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마음, 섭섭한 마음
가슴 깊이 차오르지만
긴 이별은 아니기에
그 마음을 접어두렵니다.
그대와 함께 지내온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 할 더 많은 날들이 있기에
그대를 잠시 떠나보내는 우리의 마음은
그저 슬프지는 않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다시 마주할
2년 후를 기약합니다.
그대와 함께한 덧뵈기는 정말 행복했고,
그대와 함께할 덧뵈기는 앞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성지호 단원이 5월 1일 입대를 합니다.
잠시 덧뵈기를 떠나 군생활을 시작하는 성지호 단원에게 많은 격려 부탁 드립니다!!!
■ 단원들이 지호에게 띄우는 이야기
잠시였지만, 그대의 연기생활에 우리 덧뵈기가 함께 할 수 있었음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수개월의 시간이었지만 수년처럼 느껴지는 건 그대와의 만남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제자로 2년을 보내고 동료로서 수개월, 그대와 주고받은 많은 것들이 우리를 살찌게 만들었고 풍부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군대란 썩으러 가는 길, 이왕 썩을 거 아주 푹 썩어서 돌아오길 바란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돌아올 때는,
때로는 아주 곰삭은 묵은 김치처럼, 때로는 코끝을 날카롭게 후려치는 홍어회처럼 때로는,
오래 묵혀둔 소중한 과실주처럼 그렇게 돌아오길 바랍니다.
돌아와서도, 그대의 연기생활에 우리 덧뵈기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큰 행복이겠습니다.
- ♡♥♡ 경락선배가
어린 나이에 덧뵈기에 들어와 형, 누나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동안 열심히 묵묵히 잘 따라와 줘서 너무 고맙다.
막상 지호를 군대에 보내야 한다니 많이 섭섭하구나.
정말 섭섭하다, 지호야~~ 하지만 지호의 먼 미래를 위해서, 지금 잠시 섭섭한 게 좋을 것 같다.
지호의 긴 인생에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기도 하니까.
갑자기 할아버지의 필통(必統) 공연 때 처음 무대에 섰던 지호의 모습이 떠오르네.
잔뜩 긴장하고 또 긴장했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이던 그 모습.
지금의 지호는 그때보다 많이 성장하고 발전한 것 같아.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군대 2년이 너에게 무척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그래도 너라면 잘 해 낼 거야. 지호라면 분명히 씩씩하게 군 생활 잘 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말도 있잖아. “평생 배우라고 배우라던...”
그곳에서 생활하면서도 뭔가 배우는 게 있지 않겠니?
소중한 경험 많이 하고, 또 많이 배우고, 한층 깊어져서 다시 만나자.
지호야~~ 건강하게 잘 다녀와!!!
- ♡♥♡ 은정누나가
언젠가는 군에 가야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게 현실이 되어서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다.
5월 1일에 입대를 하니까 정확히 하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구나.
작년 초에도 훈기를 군에 보냈었는데, 지호는 훈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언제나 싱글벙글 거리며 남을 웃겨주고 어디든 잘 적응하는 녀석이라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2년 동안 같이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뿐더러 너무나도 슬픈 일이구나.
그래도 지호의 미래를 위해선 지금 빨리 갔다 오는 것이 나은 일임을 알기에 아쉽지만 보낼 수밖에...
우선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잘 다녀왔으면 좋겠고,
어디에 있든 덧뵈기가 항상 함께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하고,
더 성숙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면회 갈게! 너 좋아하는 붕어빵 싸들고...ㅋㅋ
- ♡♥♡ 혜진누나가
영장을 받고 난 후 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무엇엔가 집중하면 시간이 더욱 빨리 가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멍한 시간들...
자고 일어나면 또 하루 가까워졌음을 실감하는 순간 미칠 것 같던 기분들~
따스한 봄 햇살과 사람들의 세상 살아가는 냄새를 이젠 언제 맡을 수 있는지...
모르는 세상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군대에 다녀와서 내가 어떻게 다시 살아갈 지에 대한 걱정,
무엇이든 준비해야겠단 생각들...
결국 닥치면 준비는 다 되어있을 거야!
- ♡♥♡ 장혁이형이
만나지 한달이 되었습니다.
연극 한번 같이 못해 보고 오빠가 군대를 가게 되어서 좀 많이 아쉽네요.
솔직히 오빠랑 더 친해지고 싶었었는데...
그동안 저보다 은정언니, 혜진언니, 장혁오빠, 대표님이랑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
제가 그 사이에 들어가서 더 친해지지 못했어요.
한달... 4주... 그 시간동안 우리 더 친해져요.
덧뵈기 식구들과 좋은 추억도 만들면 좋겠어요.
제가 남자친구한테 편지 쓰면서 오빠한테도 편지 쓸께요. ㅋㅋ
이제 하루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간답니다. 군대 가서도 덧뵈기 잊지 마시고, 군대 2년 동안
열심히 활동하시고 돌아오셔서 같이 연극해요.
건강조심하시구요, 지호오빠 파이팅~!!
- ♡♥♡ 후배 수진이가
■ 입대를 앞둔 지호의 이야기
군대란 곳에 저는 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전 신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가는 거 정말 알차게 뭔가를 얻어서 오겠습니다.
다들 말하더군요. 정말 재미있다고, 하지만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뭘 어쩌라는 건지.
여하튼 전 갑니다.
갑자기 입영 날짜를 받으니 당황스러웠습니다.
5월 중 인 건 알고 있었으나 5월의 시작 1일에 끌려가게 생겼습니다.
5월 5일은 꼭 보내고 싶었는데...
인생의 한 고비가 다가오면서 갑자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가에서 부터 앞으로의 생활 등 많은 부분들이 절 자극하더군요.
저의 한부분에는 덧뵈기가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연기 시작부터 큰 역할이 주어졌고, 그 덕에 많은 발전과 변화를 하였습니다.
처음에 덧뵈기라는 공간에 처음 발을 딛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땐 이방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이 단체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 역시 몰랐으니까요.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덧뵈기의 일부가 되면서 많은 공연과 행사를 했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미래, 들꽃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어 정말 좋았습니다.
이제 연기 인생의 한부분에서, 그리고 제 모든 삶의 한부분에서 동반자의 행보를 잇게 되겠죠.
“아~~ 좋아라!”
대표님 제가 없어 허전하겠지만 곧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시구요.
덧뵈기를 많이 발전 시켜주세요. 그래야 제가 또 자연스럽게 묻어가죠!
은정누나 정말 잘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늘 지각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빨리 오라고 연락해주시고
2년 동안 정말 좋은 작품 쓰셔서 덧뵈기의 질을 높여주세요.
2년 뒤에는 대학로에서 공연할 수 있겠죠?
혜진누나 요가 열심히 배우셔서 고무인간이 되어있는 모습 기대합니다. 할 수 있죠? 믿습니다.
누난 뭐든 잘하니까 책에서 본 할아버지처럼 될 거 같아요. 벌써 미래가 보이네, 점쟁이 할까보다.
장혁이형 저의 늘 부족한 점을 채워 주시고, 항상 밝게 대해주셔서 마음으로는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좀 표현의 부재가 있었어요. 알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진양 좀 더 열심히 해서 정말 훌륭한 여배우가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 알바 때문에 힘들어서 인지 처음 마음보다 배움의 의지가 약해진 것 같아요.
마음 바로 잡으시고 뭐든 많이 배워서 진짜 성숙한 여배우가 되세요.
떠나는 놈이 말이 많았습니다.
이만 줄이고 저의 앞으로의 행보에 더 좋은 일이 있게 기도해주세요!!!
[우리연극 이야기]
지난 호에는 연기의 기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번 호에는 짧게나마 연기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호에 언급했듯이 정확히 그 역사의 깊이(기록된 것만 오천년)를 알 수 없는 연기예술의 역사를 짧은 글로 서술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릅니다.
하지만 최대한 요약해서 처음 연기예술을 접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기의 역사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연기의 역사도 사회구성체 발전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원시공산제에서 고대노예제, 중세봉건제,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발전단계 속에서 연결고리가 이어집니다.
연기예술은 매 시기 마다 각자의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연기예술을 담당했던 이들은 매 시기마다 억압을 당하던 부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대노예제나 중세봉건제에서 지배자들의 눈에 띄어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거나 작위를 수여받는 등의 팔자(?)를 고치는 있기는 했으나
흔치 않았던 경우였고 대부분의 연기예술가들이 하층민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원시공산제 시대의 연기예술은 주술의 형태로 혹은 유희의 형태로 존재한 까닭에
직업적 연기예술가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중세봉건제로 넘어오면서 연희를 전문으로 하는
노예 신분의 직업예술가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 가끔 직업연기예술가들이 등장합니다.
카리큘라라는 영화나 글라디에이터를 보면 그들이 연기자의 전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는 연기라는 분야가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며
마술, 서커스, 아크로바틱, 무용, 노래, 시 등이 복합된 형태의 연희로 존재하며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자신의 기예를 선보여 생계를 이었거나
부유한 노예주에 속해서 필요한 때에 자신들의 기예를 선보였던 것으로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연기라는 예술이 독립적 장르로 인정받고 발전하기 시작한 역사는 불과 수 백 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연기라는 예술의 흔적은 그 뚜렷함이 이미 수 천 년을 이어져 왔으니
연기의 역사 또한 수 천 년이라 함이 옳을 것입니다.
고대 노예제가 무너지고 중세 봉건제로 이어져서도 전문연희자들의 신분은 나아지질 않습니다.
그 소유주가 노예주에서 영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물론 상대적인 대우는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으나 소수에 불과 했고
대부분의 예술가들 떠돌이 생활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고대 노예제때도 마찬가지지만 중세봉건제 시기에도 구분은 존재합니다.
봉건암흑기가 있었고 서양문화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르네상스가 있었습니다.
두 시기 모두 중세봉건제시대에 속해있던 시기입니다.
중세 암흑기라고 하던 시기는 서양의 문학작품 속에 신이 잠시 휴가를 떠났던 시기로 불릴 정도로 문화 예술적 측면에서도 암흑기였습니다.
그러나 연희예술가들은 이 암흑기속에서도 자신의 기예를 펼치기 위해 마차를 꾸며 여기저기 유랑을 했습니다.
마차에 무대를 꾸며 종교적 포교를 대신하기도 하고 곳곳에서 봉건영주를 비판하는 내용을 공연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호에서 뵙겠습니다.
다음호에서는 서양문화의 꽃이자 연기예술의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던 르네상스시기와 그 이후,
그리고 동양과 한반도에서의 연기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글_ 김경락 / 우리연극 덧뵈기 대표
[단원글]
요가와 함께 다시 시작하는 인생
3월 초부터 요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평소 몸이 안 좋았던 것도 있고, 평소 연습을 하기 전 몸을 풀 때 뭔가 부족하고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이왕 할 거 2년 과정으로 요가 전문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다.
요가라는 것이 요즘에 널리 알려진 대로 몸에 좋은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요가는 자세뿐만 아니라 호흡, 명상까지 함께 수반되기에 몸은 물론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요즘 실습만이 아닌 이론까지 함께 배우고 있는데, 다시 대학생활로 돌아간 기분이다.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숙제도 있고,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합숙수련까지 있다.
생각보다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설레고,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리고 안 쓰던 근육들을 쓰니까 할 때는 정말 힘든데
하고 나면 뭔가 뿌듯함과 함께 마음이 부드러워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한결 여유로워진 내 모습을 느낄 수가 있다.
요가를 왜 하느냐? 그건... 내 자신을 알기 위함이다.
내 자신을 알아야 상대방을 대할 때의 자세나 마음이 이전보다는 훨씬 더 성숙되리라 믿는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2년 뒤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미소가 지어진다.
글_ 오혜진 / 우리연극 덧뵈기 단원
[봄나들이 다녀와서]
지난 3월 21일(화) 수락산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말이 봄나들이였지, 거의 극기훈련에 가까운 산행이었지요.
하지만 정상에 올라갔을 때는 모두 많이 행복했답니다.
성지호 단원과 박수진 단원이 그 날 수락산의 즐거움을 추억하며 봄나들이 소식전합니다.
장갑이 필요했던 이유...
수락산을 등반했습니다. 우습게 봤다 큰 코 다쳤습니다.
등반 다음날 제 손이 제 손이 아니고, 다리도 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등산하는 모든 사람들이 장갑을 끼고 있었습니다. 그땐 이유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습니다. 제 손이 아니게 된 이유입니다.
대표님이 정말 무겁게 카메라를 들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배터리를 두고 오셨더군요^^ 대표님은 정말 운동 열심히 하셨죠.
그날 우린 핸드폰으로 추억을 남겼습니다.
산을 오를 땐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내려올 땐 정말 진짜 더 힘들었습니다. 모든 산행을 마쳤을 땐 정말 보람되더군요.
특히, 먹을 때 말이죠. 다들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등반 할 것 이라고, 모두들 말하진 않더군요. 농담이었구요.
정말 좋은 경험과 추억 남겼습니다. 이런 기회가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엔 모두가 함께하는 등반을...
글_ 성지호 / 우리연극 덧뵈기 단원
정상은 정녕 어디란 말인가....
3월 21일 덧뵈기 가족들이 다함께 수락산으로 갔습니다.
오랜만에 등산을 가는 것이라 설레기도 하고 정상까지 가지 못 갈 것 같아 걱정도 됐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올라갈 때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살다보니 자연이 그리워서 인지 자연을 보며 올라가 힘든지 모르고 올라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최고의 경지, 깔딱 고개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올라가면서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예요.
그리고 은정언니가 친동생에게 사온(동생이 먹으려고 사다놓은 바나나를 싼 가격에 접수하셨데요)
바나나를 먹고 다시 올라갔습니다. 정상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밧줄을 잡고 바위를 힘겹게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그곳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옆을 보니 정상 같은 봉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할 수 있다. 아자 아자!” 밧줄을 잡고 또 바위를 올라갔습니다.
올라갔지만 그곳도 정상이 아니였습니다.
옆쪽을 보니 우리가 서 있는 곳보다 조금 더 높은 진짜, 정상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정상이라고, 우겼지만 끝내 진짜 정상으로 가게 되었지요.
또 바위를 연이어 올라가고 또 올라가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수락산 정상”이 새겨진 돌을 보고 기쁨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푸하하하~ 풍경을 바라보며, 경치를 감상하고... 아~좋았습니다.
점심으로 먹은 김밥은 정말이지 꿀맛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밥을 먹고 다시 산을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덧뵈기 식구가 된지 한 달 정도가 되었습니다.
등산을 하면서 이제 진짜 덧뵈기 식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덧뵈기 식구들과 이런 기회를 많이 가져서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글_ 박수진 / 우리연극 덧뵈기 수습단원
[공연해요]
4월 18일(화) 첫 공연을 시작으로 5월 중순까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문화공연 “별꽃” 공연에 덧뵈기 단원들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극단 희망새 조재현 대표님이 연출을 맡으셨고
출연은 희망새, 출, 예청 그리고
덧뵈기 오혜진, 박장혁, 박수진 단원, 그리고 덧뵈기 객원배우 송희복 군이 함께 합니다.
힘찬 응원 보내주세요!
제목 : “별꽃”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조합원 하루교육 ‘문화공연’
(연극으로 보여주는 장면과 중간중간에 춤과 노래가 함께 어우러지는 뮤지컬 형식의 작품입니다)
일시: 4월 18일~ 5월 19일 (화,수,목,금요일만 공연 / 단, 5월 2일~5일은 공연없음)
시간: 오후 2시
장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강당 <3호선 양재역 7번출구>
<등장인물>
김현정:30세 간호사 나이팅게일의 꿈을 키우다 이땅에 진정한 노동자로 거듭난다.
정복희:52세 영양과 조합원.오랜 세월의 경험속에서 노동의 가치를 알고 현정에게 그 가치를 알게한다.
이선영:30세 간호사 현정의 동기로 병원대의원.
박용기:37세 신자유 병원 노조 지부장.
강윤숙:24세 신규간호사
오인규:29세 방사선과 조합원.
윤영순:27세 간호사.6병동의 간호사
서지혜:24세 현정의 후배이자 윤숙의 동기 중소보수병원의 간호사.
조근혜:42세 6병동의 수간호사.
김건이:4세 현정의 아들.
신원장:신자유병원의 병원장.
병원장들:1.2.3. 환자 보호자 의사
줄거리
병원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간호사의 꿈을 이야기 한다. 나이팅게일의 꿈이 현실에서는 모순됨을 이야기한다.
협상결렬로 인한 파업. 병원의 횡포로 노조원들의 갈등을 겪는 모습. 각각의 병원 노조의 싸움만으로는 현실 극복이 어렵다는 것을 병원장들의 단결된 탄압모습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단결된 모습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그 극복점을 산별노조의 힘으로 표현한다.
복희의 죽음으로 인한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돌아보며 별꽃으로 피어나는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 한다.
작품의 의의
산별시대의 노동자는 모두가 하나라는 단결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처지와 조건, 직종과 병원의 차이를 극복하는 길은 단결된 노동자의 마음입니다. 작품‘별꽃’은 현재의 우리 병원노동자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면서 산별시대 노동자가 갈길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작품의 의도
한국노동운동의 역사속에 산별을 건설한 보건노조의 역사의식과 노동자의식을 고양하고 고취하고자 합니다.
작품의 배경
작품의 배경은 2002년 씨엠씨파업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어나는 에피소드나 인물들은 모두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들이며 사람들입니다.
별꽃 이미지의 의의
1. 노동자들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듯이 별꽃도 세상 어디에도 피어납니다. 그리고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오면 들판을 파랗게 물들이는 야생초인 별꽃처럼 노동자도 모두가 단결하여 하나가 되었을때 세상은 아름다울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2. 별꽃의 이야기중 하나는 하늘의 별을 보고 빌었던 사람들의 소망중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들이 땅에서 별꽃으로 핀다는 이야기를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우리 노동자의 꿈으로 형상합니다.
3. 간호사들의 꽃 유니폼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축하해요]
4월 14일은 성지호 단원의 생일입니다. 많이 축하해주세요.
특히 이번 생일은 성지호 단원이 덧뵈기 들어와서 맞는 첫 생일이자,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생일이랍니다.
더욱더 많이 축하해 주세요!!!
[공연 섭외를 받습니다]
소모품 가게
공연 <소모품 가게>는 비정규직 철폐를 향한 소중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작품입니다.
춤, 영상, 극이 어우러진 <소모품 가게>는 세상을 향한 젊은 열정이 있는 대학교에서부터, 현장 노동자들의 사업장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줄거리]
자식에게만은 힘겨운 삶을 대물려 주고 싶지 않았던 김씨 부부에게 대기업에서 일하는 딸 은수는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은수의 회사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은수의 회사는 정규직 사원들에게 용역 계약직으로 일할 것에 대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해고 또는 계약직, 선택의 귀로의 선 은수는 이러한 자신의 현실이 그저 막막하게 느껴질 뿐이다.
결국 은수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현실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불현듯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원망하고 미워하던 아빠의 얼굴을 떠올리는데...
[공연소요시간] 1시간 20분, 작은 소모품 가게(30-40분)
[문의] 사무실 02)916-0821 / 핸드폰 016-372-3011
할아버지의 필통(必統)
할아버지의 필통(必統) 공연은 순수 창작극으로 "세 개의 시선과 하나의 통일" 이란 구성 아래
지난 세기 100년의 한반도 역사를 관통하는 민족의 아픔과 현실, 그리고 내일을 연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춤, 노래, 극이 감동적으로 어우러진 새로운 형식의 통일이야기입니다.
[줄거리]
강제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청년, 강제징용의 처참한 역사의 현장인 지하터널을 지키는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 그리고 자신의 꿈을 찾아 일본 여행길에 오른 한국인 여대생.
이들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일본 유력 신문사의 기자 할아버지와 손자, 여대생, 일본인 신문기자!
각자 다른 고민과 삶을 살아오고 있었던 그들.
그러나 서로를 만나고 알아가게 되면서 다른 곳을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이 통일이란 하나의 지점으로 모아져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