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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몸은어서와입니다. 좀 웃긴 두 남녀의 연애를 그냥 부담없이 편하게 읽으실 수
있도록 가볍게 써봤는데 어떠셨는지 모르겠어요. 재밌게 보셨다면 댓글 살포시 남겨주세요!
좋은 하루 되시구요. 그럼 전 이만 물러갈게요! 뿅!
“뭐? 김은범?”
느닷없는 정임의 폭탄발언에 현아와 현진이 미리 짜놓은 것처럼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정임은 태연히
주스를 들이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간 떨어트려놓고 주스가 넘어가냐? 어? 그들은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끼며
입가에 소스를 잔뜩 뭍히고 스파게티를 잘도 흡입하고 있는 정임을 노려보았다.
김은범 그 자식을 또 짝사랑하게 됬다니! 정말 기가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었다. 학교라는 걸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
부터 지금 꺾어진 60의 나이까지 늘 함께해왔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정신세계의 소유자다.
현아와 현진은 오랜만에 은범과 정임의 파란만장했던 연애시절을 떠올렸다. 5:2의 비율로, 각각 김싸갈과 한성질로
불리우며 섬뜩할 정도로 치고박고 싸우는 격정기와 속이 안 좋은 사람이 보면 속이 뻥 뚫릴 정도로 토해낼 수 있을
정도의 애교와 닭살행각이 넘쳐나는 애정기를 오가며 남다른 사랑을 해왔던 두 사람은 5년 전, 유난히 뜨거웠던 애정기
상태에서 돌연 결혼을 선언했다. 현아와 현진을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그 결혼을 극구! 반대했지만 원체가 남의 말 안
듣고 지멋대로 하기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었기에 많은 이의 걱정 속에서도 기어코 결혼에 골인했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들은 헤어졌다. 서로 이마와 볼에 각각 지울 수 없는 전쟁의 상처를 남기고서. 다행히 아이도
없었고, 2년이면 꽤 오래 버텼던 것이기에 친구들은 모두 돌싱이 된 그들을 반기며 새로운 사랑을 찾길 축복해 주었었다.
그. 런. 데. 글쎄 이 생각없는 년이 이혼도장까지 찍어놓은 마당에, 것도 연락 끊긴지 3년이나 된 마당에 또 그 김은범
녀석을 좋아하게 됬다는 것이다.
“안 먹어? 다 불겠다.”
“스파게티 먹다 죽을 일 있냐? 지금 목구멍이 턱 막혔거든, 니 덕에?”
뻔뻔스런 정임의 말에 아직 말문이 막힌 상태의 현아를 대신해 현진이 까칠하게 대답했다. 정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현진은 앞에 놓여진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은범의 패거리와는 워낙 고등학교 때부터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왔었기에 은범의 소식은 종종 듣고 있었다. 정임이 은범의 ‘은’자만 꺼내도 발광을 하며 분을 이기지 못해 전하지
않은 것 뿐이었다. 3년은 긴 세월이었다. 그녀의 앞에 앉아있는 이 바보같은 친구만이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걔 여자 생겼어.”
“알아.”
“뭐? 알아?”
정임에게 한방 먹여주려고 했던 것인데 어째 현진이 한방 먹은 꼴이 됐다. 안 그래도 큰 현진의 눈이 당장에라도 튀어나
올 듯 커졌다. 정임은 또 한 번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진은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정임은 이에 그치지 않
고 멍 때리고 있던 현아도 번쩍 정신이 들 정도의 충격적인 한방을 날렸다.
“재결합 프로젝트도 이미 진행중이야.”
“이ㅡ 이 기집애가 진짜 미쳤나! 아니, 3년동안 연락 뚝 끊구 살다 왜 갑자기 그 새끼가 좋아진 건데? 어?”
“맞아! 걔랑 만났다거나 연락 한다거나 그런 얘기 없었잖아, 너!”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입으로 은범이 이름 꺼내는 거 자체가 끔찍했으니까.”
“그럼, 너네가 만난 지 벌써 두 달이 됬단 말야?”
“응. 내가 이번에 광고 맡은 회사가 은범이가 팀장으로 있는 회사였거든. 처음엔 부장님한테 다른 일 맡겠다고 생 떼를
썼는데 부장님이 죽어도 안된다고 짤리고 싶냐고 성화를 내시는 거야. 난 진-짜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 거지.
근데 애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제 촐랑대지도 않구! 목소리 깔고 나한테 한정임씨- 이러면서 쌩까는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일하는 모습도 훅 갈만큼 멋있구!”
“미친년...”
“야아, 그러지말구 내 얘기를 좀 들어봐. 내가 재결합 프로젝트 3탄까지 시행을 했는데 아직 좀 부족해.
한 반 쯤 넘어온 것 같은데, 아직 김은범 마음을 홱 돌릴 수 있는 큰 한 방이 없었다구.”
프로젝트 1. 그의 눈 앞에 최대한 많이, 다양한 곳에서 알짱거리기.
내가 고2 때도 걔 죽도록 쫒아다녀서 사귀게 됬잖아. 그때 그 방법이 아무래도 걔한테 딱인 거 같아서 차례대로 시행중인데
일단 내가 고2 때 젤 먼저 했던 게 걔 눈 앞에 어떤 식으로든 많이 띄는 거였단 말이지.
(현진: 잘 알지. 니가 걔따라 호프집 갔다가 술 첨 먹고 진탕 취해서 내 가슴에 토했을 때 내가 살인까지 저지를 뻔 했는데.)
히히 그랬나? 으음,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그 쪽 홍보팀하고 우리하고 회의할 때는 물론이고 주말에 걔가 가는 곳마다
미리가서 기다렸는데..
(현아: 걔가 어딜 가는 지 무슨 수로 알고?)
원래 걔가 좀 단순하잖아. 혹시 몰라서 저번 달 셋째 주 일요일에 걔 옛날에 살던 오피스텔에 찾아갔는데 아직까지 거기
살고 있더라구. 그래서 운 좋게 미행을 했었는데 바보같이 단순해갖곤 동선이 딱딱 정해져 있더라니까. 그래서 이젠 미리
가서 기다릴 수 있단 말씀.
(현진: 바보같이 단순한 건 너다, 이 멍충아...)
뭐야! 이씨. 아무튼 난 완-전 자연스럽게 퇴근 뒤엔 걔네 집 앞 포장마차에서, 일요일엔 역 앞 헬스장, 헬스장 앞 카페,
걔네 동네 서점, 의찬이네 막창집에서 은범이를 기다렸다가 뭐 이런 우연이 다 있냐면서 인사를 했어.
‘어? 너 여긴 어쩐 일이야?’
‘너야말로 의찬이네 막창집엔 또 무슨 일인데?’
‘나는 당연-히 매혹적인 향기에 이끌려서 막창을 먹을까하고 왔지! 진짜 신기하다. 어쩜 이런 우연이 다 있냐.’
‘그러게. 그럼 잘 먹고 가.’
‘은범아. 쟤 무슨 꿍꿍이래냐? 저저번 주부터 너 오기 한 오분 전쯤 와서는 상추 한 장도 안 시키고 너랑 인사만 하고 간다.’
‘알게 뭐야.’
‘큭큭. 야, 고등학교 때 생각난다. 정임이 쟤 그 때도 너 가는 곳마다 미리 와 있다가 인사하고 그랬잖아. 사실 한번은 현아
부탁받고 나랑 정우랑 너네 이어줄라고 야, 오늘 은범이 좀 이따 빛나리 노래방 간다며? 이럼서 일부러 큰 목소리로 떠들
었는데 바보같은 게 우리가 일부러 그러는 거 눈치도 못 채고, 풉- 좋아 죽을려고 하면서 노래방에 뛰가드라? 그 때 웃겨
죽는 줄 알았잖아.’
‘시끄러. 소주나 한 병 꺼내와.’
걔도 엄청 신기해했다니까? 그러게!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냐! 이러면서 막.
(현진: 퍽이나.)
프로젝트 2. 동정심 유발하기.
사랑을 이루기 위해 남자는 여자의 모성을 자극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의 동정심을 자극하란 말이 있잖아.
(현아: 그런 말 첨 듣는..)
그래서 나는 충분히 얼굴을 보였으니까 조금 심화단계로 돌입하여 녀석의 동정심을 유발하기로 했지. 은범이가 지나갈
쯔음에 확 넘어지거나 어디에 부딪히거나 하는 거야. 이거는 한 3주 전쯤 써먹었어. 걔네 회사에서 회의 끝나고 돌아갈
때. 걔는 우리랑 회의 끝나면 꼭 시장조사를 나가더라구. 직원 몇 명 달구.
‘꺄, 꺄아악!’
구두굽을 미리 떨어트려 놓고 걔 지나갈 때 타이밍을 딱! 맞춰서 넘어졌는데..
‘팀장님. 저기 디엠의 한팀장님이신 거 같은데..’
‘도와주려구요?’
‘아니..초면도 아니고 너무 심하게 넘어지셔서..’
‘나주호씨 마음대로 해요. 난 먼저 차에 가있을테니까.’
‘아...저..그럼 잠시만 다녀오겠습니다.’
표현이 참 서툴단 말야, 그 인간. 글쎄 밑에 부하직원을 보내서 부축해주라고 시켰나봐. 그 직원이 구두굽을 뚝딱 박아주
더니 조심해서 가시라고 인사도 정중히 하고 가는 거 있지. 그냥 당당하게 자기가 오면 되지, 부끄러워 하기는. 이제 슬슬
넘어오는 거 같은 느낌이 들지? 응?
(현진: 퍽이나.)
프로젝트 3. 여자 조사!
은범이가 거의 나한테 넘어오긴 했지만, 난 혹시 몰라서 주변에 여자가 없는 지 조사에 들어갔어.
(현아: 넘어가긴 누가 넘..)
그리고 2주 전 금요일! 광고 시안 넘기러 갔었는데 왠 여자가 은범이랑 얘길 하고 있는 거야!
참나. 둘이 막 웃더니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나가대? 난 당연히 뒤을 쫓았지.
(현진: 거봐! 기집애 너 진짜 못 된 거야. 어? 애인도 있는 남잘 왜 꼬시려고 하냐고 왜!)
에잇, 들어봐! 아무튼 나는 갖고 온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선글라스를 딱 끼고 엘리베이터에 탔어.
둘이 무슨 얘기하는 지 들으려고. 은범이 녀석 눈치가 마이너스 9단이라 전혀 알아채지 못하더라구.
‘나 진짜 선 본다?’
‘엘리베이터 안이잖아.’
‘뭐 어때. 대답이나 해. 나 선 봐? 어?’
‘봐. 누가 뭐래.’
‘나-쁜놈. 애인도 없는 주제에 나같은 여자 마다하면 평생 독신으로 산다.’
‘상관없네요.’
‘웃겨. 나중에 가서 후회나 하지 마라!’
띵-
‘내리지마! 나 혼자 갈거야. 꼴 뵈기 싫어, 너.’
‘그럼 뭐 나야 편하지. 조심히 가.’
‘이씨! 너 진짜 짜증나!’
고로, 너의 그 정보는 잘못되도 한참 잘못됬다 이거지. 그 쭉쭉빵빵한 여자가 꼬리를 친 것 뿐이지 은범이는 눈 하나
깜짝 않았다고. 여전히 나처럼 솔로다, 이 말씀이야.
(현진: 그래도 너랑 잘 될 리는 없을 걸. 그 또라이 짓 하는 걸 다 보고 니가 좋으면 그 새끼도 또라이지.)
뭐? 야, 내가 얼마나 철저했는데! 절대 들켰을 리가 없어. 절대!
‘흐흐 쌤통이다...’
‘안 내리십니까?’
‘네? 아, 아니요! 내려요!’
[문이 닫힙니다.]
‘.......휴.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넌.
그 이상한 꼴을 하고.’
(현진: 퍽이나.)
“어때, 어때? 잘 되고 있는 거 같지? 큰 한 방만 있으면 확 넘어올 거 같지?”
현아는 확신에 찬 정임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진은 자기 것에 이어 옆에 있는 현아의 것까지 벌써 얼음물을 두 잔이나
원샷했다. 이 어리석은 중생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무슨 말을 한들 똥고집으로 밀고나갈 것이 분명했지만
그래도 현진은 그녀에게 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입 속에 있는 얼음 세 개를 단번에 씹어 삼켜버린 그녀가 말했다.
“야. 막말로 너네가 다시 만난다고 치자.”
“응.”
“오래 갈 것 같냐?”
“그럼! 당연하지. 난 은범이가 너무너무너-무 좋으니까.”
“고3 때 처음 사귀고, 너네 결혼 전까지 6년 동안 백 번도 넘게 헤어졌을 걸. 결혼하고서도 잘 나가는가 싶더니 결혼
세 달도 안되서 대판 싸우고 우리집, 현아집, 친정 옮겨가면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고 결국엔 이혼했잖아.”
“그건 그 때구...”
“넌 김은범하고 다시 만나고 싸움이라도 한 번 나면 김은범이 너무너무너-무 좋다고 했던 오늘을 그건 그 때구, 라고 할 걸?”
“그래도 지금은 은범이가 좋으니까 만날 거야. 내가 나 좋을대로 하겠다는데 왜 그래!”
“그게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 안 드냐구! 너 이 기집애, 은범이랑 너 때문에 동창회 분위기가 몇 번이 바뀐 줄 알!”
“어? 저거 은범이 아니야?”
짐짓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두 명이 현아의 말에 고개를 홱 돌렸다. 맙소사. 아마도 운동을 마치고 온 듯한 츄리닝
차림의 은범이 가게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 뒤에는 역시 같은 차림의 정우와 의찬이 있었다. 이건 뭐 고등학교 때도 아니고
말야. 왼손으로 턱을 괴고 한숨을 푹 내쉰 현진이 현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치? 우리 맨날 정우랑 의찬이랑 짜고 두 사람
밀어주려고 우연인 척 한 장소에서 만났었는데. 현아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교시절의 소녀감정에 보조개를 띄우며 베시시
웃었다. 그러다 순간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잠깐, 이거 설마... 현아가 태연하게 남은 오렌지주스를 쪽쪽 빨대로 흡입 중인
정임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너, 알고 있었지?”
“뭘?”
“은범이 여기 오는 거!”
“헤헤... 오늘 일요일이잖아. 헬스 끝나고 3시쯤 이 카페로 커피 마시러 오거든.”
“무서운 기집애.”
“야, 이현아, 유현진!”
의찬이 그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우렁찬 목소리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의 얼굴에는 특유의 쾌활한 미소가 띠어져
있었다. 현진과 현아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락은 해왔지만 얼굴을 본 건 거의 반 년만이었기에
그들은 감격의 상봉을 나누었고, 그 사이 양 손에 냉커피를 쥔 정우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정우 넌 청첩장 보낸다더니 통 연락이 없더라?”
“뭐, 아직이야. 그래도 아마 이번 겨울엔 할 것 같다. 같이 앉을까?”
“어, 뭐ㅡ”
“아 맞다, 정임이...그럼 그냥..”
“얜 내가 데리고 나갈게.”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정임도 고개를 돌렸다. 은범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
정임은 인사를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안녕의 ‘안’자도 내뱉기 전, 굳은 표정의 은범이 자신을 향해 들어올린
정임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지켜보는 이들에겐 그저 불안하고 가슴 조이는 상황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굳은 은범의 얼굴을
본 정임은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황급히 어깨에 백을 매려는데, 은범이 다시 한 번 팔을 잡아당기며 입구 쪽을 향해
걸어나갔다. 정임의 백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묘한 분위기의 그들을 숨도 못 쉬고 지켜본 네 남녀는 은범이 문을
열고 정임을 데리고 나가자마자 겨우 참은 숨을 토해냈다.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한 달여간 주말마다 있었던 정임과의 만남이 정말 우연인 줄 알고 있었던 눈치 마이너스 10단 정우가 뒷머리를 박박
긁어대며 중얼거렸다.
김싸갈과 한성질의 재결합 프로젝트
“아파.”
“......”
“손목 아프다구! 어디까지 가는 건데!”
끌려오던 정임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그제서야 은범이 정임의 손목을 놓았다. 등을 돌린 채로 한숨을 푹 내쉰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뒤를 돌았다. 정임은 입을 삐죽이며 붙잡혔던 오른쪽 손목을 주무르고 있었다. 정임이 투정부리듯
소리쳤다.
“뭐야, 정말! 손목 부러지는 줄 알았잖아. 곱게 나오면 되지, 왜 꼭..”
“너, 뭐야.”
“뭐?”
“무슨 수작이냐고. 한 달 내내, 내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서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데?”
“그걸 어떻게..”
“너 설마 나 좋아하냐?”
헙!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 한 달 내내 그의 눈 앞을 알짱거린 것도 맞는데, 은범의 입에서
나온 저 기가 차다는 물음에 바로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넘쳐났던 그 자신감이, 그의 앞에서 좋아한다고 말할 그 용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정임은 양 손 검지손가락을 뱅뱅돌리며 우물쭈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던 은범이 정 따윈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했다.
“아직도 너를 열 여덟살 소녀로 알고 있나본데, 너 지금 서른이야. 그 땐 다 티나게 날 쫓아다니는 모습이 귀여웠지만
지금은 아니지. 서른이나 먹어서 할 일 없이 남자 뒤꽁무니나 졸졸 쫓아다니는 거, 엄청 추하고 웃기다고.”
“말이 심하다?”
“그러니까 관둬, 이 쯤에서. 나도 니 구질한 모습 더 이상 보고싶지 않으니까.”
“뭐? 구질?”
“그럼, 니 모습이 어떨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꼴이 너 때문에 얼마나 우스워졌는 줄 아냐? 우리 회사 직원들은 요즘 나이
먹을만큼 먹은 여자 하나가 상사 뒤꽁무니 졸졸 쫓아다니는 모습보고 좋은 구경거리 생겼다 하면서 나만 보면 히히덕
거린다고. 직원들이 아무리 작게 말해도 들릴 건 다 들리는데 내가 그럼 구질이건 뭐건 너한테 말 안 하게 생겼어? 지금
구질 소리 듣는 너보다 구질한 너한테 한 달동안 시달렸던 내가 기분이 더 더럽다는 걸 알아야지.”
“말 자꾸 막해라. 어?”
“듣기 싫음 관두라고. 절대 환영이니까.”
은범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며 뒤를 돌았다. 정임은 분한 마음에 온 몸을 떨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올려 왼쪽 볼을 만진다. 3년 전 이혼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그 사건이 떠오르는 건 두 달간 잠시 그녀의 눈 앞을 가렸던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면서 그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까. 전 날에도 한 판 크게 하고 잠시
휴전 중이었을 때, 채널을 돌리자는 정임의 말에 그는 ‘니가 해.’라며 정임에게 리모콘을 던졌다. 그리고 그 리모콘은 정임의
볼에 콕 쳐박히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물론, 정임 또한 그에게 바로 되갚아주었다. 은범은 갑자기 이마의 상처가
욱씬거림을 느끼며 이마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리모콘이 정임의 볼에 콕 박혀 피까지 날 줄은 당연히 몰랐던 그였기에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던 찰나 그녀의 주먹이 그의 이마를 향해 날아왔다. 반지를 낀 왼손 주먹이 말이다. 치사하게!
그 덕에 그 날 은범은 빈혈이 일어날 정도로 이마에서 많은 피를 쏟아내야 했다. 아무튼, 한정임. 짜증섞인 얼굴을 하고
아픈 이마를 문지른 그가 팔을 홱 내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끼ㅡ이ㅡㅡ익! 쾅!
그 때였다. 그의 뒷 쪽에서 굉장한 마찰음과 함께 무엇인가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의 앞에서 걸어오던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은범을 지나쳐 달려갔다. 교통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은범은 뒤에서 정임이 아직까지 그를 쳐다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냥 가던 길만 충실히 가려했다. 하지만 그를 지나쳐 달려가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날 수록 궁금증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은범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정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
갑자기 은범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사고가 난 자리가 좀 전에 그가 정임에게 독설을 내뿜었던 헤어샵의 입간판
옆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은범은 불안한 표정으로 사람들과 함께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고현장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가냘픈 여성들의 비명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불길한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심장박동이
미친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인파를 뚫고 은범이 사고현장에 도착했을 땐, 흰 원피스를 입은 긴 머리의 여자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꽤 큰 택배 트럭과 부딪힌 듯 했다. 운전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핸드폰을 부여잡고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다급한 그의 목소리가 사고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듯 했다. 은범은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가까이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익숙한 발이 그의 눈 앞에 피로 물들어 뻗어 있었지만, 믿기 싫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정임아.”
어떻게 정임이가...
그 여인은 정임이 틀림없었다. 은범은 무릎을 꿇고 떨리는 두 손으로 정임의 몸을 흔들었다. 힘없는 그녀의 팔이 그의
행동에 죽은 시체마냥 축 늘어졌다. 나, 나 때문에... 내 말을 듣고 이 바보같은 게... 은범이 조금 더 세게 정임의 몸을
흔들었다. 그의 손이 피로 물들었다.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은범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지켜보는
사람이 울컥할 정도로 애잔하게, 그는 울었다. 정말 형편없이, 어린애마냥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별 생각없이 모여든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세상에 어떤 남자가 저렇게
멋대가리없이 불쌍하고 찌질해보일 정도로 울 수 있겠는가. 은범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바로 옆에 있던 남자의 바짓
가랑이를 붙들었다.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에 남자가 물었다.
“은범이 너, 왜 우냐?”
의찬이었다. 의찬의 옆에는 정우와 현아, 현진이 있었다. 넷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와중에
웃음이 많은 현아는 울고 있는 은범의 꼴이 우스웠는지 풉- 웃음을 터뜨렸다. 이 멍청한 놈들이!
“정임이라고..얘가 정임..정임이라고! 구급차 불러 그러니까!!”
“뭐? 정임이?”
“말..말도 안 돼.”
“거짓말..”
“사람 말 못 믿냐?!! 내가 얘랑 사귄 게 몇 년이고 같이 산 게 몇 년인데 못 알아보겠냐고!
구급차 불러 빨리! 구급차!! 이러다 정임이 죽는다고 새끼들아!!”
“..어, 어.”
“현진아... 저게 정말..저게 정말...”
“저, 정임아. 정임아. 한정임!!!!”
“왜 자꾸 불러.”
띠용.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에 모두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는 분명,
정임이었다. 은범의 말을 듣고 말을 이을 수 없이 놀랐던 네 명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주저앉아있는 은범을 한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너는 6년 사귄 애인, 결혼생활 2년이나 했던 부인도 못 알아보냐?”
“사내새끼가 추잡하게 질질 짜기나 하고.”
현진과 의찬이 차례대로 은범을 쏘아붙였다. 은범은 여전히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흰 원피스의 여인과 정임을 번갈아
살펴보고 있었다. 우연도 별 우연이 다 있었다. 흰 원피스에 파란 구두, 발모양까지 똑같은 여자가 하필 이 시점에 사고를
당하다니 말이다. 뭐가 그리 좋은 지 실실거리고 있는 정임을 한참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던 은범은 그제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온 몸이 새빨개진 채 몸을 일으켰다. 현아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은범은 ‘시끄러.’라며 현아에게 면박을
주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눈물을 닦으며 걸음을 옮겼다. 정임이 자신을 지나치려는 은범의 허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다 들었어. 정임아, 정임아- 하면서 우는 거.”
“시끄러.”
“재결합 프로젝트의 4탄이 한정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였는데 어떻게 이런 좋은 기회가 생겼나 몰라.”
“넌 사람이 다쳤는데 그게 좋냐?”
“응. 좋아! 니가! 너-무 좋아!”
정임이 베시시 웃으며 은범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을 맞추었다. 아니,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정임의
머리가 은범의 턱을 보기좋게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키스를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우스운 광경에 지켜보는 네 사람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들어왔다. 여인의 진짜 남자친구가 조금전의 은범처럼
절규하며 구급차에 올라탔다. 경찰차까지 들이닥쳐 거리는 무척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남녀는 그런 주변
상황엔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 듯 했다. 턱을 움켜쥔 은범은 고통을 호소하며 정임에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짜증에 차있었다.
“미쳤냐? 진짜 이걸 확!”
“확! 뭐!”
“확!”
“뭐!”
“에이씨.”
낄낄거리며 장난스럽게 웃는 정임을 씩씩거리며 노려보던 은범이 결국 정임에게 제대로 입을 맞추었다. 정임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적극적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3년만에 재회한 커플답게 농도깊-은 키스였다. 징글징글한 것들, 이제
진짜로 헤어지나 했더니 또 다시 붙냐. 현진이 혀를 끌끌차며 현아와 눈을 마주쳤다. 현아가 킥킥거리며 둘의 키스를
멍하니 바라보는 정우와 의찬의 등을 반대쪽으로 밀었다.
“방해하지말고 가자구.”
“나도 키스하고 싶다.”
“애인이랑 하셔.”
“뭐 때문에 삐졌는지 요즘 손도 못 잡게 한다니까? 청첩장을 괜히 못 보내는 게 아냐.”
“다 커서 징징대기는.”
“정의찬, 너도 정신 좀 차리지.”
“현진아.”
“왜.”
“나 소개팅 좀 해주라. 쭉쭉빵빵 키스 엄청 잘하는 여자로.”
“내 친구를 너같은 변태야로새끼한테 넘기기는 싫다.”
“야! 변태라니! 이건 당연한 거야. 이상한 게 아니라고!”
시끌벅적하게 멀어져가는 네 남녀의 존재도 까맣게 잊은 채, 은범과 정임은 입술이 명란젓인지 명란젓이 입술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키스를 계속했다. 믿거나, 말거나.
김싸갈과 한성질의 재결합 프로젝트
“뭐? 헤어지겠다고?”
6개월 후. 느닷없는 정임의 폭탄발언에 현아와 현진이 미리 짜놓은 것처럼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정임은
태연히 주스를 들이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간 떨어트려놓고 주스가 넘어가냐? 어? 현아는 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스파게티를 입에 넣었고, 현진은 정임이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오렌지 주스를 그녀에게 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흘겼다. 그렇게 쪽쪽 거릴 땐 언제고 또 이제와서! 이것들이 진짜 장난하나!
“어젯밤에 농구한다길래 놀러갔는데 그 나쁜 새끼가 나 뭐 던지는 거 젤로 싫어하는 거 알면서 공을 던졌단 말야.”
“미친년. 그럼 농구를 하는데 공을 던지지 택배 아저씨라도 불러서 배달을 해야 되냐?”
“어쨌든 난 그 망할 새끼 너무너무너-무 싫어.”
“하아. 야, 생각을 해봐. 막말로 지금 헤어진다 치자.”
“응.”
“안 보고 살 수 있을 거 같냐?”
“그럼! 당연하지! 난 지금 걔가 무지무지무-지하게 싫걸랑.”
“너 6개월 전만해도 그 새끼가 너무너무너-무 좋다면서 그 사고나서 정신없는 길거리에서 쪽쪽거렸거든?”
“그건 그 때구!”
현진은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앞에 있는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저런. 아무래도 김싸갈과 한성질의 재결합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될 모양이다. 쭈-욱!
-THE END-
첫댓글 히히번외없나요.?재밌게보구갑니당~~에주넘귀여워요!
네번외는없어요ㅠ.ㅠ재밌게봐주셔서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