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여 출근하다가 이제 늦잠을 자도 되는 날들의 시작이다.
풍남 5학년 교실을 떠나오며 아이들에 나의 흔적을 어떻게 남겨야 하는지 고민된다.
떠나면 그만이고, 다시 김선생님과 정붙이며 잘 지내라고 한다.
그들에게 나는 잊고 나의 가르침 몇 가지는 기억해 달라고 하는 욕심을 부리며
방학하면 산에 가자고 연락하면 응하겠다고 모순된 말을 한다.
컴퓨터에 나의 흔적을 정리하고 물건이나 쓰레기도 남겨놓지 않겠다고 여러번
맘 먹었는데도 나오며 집에 와 생각하니 한결이가 사 준 외장하드가 안 보인다.
다시 돌아가 찾아올 수는 없고, 교장이나 실장한테 챙겨놓으라고 하려다가
이승하한테 전수지 선생이 주는 책(우리국토박물관순례2)을 챙기라고 연락한다.
그러고는 송충현에게 전화하여 월요일에 고흥읍에서 이승하 부부와 식사하자고 한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길을 미리 나서 운전한다.
구름에 덮힌 팔ㅇ여산 정상을 보며 팔영제 저수지 위에 주차한다.
이승하가 청 출장이 있다고 못 오겠다고 문자가 와 있다.
충현에게 전화하니 누가 보고 싶으냐고 한다.
난 박교육장을 말하려다가 다음에보자 하는데 충현이는 복현이를 부를까 한다.
그러자 하니 용태와 선경이를 부르겠다고 해 그러라 한다.
장소를 묻길래 과역 대한수산이 좋겠다고 한다.
우산을 펴고 천천히 몬짓재로 올라간다.
검은 편백기둥이 곧게 서 날 세운다.
어느 구비에서는 하얀 안개가 깊이를 더한다.
몬짓재에서 사진을 찍어 온마을학교 단톡방에 올린다.
유리 전망대에 서도 북쪽은 비구름에 잔뜩 흐리다.
부드러운 능선을 지나 남쪽 시설물들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다시 올라온다.
등판에 땀이 밴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하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면서도 추워지면 또 움추려들며 불평할 것이다.
몬짓재를 넘어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등산로로 접어든다.
숲의 끝에서 산으로 접어들지 않고 몇채의 가옥이 보이는 길로 들어선다.
새로 생긴 마을의 집들은 많이 비어 있다.
애기동백이 피어있는 길을 지나는데 한 노인이 유리창 안에서 줄자를 재고 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니 문을 열고 나오시며 선한 미소를 지으신다.
날 더러 당신의 몸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느냐 한다.
머뭇거리는데 음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신다.
아직 저녁 약속시간에 여유가 있어 들어가 그 분의 말씀을 듣는다.
서울 서대문구약사협회장도 하신 보천 출신의 약사시다.
80이 넘어 보인다. 윗층에서 의업을 하는 후배가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해 주었는데
어느 날 큰병원에 예약해 두었으니 정밀검사를 받으랬단다.
가서 보니 암이었다 한다.
사람을 만나고 문헌 등을 조사하며 암공부를 했다 하신다.
서양의 치료방법은 우리와 큰 차이는 없는데 독일의 경우 암환자에게
의사가 갖고 있는 정보만큼을 설명받는 것을 의무화했다고 한다.
암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동경대에 가서 식이치유에 관해 공부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신다.
자기가 공부한 것을 나누고 싶어 고향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치유연구소를 차렸는데
쉽지 않다고 하신다.
환자듥과 같이 생활하면서 도움을 준다고 하시고, 고흥의 큰병원이
친척이라 약국을 봐주는 시간도 있다 하신다.
나도 보천의 선배들을 말하니 같은 집안이긴 한데 나이차가 많아 아련하다 하신다.
나도 동강이라고 하니 자주 오라며 연락처를 주신다.
작은 명패만 사진찍고 나온다.
과역의 대한수산에 전화하니 김장 후 휴업이라 하신다.
류임석에게 전화해 자연수산을 알아보라 하고 부지런히 과역으로 간다.
빗속에 조가비주차장에 들어서니 임석이 거기도 일 않는다고 나온다.
충현에게 전화하고 임석의 차를 타고 고흥읍 시장안의 자연식당으로 간다.
여섯명이 술을 마신다.
충현이가 배구든 등산이든 고흥사는 초등교사들 만나자고 한다.
난 웃으며 용태랑 추진해 보라고 한다.
술값을 내고 충현이한테 과역으로 데려다 달라하니 임석이 차를 타란다.
임석이 차를 타고 과역에 와 충현이가 내 차를 운전해 마륜으로 데려다 준다.
차 한잔 하라니 빗속에 그냥 가겠다 한다.
외장하드를 달라하니 충현이 차에 있다고 내일 연락하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