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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담담한 표정이네, 너.”
뜨거웠던 하루가 마무리 되는 시간.
남자를 올려다보는 여자의 눈빛은 언제나 그래온 일을 대하는 사람처럼 평화롭고 고즈넉하다.
조금의 동요도, 약간의 불안함도 없다. 당장이라도 잠에 푹 빠질 공주같이 아늑하다. 여자는 바
람에 흐트러지는 머리카락들을 귀 뒤로 꼽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뭐.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잖아.”
여자의 담담한 목소리에 오히려 남자가 심하게 주먹을 움켜쥔다.
“어젯밤에도 그 애랑 같이 있었겠네, 그럼.”
“…….”
“강의 끝나고 둘이서 네 차타고 나가는 거 봤어. 해가 져도 기숙사 주차장에 네 차가 없더라.
일부러 전화도 안 했어.”
그제야 여자는 주구장창 남자를 빤히 올려다보던 시선을 내린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지는 해라도
눈이 부셔서다. 여자의 목소린 신기하리만큼 차분하다. 오히려 어제의 궁금증이 다 풀려서 기쁘다는
듯 약간 격양되어 들리기도 한다.
반면에, 남자의 꽉 쥔 주먹은 바들바들 떨린다. 어이가 없다는 듯 입 꼬리가 비뚤게 올라간다.
“왜. 전화라도 해보지.”
“전화해봐야……,”
“그럼 내가 조곤조곤 다 얘기해줬을 거 아냐.”
“…….”
“뭐 하러 지금까지 궁금해 했냐?”
남자는 제 분에 못 이겨, 옆 의자에 걸어두었던 코트를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하긴. 네가 나란 새끼한테 관심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
“영웅아, 어디 가?”
여전히 아무 동요가 없는 여자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화염같이 타오르는 분노에 제 자신도
놀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장이라도 저 여자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려 쳐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여자의 목을 졸라 죽여 버리고 싶었다. 꺽꺽 소리를 내며 살려달라고 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도,
그것마저 뿌리치며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오른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얼굴도
그랬고, 손바닥마저 피가 돌아 그런지 화끈했다. 도저히 더 이상 여기에서 저 여자와 있을 자신이 없었다.
“질린다.”
“…….”
“진짜 질렸다.”
여자는 자신의 심장을 관통하듯 따가운 말을 쏘아내곤 카페를 나가버린 남자의 뒷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봤다.
영웅이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건 여자도 바보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알아채고 있었다.
다만 어이가 없고 난처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그리고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약간의 가늠조차 여자에겐 불가능했다.
여자와 사귀기 시작하면서부터도 영웅에겐 주변 여자들이 많았다. 영웅의 무성한 소문들을 듣고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찾아오는 다른 대학 여자들도 몇 트럭이었다. 영웅은 오는 여자며 가는 여자며 붙잡는 여자 하나 없었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여자는 얼마 전, 영웅과 낯선 여자가 구석 진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뜨겁게 그리고 은밀하게 키스하고 있던 장면을
목격했던 그 순간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 오히려 자신에게 늦게까지 밖을 돌아다닌다며 싸구려 여자
취급하던 영웅의 일그러진 얼굴도 그렸다.
하하. 지금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허탈하게 웃는 것뿐이다.
언젠가부터 무뎌진 마음.
여자는 꽤나 무던한 표정으로 제 가슴을 한 번 쓸어내려봤다. 뛴다. 느리게 그러나 정확히.
여자는 옆 의자에 놔두었던 백과 코트를 팔에 두르며 2층 계단을 내려왔다.
안녕히 가라는, 정말로 고맙게 들리는 종업원들의 인사에 가볍게 목 인사를 하며 카페를 빠져나왔다.
때는 가을이었고, 거리를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단풍잎들이 발에 사무치도록 치이는 계절이었다.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자는 아무도 제 자신을 모르는 곳에 숨어버리고 싶었다.
영웅은 무슨 억하심정으로 헤어지자는 말만은 죽어도 꺼내지 않는지 답답했다.
사귀어도 이건 여자가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이란 건 좀 더 달콤하고 애틋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여자는?
대학생으로서의 설레는 새 학기도, 좋은 선후배 사이도, 모두 영웅으로 틀어져버린 지 오래였다.
영웅은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여자를 모든 인간관계로부터 격리시켜왔다. 그만큼 사랑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러운 년.’
카페 남자종업원과 손이 스쳤다고 그 자리에서 여자의 머리칼을 잡고 카페 밖으로 내동댕이친 적도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횡단보도에 멀뚱히 서있는 여자의 시선이 곧 여자의 무릎으로 내려앉았다.
무릎 위의 커다란 상처가 그 때의 쓰라림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었다.
신호등 불이 바뀌었다.
헤어지자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죽으면서까지 이 관계를 끝내고 싶진 않았다. 가슴은 무디어지다 못해 딱딱해졌지만, 그래도 여자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그 모든 일이 다른 사람들에겐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라 여자는 코끝이 아렸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단둘이 여행을 가고 싶었다.
권 영웅과의 행복한 여행? 여자는 실소했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여자는 체념한 표정으로 횡단보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많이 사랑해 줄 거야.’
그러다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차가운 밤공기만이 여자의 뺨을 할퀴듯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헛것을 들었다.
여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가엔 다시 담담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정도로의 밝은 빛이 여자를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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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짠 바다 향기가 그리고 바위를 힘차게 쳐내는 파도 소리가 스며들듯 그녀에게 다가왔다.
눈을 뜨기도 전부터 여자는 자신이 모래사장 위에 축 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종아리에 닿는 자잘한 모래들의 감촉 때문이었다.
“잘 잤어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제 자신이 어떻게 바닷가에 쓰러져 있는지 생각키도 전에 꽤나 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일어설 수가 없었다.
강한 무언가가 여자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겨우겨우 고개를 돌려 옆을 처다 보니 흰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여자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뜩할 만도 한 그 상황이 이상하게도 아늑하고 따뜻했다.
“힘들 거예요, 아직은. 처음이잖아요. 그렇죠?”
남자가 바위에서 내려와 한발자국씩 모래를 소복소복 밟으며 여자에게로 다가왔다.
남자는 맨발이었다. 정말 새하얀 발이었다.
“그렇게 슬픈 표정 짓지 말아요. 행복해야죠.”
“바다가 정말 예쁘네요.”
여기가 어디냐는 말보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바다가 예쁘단 말이었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이는 광활하고 맑은 바다와 빛나는 모래사장은 언젠가부터 그녀가 꿈꿔오던 것이었다.
막상 그곳에서 숨 쉬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자 여자는 제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단 것을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에요.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남자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대곤 바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뒷모습이 어딘지 쓸쓸해 보여서 여자는 아무 말하지 않고 남자의 시선이 닿은 그 바다를 저도 같이 바라보았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따뜻하게 내려쬐는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남자의 흰 피부와 흰 스웨터도 반짝이고 있었다.
“일어나볼래요? 내가 도와줄게요.”
남자는 바다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엎드린 채 모래사장에 쓰러져있는 여자를 향해 다가왔다.
남자가 내민 손을 힘겹게 잡자, 여자는 그때서야 제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제 자신을 누르고 있던 방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사뭇 가벼워졌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잠시 비틀거리자 남자의 팔이 여자의 허리를 감싸듯 당겨 안았다.
“조심해요.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요.”
도통 남자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여자는 슬며시 남자의 팔을 내려놓곤 근처 바위에 기대어 다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도저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걸음마를 새로 배우는 아기가 된 느낌이 들어 혼자 얼굴을 감싸 쥐고는 작게 실소했다. 언제 또 다가온 건지 바로 옆에서 남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줄 테니까 바닷물에 발을 담가볼래요?”
“걸을 수가 없어요.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요. 어떻게 된 건지……,”
“그러니까 내가 도와줄게요. 모두들 당신 같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모두들 당신 같다고?
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남자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으려던 찰나,
여자는 남자에게 이끌려 이미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이 에메랄드 빛 바닷물이 담수보다도 깨끗하고 맑아보였다.
겨우 남자의 팔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었어도 발목을 식혀주는 이 서늘함에 기분이 너무 좋아서
어느새 여자는 미소 짓고 있었다.
아까 전 가졌던 의문 따위는 또 저 멀리 날아 가버렸다.
조금씩 다리에 힘이 실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힘에 부쳤다.
“여긴 어디에요?”
바위에 걸터앉은 여자는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 지으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게 중요해요? 어찌되었건 당신은 여기서 행복하지 않아요?”
“행복해요.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무섭기도 하고요.”
“행복의 근원? 너무 복잡하잖아요.”
남자가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행복하다면 그 순간을 모조리 먹어버려야 해요.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근원을 찾는다고 이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바보 같지 않아요?”
어?
“이……이봐요!”
여자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디론가 가버리려는 남자의 뒤를 다급히 좇았다.
이 남자를 여기서 놓쳐버리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머릿속을 화살처럼 관통하고 지나쳤다.
그 남자는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또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때면 다시 힘을 내서 있는 힘껏 남자를 좇을 수가 있었다.
남자에게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향이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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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냄새, 너무 독하지 않아요?”
“응, 좀 그러네요.”
동네의 작은 종합병원 지하 장례식장에서 두 여자가 코를 막으며 복도에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빈소를 지키고 있는 한 남자 때문에 지인이면서도
섣불리 빈소로 들지도 못하고 부조금만 내곤,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교통사고라죠? 다리가 아주 처참하게…….”
“네. 차가 다리를 밟고 지나갔는데, 그 타이어 마찰열 때문에 살이 타기도 했다고 들었네요.”
“착한 처잔데 정말 안 됐네. 하늘은 무심하게 착한 사람들만 일찍 데려가나 몰라!”
“저 미친놈이 듣겠어요!”
“에그머니나!”
두 여자는 서로 다퉈 장례식장을 빠져나가버렸다.
첫댓글 여자가 죽은거고 빈소를 지키고 있는 한남자가 영웅이겠죠??
네! 맞아요! 영웅이에요! 멜로디님 또 제게 댓글을 남겨주시다니ㅠ.ㅠ 눈물콧물 다 나도록 감동이에요......!! 정말 힘이 되는걸요!!!!!!!!싸랑해요 멜로디님 ㅠㅠ!
흠.............................이런 슬픈........결말을 원한게 아닌뎅........ㅠ.ㅠ
아데니움님♥♥♥♥♥♥두번째댓글감사 또 감사ㅠ.ㅠ합니다!!!!!!!!!! 즉흥적으로갑자기 쓰게된거라.........이상한결말이 나버렸네요ㅠ.ㅠ 다음부턴 해피엔드로 고고씽하겟습니닷ㅎㅎㅎ!!!!!!
번외없어요? ㅎㅎㅎ..... 슬프지만 잘 읽었어요
번외♥♥dposa님 댓글감사드려요ㅠ.ㅠ!!!!!! 증말증말 힘이나네요 이소설은 번외를 생각해두고있어요♥^.^♥ 곧 찾아뵙겟습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