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4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주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창 4장).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제사였지만 가인의 제사는 자기 의로 드리는 제사였기 때문입니다(히 11:4).
믿음의 제사는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며, 자기 의의 제사는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불의의 제사입니다.
이로 인하여 가인은 몹시 분이 나고 안색이 변하여 결국 그의 동생 아벨을 돌로 죽이고 말았습니다.
내 안에도 가인과 같은 분노가 있습니다.
내가 무시당했다는 이유로, 나를 멸시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을 마음으로 죽였는지 모릅니다.
내가 죽어야 할 자요, 인정받지 못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끓어오르는 분노는 또 어떠한지요?
주님은 이런 나를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아주시며 오늘에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나를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 주옵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기 원하오니 주님과 연합한 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막 2:1-12
제목 :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은 한 나병환자를 고치셨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에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
예수께서 그곳에 계신다는 소문이 들리자 많은 사람들이 운신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집에 많이 몰려들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셨다.
그 때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들고 왔다.
하지만 많은 무리로 인하여 예수께로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궁구하여 그 집의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의 침상을 달아내렸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다.
이에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람이 신성모독을 행하고 있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할 수 있단 말이야?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예수님이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찌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느냐?
내가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말과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하지만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너희로 알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이어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가라.
이에 그 사람이 곧 침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걸어 나갔다.
이 광경을 직접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이런 일을 도무지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네 명의 친구들에 의해서 침상 째로 옮겨진 중풍병자가 있다.
그를 예수님께 인도한 네 명의 친구들의 믿음을 주님은 보셨다.
그리고선 그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이 선포를 들은 몇몇 서기관들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니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은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다. 죄를 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속으로 생각한 그 내용을 주님은 아셨다.
그래서 너희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하시면서 그들에게 일침을 가하신다.
그리고 말씀을 덧붙이신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말과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말이 쉽겠느냐고 물으신다.
내가 굳이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한 이유는 내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너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하셨다.
당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두 가지를 명한다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주님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고 하면,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이성을 마비시켜서 자기의 이름을 높이고자 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그런 이유로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해도 그 당사자의 죄가 사해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겉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꼼수를 쓰지 않고, 진짜 당신이 하나님으로서 죄인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내용이다.
(10절)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서기관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신성모독이라는 비웃음과 누명을 쓸지라도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곧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신 것이다.
그리고 곧 이어서 그 중풍병자를 고치신다.
(11-12절)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이런 과정을 통해서 주님은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보이신 것이다.
당시 예수님 앞으로 인도된 중풍병자가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은 그의 구부러진 몸을 펴는 것 곧 중풍병을 고침받는 것이었을 것이다.
죄를 사함 받는 것 그것은 지금 당장 그에게 당면한 과제가 아니었다.
그런 죄는 나중에라도 사함을 받으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주님의 관심은 전혀 달랐다.
먼저 그의 죄를 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셨다.
그도 그럴 것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죄 사함을 받은 자라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죄 사함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구원을 얻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런 이유로 주님께서는 그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셨고 이어서 그의 질병을 고쳐주신 것이다.
그의 치병은 곧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친구들에 의해 예수님께 인도된 중풍병자는 그렇게 고침을 받았으며 그 자체가 그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요 영생을 표상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물론 죄를 사하는 권세가 없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나에게 죄를 범한 이웃을 성령 안에서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우리가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요 20:22-23)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땅 곧 만물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어느 누군가에게 죄를 범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에 의해서 욕을 당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거나 해치기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욕되게 한 그에 대하여 보복할 요량으로 한을 품고 있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의 죄를 먼저 사해 주신 것은 그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물줄기의 장애물을 먼저 처리해 주신 것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나오는 산상수훈은 이렇게 가르친다.
(마 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또한 이런 말씀도 있다.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나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기 위하여 남들에 비해서 헌금도 많이 하고 기도도 더 많이 하곤 하였다.
그런데 정작 형제를 향한 원망과 불평은 내 안에 그대로 간직한 채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만 신경을 쏟아 붓는 자였던 것이다.
이런 나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지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신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있는데 그가 채권자인 임금에게 지금 당장은 갚을 돈이 없어서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곧 갚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임금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그의 모든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렇게 임금에게서 풀려난 이 사람이 집으로 가다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다.
그 때 당장 빚을 갚지 않는다고 하여 그 채무자를 옥에 가두고 말았다.
이 모든 일을 본 어떤 사람이 임금에게 그 일을 고하였다.
그러자 이를 들은 임금이 화가 나서 그 일만 달란트 빚졌던 자를 잡아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겨 네 빚을 탕감하여 주었는데 너는 네 동료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옥에 가두었느냐?, 하며 옥에 가두어버렸다.
이 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나 역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나는 당연히 다시 옥에 갇혀야 할 자이다.
그것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지옥의 아랫목이란 말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창세전 언약에 의하여 영생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심을 믿는다.
오늘 나의 맘속에 있는 모든 앙금을 성령 안에서 모두 털어낸다.
그리고 말씀의 검으로 나를 쳐서 죄 사함과 생명의 자리인 아버지 품에 거한다.
나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악한 자임을 고백한다.
하지만 나도 용납하지 못하는 나를 우리 주님께서 용납하셨기에 이제 파레시아 곧 담대함으로 나를 용납하고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날 구원하신 우리 주님을 이 시간 마음 깊이 찬양하며 영광을 돌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가 잘못을 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내가 화를 당하면 그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던 극히 이중적인 자가 여기 있습니다.
이런 나는 마땅히 지옥의 뜨거운 불못에 던져져야 할 자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징계를 통하여 아버지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내가 바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요 더럽기가 한량없는 자인데 어떻게 이런 나를 다시 품어주셨는지요?
그저 두 손을 들고 주님께 항복하며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아닌 주님으로 나를 채우기 원합니다.
이 하루도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