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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3 | g1
작성자 : 김영순 (gamsun2) 2003-07-06
Dear 애자 5-28-99
어릴 적 함평 우리 집에서 신작로를 건너 고샅길로 내려가면 더럽지 않는 도랑물이 졸졸 흘렀고
그 도랑은 뛰어넘어 몇 집만 지나면 거기에 너의 집이 있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너네 집안은 지체가 꽤 높았을 것 같다
흙담을 끼고 돌아 평범한 문으로 들어서면 아래채가 있었고
아랫마당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은 삐거덕 소리 우렁찬 아주 큰 대문이었지
안방인 듯한 방문엔 푸른빛 도는 발이 걸려 있었는데 싸구려 플라스틱 발도 아니고 고풍스런 대발도 아닌
세련미 넘치는 그 당시 퍽이나 현대적인 문발로 기억되는구나
부엌 옆에 붙어있는 언니 방은 깔끔했고 귀하디 귀한 옛날식 라디오가 있었고
어린 내 눈에 참 고급스러운 방이로구나 했었단다
지난번 편지에 다음엔 어린 시절의 너를 그려 보마고 장황하게 예고편을 남기며 허풍을 떨었다만
지난 앨범도 뒤져보고 기억을 더듬어 보건데 별로 새로울 건 없고
진환씨와의 첫대면 자리에서 다 떨어버린 그 푼수끼속에 담겨진 얘기들을 지면상으로 리바이벌 할 수밖에 없구나
함평여중 시절의 문애자라~~`
새까만 눈썹과 똥그란 눈을 가진 까무잡잡하고 말라깽이 였음은 흡사 '빨강머리 앤'을 연상케 되는구나
그 시절---- 넌 무지 티없고 순수한 소녀였지 단체관람 영화를 보고 와서 감히 아무도 흉내를 못 내던
'아저씨 놀다가세요'란 기막힌 춤 솜씨를 연출하여 인기를 독차지했었고
가정선생님께 배운 그대로
하얀 교복 더욱 희게 보이는 방법으로 마지막 헹굼믈에 한 방울 잉크를 떨어뜨리는 아이디어를
교내에서 제일 먼저 실행에 옮긴 탓에 희 다못해 파르스름한 교복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리라
체육시간 운동장에서 나의 두손을 붙잡고 빙빙 돌려 어지럽히더니
다음엔 그걸 풀어야 한다고 반대로 또 돌리지 않았겠니
그 어지럼증이 풀렸는지 어쨌는지는 '호기심 천국'에다 물어 봐야겠지만
넌 참 센스가 뛰어난 친구(소녀) 였단다
너의 재치와 익살을 내 일찌기 알았으니 그 안에 있는 기지를 발휘하여
지금의 양계업 고전의 어려움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여고때----- 몰라보게 예뻐져버린 네가
그것도 아르바이트 꽃집아가씨가 되어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땐 혹시 성형 미인이 아닌가 의심했었다
수군거리는 참새들 틈에서 의혹이 끊이질 않았지만 그만큼 누구 나가 시샘 할만한 미모 였음을 너도 눈치 챗을게다
서구적인 너의 아름다움이 꽃처럼 피어날 즈음엔 네 남편된 진환씨가 너를 본 순간 첫눈에 홀딱 반하고도 남았으리라
가는 세월인지 오는 세월인지 그 안에서 주름진 너의 얼굴보고 있어도 환희 웃는 지난날의 모습만 떠오르니
남편과 옛동무 아니면 뉘라서 그러하리요.
한참전의 일이다 거울 속의 내모습에서 눈가에 주름이 두세 개가 보이고 눈꺼풀 끝이 약간 처져 보이기에
자꾸만 위로 치켜올려보며 아! 그래서 누구 엄마도 어떤 언니도 쌍꺼풀 수술을 했구나 하고 그 심정을 이해했었다
그러다가 잊어버렸어 자연스럽게 내것으로 받아들인 게지
그런데 엊그제 모처럼 화장을 하다가 눈 주위에 골이 패인게 보여 눈 화장을 잘못했나 하고 몇 번을 지우고 또 지웠다만
그건 세월을 말해주는 계급장 같은 게 하나 더 느는 거 였더구나
지금도 난 화장술 서투른 내탓으로 버팅기고 있다만... 또 다시 내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경록이가 사진반에서 자연스러운 인물 표정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엄마 아빠를 향해 이리저리 셔터를 눌러대더라만 남편의 어색한 표정만 지적할 뿐
정작 내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어느새 표정이 굳어져 버렸지
사진을 뽑아놓고보니 지네 아빠만 잘 찍어주고 엄마는 엉망이더라 (실은 내가 못생긴 거란다)
여기서 또 나는 억지를 부린단다 분명히 남편보다 내 인물이 나을 거라고 말야
사진 잘나온건 경록이가 아빠를 더 좋아해서 잘찍은거고 주위 사람들이 아빠가 더 잘생겼다하면
인사치레 인줄 착각했었다 그런데 그 사진의 결과로 인정하고야 말았단다
그래 니 아빠가 엄마보다 인물이 더 좋다(이거야 원 자랑인지 칭친인 지 푼수낀지 ㅎㅎㅎ~)
'경록아! 참외 같은 니 아빠 사진은 모두 다빼고 또 확대해라 호박 같은 네 엄만 이것 한 장만 빼다오'하고 말았지
이래뵈도 말이다 이 늙은 호박 같은 마누라를 바라보면서도
항상 여고시절 처음 만난 귀여운 모습만 떠올린다며 설레이는 소년처럼 말하는 남편이 싫지가 않기에
나도 답례로 애들에게 한마디한다 -니네들이 어디를 가도 엄마처럼 잘 생긴 남자를 만날 수는 없을 거라고-
하지만 이건 우리부부만이 갖는 특별한 느낌이 아닐 테고
中年을 넘어선 너네집이나 다른 친구집 모두다 그 느낌은 진한 사랑으로 넘쳐나리라 생각한다
애자야! 영숙이와 현령의 편지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구나
지금쯤 태평양 상공에 떠 있을지 아님 어느 우체국 푸댓자루에 넣어 있을련지
아니면 우편배달 차 안 바구니 속에 있을련지... 이후엔 그네들을 향하여 시간을 보내려 하니
우선 너부터 해치워야(?) 하겠기에 편지한지 전화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또 다시 행복감에 젖어 너를 대한다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이 귀한 마음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지 있을련지...
그 3행시처럼 질려서 못 쓰게 될까봐 좀 아껴야 하는 건데 염려스럽구나
애자야!! 너와의 수다가 끝나기도 전에 잠실 女史의 편지가 도착했구나
컴퓨터로 찍어서 보낸 게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른다
나도 그걸 배워야지 하면서도 못하고 있거든 몇 번 시도했다가 다음으로 미루고 그랬는데
영숙을 보고 용기를 얻어 다시 재도전 해 봐야겠다
내가 두드리기만 하면 비행기타고 돌고 돌지 않아도
즉석에서 너네들 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신기하겠나
쬐끔 아쉽다면 손끝에서 내 글씨체에서 묻어나는 나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든다만...
실은 내가 키보드 치는걸 배울라치면 또 거기에 쏙 빠져 다른 것은 하나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피하고 있단다
당분간 편지도 못쓰고 좋아하는 노래도 못 듣겠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공상 속에 빠져들지도 못하고
꼭 그럴 것 같아 재도전의 기회를 자꾸만 미룬단다
애들은(딸) 지네들이 대신 이-메일 보내주겠노라고 하지만
우리들의 정담(수다)을 부탁할 수도 없기에 난 미개인처럼 펜을 붙잡고 엎드려있지
글고 애자야 영숙이가 3행시 그만 둔걸 칭찬하더라 그 동안 얼마나 근질거렸을까 생각하니
나의 유치함이 네로황제를 능가했겠구나 내가 뭐라던? 항상 엉터리 3행시라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걸 영숙한테 들키고 말았으니 제발 그만두라고 애원하기 전에 미리 선수친 건 참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친구야! 네 모습 그리면서 옛날로 돌아가 보니 한참을 행복했구나
사는 게 힘들 다지? 이보다 더 어려운 시기도 살아온 우리들인데 지나놓고 보니 그리움뿐이지 않더냐
너의 한숨소리도 내 앞에서는 엄살로만 보인다는 것 알지?
힘내라 친구야! 우리들의 사십하고도 몇 살의 봄날은 간다
여름이 오면 only여름만 생각할 수 있도록 그때 또 편지 쓰마 안녕
*변명 쓰다보면 엉망되어버린 글씨일 망정 종이가 아까운 게 아니고 그 정성이 아까워 그냥 보낸다
미안함도 있지만 정성이 부족하다 탓하지 말아 주라 바쁜 시간 쪼개 쓰며 (진짜 진짜) 살다보니
다시 쓴다는 건 나를 잠못자게하는 고문이란다 봐주라!! 이해하지?
시력이 나빠서인지 아님 피곤해서인지 눈을 감고 쓸 때가 너무 많구나.
6-13-99 Dear 애자 에게
이 세상에 남편보다 만만한 분이 또 있을까!!
투정과 앙탈을 넘어서 갖은 포악 다 품어내는 아내들의 속셈은 뻔 한거 아니겠니?
이 천지간에 오직 너 하나만은 상한마음 되돌려 놓을 자신 있다 이거지.
늘상 그러하듯 아픈 마음 달래줄려면 더 큰사랑의 힘으로 감싸게 되고
이는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련지... 그래서 부부의 인연은 전생에 원수 였다고도 하고
영겁의 세월 속에 스치고 스치는 인연이래야 맺어진다고 하질 않던가.
내가 냄비뚜껑이라도 들고 창하듯이 악을 쓰라 했건만
왜? 죄 없는 네 남편에게 목청 높이느냐 그리고 또 가슴 아파하느냐 이 몹쓸 아내야!!
네 전화 목소리 여운이 남아 지금 이 순간 나는 눈물을 짓누나.
그래! 이 밤 우리 한번 실컷 울어보자꾸나 니 설움 내 설움 함께 엮어서 말이다.
우리 사업이 그렇게 되고 부부사이가 악화일로에 있을 때
아내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에 몸둘 바 모르던 남편에게 다음 生엔 다시 만나지 말자며 용서했단다.
그 사람은 그 말을 지금 기억하는지 어쩐지 알 수는 없다만 내딴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言語이려니 했었다.
언젠가 애들 차를 운전하다 딸들이 듣는 노래를 들어보니
중간쯤에 '우리 다음 세상에~'라고 나오 길래 다음 세상엔 꼭 만나자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하더라.
못 이룬 사랑을 그리 노래한걸 들으며 저 녀석이 지난날의 내마음을 카피했구나 그랬다.
난 만남이 너무 가슴아프고 괴로웠기에 다시는 되풀이 하고싶지않아 이담에 태어나도 만나지 말자했고
그 가수는 못 다한 사랑을 그리 표현했는데 그게 다음 生에 만나 행복하잔 말보다 더 가슴이 아프더라.
지나간 일이기에 이렇듯 가벼운 마음으로 털어놓는다만
이민 오던 날 공항에서! 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 '비극의 문'을 들어섰단다.
미국 이민 개척 사를 보면 포장마차를 타고 다니다가 급류에 휘말리기도 하고 인디언의 습격을 당하며 온갖 수난 다 격는
그 애기는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었단다.
어떤 방법으로든 내가 짊어져야 할 고통의 몫은 있기 마련이더라고
그래도 난 이년 반동안 남편과 생이별하고 나혼자 애들을 키우면서 그 어떤 상황에도 눈물 보인 적이 없었지.
이민오기 전 날밤 남편 등에 기대어 철철 흘러내리던 눈물은 어느새 말라버렸고
가슴도 생각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처럼 황량한 석양에 우뚝 선 스칼렛을 닮아갔다.
내가 다시 눈물을 찾은 건 남편과 만나던 첫밤이었다 노래가사 같지만
그 사람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또 다시 남편을 이민 개척 사에 편승시켜 그 고통분담을 갖게 됐다만
(한마다로 야생 망아지 길들이는 거나 다름없는 눈물의 나날이었지)
이렇듯 눈물도 만만한 이가 옆에 있어야 흘릴 수 있는 거 아니겠냐 또한 장충동 영숙이 얼마나 부러워할 눈물이겠느냐.
편지 보냈노라는 내 말에 이번 토요일쯤 받을 수 있겠냐는 네 물음은 잠깐동안 핑크빛 감동을 느꼈단다.
네 맘을 훔쳐보건대 비록 몸은 서울에 있지만 네 마음은 온통 남편과 화해 해야할 안성집에 가 있더라고.
내 편지 한통이 네 부부금슬에 무슨 보탬이 되겠냐만은
그 어떤 사연 하나에도 남편과 함께 하고싶은 네 바램과 그 애교 넘친 제스처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것다.
부근 씨한테 속상해서 어쩔 줄 모르는 네 얘기를 했더니 천석꾼은 천기지 근심이 있고 만석꾼은 만가지 근심이 있다며
무일푼 시름 없게 해준 자기를 잘 만난 줄 알라고 농담을 하더라만 진심으로 우리부부도 안타까워하고 있단다.
애자야! 주님께선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주시더라.
잃어버린 건 어쩔 수 없는 것 거기다가 몸과 맘까지 상해서야 쓰겠냐
남편이 약해지면 아내가 강해져야 하질 않겠니? 지난번 말했듯 너의 뛰어난 재치와 기지를 발휘하여
네 가정을 리드해 나가길 바란다.
내 남편이 힘을 잃었을 때 난 작대기의 심정으로 그를 받혀주고 일으켜 세우려 몸부림했단다.
거대한 미국에서 나란 작대기가 나약해져갈 때 딸들이 강한 자 되어 대들보처럼 버팅겨 주더구나.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건 거친 세상파도와 싸워야 한다는 거다.
내 가족 실은 호화스런 요트이던 자그마한 나룻 배던
남편이 선장 되던 아내가 사공 되던 아기자기 예쁜 사랑의 얘기 만들어가며
이 세상 마지막 그날까지 키를 잡던 노를 젓던 그리 살아가야 되는 거지.
애자야!! 미국은 결코 만만한 곳은 아니다만 살아볼 가치가 넘쳐나는 곳이라 생각해 본다.
누가 날더러 한국에 정착할 여지를 물었다는데 난 이 땅에 묻히리라 작정한지 이미 오래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저 알라미다 길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내 무덤 터를 사놓고 싶은 심정이란다.
한때 주검을 생각하며 용기를 얻으려고 이를 질근 씹어보기도 했었지
묘지와 주검은 때때로 내게 안식과 위안을 주더구나.
친구야! 내맘을 어찌 설명했는지.. 네게 공감이 갈련지.. 모르지만
난 순간 순간 맺혀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것다.
언제쯤 우리 만나서 서로의 설움에 속 시원히 울어볼날 있으리라.
그 비극의 문은 이제 행복의 문이 되어 나갈 땐 너희들을 볼 수 있다는 부푼 맘으로
들어올 땐 내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편안함으로 열리고 닫히리라.
내게 생긴 이 여유로움은 외적인 생활안정 보다는 욕심 분노 좌절 그딴 것 몽땅 쓸어버리고
좋은 것만 보고 느끼려는 노력의 대가 일게다.
내가 자꾸만 버려라 순리대로 살자 강조 한 것도 그런 바로 내 스스로에게 되새겨 주려 함이란다 (Remind)
어디 너 한테만 써먹겠냐 다른 친구들에게도 맨날 하는 얘기가 그 안을 맴도니
난 세뇌 당하듯 어느새 홀가분함과 그 여유로움을 갖게 됐단다.
끝으로 현령과 영숙에게 써 보낸 것 너 한테도 보내니 숙제처럼 외워 보시라 마음이 평안해질 테니...
어느 선승의 漢詩 란다.
6-23-99 ---우리 애자에게---
'꼴딱 꼴딱' 이건 선영 아빠의 밥 넘어가는 소리란다.
오랜만에 들어본 이 소린
토하젓에 군침이 돌아 숟가락 소리도 요란하게 박자 맞추며 어쩌면 그렇게도 맛있게 넘어가는지
우리 시어머님 살아 계시면 얼마나 흐뭇해하실 소리일까 생각해 봤다.
저토록 한국的인 전라도的인 사람을 굳이 미국的 콜로라도的 으로 만 들려고 앙탈을 부린 나는
미안해 해야할지 고마워하라고 해야할지 모 르겠구나.
그 옛날 우리엄마 장독대 한켠에 독채로 가득히 들어있던 그 토하젓은
체한 사람들이 와서 한 양재기씩 얻어가곤 했더랬는데
세월이 무삼하야 그렇게도 귀한 임금님 진상품에 가깝게 됐으니
나라님보다 더 높은 내 낭군 님께 먹여볼양 너를 구슬려 구해다가 아까운 마음에
우리 집에서 제일 작은 종지그릇에 담아놓으니 그냥 종지채 삼켜버릴 듯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을 보며
너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것다.
애자야!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지
우리의 기쁨 서로 나누어 배가 되었듯이 슬픔도 나누어 가벼워만 진다면 애써 감출게 무에 있느냐?
너의 한숨 들어주어 그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울화덩어리가 조금이라도 삭혀 진다면야
전화통에 돈이 좀 들면 어떠하며 편지 통에 시간을 쏟은들 아까울 게 없단다.
넌 원래 유리처럼 투명한 친구였기에 감추고 싶어도 그러지 못 하리란 걸 안다
그 어떤 속상한 일이던 간에 주저하지 말고 풀어놓거라 그것을 함께 가슴 아파할 이가 옆에 있다는 건 살맛나는거 아니겠니
난 아무런 도움도 못 주고 그저 들어 줄 수밖에 없다만... 그 아픈 마음이야 함께 나눠갖고싶은 심정이란다.
내가 보내준 편지를 애지중지하며 자꾸 읽어본다 했기에 열렬한 Fan을 갖은 작가가 된양
너를 대할 때면 쓰고픈 말이 줄을 잇고 그러다 보면 산만한 잡문이 되기 일쑤다만
한 친구에겐 초안만 잡아놓고 더 이상 써 내려갈 말이 없어 몇 달째 보내지 못하고 있기도 하단다.
여름이다!! 이곳의 여름은 따가운 햇볕등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지
운전대는 인두처럼 달아올라 시동 켜고 처음 한동안은 손을 댈 수가 없어 '앗 뜨거'하며
비명을 몇 번 지르고 난 후에야 좀 잡을 만 해지고 자동차 의자등받이는 얼마나 뜨거운지
피곤한 내 몸뚱이 기대어 산후 몸조리하는 느낌으로 시원해하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단다.
습기가 없으니 후덥지근하진 않고 그냥 대머리 홀랑 벗겨질 것 만 같 은 따끈따끈한 날씨이기에
이 화끈한 젊은 태양에겐 잘 어울린다고나 할까!!
운전하는 시간 말고는 밖에서 보낼 시간이 없고 거의 실내에서 생활 하다보니
실내온도는 항상 계절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여름은 춥고 겨울은 덮게 마련이란다.
난 집안에서 가능한 자연 바람을 쐬려고 문을 활짝 열어놓지만 식구들 모두는 에어컨 틀기에 내 눈치만 살피지.
운전할 때 역시 절대로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인공 찬바람의 느낌이 왠지 싫어서 말야.
창문을 열면_.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단다 산중 날씨라 바람은 있기 마련이거든
저 큰 포플러나무 잎사귀들이 바람결에 서로 부딪치는 소리랑 새소리 역시 그럴듯한 한국의 동산에서 불어대는
새찬 솔바람 소리와 흡사 하것만 그 여름의 향기가 전혀 없다는 게 나를 질리게 하는구나
애자야! 이번 여름은 안성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꽂지해수욕장을 한번 가 봄이 어떠냐
그곳에 텐트를 치고 밤하늘을 보거라 난 여태껏 그곳에서의 밤하늘별보다 수많은 별들을 본적이 없고
내얼굴로 가슴팍으로 그리고 발등으로 쏟아져 버릴 것만 같은 별들은 보질 못했지
우리 애들은 지금도 얘기한단다 콜로라도의 달빛과 별빛이 제아무리 휘황찬란해도
꽂지의 밤에 텐트 지퍼사이로 펼쳐지던 무수한 별들의 잔치가 벌어진 그 추억만 못하다고 말야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라는 노래는 아마도 꽂지의 밤하늘을 보며 만들어 졌으리란 생각도 해본다
서해 바닷가에서 (주포) 길들여지고 그곳만이 바다인줄 알았던 내가
난생처음 동해바다(경포대)를 대했을 땐 그 푸르름에 파도에 단번 매료되어
서해안을 깔보듯 줄창 동해 바다만 후비고 다녔지
어린 경록을 데리고 파도타기를 하다가 파도더미에 휩쓸려 죽음 앞에 왔다 갔다 한 후론
동해바다는 전처럼 낭만틱 하지가 않았어
그후 난_. 변심한 애인처럼 서해 예찬론자가 돼버렸단다
끝없이 펼쳐지는 황해 바다는 색깔조차 정감 있고(고향이 있기에) 더 깊이_ 더 멀리_ 아무리 들어가도 일어서 보면
배꼽 밑에 물이 차 있으니
몇 발치만 들어가면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아 아득한 두려움과 공포감 을 주던 동해바다에 비하면
서해 바다는 얼마나 인심 좋고 넉넉한 바다인지...
서해안 고속 도로가 생겼다며? 이담에 한국 가면 그곳을 한번 달려볼 셈이다
내가 운전 하는 것도 썩 괜찮을 일이지만 그리 못하면 버스를 타고서라도 그 멋스러운 노을빛 서해안을 보고 말리라
난 이 애타는 그리움에 목이 말라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편지를 쓴다
이처럼 달콤하고 차디찬 수박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여름을 살까?
겨울엔 멋스러움을 수박을 먹고 여름엔 짜릿함으로 수박을 먹는다
그리고 안성집 넓은 방안에서 함평댁들하고 둘러앉아 진환씨가 직접 밭에 가서 사 오셔서
지하수에 담궈 차게 만들었다는 수박을 먹으며 내 생에 가장 맛있는 수박이었노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 날이 떠 오르누나
연약한 내가 (?) 아님 고상한 내가 (??) 껍질 채 들고 먹기엔 좀 거시기해서
굵은 깍두기처럼 썰거나 숟가락으로 파서 냉장고에 모셔놓고
연인이 사다준 아이스크림을 행복한 모습으로 먹는 은주보다(보고 또보고에서)더 행복한 얼굴을 하고는
쉴새없이 먹어댄단다
애자야 토하젓 에서 시작한 얘기는 어느새 수박이 되었고 콜로라도에서 전라도까지 온통 휘젓고 다녔다만
그래라도 내 그리움은 항상 목이 메어 허전해 지누나
작가의 심정이 돼보기도 했으나 역시 잡문이 되어버린 민망함에 뒷장은 아깝지만 공백으로 보내노라
안녕 잘 있으랑게 99- 6-27 덴버에서 젊은 태양
7-26-99 dear 애자
친구야 내 너를 사랑하여 향기 넘치는 자스민 향에 비유했고
늘씬한 키에 큼직한 눈 코 입이 어울릴 것 같고 또한 정 많고 인심 좋은 것이 너를 닮아
아랫송이 시들면 윗꽃송이 줄줄이 피어나는 글라디오라스라 이름지어 주었것만
(과연 난 꽃이름 붙이는 도사(?)로다) 나의 찬사 넘쳐 나서 천사표라 하였것만
왜 '나 같은@'이란 표현을 하여 내마음을 아프게 하느냐
누구나 할 것없이 세상천지에 자기 자신만큼 소중한 게 어디 있으며 부모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며
자식에겐 하늘아래 땅위에 둘도 없는 어머니요 그리고 네 남편에겐 얼마나 사랑스런 반쪽이겠는가!
제발 자학하는 듯한 그런 말은 하지 말아다오
뻔뻔스런 나는 젊은 태양 이라잖냐 빈말이라도 하다보면
태양처럼 밝은 양지만 만들게 되고 그늘진 곳 가려야 할곳은 나도 몰래 덮어지게 되더라(감수하게 되더라)
난 현실 도피자는 절대 아니다만 현실을 대하다보면 세상과 너무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
아에 세속적인 사람들과는 접촉을 피하게 되고 오로지 내 가족들과 옛 친구들하고만 통하려한다
내가 좀 덜 외롭고 소외당하지 않으려면 어서 저들 틈에 끼여들어 수다떨고 교양 있는척하고
교회모임도 열심히 나가고 봉사일도 앞장서 야 하는데 왜 이리 겉도는지 모르것다
선영아빤 낚시에 빠져 세상을 낚는지 인생을 낚는지 그 이상의 천국은 없다하니
남편 외로우리란 걱정은 없고 애들도 학교에서 아르바이트 일터에서도 적응 잘하니 말할 나위 없고
나 한사람만 이곳에 정붙일 것 없어 집과 직장밖에 모르니 휴일 되면 일주일 먹을 음식 만들어놓고
이리빈둥 저리빈둥 거리다가 (내 휴식 방법임) 애들 집에 올 시간 맞춰 전화한다
'엄마랑 맥주한잔 하자 오징어 있는데 땅콩 없으니 올 때 마켓들려 사올래?
' 어떤 땐 '오징어 땅콩 있으니 맥주 생각난다 사 와라' 하고 꼬시어서 경록까지 붙들고 맥주파티를 하는데
나는 하루종일 이것저것 먹는 바람에 배가 불러서 반잔을 겨우 마시지만
애들은 나보다 주량이 커서 한 병도(조그만 거) 벌컥벌컥 마신단다
경록은 취하는지 장난인지 엄마 아빠 우리 집 좀 붙들어 줘요 한단다(집 전체가 돈다나)
살인적인 더위로 닭들과 온몸으로 씨름하고 있는 네게 웬 꽃타령이냐 하겠지만 세상살이에 나를 맞추려 하면
애통터질 일도 이 자그마한 꽃타령 하나에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면 야 맥주 파티가 대수냐?
댄스 파티라도 하지 뭘 친구야!! 우리들은 어쩔 수 없는 기산봉과 영수정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으니
그 뜻으로 살아간다면 마음의 평화가 절로 생겨나지 않겠느냐
중국 요 나라시대에 '소부'와 '허유'란 선비가 있었더란다 하루는 소부가 자기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냇가(영수)를 찾았는데 저 위쪽에서 어떤 사람이(허유) 귀를 씻고 있었단다 그 연유를 물은즉
자기에게 요나라 임금이 되어 달란 소리를 듣고 더럽혀진 귀를 씻고있는 중이라고 하더래
이 말 들은 소부는 그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자기 소에게 먹일 수 없다며 더 위쪽으로 가서 소에게 물을 먹였다는....
天下를 얻을 수 있는 임금자리도 마다하고 기산에 숨어살은 허유의 뜻이 서린 기산봉을
철부지 시절은 삐비뽑기로 헤집고 다녔고 (기산봉을 시작으로 나중엔 등산광이 되어 조선 팔도를 누비고 다녔단다)
소녀 시절엔 하루라도 빠질 새라 등산하는 기분으로 기산봉을 오르내 렸었는데 ...
그때에 나도 모르게 탐욕을 멀리하려는 기운이 서렸을까?
아님 영수정 맑은 물에 미역감고 깨끗이 빨아 입던 옷자락에 그 정기가 묻어난 때문일까?
변명처럼 함평천지 山水에 나를 합리화시키려 하는구나
치만 그게 바로 마음에 평화라면 난 사양치 않고 세상 것과 외면할 수가 있단다
자연의 이치는 평등하리니 어찌 기산 영수의 정기가 나에게만 서렸겠느냐
너 역시 그 기운을 안고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랐으니 마음만 먹으면 '나 같은@ ' 이란소리는 다시는 하지 않을게다
너의 만석꾼 살림살이 만가지 시름을 내 어이 헤아릴 수 있겠냐만
지난날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자신을 달래 줄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단다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이 세상 끝날 되어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가리니 세상것 모두 헛되지 않는가...
나의 이 특효 처방전을 네게도 권해 본다 내겐 효험이 있어 약발이 기막히게 잘 들어 먹혔는데 네겐 어떨련지?
우리말이다 너무 애태우지 말고 살자꾸나
애자야! 내가 처음 부근 씨를 보았을 때 제눈에 안경으로 어찌나 그 사람한테서 富 티 貴 티가 넘쳐 보이던지
그 덕을 보려고 그랬는지 어쨌는지 정이 들어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되었고
이젠 은혼식을 넘긴 중년부부되어 살아가기에 어쩐지 속아 살아온 기분도 들지만
이건 내가 이리 살으라는 運命이니 받아들일 도리밖에 없질 않는가 한다
아마도 저 사람을 이 세상 모든 권세 거머쥔 정승자리에 앉혀 놓은 다 해도 기울어져 가는 초가집에서
비가 새는 바람에 단벌 옷이 젖어 관복을 입지 못해 출타하지 못한 황희 정승의 가난을 면치 못했을 게고
그를 훌륭한 음악가로 만들었다해도
명절날 떡 한번 못해먹을 가난으로 아내를 위해 방아타령이나 들려줄 백결선생 일수밖에 없는 내 남편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인가 빚보증 서주기 좋아한(?) 사람이기에
나라도 현명하게 입가에 게거품 물고서라도 말렸어야 하거늘
내 손수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 해다 바친 나는 그 사람보다 더 맹한 구석이 있질 않는가
똑같은 족속이기에 그 멍들은 모습으로 웃지 못할 아픔을 안고 살아가자니 한심하기 그지 없다만
다 지난 일_ 한탄하면 뭐하나... 그
냥 낚시에 빠져들어 근심걱정 잊은 부근씨가 싱싱한 트라웃을 잡아다가 손수 회를 치는데
자기 것은 대충 뜨고 따님들 것은 요리사 뺨치는 솜씨로 멋을 부려 놓으니
나만 빼고 우리 집식구들은 모두 미식가가 되버렸단다
그 회 한 접시에 술한잔 마시는 재미에 세상에 부러울 것 없다는 남편에게 옆에 있어주니 고맙다고 할밖에...
친구야 앞서 말한 고사성어에 나옴직한 얘기는 사실과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게다
기억을 더듬었으니 이름이 서로 바뀌었을지도 모르고 요나라가 아니고 주나라일지도 모르겠다만
한국살 때 내 책장 가득 채워진 그 책들 속에서라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련만 참고할 서책 한권 없으니
답답한 마음 그지없구나 그러면서도 아는 척을 했으니 네 가 잘 새겨서 들어다오
그리고 나의 아는 척이 심하여 지난날에 친구들 심사를 꼬이게 한 적 이 있다던데
철없는 시절로 돌리고 마음 풀었으면 한다 만일 성에 안차면
미국 와서 일자무식 되어 서류하나 제대로 해석 못하며 내 의견 한번 똑떨어지게 표현 못하고 사는 나를
벌받은 거라고 고소하게 생각해도 좋다고 전해주렴
내 책장 생각하다보니 생각수록 너무 아깝다 왜 좀 챙겨오지 다 버리고 왔을까
이토록 그리울 줄 알았으면 단 한 권도 버리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에 구멍 뚫린 듯 가슴앓이를 한다만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내 곁에서 영원히 머물 수 없노라' 는 글을 읽으면서 조금은 위로가 됐단다
내가 적어준 한시 외었니? 전화할 때 확인하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외우시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보시라 안녕.7-29-99
8.3.99 Dear 글라디오스 문
친구야!! 내가 드디어 해내고 말았구나.
지난날 독학으로 피아노 배우던 실력이 쬐끔은 남아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무지 좋은 거 있지?
"Knowledge is power" 라고 직장의 Lunchroom 벽에 대문짝 만하게 써 붙은걸 날마다 쳐다보며 코방귀만 뀌다가
잠실여사 하는 것에 용기 백배하여 나도 글씨 찍는걸 배우리라 속으로 다짐했단다.
이제나저제나 벼르다가 Overtime season 끝나기가 무섭게 덤볐는데 성공 했지 뭐냐.
"상록수"에서 주인공 최명신 이 목이 터지게 외치던 "아는 것은 힘 배워야한다"를 이곳에선 이제야 실감하는지
자기네가 답답하니 무료학교 만들어 놓고 영어공부 시키려고 무진 애를 쓰더라만
이 나이에 서툰 영어 배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단다.
난 무얼 배울 수 있다는 걸 포기한지 이미 오래거든
그래서 네게 타이핑 배우겠노라고 큰소리 뻥뻥 친걸 내심 걱정했단다.
애자야! 애자 애자 애자.......... 나 잘하지? 영어만 빼면 뭐든 잘 할 수 있는데....
아메리카에 살면서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나도 참 한심하기 그지없구나.
바랄걸 바래야지 이거 원..... 친구야! 기산 영수 의 정기를 생각해 보았는가?
"다만 얽매이지 않으므로 언제나 즐겁고나"를 외웠는가? 내 남편은 친구들 달달볶아 먹는다고 난리 시란다.
읽는 사람 생각해서 짧게 쓰라는 구나. 너도 그리 생각하는지?
이렇듯 많은 "?"를 하는 나를 영리한 넌 금새 눈치 챗을게다.
다만 모른 척 하며 시침을 떼고 있을 뿐 이란걸 멍청한 나 또한 알고 있지롱.
살맛 안 나는 이 세상에 나라도 애교떨고 예쁜 짓 해야지 안 그러냐?
혹시 사연 길어 지루했다면 말해 주라 내 남편 기뻐하는걸 보게 말야.
꼭 사람이 자기수준이시니까 지루하다 라는 둥, 스트레스 준다는 둥..........
아마도 자기랑 놀아주지 않아서 일까? 천만의 말씀이겠지? 그런 투정 부릴 시기는 아! 옛날이여!! 가 아닐련지...
하긴 부근 씨는 요즘 독서삼매에 빠져서 나를 거들떠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란다.
책 빌려다 보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애자야! '전국 노래자랑' T.V프로그램에 함평이 나온 거 아니?
지난번에 현령, 영숙 한테서 나비 축제에 대한 얘길 들었었거든 그래서 은근히 기다렸는데,
아 글세 녹화 한지 두 달이 지나니까 이제사 나오는구나.
딸들도 엄마 고향이라니까 관심 있게 보더라만 어쩐지 낯설은 것이 내고향 같지가 않더라.
다만 부근씨 기억 속에 함평의 산들은 마치 여인네 젖가슴처럼 생겼다더니
정말 여기저기 보이는 산들이 꼭 그렇게 보인다.
비록 화면 속이긴 하지만 함평을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그냥 무덤덤 했어.
오히려 내마음 속의 고향이 훨씬 더 멋이 있지.
공원에서 영수정 구비 도는 구기산 쪽을 바라보면 '솔 베이지 노래'가 절로 귓가에 흘러 들어왔고
어쩔 땐 '로렐라이'를 들어 본 것도 같고 그랬었어.
향교 쪽으로 눈을 돌리면 봄엔 푸르른 들녘이 파도 되어 넘실거렸고,
아마도 함평절경을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이 푸른 파도를 꼽겠지.
그리고 가을이면 황금벌판에 추수하는 농부들 바라보는 그 재미에 줄곧 공원을 오르곤 했었단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참 외로운 소녀였던 것 같구나 항상 혼자서 있는 모습이 떠오르니 말이다.
기산봉 에도 날마다 이지 싶게 오르내렸고, 군청 동산은 얼마나 멋있는 놀이터 였는지 아니?
때론 나무 위에 올라가 한참동안 하늘 바라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풀밭에 누어있으면 떠다니는 구름이 어찌나 환상적이던지.....
그러다가 잠깐씩 잠이 들기도 했는데 풀 냄새는 왜 그렇게도 좋았을 까!!
함평 여중 시절에 봄소풍이 생각 나누나 하얀 체육복 바지에, 까만 교복, 그리고 하얀 칼라의 수 백명의 단발머리 소녀들이
초록의 들판을 돌고 돌아가는 모습들은 거대한 매스게임을 방불케 했었지.
우리가 어디 가서 그런 멋진 광경을 볼 수 있겠냐! 다 고향 잘 둔 덕이지. ^_^
함평 명물중 또 하나는 영수정 빨래터이리라. 그 맑은 물에 비누거품 내 가며 빨래도 하고, 빤스만 입고 목욕도 하고,
또 종이배 띄우고... 까마득한 옛날처럼 들릴 내 딸들은 엄마는 신선놀음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하겠지....
내마음 속에는 이처럼 선명하여 전율을 느끼게 하는데 말이다.
우리들의 정서가 가득히 들어있는곳 그 이름은 바로 함평이로다.
"한국=함평" 이라고 세뇌 당한 딸들은 이제 내가 한국을 말할 때 함평이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단다.
애자야! 난 해내는 즐거움에 날밤을 꼬박 세웠구나. 방금 선영아빠 출근시키고 또 이렇게 앉아 있으니 말이다.
Computer 앞이라서 인지 나도 몰래 긴장되어 전처럼 수다 가 잘 안 나 오지 뭐냐.
세탁기 사용하지 않고 손빨래 손수 하던 네 심정이나, 식기세척기 마다하고 후닥닥 설거지 해치우는 내 심정이나
기계에 의존하는걸 꺼려하는 구세대이기에 얼마동안이나 이 글씨 찍는 재미에 빠질지 모르겠다만
pen을 붙잡고 있을 때가 편지 쓰기는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래도 기왕에 배운 거니까 써먹기는 해야겠지?
성희가 노래를 그렇게 잘한다며? '김 현정' 신곡 나올 때마다 유영이, 경록이가 재잘거리더라
성희도 저 노래 부르면 그 가수 못지 않은 실력파라고 말야. 고음처리를 기가 막히게 잘해 낸 다더구나.
이건 괜히 칭찬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란다. 우리 애들이 지네 아빠 닮아서 음악적으로 꽤 수준이 높은 편이니까
잘한다면 잘하는 줄 알거라. 그래서 하는 얘긴데 소질한번 키워봄이 어떨지...
친구야! 오늘 난 직장에서 무척 흥분된 상태였단다.
그건 집에다 무슨 보물을 숨겨놓은 것 같기에 어서 빨리 집에와 Computer앞에 앉아있고 싶어 서지.
이 느낌은 전에도 가져보았었어. 아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느낌을 말야.
남편과 이년반 동안의 생이별을 끝내고 재회하던 그때! 그 사람이 직장 잡기까지
한2주쯤 집에 있었는데_ 직장에 앉아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하던지 내집에 아주 귀한 보물이 있는 것 같았어.
그 느낌은 한동안 계속되었단다. 살아가면서 그때가 언제냐 싶게 잊곤 한다만
미운 정 고운 정 에 울고 웃던 우리부부가 은혼식을 넘겼다는 것 아니냐.
우리식구들 은혼식 파티얘기는 잠실여사 한테 한번 들어보거라.
내가 좀더 폭 넓게 살아가고 있다면 쓸 글이 많을 텐데 항상 하는 얘기가 우리 집 안에 맴돌기만 하니
약간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기지 좋은 점은 있더구나. 그건 딸들과 친하게 지내는 거란다.
커피 맛있게 타는 유영에게 집필하시는 어머님께 한잔 만들어 달라니 까 오늘따라 비싸게 구는구나.
'커피 스펠링 맞추면 타 드릴께요' 치사하지만 얻어먹으려면 맞춰야지 어떻허냐 Coffee라고 말야.
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너를 대한다. 너라면 아무런 조건 없이 타줄텐데....
착한 친구야! 피곤해 지친 너를 그리며 내사랑 듬뿍 담은 편지를 보내노라. 안녕히.... 99.8.5 젊은 태양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