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촌 강가에서
소한에 비가 내리고 대한을 열흘 앞둔 때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지 않음만도 고맙긴 한데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걱정이다. 겨울이면 영하권 날씨에 냇물이 얼고 보리밭은 서릿발이 숭숭 솟아야함이 정상이다. 그런데 올겨울은 최저기온이 빙점 아래 내려간 날이 며칠인지 손가락 꼽을 정도다. 논두렁 검불이나 나목 껍질에 붙은 벌레들이 살아서 꼼지락거리는가 싶다.
일월 둘째 금요일 아침에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으로 나가 동정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처음엔 도계동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 대산 들녘이나 수산다리 부근 낙동강 강가로 나가볼까 했다. 버스를 타고 보니 북면 명촌 강가로 나가는 게 시간이나 동선이 단축될 듯했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으로 가던 발걸음은 소답동 버스환승장으로 건너가 북면 명촌으로 가는 14번 버스를 탔다.
굴현고개를 넘은 버스는 화천리에서 동전 산업단지 개발구역을 지나 백월산 아래 남백마을을 둘러 온천장으로 향했다. 할머니 몇 분이 목욕 바구니를 들고 조심스럽게 버스에 올랐다. 온천장에 닿아 그분들이 내리자 이번엔 목욕을 끝낸 한 할머니가 버스에 올랐다. 명촌으로 가는 버스는 온천장에서 북쪽으로 나가 낙동강 강가 강마을 명촌이 종점이라 몇 개 마을을 더 거쳐 지났다.
낙동강 강변 바깥신천에서 안신천을 지난 강둑 따라 명촌으로 갔다. 창원에서 최북단으로 한반도 지형으로 본다면 두만강 회령이나 종성쯤 해당한다. 강 건너는 바위벼랑이 둘러친 창녕 부곡 임해진이다. 조선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근심을 잊고자 벽진 이씨 문중 우일이 세운 소우정(消憂亭)이 있다. 청암에서 학포에 이르는 벼랑길은 정분 난 개가 길을 먼저 냈다고 전해진다.
버스는 명촌에 닿아 잠시 대기했다가 되돌아가는 듯했다. 마을 들머리는 강마을답게 민물횟집이 두 곳 있었다. 강둑으로 올라 둔치로 내려섰다. 4대강 사업으로 단감나무가 심겨졌던 자라는 생태공원으로 바뀌었다. 한 중년 사내는 타고 온 자전거를 세워두고 공원을 걷는 산책을 하고 있었다. 칠서와 남지에서 흘러온 낙동강 강물은 강폭이 좁아졌다가 넓어지면서 유장하게 흘러갔다.
가을에 은빛 이삭을 내밀었던 물억새는 갈색으로 바뀌어 야위어갔다. 아침 햇살이 역광으로 비치는 강변을 따라 물길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걸었다. 강 건너 학포에도 드넓은 수변공원이 펼쳐졌다. 북면 생태공원에는 고라니나 노루가 서식할 정도로 숲이 우거져 갔다. 자전거 길을 벗어나 강 언저리로 나가니 짐승들이 다닌 길이 반질반질하고 금방 지나간 발자국 흔적이 뚜렷했다.
생채공원엔 차를 몰아와 그라운드골프를 즐기는 노년층이 보였다. 경로당보다 야외로 나와 하는 운동이 더 좋은 여가 활용인 듯했다. 할아버지만이 아닌 할머니들도 보였다. 아니, 중년이라 불러주워 하나. 그 곁 야구장엔 유소년 선수들이 코치의 지도로 함성을 지르면서 훈련에 열중했다. 드물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이가 보였다만 나처럼 걸어서 지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바깥신천에 이르러 나아갈 길을 고민했다. 강둑으로 올라 북면 온천장으로 나가느냐, 본포로 내려가 강둑을 더 걷느냐 선택이었다.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고 강변으로 나온 김에 더 걸어도 좋을 듯했다. 북면 생태공원에서 샛강 신천을 지나 본포 취수장으로 향했다. 취수장 벼랑을 돌아가는 강변 생태보도교를 따라 걸었다. 본포에서 학포를 건너는 본포다리가 낙동강에 걸쳐 지났다.
본포에 이르러 수산다리로 향하지 않고 둑을 넘어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어귀에서 눈길을 돌려야 하는 안타까운 로드 킬 장면을 봤다. 커다란 고라니 한 마리가 길바닥에 피를 흘려 쓰러져 있었다. 내가 어떻게 수습할 처지가 못 되어 송구하고 미안했다. 수산에서 일동과 신전을 둘러온 40번 버스가 와 올라탔다. 주남저수지를 돌아 시내로 들어오면서 그 고라니가 눈앞에 선했다. 20.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