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번 먹자
김 난 석
삶이란 무엇일까?
인생이란 살과 마음을 서로 비벼대며 어울려가는 것이기에
곧 삶(삶=살+맘)이라 하는지도 모른다.
어울림의 1차적 소통수단으로 말을 사용하는데
그 말이라는 게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하고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도 한다.
한번 엎질러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남의 가슴에 상처 낸 말은 저승에 가서도 씻겨지지 않는다니
이것만으로도 말의 위력과 유해성을 동시에 짐작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 또 조심 말을 삼가며 살아가야 한다.
자신을 표현할 때 우선 말을 사용하지만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이나
고양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시(詩)가 생겼다 한다.
“오, 눈부신 태양이여! ...” 이렇게 영탄하는 게 그것이다.
그러다가 시로도 다 표현하지 못하는 정서 상태를 위해
노래(唱)가 생겼다 하고
노래로도 다 표현하지 못하는 지극한 감정상태일 때
춤(舞)을 추게 된다고 한다.
할 말을 놓아버리고 하늘을 우러러 미소만 지을 뿐이거나
땅을 치며 무거운 표정을 짓는 것도 그것일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1차적 소통수단이 말이라 한다면
시나 노래나 춤은 2차적 3차적 4차적 소통수단으로서
점점 더 고양되어 가는 모습일 터요
이들 각 단계의 소통수단을 미학적으로 다듬기 위해
수사학이나 시학, 음악이나 무용, 관련 학문 등이 생겨났을 테다.
따라서 우리는 1차적 내지 4차적 소통수단의 그 양 끝에서
문화와 교양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소통의 한 수단으로써 가장 소박하고 친근감 가는 건
“밥 한 번 먹자” 일 것이다.
뜸했던 이웃들에게 "밥 한 번 먹자" 란 말을 가끔 습관처럼 한다.
그건 밥으로 배를 채우자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마음을 누이자는 뜻인데
그보다 고급스러운 건 차 한 잔 하자는 것이겠으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말이 쉬 나오진 않는다.
말을 내뱉었다 해도 밥상에 이르기도 쉽지 않다.
서로에게 마음을 누이자는 건 인연을 붙들어 매려는 건데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을 보듬는 것과 진배없다.
사는 게 늘 그렇듯
나뭇가지에 눈서리로 올라붙어
제 숨소리에 흔들리기도 하고
(雪上加霜)
갈댓잎 흔들리는 눈밭에 기러기 내려앉듯
가만히 내려앉아 발자국만 남기기도 하느니
(雪泥鴻爪)
때론 인연 아닌 인연도 있는지라
눈감아버리자
그러나 영영은 아니게
세월이 흐르고 나면
두 인연 흔적 모두 사라지고 마느니
그땐 옛 노래나 부르자.
(졸 시 ‘인연, 그 허망함이여’ 전문)
카페에서의 인연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게 카페인데
그 인연도 그에 따라 수없이 들고 나는 게 현실이니
그게 카페인연의 속성이 아닐까?
바람처럼 나타났다 안개처럼 사라지는 게 기회라는데
카페인연도 그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나는 어떤가?
유부남이 성을 넘나드는 깊은 인연을 바랄 수야 없지만
돈독한 인연을 맺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스스럼없이 “밥 한 번 먹자”라고 해볼 회원들도 있긴 하다.
그런 회원이 남성이기도, 여성이기도 하지만
이왕 카페생활하려면 그런 인연 한 둘 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카페에서였다.
술에 얽힌 에피소드 이벤트가 있었다.
70여 건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그중에서 15명을 선정해 시상한다면서 심사하라니
참 난감했던 기억이다.
술끼가 진해야 장원감일까?
옅어야 할까?
아니면 술끼가 있는 둥 마는 둥 아리송해야 할까?
심사기준을 설정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서 15 명 외에 5 명을 추가로 선정하기로 했지만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꾀를 낸 게
“선정되지 않은 분들과 함께 밥이나 한 번 먹자”였다.
잠실 롯데백화점 트레비분수대 앞으로 나온
몇몇 분들을 만나
“이열치열이냐? 아니면 이냉치열이냐?"를 물으니
아무거나 다 좋다고 했다.
하여 을밀대에서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냉면을 먹고 일어서서
2차로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려니
“이벤트에서 수상대상에 들지 않은 게 다행”
이라는 말이 압권이었다.
이어지는 문학상 시상은 어찌 될지 모르겠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던데...
회원들이여! 조만간에
밥 한 번 먹읍시다.
그게 서로 우호적 인연을 쌓는 첩경입니다.
(2022. 7. 20. 단상)
위 글은 지난날의 단상이다.
어제는 연말이 다가오니 허전하고
어쩐지 쓸쓸해 전화번호를 뒤적거리다가
"어이, 잠실로 와, 밥이나 먹게!"
그랬더니 이내 달려왔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뭐, 별 볼 일도 없는 모양이구먼?"
했더니
"하루 놀고 하루 쉬고 하지 뭐" 그러더라.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지만..ㅎ
롯데백화점 식당가로 올라가 우렁쌈밥을 시켰다.
쌈을 입에 잔뜩 넣고 한참 우기적 거리는데
이 친구 갑자기 카운터로 달려가 계산을 하더라.
"남의 동네에 와서 뭐 하는 짓이야?".
하지만 기분은 언짢아도 금세 기분이 좋아지더라.ㅎ
밥 먹고 나서는 일곱 발짝 이상 걸어야 한단다.
그게 어른들의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내 집으로 걸어갔다.
롯데에서 7분 거리인 고로.
집에 잠깐 들러 나의 산수(80세) 기념 시집을 한 권 들려주고
인근 카페로 가서 한참이나 차담(茶談)을 나누다 헤어졌다.
저녁에 집에 잘 들어갔는지 전화해 봤더니
"제일 좋은 벌레가 무어냐?"라고 묻더라.
그게 "헤벌레"라 하던데,ㅎ
양띠방의 선남선녀들이시여!
가끔은 밥도 한 번 먹읍시다!
첫댓글 낼 토요걷기방 갈까요 도반님~~~~~
아이구우 내일은 선약이 있네요.ㅠ
그대신 월요일에 소생이 맛집으로 모시렵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말, 시, 노래 춤에 잠시 머물러 갑니다.
건강하세요~
고마워요 앤디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