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윽.…으아…끄…끄윽 ……"
소녀다.
흑발의 홍안[紅眼] …、 평범한 녀석은 아닌 듯 해 보인다.
어리디 어린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다.
금방이라도 사람을 홀려 버릴 것만 같은 그 큰 눈에서
펑펑 쏟아져 나오는 것은 분명 눈물이었다.
애꿎은 아랫입술만 지독하게 깨물며 그렇게 서럽게 울고있는 소녀.
"끄…끄으윽……으…으하…아아항……으흑…"
울음소리는 외모와 달랐다.
조그만 입에서 쉴새없이 터져 나오는 울음.
"- 뭐야?"
"…!?"
다소 냉기어린 목소리가 소녀의 곁에서 들려왔다.
뭔지 모를 목소리의 한기[寒氣]에 몸서리를 친 소녀가 옆을 올려보았다.
"…누구 ……"
"난 레쟈리."
자신을 레쟈리라 밝힌 또다른 소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응답했다.
깊디 깊은 호수빛의 머리카락, 자신과 마찬가지로 붉은 눈.
하지만 약간 진탁한 붉은빛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소녀가 경계했다.
"넌 누구지?"
"… 비령.신비령."
"아아."
비령의 또래쯤 되어보이는, 자신의 성명을 레쟈리라 밝힌 소녀.
열 네 살쯤 되었을까. 하지만 비령과는 다른 '기품'이 어려 있었다.
차가운 홍안과 우유빛 피부가 가로등 불빛에 비춰져 소름끼칠만큼 밝고 선명해졌다.
레쟈리가 비령의 옆에 털석 앉았다.
초면임에도 조심스럽지 않은 그녀의 행동에도
아무렴 관계없다는 듯 비령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 용건이 뭐야?"
"왜 울었는지 궁금해지네."
"정말로 관계없잖아, 너하고는."
"언제부터 알았다고 반말이야."
"먼저 그랬잖아."
"좋아. 내가 예의를 지키지 않은 건 사죄하지."
다소 어른스러운 말을 하며 레쟈리가 신비령을 가만히 쓸어본다.
흠칫 놀란 비령이 슬슬 레쟈리를 피했다.
"…
아니, 뭐에요?"
"왜 그런 사치스러운 짓을 했지요, 비령 양?"
"사치?"
"운다는 것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구사하며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레쟈리.
초심자들의 마을,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 숨쉬는 티르 코네일의 하늘이라 그런지
딴곳보다 더 맑은 하늘을 느끼며 레쟈리가 눈을 감았다.
"운다는 건, 영주도 쉽게 누리지 못하는 사치이거늘."
"…、"
"저기, 맑은 호수의 마을 이멘 마하의 영주께서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체 보좌관 드루이드의 꼭두각시로 지내고 계시지요.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이멘 마하?"
"고향입니다. 대대로 그곳에서 지냈죠."
호수의 마을 이멘 마하.
이 세계, 에린이라 불리어지는 이 세계의 다섯 마을 중에서
두 번째로 번창하고 넓은 마을이었다.
레쟈리가 그녀의 고향을 이멘 마하라고 밝힌 후부터
왠지 그녀가 세련되어 보이고 그녀의 기품이 한층 더 하는 것을 느끼는 비령이었다.
"당신은 고향이 어디죠? 여기인가요?"
"…아니 …… 실은 나도 잘 몰라요."
비령은 눈을 감았다.
"그냥 버려진거 같아요. 이곳에서… 지금까지의 시간을 보냈죠.
내 고향이나 다름없어요. 아니, 내 고향입니다."
"…그렇군요."
레쟈리가 실소를 뱉았다.
비령은 고아나 다름없는, 아니, 고아인 자신의 출신을
그녀가 비웃는 것만 같아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왜 울었던 거죠?"
"……또 들어버렸어요. 쓰레기라는 소리.
사실 이 마을 광장에, 되똑하니 버려진 쓰레기마냥
발견된 이후로는 자주 들었던 소리지만.
이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들을 때마다 서럽네요."
레쟈리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레쟈리……라고 했죠?
"네."
"제겐 말이에요. 사실 이건 우리 마을 사람들이면
다 아는 건데.
심안[心眼]이라는게 있어요."
비령이 자신의 홍안을 집게손가락으로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다 보여요. 그냥 다 …
저어기, 학교의 레이널드 선생님이 엔델리온 사제님을 연모하는 마음도 보이고,
가끔씩 지나다니는 행인들의 속마음이 들리기도 하죠.
……하지만 같아요. 내가 할줄 아는게 없다는 건.
그냥 ‘보는 것’밖에는 …"
"……"
"아하하. 믿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먼저 말을 꺼내놓고도 쑥스러운 듯 비령이 헛웃음을 웃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말 한거,
처음이야.
털어놓았어 ……이 사람에게 내 비밀을 말이야.
왠지 모를 불안감과 기대감에 비령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기, 혹시."
"네…?"
레쟈리가 입가에 미소를 걸친 채 일어섰다.
그녀가 걸친 황금빛 로브가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비령에게 하얀 손을 내민 레쟈리.
놀라하는 비령에게 띄운 웃음을 더욱 크게 웃으며 입을 연다.
"보물찾기 놀이, 안 하실래요?"
…
이렇게 결성된게 초기의 Molto vivace energico 다.
- 6개월 후、
"기다려요!"
어느새 반 열다섯이 되어 버린 비령과 레쟈리가
지난 6개월간 남다른 외모를 자랑하며 커버렸다는 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며 비령이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봐요, 쟈리씨! 대체 어디로 가는거죠?"
"… 학교요."
"학교?"
이곳은 던바튼.
에린에서 세 번째로 번창한 마을이다.
장사꾼들과 마법사들이 특히 북적이는……
"… 실력자가 있다고 해서요.
Molto vivace energico의 동료를 모아야죠."
"그런데 솔직히 생각해보세요."
비령이 손을 내저으며 성급히 입을 열었다.
"정말로 우리같이 미친 짓을 하려는 사람이 이 에린에 있을까요?"
"미친 짓?"
쟈리가 약간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아아, 아니에요.
…자아. 그럼 학교로 가죠.
Molto vivace energico의 세번째 동료를 위해서."
웃으며 학교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는 순간,
날카로운 고음의 목소리가 그녀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러지 마십시오!"
"아, 나 성격 안 좋은거 알잖아요!"
"유키에 양, 하지만 …!"
"이거 놔요! 이딴 학교, 당장 나와버리겠어!"
쾅 하고 거칠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
… 아니, 사실 문이 열렸다라는 표현은 너무 조심스러운 표현이었다.
쉽게 말하면,
그 두꺼운 나무문을 완전히 부서트릴 정도의 파워가 순간적으로 존재했다고 하면 되려나.
유키에라 불렸던 소녀였다.
빛나는 금발을 양 갈래로 늘어뜨리게 묶고,
순수해 보이지만 지금은 분노에 찬 검은 눈이 금발과 대조되어 나타났다.
꾹 다문 진홍빛 입술은 그녀의 현재 심리상태를 아주 잘 나타내주었다.
"… 당신들은 뭐야."
- 아. 마주쳐버렸네.
"전 …아니, 저기. 저는."
"당신이 유키에씨…입니까?"
"그런데요?"
비딱한 목소리로 레쟈리의 물음에 성의없는 되물음을 하는 유키에.
어느 집 귀족 아가씨인 듯, 약간의 새침과 기품이 어려있었다.
나이는 얼추 비령이나 레쟈리와 비슷해보였다.
"당신의 활솜씨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만은."
"참나、당신들도 「의지」하려고 온 건가?"
"…네?"
"요즘 사람들 참 약해 빠졌다니까.
포워르 그림자만 비쳐도 경계하고 두려워하니까.
경계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경계할줄 알면 스스로 방어할 줄도 알아야지."
"…?"
뜬금없는 소리에 레쟈리와 비령 둘다 미묘한 표정으로 유키에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을 알아차린 유키에가 중얼거렸다.
"요즘 각지에서,포워르를 퇴치해달라는 의뢰를 하고 있어.
… 에로우 리볼버를 배운 다음부터."
"에로우 리볼버라면 궁수 상위 스킬이잖아요."
비령이 놀란 눈을 크게 뜨며 레쟈리와 유키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연속으로 화살을 날리어서 적이 공격할 틈을 주지 않고 해치워버리는……"
"그래. 요즘 그것 때문에 … …방금도 그것때문에 선생이랑 싸우고 나왔어.
화가 나. 남에게 의지하려는 그들이 ……"
"… 차라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령이 유키에를 가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유키에가 놀란 표정으로 비령을 맞바라본다.
"그냥 들리네요.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지긋지긋한 이 곳이 싫다.
…라고요."
"… 강한 편이네요, 심안이.
심안은 누구에게나 다 있지만 ……천성적으로."
"아하."
"… 뭐, 어쨌건 당신 말은 맞아요.
차라리 이런 인간들 버리고 싶다- 라거나?
마족의 편이 되어 다 쓸어 버리고 싶다 라던가."
"… 그런 것보다 차라리."
묵묵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쟈리가 나섰다.
"보물을 찾는 건 어때요?"
"…네 ?"
"얽매이지 않으니까 좋지 않나요.
귀찮은 의뢰들을 받을 필요도 없고.
남에게 의지하려는 사람들을 받지 않아줘도 되고.
… 착하게 말 잘 듣지 못하는 학생이나
꾸미기 좋아하고 연회에 나가서 돈이나 쓰는 귀족 아가씨 보다야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레쟈리의 말에는 무언가 모를 언령이 서려있었다.
그녀의 언령에, 유키에의 깊고 검은 눈동자에 망설임의 기색이 스쳐갔으나 잠깐이었다.
"…고려해볼만한 제안이네요.
하지만,"
유키에가 자신의 연분홍빛 레더 롱보우와 화살을 꺼내들었다.
강해지는 그녀의 눈빛.
"그 제안은 나를 쓰러트린 후에 다시 건네보시죠."
…………
"…읏、"
털석 하는 소리와 함께 레쟈리가 풀밭에 나뒹굴었다.
발갛게 상기된 표정을 한 채,
오른손에 든 화살을 노련하게 돌리며 씨익 미소짓는 유키에였다.
"…하아 ……오랫만이야…이런 상대는.
정말로 흥분시켜 버리는데. 하지만 역시 너도 내 밑이구나."
"…웃기시네."
"그게 아니라면, 일어나 보시지?
일어서지 않는다면, 던바튼 영주의 딸에게 건방지게 대든 죄로
독화살을 쏘아버릴테니까."
"……"
레쟈리의 예상밖의 고전에 비령이 어쩔줄 몰라하며 두 손을 떨었다.
지금까지 최고로 여기고 섬겨오던 레쟈리가,
저렇게 무참하게 쓰러진 모습을 보며 비령이 괴로워했다.
"방심하지 말라고, 유키에."
"어째서지?"
유키에가 침착한 표정의 레쟈리를 가만히 응시하며 활시위를 당겼다.
"너는 지금 죽을지도 몰라."
"흥."
노을진 에린의 아름다운 하늘을 뒷배경으로
피가 새어나오고 있는 왼쪽 옆구리를 감싸쥐며 레쟈리가 일어섰다.
레쟈리의 발 밑엔, 날이 다 빠지고 자루가 없는 검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칼자루밖엔 들려있지 않았다.
"…푸……"
"………"
"아하하하하하! 뭔가요, 당신은?
참으로 유쾌하군요! 아까 저와 싸우면서 칼날이 다 닳아 버린 건가요?
「무기」도 없이, 나를 상대하시려는 건가요?"
"…너야말로 어리석구나."
레쟈리가 씨익 웃으며,
"의지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검이다 -
제가 검술을 배운 에린 최고의 스승님께 배운 명언이죠."
"……"
"당신은 지금 즐기고 있을 뿐.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다는게 느껴지네요.
어느 전투에 어느 상대이든,
자신의 의지와 집중력, 그리고 성의를 극한으로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흥!"
유키에의 코웃음과 함께 빠른 속도로 화살이 날아갔다.
순간이었다. 정말로 그 순간에,
레쟈리가 몸을 살짝 돌려 화살을 피한뒤 기운을 다하여
칼자루를 유키에의 허리에 꽂았다.
"……아…"
유키에의 입에서는 괴로운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의 허리에서 새어 나오는 피가 레쟈리의 칼자루와 얼굴을 적셨다.
동시에 레쟈리가 싸매어 잡고 있던 레쟈리의 옆구리에서도 피가 훨씬 많이 흘렀다.
"레쟈리씨!"
"……무리…했나봐."
힘겹게 미소짓는 레쟈리의 눈에는
짙디짙은 다크서클이 생겨버렸고
유키에도 비틀대며 활을 놓아버렸다.
"어서…힐러에게……"
비령이 울먹이며 레쟈리를 안아 들었다.
"힐러에게…보여줄게요…
죽지 말아요……"
"……유키에도."
"…네?"
"그녀도 이젠 우리의 동료다."
그 말 한 마디를 마치고 고개를 떨궈버리는 레쟈리.
더욱 겁에 질린 비령이 레쟈리를 피로 물든 풀밭에 살짝 뉘였다.
"…잠깐만……아니, 두명을 데리고 갈순 없어요.
힐러…데려올게요……"
비령이 중얼대며 성문쪽으로 사라졌다.
탁탁탁ㅡ 멀어지는 그녀의 빠른 발소리를 들으며 레쟈리가 힘겹게 미소지었다.
"정말이지…이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 ……"
"…이봐."
유키에가 작지만 삐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가 누구 동료라고?"
"네가 우리의 동료."
"…난 그런 말 한적 없어. 이건 무승부야."
"난 지금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널 다시 한번 찌를수 있어."
레쟈리가 험악한 표정으로 유키에에게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죽고싶은 건가? 급소를 피해 찔렀다지만, 넌 지금 전혀 힘을 줄수가 없을 텐데!"
"그래, 그래. 알았다구."
유키에가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인정하긴 싫지만,
네가 칼이 없는 칼자루를 손에 쥔 그 다음부터,
저 비령이라는 아이가 나의 마음을 속속들이 드러내 준 그 다음부터,
난 이미 굴복했던거야. 그렇지?"
"……좋아.
그럼 이제부터 너도 Molto vivace energico의 일원이야.
줄여서 vivace."
"촌스러운 이름이네."
"유키에보다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비령의 발소리가 다시 들리네.
또 다른 사람의 소리도……
…살수 있겠어."
레쟈리가 편안한 음성으로 안도의 말을 읊었다.
유키에도 살수 있다라는 말에 온 몸의 긴장이 풀린 듯,
숨을 크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 Molto vivace energico ※
이 소설은 넥슨, 데브캣 스튜디오의 게임 [마비노기]
와 관련있는, 팬픽션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게임을 하지 않으시는 분도 즐겨주세요.
세계관이라던가 하는 부분은 그쪽에서 따오긴 했습니다만,
게임과 다른 부분이 많으니까요.
Q&A, 지적 언제나 메일로 받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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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판타지소설
[판타지]
※ Molto vivace energico ※프롤로그 - 만남.
비령[緋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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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03 20:4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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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름대로 재밌네요. 다음편도 기대할게요ㅋ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