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자마자 밤나무 숲으로 가서 밤을 주우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 출발할 시간입니다.”
밤을 한참 줍고 있는데 벌써 서울로 출발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둘러 산을 내려와 아침을 먹고 8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내일 있을 정토사회문화회관 개관식 프로그램 등 여러 문서들을 점검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3시간 30분을 달려 12시에 서울 서초법당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내일 개관 기념식을 앞두고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행사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다들 수고하십니다.”
스님은 봉사자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는 정토사회문화회관 1층 현관 입구에서 제막식과 커팅식 리허설을 했습니다. 내일 사회원로 및 정치, 시민사회, 종교계에서 많은 인사들이 행사에 참석하는데 행사 진행을 어떻게 할지 꼼꼼하게 점검한 후 리허설을 마쳤습니다.
긴 터널과도 같았던 코로나 시기를 지나 드디어 내일! 정토사회문화회관이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게 됩니다.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후 스님은 다시 서초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서초법당 1층 방송실에서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5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이제 들판에 벼가 누렇게 익었고 콩도 노래졌습니다. 지금 초록색으로 물든 건 배추하고 무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가을이 완연해졌습니다. 이런 서늘한 계절에 여러분과 대화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이어서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말기 암 환자였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느라 삭발을 한 질문자는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지 눈물을 흘리며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말기 암 환자입니다. 고통 없이 죽고 싶어요
“저는 유방암 말기이고 뼈와 간까지 전이된 상태입니다. 통증이 너무 심합니다. 죽고 싶으면 그냥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죽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가 저의 요즘 화두입니다.
아프고 나서 모든 일상이 다 멈춰버렸어요. 제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은데 몸이 이래서 해결할 수가 없어요. 깨끗하게 가고 싶은데 현실이 참 마음같이 안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참 무거워요. 아프니까 가족에게도 남에게도 참 민폐더라고요. 죽음 앞에서 저도 사소한 걱정에 욕심을 좀 부리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니 세상이 참 아름답더라고요. 아름다운 걸 아름다운지도 모르고 참 철없이 살아왔어요. 참회합니다. 제 작은 바람은 이제 고통 없이 죽었으면 하는 거예요.”
“질문을 그렇게 하면 안 되죠. ‘고통 없이 살고 싶습니다. 고통 없이 사는 방법은 없습니까?’ 이렇게 물어야죠. 죽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안 죽어져요.”
“제가 사는 동네에 98살 되신 할머니가 계셔요. 매일 아침마다 동네 입구에 딱 앉아계시는데 저만 보면 이렇게 말씀하세요.
‘아이고, 왜 이래 안 죽어지누?’
‘100살까지는 사실 거예요.’
‘아이고, 지겹다. 죽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늘 안 죽어진다고 말씀하시거든요. 살아있을 때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쉽습니다. 일부러 죽으려면 힘들잖아요. 죽으려면 일부러 약을 먹든지 목을 매든지 뭘 해야 합니다. 사는 건 가만히 있어도 살아지잖아요. 그런데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게 쉬울까요, 사는 게 쉬울까요?”
“죽는 게 더 쉽죠.”
“그래요.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게 쉽습니다. 죽을 때가 된 사람을 살리려면 산소호흡기 같은 각종 기계도 붙여야 하고 힘들어요. 이렇게 살아있을 때 내내 죽을 생각을 하고, 죽을 때는 또 안 죽겠다고 하니까 의료비만 많이 듭니다. 지금 죽을 생각에 빠지지 마세요. 질문자는 가만히 있어도 조금 있으면 저절로 죽어질 텐데 뭐 때문에 자꾸 죽을 생각을 해요?”
“의료비가 너무 많이 나갑니다.”
“의료비가 많이 나와도 질문자 돈 내는 게 아니잖아요. 돈은 자식이 내든 지, 부모가 내든 지, 정부가 내죠. 지금 병원에 누워있는데 돈이 어디 있어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해결할 일이 남았다고 했는데 본인이 뭘 해결해요? 질문자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임금은 어떻게 죽겠어요? 이 세상 온갖 일을 다 해결해야 하는데요. 죽는 사람은 아무것도 해결 안 해도 돼요.”
“그래도 스님... 아직 아이들이 어립니다.”
“어려도 다 자기 알아서 살 거예요. 엄마가 죽었다고 따라 죽지는 않아요.”
“맞습니다.”
“지금 아이가 엄마를 걱정해야 할까요, 엄마가 아이를 걱정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엄마를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애들은 엄마 걱정하면서 울고, 엄마는 애들을 걱정하면서 울어서 좋은 게 뭐가 있어요? 애들은 ‘엄마야 죽든지 말든지 우리는 살자.’ 하고 살아야 해요. 질문자는 아파서 병원에 있잖아요.
‘애들은 어떻게든 살겠지. 죽는 내가 더 급하니까 살아있는 동안 내 인생이나 잘 살자.’
이렇게 탁 놓으면 서로 좋잖아요.”
“네.”
“지금 질문자 고민을 들어보면 이전에 질문한 세 사람이 말한 고민은 고민도 아니에요. 질문자가 들으면 웃기죠. 여자 친구 만나고 못 만나는 게 뭐 대단한 일이고, 건강한 사람이 애들 키우는 게 뭐 대단한 일이고, 우울증 있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는 생각이 들겠죠. 암이 말기까지 가서 이제 죽는 것도 겁이 안 나고 단지 통증이 너무 심해서 미칠 지경인데요.”
“맞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질문자만큼 안 아파서 그런 고민을 하는 건데 질문자는 죽는다면서 애 걱정을 하고 있으니 자기가 더 웃기네요.”
“하하.”(질문자 웃음)
“걱정도 습관이에요. 질문자는 이제 세상에 걱정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앞으로 살 날이 열흘이 될지, 한 달이 될지, 백일이 될지, 일 년이 될지 모르잖아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내 이렇게 괴로워하다 죽는 게 나아요, 남은 날 만큼이라도 좀 웃으면서 살다가 죽는 게 나아요?”
“웃으면서요.”(질문자 웃음)
“그래요. 웃으면서 살다 죽으려면 그런 걱정을 안 해야 해요. 지금은 내가 사는 게 중요해요. 남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질문자가 주제넘는 거니까 자기 걱정만 하세요.
그리고 통증에는 방법이 없어요. 단, 모르핀 같은 통증 완화제는 정부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했어요. 건강한 사람에게는 마약이지만, 통증이 심할 때는 맞아야 해요. 그걸 피할 필요가 없어요.
우선 통증이 숨이 넘어갈 정도로 심할 때는 병원에 얘기해서 통증 완화제를 맞아요. 통증 완화제라도 맞고 하루 더 사는 게 그냥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통증은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해요. 어쩔 수 없어요. 이제 죽어도 못 견기겠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면 안락사를 신청을 하세요. 안락사는 질문자처럼 극심한 고통에 처한 사람이 아름답게 죽는 방법, 명예롭게 죽는 한 방법이거든요. 이제 더 이상 회복 가능성도 없고 통증은 너무 심하고 모르핀으로도 안 되니까 안락사를 해 달라고 할 수도 있어요. 저는 안락사를 허용해야 된다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안락사가 법으로 허용이 안 되어 있어요. 그러니 사는 수밖에 없죠.”
“스님, 통증이 너무 심해요.”
“말기 암 환자가 통증이 심하다는 건 저도 들었어요. 제가 말기 암 환자가 임종하기 전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의식도 없고 사람도 못 알아보는데 ‘아야야, 아야야, 아야야.’ 이런 소리만 계속했습니다. 그만큼 아픈 거예요. 그래도 우리나라 법으로 안락사가 안 되니 어떡해요. 지금은 안락사를 하려면 비행기 타고 스위스로 가야 해요.
그러니까 이제 마음을 이렇게 먹어야 해요. 죽으면 통증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겠죠. 그러니까 아침에 눈뜨면 살아있는 것에 감사 기도를 해보세요.
‘아프지만 그래도 안 죽었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이 안 들어요.”
“아플 때는 감사한 마음이 잘 안 들죠. 통증에는 방법이 없어요. 통증을 완화하는 약을 먹으면서 살아있는 데까지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 걱정도 끊고, 의료비 걱정도 끊고요. 의료비는 질문자가 내는 게 아니에요. 그건 자식이 내든지 부모가 내든지 형제가 내든지 정부가 내든지 누가 내도 내요. 그걸 질문자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이제 질문자는 다른 걱정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살아 있는 하루를 즐겁게 살면 좋겠어요. ‘하루를 살더라도 웃으면서 살자’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질문자 웃음)
“그래도 잘 웃네요. 오늘 질문한 4명 중에 그래도 지금 질문자가 제일 많이 웃네요. 앞에 세 명은 이렇게 아픈 사람도 웃는데 뭐 때문에 못 웃는지를 모르겠어요. 이 질문자처럼 더 아프면 웃을 거예요?
저는, 살아서나 죽었으나 그냥 웃다가 죽으라고 해요. 병이 나도 웃고 아파도 웃고 살라고요. 저는 편두통이 있어요. 지금은 많이 완화됐지만 한 번씩 머리를 칼로 도려내듯이, 송곳으로 찌르듯이 아프니까 인상이 저절로 팍팍 써지거든요. 제가 통증을 참으라는 말을 안 하는 이유도 겪어보면 도저히 참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그래도 통증 주사 맞고, 통증이 있어도 사는 게 낫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는 게 좋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앞으로 20년, 30년은 더 사니까 성질 내가면서 살아도 웃을 날이 있어요. 질문자는 지금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성질내고 걱정하면 바보잖아요. 내게 남은 시간이 짧을수록 웃으면서 살아야죠.”
“네.”(질문자 웃음)
“돈은 원래 내 돈이랄게 없어요. 내가 가지고 있어도 내 돈 아니에요. 원래 내 돈 네 돈이 없습니다. 그냥 돈일 뿐이에요. 누가 지불하느냐는 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돈이 떨어지면 병원비를 지불 안 하면 됩니다. 정부도 그때는 안락사시켜 주겠죠. 돈이 없는데 어떡하겠어요. 빨리 죽으려면 돈이 빨리 떨어지는 게 좋아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아요. 질문자는 안 그래도 맨날 인상 쓰고 있을 텐데 나까지 같이 울어주면 뭐 하겠어요? 나하고라도 좀 웃어야죠, 그렇죠?”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말기암 환자 분도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네. 통증 없이 죽을 수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자각했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웃으면서 하루하루를 맞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질문자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감사함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실시간 댓글창에는 감동의 여운이 한 줄 소감으로 계속 올라왔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오전에는 사회인사 분들을 초청하여 정토사회문화회관 개관 기념식을 하고, 오후에는 전국에서 정토행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개관을 축하하는 정토행자 한마당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