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가는 일터는 좀 묘한 곳이다.
시공간이 겹치는 우주이론이 있다는데,
이 곳이 아마 좀 그런 곳이지 싶다.
그렇다고 여기가 무슨 국제구호단체나, 기독교선교단체,
혹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구휼기구도 아니다.
그저 정말 책 만들고, 이런저런 세미나 열고, 종종 좋은 세상을 열어보자고
이런저런 기획과 학술행사를 개최하는 조금은 이상주의적인 곳이다.
일단 전 세계 160개국과 네트워크가 되어 있다.
주로 교포사회와의 인연이지만, 이 사무실에는
아무래도 미국이나 유럽 같은 잘 사는 나라 교포들보다는
재일교포, 러시아교포,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들,
그리고 여타 아시아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찾는다.
그리고 북한과 관련한 이런저런 인연도 있다.
대부분이 북한사업은 기독교 계에서 많이 하지만,
순수 학술적 차원과, 문화교류 차원에서 추진하다보니,
비교적 북 측과는 협조가 잘되는 편이고, 그런 인사들이 오간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금년까지는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소문을 듣고 중증 장애인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특히 조선족들이 도움을 요청하러 많이 온다.
그리고 혼혈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지난 추석에는 정말 명절 쇨 돈이 없다고 해서
십시일반 돈을 걷어주기도 하였다.
또 자녀들 등록금이 없다고 해서, 여기저기 의뢰해서
장학금을 주선해 주기도 하였다.
가스요금 못 내서 쩔쩔맨다고 해서 이런저런 물건을 사 주기도 하고,
몸이 아픈데 병원비가 없다고 하면 또 백병원이나 적십자병원 같은데
의뢰를 해 주기도 했다.
그뿐이랴.
사업에 실패했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더러는 이런저런 기업과 연계를 해 주어서 재기를 도와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신용이 땅에 떨어져서 쉽게 일어서지 못한다.
그렇게 찾는 사람이 일 년이면 여럿이 된다.
사업자금은 커녕 명절 때면, 명절빔 살 돈이 없다고 해서
쥐꼬리 내 봉급도 종종 쪼개가는 경우도 있었다.
세상에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갑자기 지난 1년 사이에 부쩍 이런 일들이 늘었다.
마음 따라 간다던가...... 아마 작년에 내가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고 온 그 즈음,
언제부턴가 우리 영감님과 직원들도 친절과 나눔을 모토로 하는
사무실 분위기가 있다 보니
이 땅에서의 풀고 가려는 나눔의 마음들이 싹텄다.
그러다보니, 지금 우리 재정은 말이 아니다.
연말이라 이런저런 행사도 많고, 도움이 필요한 곳도 많다.
수입은 줄어드는데, 일은 많다.
내 개인적으로도, 친구가 사람을 다치게 한 교통사고를 내서 감옥소 간다기에
급거 돈을 마련해 주어야 했고,
사업 말아먹고 해외도피 중인 친구에게 소소찮게 도피자금을 대주어야 했다.
이 친구는 지금 거의 영양실조로 외국의 어느 허름한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면서
미래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거기다 동생남편은 말기 암으로 산골에서 요양하며 투병생활을 하는데,
삶을 자포자기해서 주변을 매우 힘들게 한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정신없이 원고마감하면, 또 다음 호를 기획하고 섭외하고 인터뷰하고,
종종 외국에 나가야 하고, 술 먹는 자리는 왜 그리도 자주 오는지,
책도 한 달이면 서른 권은 읽어야 한다.
외국에서 오는 손님은 또 하루 이틀 함께 구경도 시켜주고,
한국의 정을 보여주기도 해야 한다.
내일엔 또 일본에서 에이젠과 에이꼬 상이 온다고 한다.
한 해를 마감하는 요즈음,
손익계산을 한 번 해 본다.
바삐 사는 것이 좋은 것이고, 그것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주변에서 떠들어도,
나는 참 힘들다. 늘어가는 흰 머리에, 술 먹고 며칠은 그 후유증이 간다.
간도, 심장도, 위도 모두 힘들어 한다. 여느 중년이 안그러랴.
언젠가 맞선 본 여인은, 내가 왜 이 나이에 그리 바쁜,
함께 놀아주지 못할 사람을 만나야 하느냐고 퇴짜를 놓았다.
너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한 여인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너는,
아니, 자신조차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사는 것 자체가 고해요 제행무상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존재적 욕심이 어찌 무욕으로 쉽게 환치가 되겠는가?
상처투성이로 한해를 보낸 넋두리 속에
인연은 참 피해가기 어려운 업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속에서도, 나는
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인연이 끊어졌던 후배들이 연락해 오기도 했다.
세컨드 라이프를 시작한 아름다운 이야기도 들린다.
작은 배려를 했을 뿐인데,
마음으로 꼭 안아주며, 고마움으로
어떤 범속하지 않은 초월적 사랑을 느끼게 한 여인도 있었다.
차마 더 만나기 무엇한 아릿함으로, 그렇게 중학교 첫사랑도 만났다.
어려운 일만 겪으면, 몇 년만에 연락하는 제자(인생의)도 있었다.
한동안 연락이 끊겨서 걱정했는데, 다시 또 툴툴 털고 그는 일어설 것이다.
일설, 썰을 잘 푸는지, 내게 위안을 구하는 사람도 있으니,
손익계산을 하면,
내게 피해를 준 이보다는
결국 사랑을 준 이가 더 큰 한 해였다고 느낀다.
어렵고, 손해 본 일보다,
내게 사랑을 베풀고, 나를 인정해 준
그것이 열배는 더 큰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의 연말정산법이다.
첫댓글 주판알 튕기며 차변과 대변의 손익계산을 한다면 아마도 제대로 세상살사람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만요...나 역시도 마찬가지이고... 당장 주머니속에 천원짜리 하나 만져지면서도 그것만 가지고 사는게 아니라 살만한거 아니겠습니까......나 역시.....올해....연말정산을 해보아야할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얼핏...남는장사는 아닌듯하네요..ㅎㅎ
벽하선생..년말정산 아직 안끝났는데...나랑두 해야지이^^
힛~~~나도 끼워줘~~
나두~~~
정산들.. 해 봅시다....짱아 님에게는 확실히 빛진거 맞다....근데 마실은 먼 정산이 있을꼬???
생각해 보면 사람사는거 거기서 거기라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못한 사람이 수두룩 하구나 하는 생각에 문득문득 감사함을 느낍니다. 때때로 머리보다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야지 하면서도 현실의 벽에 부딪치다보면 종종 잊어먹기 일쑤고 이런 글을 읽다 보면 다시금 일깨우게 되네요. 연말 정산은 벽하님의 글에서 처럼 인간냄새가 나는 잉간 흉내라도 내면서 마감 해야 될텐데...마음이 바빠 집니다.
바쁜중에도 언제나 고요할 수 있어야지요. 열심히 사셨네요...
벽하 ....이해가 가기전에 사진 받아 볼수 있을까 ....준다 하면 달려간다.....수고하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