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동창회" <news@defenc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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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기 졸업 및 임관 축하 만찬
2월 22일 18:00 이정린 총동창회장과 이규환 사무총장,총동창회 운영위원, 임충빈 육사 교장을 위시한 학교본부, 교수부 간부 및 생도대 훈육관, 졸업생도 등 2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육사회관에서 총동창회가 주관한 63기 생도들의 졸업 및 임관을 축하하는 만찬회가 있었다.
축하 케이크 절단과 샴페인 개봉에 이어 시작된 만찬은 이정린 총동창회장의 인사와 졸업생 대표의 답사, 임충빈 교장의 축배 등으로 진행되었다. 군악대 주악이 은은하게 울리는 가운데 졸업생도들은 선배들과 어울려 담소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동석한 선배들의 군경험담을 경청하면서 야전생활에 대한 궁금한 점을 많이 질문하기도 하였다.
한편 만찬행사에 앞서 16:30부터 흥무관에서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오향균 총동창회 모교발전지원분과 위원장이 약 20분간에 걸쳐 육사 총동창회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이어서 이정린 총동창회장이 이제 출발점에 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관, 군인관, 국가관을 확립하는 것이며, 군 생활에서는 사람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약 30분간 졸업생도들의 장도를 격려하는 강연을 하였다.
총동창회 운영위원회 개최
2007.2.22 15:00 총동창회 이규환 사무총장 주관하에 총동창회 사무실에서 조성호(정책), 정화언(기획/섭외), 권해조(운영),최동진(복지), 예병주(봉사), 박재욱(홍보), 오향균(모교발전지원), 이재천(재정/정보화)분과위원장과 이영우 사무차장이 참석한 가운데 운영위원회 회의가 개최되었다. 토의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졸업생도(63기) 격려 계획 2. 바둑대회 계획 검토 3. 동문 특별공로상 수여 문제 4. 전반기 초빙강연 계획 5. 정승화 장학금 지급 6. 총동창회 회관 건립 의견수렴
정승화 장학금 수여
총동창회는 2월 22일 16:00시 총동창회 회장실에서 총동창회장과 사무총장 및 운영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월 23일 총동창회 장학생선발 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선발된 정승화 장학금 대상자에 대한 장학증서 수여가 있었다. 장학금은 대상자에게 각각 300만원씩 개인통장으로 입금된다. 수혜대상자는 다음과 같다.
- 故 이상건(37기) 동문 장녀 이00 과천외국어고 - 故 박지순(34기) 동문 장남 박00 안산중앙중 - 강재구(49기) 소령 미 콜로라도 주립대
학교는 지난 ‘04년 2월부터 제작, 사용해 오고 있는 학교 캐릭터의 명칭을 화랑이로 변경하고 디자인도 개선했다. 학교는 앞으로 변경된 캐릭터 명칭을 다양한 매체와 채널을 통해 홍보하여 조기에 화랑이가 새로운 캐릭터로 정착될 수 있게끔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미국이야기 제32화 : 初創期美海軍內의 決鬪이야기 - 16기 고장환
미역사상 가장 유명한 결투 중 하나는 미 독립전쟁의 영웅 중 하나이며 초대대통령 Washington 내각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냄으로서 10불짜리 dollar 지폐에 초상이 올려져 있는 Alexander Hamilton과 제3대 대통령 Jefferson 재임 시 부통령을 지낸 Aaron Burr간에 있었던 결투일 것입니다.
또한 결투하면 뺄 수 없는 고위인사라면 평민출신으로 최초로 대통령이 된 제6대 대통령 Andrew Jackson 일 것입니다. Andrew Jackson 은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유복자였습니다. 그래서 강단이 세기로 유명한 그의 모친이 그녀의 사촌언니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삼형제를 아주 강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A. Jackson은 어려서부터 결코 강자에게 굴복함이 없이 계속 도전하여 자신의 일은 자기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반면 약자에게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성품이 함양되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결국 1812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오합지졸인 열세한 대륙군을 이끌고 당시에는 천하무적인 영국군을 New Orleans에서 완전히 격파함으로서 영국의 대륙간섭을 종결시키고 전미국민을 열광케하여 대통령으로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한번은 찰스 디킨슨라는 젊은 변호사가 자신의 결혼과 부인 레이철의 품행에 대하여 모욕하는 말을 하였다고 결투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래서 디킨슨이 발사한 총탄이 짹슨의 가슴에 명중하였으나 치명적이 아니었기에 그는 무릎을 꿇지도 않고 두려움에 위축되지도 않고 냉정하게 조준 발사하여 상대방을 명중시켜 생명을 빼앗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투 사건은 식민시대는 물론이려니와 독립 후에도 만연되어 있든 풍습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물론 미국 자체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고 유럽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신사들의 명예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거의 의무적이며, 경쟁적으로 연마한 검술에 의하여 결투가 이루어졌으나 미대륙에서는 검을 연마할 시간과 여건이 열약하였기 때문에 서서히 주로 권총으로 결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예로 미국 독립전쟁시 최초의 해군영웅인 John Paul Jones는 여러 번 모욕적인 공격을 받아 결투를 도전받았으나 한 번도 결투하지 않았는데 그는 정원사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검술을 익힐 기회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투는 사회 전분야에서 발생하였으나 가장 심한 데가 해군이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엄격한 수도사 집단과도 같은 해군 내 사관들의 신흥 귀족과도 같은 명예심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독립국가의 수장과도 같은 권위를 행사하는 선장과 예하 사관들은 계약에 의하여 모집되는 것이 노예상태인 수병들과는 현격한 계급의식이 자연히 강해질 수 있는 것이 당시 해군의 특성이라고 합니다.
1800년도까지 미 해군에서 발생한 전투 중 사상자의 거의 75%에 해당하는 사상자가 결투에 의하여 발생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1800년에 Stephan Decatur 제독에 의하여 결투에 관한 엄격한 규정을 제정하여 시행토록 하였고 다시 1838년에 South Carolina 주지사 John Lied Wilson에 의하여 민간인들간의 결투규정을 제정 시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해군에서는 많은 사상자 발생에도 불구하고 결투자체를 전면 금지시킬 의도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해전의 특성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목조범선에 대포를 장착하여 근접전을 하면서 대포의 근접사격을 위시하여 소총과 검 등으로 전투할 때 사관이 은폐물 뒤에 웅크리기라도 한다든지 공포에 젖는 것들은 사관으로서의 명예와 용기에 치명적인 손상이라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결투시 상대방의 조준사격에 의연히 대처하는 것은 용기를 과시하고 명예를 지키는 행위로 간주되었다고 합니다.
결투규정에 포함되는 내용은 도전받은 자가 장소를 지정한다든지, 도전자가 사과하면 언제든지 결투를 취소한다든지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며 결투당사자(Principal)들은 보좌관(Second)을 지명하는데 모든 절차는 이들 Second 들에 의하여 협의되고 결정되는데 Principal은 도전자의 사과로 결투가 취소되거나 결투를 시행한 결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절대로 직접 대화하거나 접촉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미 해군초창기 최고의 영웅 중 한 사람인 Stephen Decatur 제독과 James Barron 제독과의 결투를 소개하겠습니다.
Decatur는 이미 10대일 때 결투에 휘말렸습니다. 동료 midshipman (견습사관 ; 현재는 해사생도들을 midshipman 이라고 부름)의 second였는데 자신의 principal이 피격되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었는데 두 팔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 부축하여 정확히 조준 발사케 함으로서 상대방을 쓰러트리게 하였답니다.
20대일 때 fourth lieutenant (소령 ; 현재는 lieutenant commander 라고 부름)로서 USS United States 에 승선하고 있었는데 승무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이미 sign을 완료하여 자신의 함정에 승선하도록 되어 있는 선원 몇명이 다른 Indiaman 함정의 선장이 더 높은 임금으로 유혹하므로 Decatur의 배를 떠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Decatur는 적법하므로 그들을 다시 데려오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Indiaman 함 선장과 서로 모욕하는 언사가 교환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독립전쟁 때 장교였든 그의 부친에게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 타당 한가를 의논하였습니다. 부친의 대답은 “yes”였습니다. 그래서 결투 하였는데 결투 시작 전 분명히 한 것은 상대방을 죽일 생각은 없고 단지 부상 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신은 전연 다친 데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부상시켜 쓰러뜨렸습니다.
한번은 해병대 대위인 자신의 매부가 결투할 때 second를 하면서 매부가 죽기도 하였고 또 한번은 예하 midshipman 이 결투할 때 second였는데 첫 발은 서로 빗나갔는데 그의 principal 은 상대방 모자를 명중시켰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사격을 위하여 준비 하면서 그는 자신의 principal 에게 네가 살아 남으려면 좀더 밑을 조준하라고 일러주었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principal 은 아무데도 다치지 않고 상대방을 현장에서 즉사케 한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해적들이 미 함정 USS Philadelphia를 탈취하여 자신들의 주력함으로 사용하면서 지중해상의 Tripoli 항에 웅거하고 있든 그들을 소탕 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해적 기지에 대한 과감한 기습 공격에 가담하였는데 Decatur는 자신과 부하들을 안전한 항구가 필요한 North Africa인들로 가장하여 해적소굴에 침투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USS Philadelphia를 격파 침몰시키고 해적기지를 완전 제거하였는데 Decatur 쪽에서는 한 명의 손실도 입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함대사령관은 즉시 Decatur를 captain(대령)으로 승진시킬 것을 건의하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가 24세로 그 계급에 오른 최연소 기록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승승장구하여 여러 번 영웅적인 전역을 치르면서 미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Decatur와 결투로 맞섰던 James Barron 역시 초기 미 해군에서 명성 있었든 제독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 해군은 Napoleon 의 막강한 해군을 괴멸시키기도 했든 영국해군에 상대하기에는 극히 열세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Barron 이 함장으로 있든 Chesapeake호가 영국함 Leopard 함과 대치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영국함이 미국함의 선원들을 납치하여 영국 함에서 강제로 근무하도록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Barron 의 조치가 적절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 해군의 어떤 요구사항이나 의도가 완전히 무시되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Barron의 철저한 명예실추였읍니다. 그래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5년 자격정지선고에 처해졌습니다. 이때 재판관중 한 명이 이미 제독으로 승진한 Decatur였습니다.
5년 자격정지 기간이 지난 다음 복직될 때 함장도 아니고 함정 정비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Barron은 이에 불복하고 원래의 계급인 제독이 될 것을 탄원하였으나 해군은 물론이려니와 Decatur자신도 Barron을 제독으로 복직시키는 것에 반대하였습니다.
Barron 과 Decatur 간에 여러 번의 서신 왕래가 있고 난 다음 1819년에 이르러 Barron 이 Decatur에게 결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820년에 세부사항이 결말이 났는데 Barron은 자신의 군법회의 시 재판관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거의 유일한 자기편인 Elliott을 second로 지명하여 활동하고 있었으나 Decatur은 Second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투 규정상 second는 비슷한 계급인 사람이 수행하여야 되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은 국가의 위대한 두 제독간의 결투는 불필요하고 해악이 될 수 있는 분쟁이라고 생각하여 second를 고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결투가 거의 무산되려고 할 때 갑자기 Bainbridge 제독이 Washington 에 나타나서 Decatur의 second를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Bainbridge 제독은 Decatur 제독과는 가까운 동료이기는 하였으나 수년 전 Barbary State 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하여 무력시위로 해군을 파견했을 때 경쟁적으로 목적지로 항해 했는데 이때 Decatur가 선착하여 국가적인 대 영웅이 되어 버린 두 사람간의 감정적인 전력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Decatur가 Tripoli에서 파괴 침몰시킨 Philadelphia 함이 미 전함일 때 Bainbridge가 선장이었고 그때 해적들에게 나포되었다는 사실 또한 석연치 않은 두 사람간의 관계입니다.
여하튼 법적으로 결투가 허용 되는 Maryland에서 결투가 이루어졌는데 결투에 사용 되는 Flintlock라는 권총은 자주 발사되지 않기도 하고 발사 되더라도 명중률이 극히 낮기 때문에 사망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Decatur는 결투 전 자신은 Barron을 죽이지 않고 부상만시킬 의도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결투 규정에 따라 second들이 거리를 측정하여 정하고 모든 의사소통은 second들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는데 자리를 정한 후 Barron이 갑자기 이 규정을 깨고 직접 Decatur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Barron ; “I hope that we meet again, sir, that we should be friends” Decatur ; “I have never thought of you as an enemy, sir,” 이렇게 되면 second 들은 결투를 중지시키고 조정을 시도하여야 되는데[ 두 second들은 침묵하였고 오히려 Decatur의 second 인 Bainbridge가 “aim” “fire” 하였습니다. 거의 동시에 발사되었는데 Barron 이 엉덩이에 부상당하고는 쾅 쓰러졌습니다. Decatur는 수초 동안 서 있었는데 서서히 배를 움켜 쥐고 “ Oh Lord, I am a dead man” 하고는 쓰러졌고 수 시간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41세였습니다.
그의 장례식에 Washington 시주민의 ¾이 나와서 생명을 걸고 그의 명예를 지킨 해군 영웅에게 경의를 표했답니다.
초창기 미합중국과 군대에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걸었던 전통과 역사가 지금까지도 명예를 최상의 덕목으로 믿는 군인정신이 West Point 미 육사의 교훈 “ Honor, Duty, Country”에서 Honor가 첫째이며, 군인에게 수여되는 최고훈장이”Medal of Honor” 라는 사실로 이어 진다고 하면 지나친 상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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