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탓
5670 아름다운 동행 탁구동아리에 들어와
어느새 해가 넘어가려 한다.
송년회는 지난 주에 마쳤지만
어제도 탁구동아리에 참여해봤다.
남들은 열심히 게임을 하더라만
나는 게임에 서툴러서 주로 랠리를 한다.
휴게실에 들어앉아있는 여성에게 랠리를 콜했더니
응해주더라.
닉네임을 물어보니 '금난' 이라 하던데
한참 랠리를 했더니 서먹함이 사라졌던지
말을 걸어오더라.
"바래미를 아시지요?" 한다.
바래미...? 바래미...? 바래미...?
"아, 사륙 개띠, 국어선생님 하던 그 바래미 말인가요?"
그렇다고 했다.
오래 전 나와 탁구를 함께 하기도 한 바래미 B,
B와 또 아주 가깝게 지내던 비올라,
오랫동안 잊고 지낸 그 B와 비올라를 이렇게 일깨워줬는데
이게 다 탁구 탓이다.
그래서 그들과의 지난 추억을 들추어 내보지만
그네들의 근황이 궁금하다.
*사진은 주영님 촬영
2024. 12. 17.
가을 탓 / 김 난 석
가을 길 따라 드라이브나 할 참이었다.
단지 한 사람만 옆에 태우고 나설 참이었던 것이다.
그 한사람이란 동료라 할지, 친구라 할지, 글벗이라 할지,
아니면 그냥 동아리회원이라 할지,
딱히 누구라 점찍을 것도 없으니 그냥 그네라 해야겠다.
때때로 불러보면 응대해주고 따라주었기에 가벼운 마음인데
엊그제는 그네와 점심을 먹었던 음식점에 혼자 들어
다시 그 메뉴를 시켜놓고 메시지를 보내봤다.
“맛있는 거 먹던 그 음식점에 들려 혼자 또 먹으려니 미안한걸!
하긴 오늘 이것보다 더 맛있는 거 먹을지도 모르지만.”
응답이야 이내 왔다.
“어찌 내 생일을 다 아시나요? 감동이네요.”
하는 거였다.
그날이 그네의 생일이었던 모양이었다.
허나, 그네의 생일이 그날임을 알고 그런 메시지를 보낸 건 아니었다.
다만 그네의 아이디에 생일일듯한 아라비아숫자가 조합되어 있기에
그 언저리에 대고 호의를 전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내가 그네에게 보낸 메시지의 말미엔 이런 내용도 덧붙였었다.
“나는 어깨가 아파 탁구를 못할 형편인데,
오는 수요일에 어디 드라이브나 할까요?”
돌아온 반응은 친구들과 셋이 함께 나서도 되느냐는 거였다.
마음속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래도 좋다고 응답은 했는데,
느낌이 딸기 맛이라기보단 조금 떫은 모과 맛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내 사과 맛으로 변했던 것 같다.
수요일 아침이 밝았다.
그네들이 오는지 안 오는지 다시 메시지를 보내봤다.
“집에 있는 맛있는 와인 한 병 가져와요. 오프너도요.”
생일은 지났다지만
점심에 반주로 와인 한 잔 따라주고 싶었던 거였다.
그런데 약속시각 10분 전에야 답신이 왔다.
“지금 버스로 가고 있는 중인데, 문자를 이제 봤네요...ㅎ”
이걸 어쩌나... ㅠ
그래서 국산 와인의 명품이라는
<재즈 아일랜드> 한 병 챙겨 놨다.
약속한 그 시각에 차를 몰고 집을 나서니
문 앞엔 세 사람이나 서성이고 있었다.
내가 아는 그네와 그네의 친구 B는 알겠는데
키 훤칠한 사내는...?
차문을 열고 바짓가랑이를 내려다보며
어서들 타시라 했더니
사내가 하는 말이
“아이구, 도반님 아니십니까?” 하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탁구장에서 가끔 눈이 마주친 사내였던 건데
알고 보니 그네의 친구 B가 대동하고 온 거였다.
B는 제천의 월악산 기슭에 사과농장이 있다 했다.
그래서 거길 가보자는 거였다.
두어 시간 고속도로를 달리다 국도로 들어서니
길 양편엔 가을빛이 곱기도 했다.
청풍명월을 거치는 길이야 봄으로 여름으로 가을로, 또 겨울로
명품의 계절풍경을 연출하는 곳이 아니던가.
이곳을 들고 나는 것만으로도
그네를 불러낸 본전은 다 거둔 셈이 될 테다.
해거름에 농막에 도착하니 흰둥이만 멍멍댈 뿐이었다.
문 열고 들어서니 싸늘한 거실에 갈증을 달랠 음료도 없었으니
적적함이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짐을 놓고 밖으로 나와 약수터를 찾아보자 했다.
가뭄이라지만 산골 물은 제 홀로 졸졸 흘러내려
목을 축일 수 있었다.
해는 하염없이 뉘엿뉘엿 홀로 넘어가는데
더 어둡기 전에 밖에 나가 저녁을 먹고 오자 했다.
번듯한 농막에 여자가 둘이나 되는데
밖에 나가 매식을 하자니
어안이 벙벙했지만 어쩌랴.
차를 몰아 한참 달리다보니 면소재지에 이르렀지만
문을 연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겨우 찾아낸 곳이 중국집 하나와 순대국밥집이었는데
이것이냐 저것이냐 입씨름이나 하다가
순대국밥집에 들러 저녁을 때웠다.
이제 농막에 들어가 밤을 어떻게 보내자는 걸까...?
아무 생각들이 없는 것 같아 소백산막걸리와
과자 두어 봉지 사들고 돌아왔다.
어둡고도 좁은 산길, 간신히 운전해 올라가려니
흰둥이만 홀로 멍멍댈 뿐이었다.
긴 여정의 운전을 하려면 이제 눈이 쉬 피로하고
눈물이 나오지 않아
눈이 따끔거릴 때가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에도 예와 다르지 않게
인공눈물을 주머니에 넣고 갔다.
그걸 꺼내 보이며
그네들에게 이게 무언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모두 어리둥절할 뿐이었으니
그네들은 이걸 써본 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웃으며 “뽕” 이야기를 꺼내고
잠시 함께 웃어봤던 것이다.
만약 어둑한 밤에 남녀가,
그것도 이것저것 해볼 것 다 해본 남녀가,
그것도 오늘 내일 걱정할 일도 없는 남녀가,
그렇다고 교양으로 다듬어진 취미도 없는 남녀가,
아무도 없는 시간과 공간의
적막한 여유로 감싸인 남녀가 존재한다면,
그렇다면 무엇을 하며 행복해할까...? 생각해 보다가
그래보다가 뽕을 생각해보고 말문을 열어봤던 것이다.
오늘 이 밤에 네 남남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앉아
달콤한 와인 한 잔 씩 부어 들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도 기연이요
다시는 재연할 수도, 돌아오지도 않는 순간이니
무엇보다 여기에 존재하는 내 자신을 축복하자면서
말을 이어갔던 것이다.
농막의 밤은 소리 없이 지나갔다.
간간 흰둥이의 제 홀로 짖어대는 멍멍 소리가
적막을 깨뜨릴 뿐이었지만
꿈자리는 평온하지 않았으니
그건 왠지 나도 잘 모를 일이었다.
아침 일찍 깨어나 농막 주변을 거니노라니
잔디밭에 가을국화가 제 홀로 피어 밤을 지새고
정자도 제 홀로 밤을 견딘듯하며
그새 손을 알아차렸는지, 흰둥이도 꼬리만 흔들 뿐이었다.
산길을 따라 이 비알 저 비알 사과밭을 둘러보려니
사과들도 제 홀로 매달려 단물을 들이거나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그네들이야 자든 말든 나 홀로 차를 몰고 읍내로 들어갔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날이 바로 덕산 장날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전을 펼치느라 바쁜 모습들도 보였다.
마트에 들러 식자재를 샀다.
청결미 한 봉지에 양파 두 개, 대파 하나,
깻잎 두 꼭지, 골뱅이통조림 하나,
김치 한 손, 그리고 돼지목살 한 근 사들고
돌아오니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자, 내가 아침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네들이 그런 나를 놔둘 리 있으랴.
그래서 나는 깻잎만 씻어놓고 물러났는데
B가 데리고 온 사내는 커다란 키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방청소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밥이 질다느니 데다느니 말들이 많았지만
나는 밥 지은 솜씨를 85점을 주고 입을 닫게 했다.
김치찌개가 짜니 싱겁느니 또 말들이 많았는데
이게 도화선이 되어 소금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먹다 남는 건 흰둥이 몫일 테니,
그놈이야 무슨 푸념을 하랴.
돌아오는 길에 청풍문화단지를 지나가게 되었다.
담쟁이넝쿨이 무심한 담장을 껴안은 채
햇볕에 알몸을 다 내놓고 제 홀로 즐기고 있었다.
가던 길의 B는 농막 옆에 원룸 하나 지어놓고 친구를 불러들여
산과 더불어 살겠노라 하더니
오던 길의 그 B는 이것저것 어서 처분하고
홀로 섬으로 떠나겠다는 거였다.
돌발적인 일박이일의 나들이는 이렇게 끝이 났나 보다.
집에 돌아와 시동을 끄려고 뒷트렁크를 열어보니
바알 간 사과들이 자루 속에서 저들 홀로 댕글거리고 있는데
나는 이제 누구와, 또 무엇과 동반하여 뒹굴거릴까...?
갑자기 허전해옴은 모두 가을 탓이리라.
2015. 10. 30.
첫댓글 탁구방이 활성화 되고 잘 되어 가던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도반선배님 탁구로 더 건강해 지시기를
기원합니다
너에, 고마워요.
좋은것도 함께해야 더 좋은 법인데~
날씨가 그런대로 포근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