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을 걸을 수 있을까?
백두대간을 걸을 수 있을까?
오직 단순하게 산길을 걷는 것이지 이름이나 높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꽤 초탈한 듯 말하지만, 연전히 관심이 있는 내가 보인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땅을 걷는 것이 사랑하는 것일까?
여전히 생각거리가 많지만 이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다시 백수가 되면서 어디 2박 3일이라도 산에 다녀와야 한다고 바보한테 운을 띄우곤 한다.
연말에 밀린 일도 있어 선뜻 나서지 못한다.
백운산에 올랐다가 도립ㅁ미술관이라도 들러오자고 간단한 간식을 챙겨 나선다.
그러고 보니 구례 간문에 있을 때 한재에서 따리봉 다녀온 것이 생각난다.
호남정맥 구간이었다.
성불사를 들렀을 때 뒤로보이는 능선이 높지 않아 보였다.
성불사로 네비에 찍는다.
고속도로를 두고 국도를 지나 순천시내를 통과해 광양읍내를 지난다.
성불사 주변은 큰 나무가 겨울 아침햇살에 키가 크고 계곡엔 물이 소리내며 흐른다.
10시 40분이 지나 절문을 들어선다. 전각들은 나중에 보자하고
소나무 옆 화장실 쪽을 보니 등산로 표지판이 보여 그리 들어간다.
절간을 우측으로 내려다보며 밭도 하나 지난다.
작은 계곡을 건너 낙엽이 수북하여 길이 잘 안보이는데 저쪽 나뭇가지에
리본이 붙어 있어 그리로 간다.
여수진남산악회의 리본이 보이고 등산로 노랑 리본도 보이지만 사람 다닌 흔적은 거의 안 보인다.
잠깐 오르니 임도가 시원하게 나타난다.
둥주리봉 1km 이정표쪽으르ㅗ 올라간다.
새재를 지나 한 시간 남짓 지나 둥주리봉에 닿는다. 숨이 가득 차 힘들지만
사진을 찍고 도솔봉 길을 잡는다.
구례 계족산 자락 골짤기에 하얀 구름을 한번 더 보자고 바위를 찾지만 나무에 가려
조망을 얻을 수 없다.
낙엽이 발목까지 푹 빠지는 구간들을 만나고 북바람에 날려 젖은 땅도 지난다.
12시 20분쯤에 도솔봉에 닿는다.
하늘에 흰구름이 산록에 검은 무늬를 만든다.
지리산 능선은 흰구름에 가렸고 구례쪽 벌판은 조금 드러난다.
남쪽으로 산줄기들이 흘러내려 골짜기로 들어간다.
모후산은 뾰족한데 조계산은 산무리 속에 작고 무등은 구름 속에 갇혀 있다.
동쪽으로 따리봉은 약하고 백운 상봉과 억불봉 그 뒤로 하동과 남해의 산들이 흐릿하다.
사진을 찍고 너른 전망대 난간 앞에 배낭을 벗는다.
두어잔 따룬 막걸리롸 인절미 데운 것, 그리고 오래된 삶은 계란이다.
막걸리에 계란과 떡을 먹으며 사진놀이를 하는데 한사나이가 스틱을 짚고 올라온다.
인기척을 내자 깜짝 놀라며 오늘 처음 사람을 만난다고 한다.
논실에 차를 두고 한재로 올라와 제비추리봉 능선을 걷다가 중간에 논실로 내려가겠다 한다.
전대수학과에 근무한다며 하루에 3만보를 걸으니 60남짓 인생 중 몸이 가장 좋다고 한다.
내년이 정년이라고 해 고산자 이교수님을 물으니 그는 순고 25회고 자기는 매고 35회라고 한다.
고산자 닉을 들으며 그 친구가 산에 다니는지는 몰랐다고 하신다.
자긴 청소골이 고향인데 퇴직후 올까말까 고민중이라 한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어주자 그는 고맙다며 권하는 막걸리도 사양하며
빠르게 제비꼬리능선으로 내려간다
나도 챙겨 일어나 따리봉 2km를 보고 내려간다.
짧은 계단을 내려가니 돌 사이에 박힌 소나무가 보잉고 조금 더 가자 봉암 안내판 뒤에
봉처럼 생긴 바위가 나무 사이에 서 있다.
여우와 돼지와 봉이 어울리지 않은 듯하지만 지혜와 다산을 상징한다며
광양에 명당과 인물이 많다는 글을 읽는다.
500미터를 내려가고 작은 봉우리가 반이다.
두곳에 논실 이정표가 보인다. 참샘이재를 지나 짧은 계단이 나타나는 오르막을 힘들게 걷는다.
그래도오늘의 점심을 채웠으니 힘을 낸다.
한재에서 올라와본 적이 있는 따리봉은 눈에 익는다.
먹을만한 간식도 없어 배낭도 벗지 않고 사진만 찍고 돌아온다.
내리막에 다시 도솔봉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도솔봉에서 지리산과 빛내림이 있는 서쪽의 호남정맥 산줄기들을 한번 더 본다.
둥주리봉을 1km쯤 남겼을까, 한 사나이가 스틱에 검은 안경을 끼고 땀흘리며 올라오신다.
운동장쪽 무슨 산에서 출발하셨댄다.
백운산까지 가신다기에 주무실거냐 하니 오늘 30km 정도 걷는데 바로 논실 쪽으로 내려가신댄다.
시내버스가 한시간 간격으로 잇어 차 안가지고 다니기 좋다시며 남도대교 앞까지 아침에 두번 있다고도 하신다.
난 엄두를 못 낼 거라 생각하면서 고맙다고 한다.
남도대교에서 하천산을 지나 따리봉으로 정상까지 걸을 길도 하룻길이 되겠다.
둥주리봉에 앉아 광양만과 순천만을 내려다보며 마지막 막걸리를 가난하게 마신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
크지 않은 동백나무 사이를 지나 대자보전 마당에서 범종각으로 내려온다.
팔정도를 찍고 주차장으로 오니 4시 10분이 된다.
형제봉 월성재 계족산의 호남정맥 구간을 다시 혼자 올 수 있을까?
도립미술관에 들러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