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
여성민
이별한 후에는 뭘 할까 두부를 먹을까 숙희가 말했다
내 방에서 잤고 우리는 많이 사랑했다 신비로움에 대해 말해 봐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숙희는 말했다
눈이 내렸을까 모르겠다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른다 두부 속에 눈이 멈춘 풍경이 있다고 두부 한 모에 예배당이 하나라고
사랑하면 두부 속에 있는 느낌이야 집에 두부가 없는 아침에 우리는 이별했다
숙희도 두부를 먹었을까 나는 두부를 먹었다
몸 깊은 곳으로
소복소복 무너지는
이별은 다 두부 같은 이별이었다 예배당 종소리 들으려고
멈춘 풍경이 많았던
사람이 죽을 때
눈이 몰려가느라 몸이 하얗다면
죽어서도 두부 속을 걷는 사랑이라면
눈이 가득한 사람아 눈이 멈춘 눈사람 예배당 종소리 퍼지는 지극히 아름다운 눈사람아 그러나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르고
두부는 생으로 썰어 볶은 김치와 먹어도 좋고
된장 조금 풀어서
끓여내는 이별
— 계간 《상상인》 2024년 봄호
여성민
충남 서천 출생. 안양대 신학과,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2010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이,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등단. 시집 『에로틱한 찰리』, 소설집 『부드러움과 해변의 신』, 시소설집 『뜻밖의 의지』(공저) 등.
첫댓글 어머니~ 여성인 줄 알았어요. 남성이었군요.
이분은 진짜 시인인가봅니다. 어쩌면 섬세하게 시를 여성여성(극 페미니스트들이 싫어하겠지만)하게 조곤조곤 하게 쓰셨을까요.
이분 시집을 사서 읽고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