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크킹이 꽂혀서 마치 겨울철이 되면 붕어빵이 사먹고 싶은것처럼 스르륵 크킹2를 켰습니다.
769년 커스텀 마니교도 페르가나 공작으로 시작해서 사마르칸트를 점령하고, 그곳을 수도삼아 쿠샨 왕국(트란스옥시아나)를 건국.
수백년에 걸친 북방유목민 약탈분탕을 버텨내고 중국집 쿠폰을 모아 아바스를 분열시키고 위로는 유목민, 아래로는 아랍 이슬람 세력, 오른쪽으로는 토번과 머리 끄댕이 붙잡고 싸우면서 결국 이란 고원을 정복해 페르시아 제국을 부활시켰습니다.
이 때가 대략 서기 1000년 전후...
서쪽으론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 해안지대로, 동쪽으론 타림분지로 진격하여 페르시아 제국 + 이라크, 쿠샨, 호탄 왕국령을 가졌는데 문제는 제가 까먹고 반국가 연합을 킨채로 게임을 시작했었단 걸 페르시아 제국 부활시킬 때쯤 알았습니다.
안서도호부 포함 동서남북 모든 국가들이 페르시아 상대로 반국가연합을 맺고 째려보고 있으니 경계도 다 떨어질 때까지 조용히 지냈는데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크테시폰으로 변경한 것, 아라비아 해안지대를 점령한 것에 분노한 수니파 칼리프와 시아파 칼리프가 연달아 아라비아 지하드를 선포하였습니다.
수니파 칼리프는 그 세력이 허약하여 쉽게 격파했지만 시아파 공세는 예상보다 강력해서 상비군을 꽤 소모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시아파 역시 격파하고 '신성한 자'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이에 기세가 올라 아예 후계자 이름을 야즈데게르드 4세로 지었습니다.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마지막 황제 야즈데게르드 3세의 이름을 잇는다는 의미였습니다.
15살 야즈데게르드 4세는 선황이 세워둔 탄탄한 페르시아 제국을 물려받았습니다.
수도 이스파한에선 3단계 불가사의 궁전이 완성되었고 실크로드에서 나오는 막대한 세금, 넉넉하게 저축해둔 재정, 봉신으로 삼은 마니교 기사단 빛의 군대와 궁기병 상비군 1만. 직할령과 봉신들의 징집병까지 더하면 6만명은 충분히 동원가능한 군대.
야심만만한 젊은이 야즈데게르드 4세는 이런 페르시아 제국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매해 끊임없이 영토를 약탈하는 유목민들이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평소 유목민들은 제국의 북부인 트란스옥시아나 지방을 주로 약탈하였는데, 페르시아가 지하드를 막느라 군대 대부분을 이라크와 아라비아로 투입한 사이 제국 깊숙히까지 들어와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야즈데게르드 4세가 등극할 때에도 여러 유목민들이 타바리스탄, 헤라트, 크테시폰, 호르무즈 심지어 수도 이스파한까지 약탈을 시도했고, 이를 모조리 물리쳤으나 유목민 길들이기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란 고원을 지배하는 국가는 북방 유목민과 영원한 전쟁을 할 수 밖에 운명이기도 했고요.
당시 키예프부터 몽골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유라시아 초원 지대는 세개의 칸국이 3분할하여 다스러고 있었습니다.
서쪽으론 정교회를 믿는 유럽 스텝 지대의 하자르 카간국
중앙엔 도교를 믿는 카를루크 카간국
동쪽엔 마니교를 믿는 몽골 초원의 위구르 카간국
같은 마니교이고 거리도 먼 위구르와는 결혼동맹도 맺는 등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국경을 접하는 하자르, 카를루크는 심심하면 페르시아를 약탈하였습니다.
야즈데게르드 4세는 하자르와 카를루크를 공격하여 영토를 점령한 뒤 오구즈, 제티수 왕국을 세워 이를 완충지대로 삼기로 했습니다.
전쟁으로 이들에게 타격을 주고 새로 세운 왕국들로 트란스옥시아나 지대를 좀 더 안전하게 만들자는 계획이었는데, 이 두 왕국의 왕들로는 중국에서 망명한 황가의 후손, 뢰씨(레이 가문)의 남매를 후보로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조상님들이 아바스를 박살내주신 분들이셨기에 나름 은혜를 갚는단 생각으로.
그리하여 반국가연합을 우슴게 보고 아직 연합이 해체되지도 않았는데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하자르 카간국과의 전쟁은 순조로웠는데, 국경을 접한 하자르 영토들은 유목민이 아닌 봉건정 봉신들이 지배하고 있었기에 대군으로 적들의 영지들을 단숨에 점령하는 방식으로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하자르를 이기지마자 경계도가 치솟아 반국가연합이 더 강해졌고, 카를루크족과 경계를 접하는 추이 공작령은 카를루크 카간의 수도 발라사군이 있었습니다.
발라사군을 점령해도 승점 채우기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카를루크 카간은 초원지대에서 병력을 모으고 동맹군이 오길 기다리고 있엇습니다.
샤한샤 야즈데게르드 4세는 직할령의 징집병, 용병대, 제국 북부의 제후들에게 소집한 병력을 제국 제 2의 도시이자 북부의 중심인 사마르칸트에서 사열했고, 지하드와 인도 공격에서 활약했던 장군들인 고다르즈 타지와 평민 출신 잔드에게 지휘를 맡겼습니다.
처음엔 3만 정도를 여러 부대로 나뉘어 기세좋게 시베리아로 진격하여 유목민 정착지를 불태웠으나 카를루크 군대가 병력을 모아 아군을 각개격파하고 발라사군을 재점령해 승점을 도로 마이너스로 만들었고, 중국 안서도호부까지 페르시아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안되겠다 싶어서 병력을 다 합쳐 발라사군으로 진격하자 카를루크 카간은 또다시 줄행랑.
빈 발라사군을 재점령하고 안서도호부 군대를 격파한 뒤 소규모 정찰부대들로 카를루크 카간의 위치를 확인하며 초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근데 어느새 21000명 정도의 병력을 모은 카를루크 카간이 대놓고 들이박자 병력이 25000명 정도 있던 페르시아군은 자신있게 응전했습니다.
키르기즈 전투
카를루크군 21000명 VS 페르시아군 25000명
페르시아군 대패, 잔드 전사. 염병 역설사야 이게 게임이냐 말박이 조.낸 쎄네!!
거기서 카를루크 카간이 전사한 잔드 머리로 해골 술잔 만드니까 진짜 열받음. 내 무력 21 장군을 그렇게 모욕해?? 걔가 몇년을 충셩충셩하면서 활약한지 알아!? 기특해서 영지 줘서 귀족 만들어줄 장군이었는데!!
후... 전쟁도 길어지니 히바, 메르브, 페르가나, 카슈가르, 쿠탈 등 여러 지방의 공작들이 "테에엥 징병이 너무 오래되는데스 세레브한 와타시는 집에 가고싶은데스" 거리고있고.
제후들의 불만에 야즈데게르드 4세는 일단 그들을 각자의 영지로 철수시킨 후 계획을 바꿨습니다.
당시 돈 5000, 월수입 200. 돈이 여유가 있으니 제국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아예 용병 100퍼센트 군대로 변경하였습니다.
용병만 25000명 넘게 동원해서 발라사군을 점령한 뒤 승점이 다 찰 때까지 무제한 버티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중간에 카를루크족이 12000명 정도 병력으로 찔러보자 격파.
여기저기서 모여드는 카를루크족의 동맹인 안서도호부, 티베트, 하자르, 유럽인들 군대도 보일 때마다 별동대로 컷해버리기
동시에 발라사군 옆인 페르시아령 하일람 백작령(현재의 나망간)에 궁기병, 경기병, 중기병으로만 이뤄진 상비군 8000명을 배치.
세월아네월아 용병 고용비로 180이 나가도 나는 버틸 수 있다 가난한 유목민 니들은 언제까지 버티는지 보자 지구전으로 나갔습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자 카를루크 카간이 2만명으로 접근중인 것을 확인. 이에 저도 카를루크군이 절반 이상와서 진군 방향전환 못하는 순간 용병과 상비군 포함해서 28000명을 이동.
발라사군 옆 탈라스에서 페르시아군 28000명, 카를루크 주축의 반국가 연합군 20000명이 붙었습니다.
고다르즈 타지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이 '탈라스 전투'에서 카를루크군을 격파했고, 이를 추격.
연달아 2번 이상 격파해서 카를루크 군대를 궤멸시키는데 성공한 뒤 다시 발라사군으로 들어가 존버 또 존버.
결국 이렇게 승점 100퍼센트 채워서 승리하고보니 전쟁에만 12년 썼더라구요ㄷㄷ
전쟁 끝날 때쯤 발라사군 함락시킬 때 잔드의 해골 보물도 약탈하였습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잔드야 내 보물창고에서 영원히 쉬렴.
결국 추이 공작령을 정복하고 뢰씨 남매에게 각각 오구즈 왕국과 추이 공작령을 주었습니다.
추이쪽은 좀 더 점령해서 제티수 왕국 세운 뒤에 하사해야겠네요.
이쪽 지방 역사적 사실(이란 제국과 유목민과의 오랜 분쟁, 탈라스 전투에서 당군을 배신한 카를루크족, 실크로드의 도시들, 중앙아시아의 민족들, 페르시아 부활, 중국과의 외교)을 알고나니까 훨씬 재밌네요.
사실 객관적으로만 보면 크킹에서 제국 세운 뒤론 정복 -> 휴식 -> 정복 -> 휴식의 반복이니 역사뽕이 없으면 지루해서 재미가 확 감소하기 마련이거든요.
역시 제국의 힘은 막강하고 실크로드는 개꿀이며 반국가연합은 실패한 시스템이란 걸 다시 체감하며 취침했습니다.
이 떄 시간 새벽 3시 크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