수고를 러시아 신학생들은 집단농장제도 속에서 살아 농사를 경험해 보지 않아서 서투른 점과 일하기 싫어하는 고질적인
병폐가 마음이 급한 나의 몫으로 과로가 계속 되었다. 추운 겨울철에 숄코바 버스를 내려 15분간
걸어서 신학교에 들어오는 길이 왜 그렇게 멀고 힘이 드는지?
그것도 부족하여 2층 아파트를 오르내리는데 숨이 가빠서 허덕이며 건강에 적신호가 온 줄 알고
선교지에서의 불편한 점과 치료비가 과다하여서 연회 참석 차 한국에 들어와 신림동 김 내과에 간단히 치료하고 들어가려고 검진을 했더니
X-Ray를 찍으라기에 찍어보니 난색을 표하면서 큰 병원으로 가라며 의뢰서를 써 주어 여의도성심병원으로
달려갔다.
여의도병원에 입원하고 주치의를 배당 받아 조영 수술로 심장을 검사하니 심실의
3동맥(동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중 가운데 중부고속도로 같은 동맥이 신탄진 쯤에 이르러 30%의 이상이 생겼다며 수술을 권했지만 필자는
곧바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제6회 국외선교연회에서 모스크바지방 가입을 위하여 참석하기로 선약되어 있어서 의사들이 수술을
받으라고 권유하는 것을 약물로 치료하겠다고 우겨서 퇴원하고 말았다.
① 추운데
가지 마라!
②
운전하지 마라!
③ 비행기 타지 마라!
라는 의사에 주의를 받고 약을 타가지고 나와서 며칠 후 바로 국외선교연회 참석차 미국 행 장거리 비행 끝에 난생 처음
가보는 미국 땅을 밟았다. L.A.에서3일간의 연회를 마치고 타 선교사들은 관람을 하고 돌아오게
되어있어 단체여행의 별도로 귀국하려니 추가 여비를 지불하고서 귀임일자가 임박하여 급히 한국으로 돌아와 장기복용하기 위하여 많은 약을 싸 들고
이제 한국감리교가 인정하는 모스크바지방 감리사의 직임을 받고 승전장군이나 되는 양 당당하게 모스크바로 들어 왔다.
심장 약이 아침 식후 30분에 복용하게 되어 있어 하는 수 없이 5년간의
아침 굶는 식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Ⅱ.
앰뷸런스에
실려 간 모스크바 북부중환자실
아침저녁으로
의사에 처방에 의해 조제한 약을 먹으며 평시나 다름없이 주중에는 신학교 강의, 주말에는 계속 개척되는 교회들을 방문하고
주일에는 모스크바양문교회의 설교를 하며 바쁘게 사역하던 중 남쪽에 있던 주택을 내어 달라기에 셋째 딸 세라의 학교 기숙사 근처 북쪽 베덴하로
이사를 하였다. 월세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집수리를 자청하고 신학생들을 동원하여 도배를 하기 위하여 아내는
2-3명의 학생 들이 북적거리고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할 일없이 이방 저 방 다니며 지시를 하다가 의자 위에서 빙빙 돌아가는 의식을
느끼자 이어서 ‘쿵’하고 쓰러졌다.
얼마 만에 의식을 회복하여 들으니 앰뷸런스가 왔다며 의사가 가방을 가지고 아파트로 올라왔다. 긴급
진찰을 하며 심전도를 찍어보더니 병원으로 가자고 한다. 저항 없이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에 타고 경적을 울리며 복잡한 시내
길을 질주하여 모스크바 북부심장전문병원에 도착하여 입원수속을 마쳤다.
팬티 하나 걸치고 옷은 최전도사가 가지고 담요 한 장으로 침대에 뉘였다. 곁에 있는 환자들도 같은
심장병 환자들이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고독한 孤島(고도)였다.
규정에 따라 보호자는 함께 있지 못해서 통역 겸 보호자인 최전도사가 돌아가고 의사에 정밀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통역이 없으니 말
못하는 벙어리요. 입을 다문 채 겨우 움직이는 나무토막 같은 처지로 금요일 밤을 지나고 토요일 아침에 최전도사가 문병을
왔다. 담당의사의 회진을 받아 몸의 상황을 말하고 돌아가려는 최전도사에게 내일 예배에 갈 수 있도록 조치하라며 당부를
하고 보냈다.
주일 아침이 돌아와 성도들이 기다릴 교회를 그리며 예배 드리러 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도 아무
기척이 없다. 이때나 저 때나 최전도사가 옷을 가지고 “목사님!” 하며 들어올 환상에 젖어
기다리고 있는데 함흥차사다. 조급한 김에 마침 회진 온 의사에게 영어 반 노어 반 섞어가며
말했다.
“나는 목사입니다. 오늘은 주일인데 교회 갔다
오겠습니다.”
“어떻게 가느냐?”는 의사가 말에 전화하면 사람이 온다며 도와 달라고 했더니 잠시 후 조력사가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난생 처음 휠체어를 타고 사무실 곁으로 가서 전화를 했다. 기다리던
최전도사가 집에서 전화를 받지 않은가? 화가 나서 호통을 쳤다.
“아니 뭐하고 집에 있느냐?”
“목사님! 의사 말 안 들으면
죽어요!”
화가 머리까지 치솟은 나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전화를
돌렸다.
“좀 어때요?”
“여보 다 말했으니 빨리 최전도사에게 교통비와 옷을
보내요!”
언제나 차분한 아내의 위로의 말을 뒤로 하고 전화를 놓고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얼마 있다가
달려온 최전도사와 병원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와서 교회로 달려왔다. 설교는 마침 진행 중이어서 앉아 있다가
축도를 하고 “다니엘이 왕의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북쪽 창을 열고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했듯이 여느 때와 같이 은혜에 굶주린 성도들에게
예배를 마치고 했던 것처럼 앞줄에 나와서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간절하게 안수기도를 하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가라 하기에 입원실을 옮기다가 내일 아침 본국 선교국 총무님께 긴한 연락사항이 있어 병원에서 전화비는 지불하겠으니 도와주던지 아니면
넘어진 짐에 쉬어 간다고 집에 가서 전화하고 내일 아침에 온다고 하니 담당의사가 직속상관에게 보고하고 나오더니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당신
같은 환자는 치료를 할 수 없으니 나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기에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중환자실 입원
3일 치료 도중에 ‘불명예 퇴원’을 당하고
말았다.
Ⅲ.
모스크바중앙교회
예배 중 누워버린 사회자
새로
개척한 모스크바중앙교회의 한인예배를 박준하 목사에게 전담을 시키고 나는 지방 내 교회를 순회하려 했으나 박 목사님의 성화에 밀려 매주 사회를
맡아 시간을 허송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새로 개척한 교회에 담임목사가 없이 나그네만 있으면 새 신자들이 정을 붙이기
어렵고 손님교인들도 그곳에 가면 유, 박 목사를 만날 수 있다는 신선한 맛을 보여 줘야 한다며 한국에서 오는 감리교인들의
정착을 위한 조치를 강조했다. 실은 중앙교회가 부흥돼야 러시아선교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실이나(그래서 한인예배를 개설했다) 타 교회의 초년 목회자들이나 신자들을 외면하기가
죄송스러웠다.
매 주 박은혜 사모님의 정성스런 점심식사를 차에 싣고 박준하 목사님을 태우고
20여km의 시외 한가한 자작나무숲을 뚫고 뻗은 길을 질주하여 달리면 모스크바 외곽순환고속도로가 나오고
시내로 10여분 달리면 세계에서 제일 큰 도매시장 체르빈스키 바구잘을 지나 강변도로가 시작되는 구비를 돌아 좁디 좁은
도랑 같은 모스크바 강 지류 양편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강이 합류되어 넓은 강을 끼고 러시아호텔, 크레믈린 궁의
높이 솟은 망루를 이어 적 벽돌담을 끼고 달리다 보면 크리스티 흐람의 (황금 돔)의 아름다운
예배당에 이른다.
황금 돔 예배당을 지나 모스크바국립대학을 우편으로 남겨놓고 좌회전하여 노비 체로뮤스키 지하철역을 거쳐 아파트 숲 속에
아담한 2층 건물 모스크바중앙교회에 도착하면 1시간 20분여가
소요된다. 예배를 드리고 찬양사역으로 돕는 조강희선교사 가족과 악기를 실어다 모스크바양문교회로 운송하고 돌아와 일행을
싣고 숄코바로 돌아오는 주일 행사가 계속되었다.
2002년
10월 6일 이날도 계속 반복하는 주일 예배를 위하여 모든 준비를 마치고 조선교사 가족의 준비찬양을 마치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설교순서가 되어 박 목사를 소개하고 사회자인 나는 뒤로 나와 의자에 앉아 설교를 경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의 별이 보이며 정신이 혼미해 왔다.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쓰다가 졸도하고 말았다.
얼마를 지냈을까? 설교를 마친 박 목사님이 사회자가 나오지 않아 돌아보니 의자에 앉아 죽어
있었다. 다급히 뉘여 주어서 예배를 마치고 나서야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있어! 깨여난다.”
“얼굴에 화기가 돈다.”
소리를 듣고 정신이 돌아오니 손을 만지며 맥을 보는 러시아 할머니의 위로 속에 상비약을 받아먹고 있었다.
곁에서 웅성대는 교인들을 놀라게 한 죄송스러움을 안고 예배를 마치고 간식을 먹는 교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또 살려주셨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연발하면서 9번까지 살려주신 깊은 뜻을 찾아보았다.
나중에
박준하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설교를
마치고 의자로 돌아왔는데 나가야 할 사회자가 그냥 앉아 있어서 보니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 움직이지 않아 보니 죽었더란
다.’
한번
경험이 있는지라 눕여 놓고 예배를 마무리하고 보니 되살아났단다.
2016, 6, 10
* 기독교러시아감리회 제15회 총회 참석차 출국하게 돼서 일찍 발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