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기자 칼럼을 씁니다. 글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 바닥에 들어온 뒤로는 날마다 느끼게 됩니다. 입사 전의 자만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경험에 무감각해질 법도 한데 기사 하나하나 쓰는 과정은 늘 고통스럽습니다. 여기서는 흔히 '눈깔'이라 부르는 현장 칼럼을 쓸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마 이 기사는 원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면 수정될 것입니다. 쪽팔리는 일입니다만... ^^;
데스킹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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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전 의원이 15일 오전 세상을 등졌다. 5선 국회 의원에 자타가 공인하는 킹 메이커였던 허주(虛舟)지만 돌아가는 길은 허망했다. 그날 밤 그의 빈소에는 250여명만 다녀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의미를 일깨웠다. 빈소에서도 정치인들은 고인이 남긴 발자국을 되짚으며 정치의 앞날을 고민하기보다 서로 상처 입히는 데만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1회전을 시작했다. 초저녁에 일찌감치 빈소를 찾은 민주당 박상천 전 대표는 분향을 마친 뒤 식사하고 있던 김근태 원내대표 옆에 앉았다. 박 전 대표는 대뜸 “정치 자금 소동이 다 이 사람 때문”이라며 김 대표를 자극했다. 김 대표의 고해성사로 정치 자금 문제가 불거졌다는 투였다.
^박 전 대표는 또 “당신은 시대를 거꾸로 읽고 있다”며 “분당하지 말고 있어야지 왜 그런 이상한 것(열린우리당)을 만들었느냐”라고 김 대표를 몰아세웠다. 김 대표도 지지 않고 “내가 오히려 시대를 제대로 읽고 있다”라고 맞서면서 빈소는 논쟁의 현장으로 돌변했다.
^2회전은 청와대와 한나라당.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함께 빈소를 나서는 길이었다. 문 실장이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이 진의가 왜곡된 측면이 있어 대통령이 좀 더 설명하고 싶어 하신다”며 말을 꺼냈다. 최 대표는 “자꾸 말씀하시면 오해가 더 쌓이는 것 아니냐”며 뚱하게 대꾸했다. 문 실장은 “내일 11시에 회견을 하니 지켜봐 달라”고 다시 말을 건넸지만 최 대표는 “알았다”는 한 마디만 남기고 차에 올랐다.
^떠나는 사람이야 어차피 빈 배. 조문의 의미는 먼 길 간 사람을 추억하고 뜻을 기리는 데 있다. 정치인들이 빈소에서라도 경건하고 차분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가.
데스킹 후
예상했던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내 글이 이처럼 처참하게 첨삭된 사실을 확인할 때는 무섭기도 하고 황당하고 화나기도 하고 뭐 그런 복잡한 느낌이 듭니다. 스터디를 해 보신 분들은 익히 아는 느낌이겠지만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게 된 다음에는 그 느낌이 훨씬 강렬해지는 듯합니다.
일반 기사와는 달리 '기자의 눈'에 가해지는 첨삭은 극단적으로 가혹한 아픔을 선사합니다. 그만큼 더 배우고 단련되어야 한다는 증거이지요.
^15일 밤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아산병원. 고인은 5선 의원에 세 정권에서 실세로 활약하는 화려한 정치인생을 살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허주’(虛舟ㆍ빈 배)라는 아호처럼 쓸쓸하고 허망했다. 경제사회적인 난국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흙탕 싸움에 정신이 팔려있는 정치권에게 ‘킹 메이커’ 허주의 타계는 이전투구와 권력투쟁의 허망함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될 만했다.
^그러나 조문을 온 쟁쟁한 정치인들은 허주의 영정 앞에서도 대선자금, 여권 분열 등 아름답지 못한 주제를 놓고 설전을 벌여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초저녁에 빈소를 찾은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를 향해 “정치자금 소동이 다 이 사람 때문”이라며 김 대표의 정치자금 양심고백을 겨냥했다. 박 전 대표는 또 “당신은 시대를 거꾸로 읽고 있다. 왜 그런 이상한 것(열린우리당)을 만들었느냐”고 김 대표를 몰아세웠다. 김 대표도 지지 않고 “내가 오히려 시대를 제대로 읽고 있다”고 맞서면서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도 민망한 장면을 연출했다. 문 실장이 “대통령의 10분의1 발언 진의가 왜곡됐다”고 주장하자 최 대표는 “자꾸 말하면 오해가 더 쌓이는 것 아니냐”며 퉁명스럽게 맞받았다. 최 대표는 앞서 “차떼기 때문에 망했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여권과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영정 안에서 특유의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이 장면들을 보고 있던 허주가 마치 “이 사람들아, 때를 놓치면 아무 소용없다. 제발 이제 그만 싸우고 정치 좀 잘해보라”고 훈계하는 듯했다.
첫댓글 '후'가 없네요. 언제 나오나요...? 그간 올리셨던 기사 잘 읽었습니다.
'후'는 당연히 데스킹이 끝나야 나오겠죠. 아마도 지금쯤이면 데스킹이 끝났겠지만... 보통 보면, 풍류랑 님이 오후 6시쯤 '후'를 포함해 다시 글을 수정해 놓더군요.
에고고..hankooki.com에 들어가서 읽겠습니다.
쉽게쓰는 글이 가장 어려운 글이란 사실을 요즘들어 절감합니다.-,- 언어의 경제성...그런면에서 김훈 기자의 글을 좋아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