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낫 / 윤남석
장화를 꺼내 신고 헛간 벽에 걸린 조선낫을 집어 든다. 여러 가닥의 왜낫을 마다하고 손에 착 감길 것 같은 조선낫에 습관적으로 손이 간다. 풀을 벨 때는 가벼운 왜낫이 낫지만, 들깨의 야문 밑줄기를 베려면 아무래도 오달지게 생긴 조선낫이 제격이다. 감나무 밭의 들깨를 찌고 콩도 뽑아야한다.
낫에 물을 추겨 숫돌에 문지른다. 숫돌받침이 거볍게 끄덕거린다. ‘스윽 스윽’ 낫 가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며 으스스하게 몸을 낚아챈다. 낫을 갈 때면 새삼스레 무뎌진 마음도 참따랗게 갈고 싶어지기도 한다. 엄지손가락으로 낫날을 살살 매만지면 예리한 느낌이 쀼죽이 와 닿듯, 이처럼 서리하게 갈 수 있으려나. 하지만 녹이 슬어 변변찮은 마음을 갈아본들 서슬이 깔맵게 살아날지도 의문이다.
다팔대는 명지바람에 방울진 꽃이슬이 되롱거리는 농로를 걷는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서두는 것은 들깨에 이슬이 생동하게 묻어있을 때 쪄야하기 때문이다. 볕이 고슬고슬하게 말려놓으면 익을 대로 익은 들깨의 꼬투리가 에라 모르겠다는 뒤틀린 심사를 보이기에 서둘러 쪄야한다. 노랗게 단풍이 든 들깻잎이 밤새 내린 녹녹한 기운에 흠뻑 젖어있다. 간혹 줄기에 간드랑거리던 들깻잎이 노랑나비처럼 날개를 팔랑이다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능란한 낫질로 들깨의 밑동을 베서 가지런히 뉘어놓으니, 세로무늬로 채색되었던 샛노란 풍경도 덩달아 소곳이 눕는다.
콩밭에도 맥없음이 여실한 콩이 잎을 다 떨어내고 살점 발라낸 생선가시처럼 삐주룩이 내민 잎자루를 쳐들고 있다. 깍지 틈새로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쳐다보는 눈치가 발가락에 묻은 흙을 말끔히 털고 싶은 안달로 비쳐진다. 꼼지락대는 발가락의 흙덩이를 툴툴 털어주고 추려온 짚으로 한 다발씩 매조지 한다. 그 매듭지은 뭉치다발을 밭둑으로 옮겨 줄가리를 친다.
밭둑에 앉아 땀을 훔치면서 조선낫을 말끄러미 바라본다. 낫 놓고 기역자를 되짚어본다. 조선낫은 날이 두껍고 슴베가 비교적 긴 편이다. 슴베는 손잡이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을 칭한다. 쇠의 뒷부분을 뾰족하게 해서 자루에 심처럼 박는다. 그 끼워진 슴베가 놀지 않도록 움켜쥐게 두른 가락지 모양의 쇠가 낫갱기이다. 자루에 박힌 슴베는 나무를 단단히 물고 연장이 제 도리를 할 수 있게 한다. 아무리 잘난 도구도 이 부분이 없거나, 야무지게 끼어있지 못하면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또 낫자루에 끼운 슴베를 둘러 감은 낫갱기의 힘 있게 우그리는 아귀힘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제 잘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서로를 감싸주고 두루 매만져주어야 의미가 보다 역력해진다.
요즘에 나오는 낫은 낫자루가 둥글고 긴 강철봉으로 되어있으며, 손잡이 부분이 고무로 덧씌워져 딱히 슴베라는 부위를 꼬집는다는 게 어정쩡하다. 또 날의 모양이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덜미부분인 낫공치가 상당히 두꺼워 투박해 보인다. 작년에 아랫장터 철물점에 가보니, 육철을 두들겨서 만든 조선낫이 마침 있기에 두어 가닥 사왔다. 아무래도 주조방식으로 만드는 낫보다는 단조방식으로 만든 낫에 더 애착이 가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친환경농업엑스포에 들렀다가 대장간의 풍경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괭이, 쇠스랑, 호미 등의 농기구를 진열해놓았을 뿐 아니라 그 제작과정도 지켜볼 수 있었는데, 때마침 낫을 만드는 중이었다. 감회가 새삼스럽다. 데리고 온 아이들에게도 모처럼의 산교육이 될까 싶어,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지켜보았다. 화덕에 풀무질로 공기를 불어넣어 화력을 높인 뒤, 시우쇠를 알맞게 달군다. 잘 달궈진 시뻘건 시우쇠를 집게로 건져내어 모루 위에 올려놓고 쇠메를 고쳐 잡는다.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진 낫을 물에 담그자 잔지러지는 소리가 난다. 다시 건져내어 쇠망치로 두드리는 바쁜 손놀림이 이어진다. 몸서리칠 정도로 불에 달구고, 물방울이 날 위에서 또르르 구를 수 있게 차가운 물에 식히는 일을 거듭한다. 그렇게 강도를 높인 다음, 담금질이 잘 되었는지 살핀다. 달굼과 망치질, 담금질이 끝난 낫날을 그라인더로 한번 간 후, 다시 숫돌에 곱게 갈아 완성하게 된다.
판화가 홍성담의 ‘낫춤’이라는 그림을 보면, 시퍼렇게 날이 선 조선낫을 들고 춤을 추는 맨발의 사내가 나온다. 한 손에 높이 쳐든 낫은 허공을 가를 듯하고, 다른 손은 낫날을 움켜쥐고 벌건 피를 흘리는 비장한 모습으로 울분을 토해낸다. 동학농민혁명의 들불을 날선 조선낫의 형상으로 드러내었다. 이처럼 조선낫은 징치(懲治)의 형구(刑具)인 동시에 민중을 상징하기도 한다. 민중 속에서 애환을 같이해왔던 그 조선낫이 이제 서서히 사라져간다. 왜낫에 밀려 명맥이 위태하다. 수천 년 동안, 민초의 곁에서 가을을 낚고 울분을 내쉬었던 조선낫이 홀연히 자리를 뜨고 있다. 머지않아 전시장 유리 틀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낫에 붙는 접두어 ‘조선’이 갖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왜낫과는 달리 육철을 두들기고 담금질한 재래식의 낫이기에 구별 짓기 위한 단순한 이름표만은 아니지 싶다. 그 ‘조선’의 의미가 요즘은 많이 퇴색하고 있지만 조선간장, 된장처럼 전통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 편이다. 참숯과 고추, 대추, 통깨를 넣어 항아리뚜껑을 열어놓고 능놀도록 띄운 조선간장과, 억센 풀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나뭇가지도 거침없이 쳐낼 수 있는 조선낫은 날이 닳기는 해도 부러지거나 이가 빠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왜간장, 왜낫과는 그 밑동부터 다르다. 접두어 ‘조선’이 내포하는 의미는 그만큼 각별하다.
어느새 밝은 볕살이 들녘 깊숙이 파고들었다. 밭둑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조선낫을 다시 집어 든다. 볕에 번득이는 낫날의 날카로움에서 여전한 힘이 느껴진다. 낫을 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무래도 조선낫을 오래도록 놓고 싶지 않은 바람 때문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