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aver.me/xdI5zHf9
내가 자주 이용하는 서울의 어느 지하철역. 나란히 붙은 광고 두 개가 눈에 띈다. 하나는 결혼정보회사의 선전 문구, “결혼이란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것”, 다른 하나는 서울시가 연말연시 5대 행동수칙과 함께 내놓은 포스터, “지금 혼자가 되지 않으면 영영 혼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혼자임’이 좌충우돌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여 산다. 아니라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다. ‘자연인’의 삶도 사회적이다. 팬데믹 시대, 거리두기는 혼자인 상태의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다. 학교, 군대, 감옥, 병원, 직장에서 언제까지, 어디까지 거리두기를 할 것인가. 코스타리카처럼 군대와 감옥은 ‘해방’시킨다 해도, 학교와 병원에서 대면은 필수적이다. 육아는?
자본주의의 가속으로 인한 고실업은 근대 초기 제도들의 개념과 기능을 변화시키고 있다. 속도 조절 중일 뿐, 이미 인류는 다른 방식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팬데믹은 인간이 아닌, 지구 주도의 재촉이다. 이런 재촉 와중에 저토록 시대착오적인 결혼 개념이라니. 결혼한다고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사람은 없다. 타인과 함께든 혼자든, 외롭지 않은 사람도 없다. 더구나 외로움을 피하자고 결혼을? 동성이든 이성이든 결혼 제도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의 첫 번째 자질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다.
개인의 개념은 프로이트에 의해 확고해졌다. 자신이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고통스럽게 독립을 쟁취한 자율성(auto/nomy)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자율성은 스스로 규범을 만든다는 의미다. 반대로 의존은, 연결과 협력과 혼동된 채 열등한 가치로 간주되었다. 우리의 몸은 사회와 타인의 흔적으로 얼룩져 있음에도 피아(彼我)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환상, 영토성(금 긋기 놀이)은 안보 이데올로기의 전제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을 ‘정립’한 사람이지만, 여성성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이후 낸시 초도로 등 여성주의 정신분석학자들이 근대적 남성성을 분석하면서, 인간의 자율성 개념은 이성애자 가족에서 제도화된 모성의 산물, 즉 성별 분업의 결과이지 인간의 보편적 특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궁극적으로 자아는 극복되어야 할 개념이다. 즉 “내가 누구다”라는 자의식은 누군가를 부정하거나 외부와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만들어진 문명의 골치 아픈 산물이다. 외로움도 타인과의 비교에서 온다. 안정적인 자아, 자율적이며 합리적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인과 관계로 설명할 수 없다. 연속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않다. 실존주의, 불교는 말한다. 고통은 ‘내 안의 어린아이’ 때문이 아니다. 세상은 본디 고해(苦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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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예외 상태(광기)가 아니라 권력의 의지로서 이성의 실현이다. 전쟁은 기획된다. 이를테면, 가정폭력, 성폭력 가해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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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각기 닿을 수 없는 섬들이지만(독자성), 바닷속에서 보면 연결된 땅이라는 말이 위로를 준 시절이 있었다. 소외, 고립, 심심함, 마음의 허기, 마음 둘 곳 없음? 팬데믹 시대에는 이도 저도 아니다. 나의 혼자임과 외로움이 글로벌 경제와 기후위기에 의해 좌우되는 시대의 ‘대안’은, 자신을 잊는 몰아(沒我)밖에 없다. 쉽지 않다. 그래도 인간이 지구에 지은 죗값을 70억명분의 1로 나눈 것이니,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어렵지만 차근차근 읽어보면 좋은 글이라 가져왔어
좀 더 자세한 내용과 전문이 궁금하다면 출처로!
첫댓글 너무 좋은글이다 고마워 여샤
오 전문 들어가서 엄청 곱씹으면서 읽었어... 정희진쌤 사진으론 처음 뵙네 ㅋㅋㅋ 글 써줘서 고마워 여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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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죽기 좋은 계절 ㄱㅆ 가져온 글을 열심히 읽어주는 여시들이 있어서 내가 다 뿌듯하다 나야말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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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ㅆ 다시 읽는 거 잊지 마 여시야 😉
글 좋다..
좋은 글 읽게해줘서 고마워 여시!
대박 필사하고 싶다ㅠㅠ 너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