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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 올 추석은 6일간이나 지속되는 아주 긴 명절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중간에 하루 건너뛰는 근무일을 임시 휴일로 정하였다. 추석 귀향인파가 4천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여테 없었던 일들이었다. 우리 가족이 전날 모두 모여서 음식을 장만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갈비 찜은 손주들이 좋아하였고 사위들은 오징어, 쭈꾸미 요리를 좋아하였고 딸과 여성들은 부침개와 나물요리를 즐겼다. 추석 아침에는 네 딸을의 가족들이 모여 추석 감사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여는 기도를 권사인 큰 딸이 잘도 하였다. 하나님 말씀을 원로장로인 내가 정성껏 소개했다. 믿음과 기도와 사랑을 나누는 감사예배가 되었다. 음식을 나누고 성묘를 하였다. 처음으로 부모님 산소가 가득하였고 성묘를 마치고 나서는 알밤과 단감을 따서 바구니에 담아 나들이를 갔다. 새로 구입한 신형 산타페를 가지고 달리는 기분도 좋았다. 선유도로 향하는 새만금의 남북도로는 길고도 넓었다. 잘 닦여진 도로와 바다같이 넓은 담수호와 푸른 하늘이 보였다. 간간이 조개구름이 멋진 풍경을 수놓았다. 전망이 좋은 새만금은 바다와 육지를 조화롭게 어울려 놓았다. 장자도 주차장에 차들이 엄청 많았다. 주차장 옆의 식당은 그래도 앉을 자리가 있었다. 해물 라면과 해물 칼국수와 물회를 시켰다. 양도 아주 많고 값도 싸서 모두들 흐뭇하고 좋아하였다. 나오면서 주방장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너무 맛있었다고 치사했다. 찹쌀 빈대떡들을 컵에 담아 입에 가득 물고 거리로 나선다. 두 시간 동안 자유시간을 주고 각자 구경 하랬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몰려 다니면 촌사람 같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바닷가의 산책길을 택햇고 사위들과 딸들은 장자봉을 올랐다. 손주들은 그렇게 먹고도 주전부리를 좋아했다. 해가 서산 바다위로 기울어질 때 좋은 자리를 잡은 커피숍에서 차를 시켜 원두막이 있는 잔디위에서 향과 맛을 음미한다. 앞 자리에 할머니와 젊게 잘 생긴 청년 손주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법을 알려주며 웃음으로 할머니를 보살피는 손주는 요즈음 보기 힘든 효와 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젊음이 더 돋보이는 것은 웃음과 정과 보살핌임이라는 것을......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둘째 사위가 기념사진을 찍으라 한다. 푸른 바다, 우뚝 솟은 장군봉, 요란한 물결을 가르는 제트 보트, 우리의 얼굴보다는 차 향기가 더 좋은 것 같았다. 네 시에 주차장으로 집결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날씨도 좋고 아낙들의 일거리를 덜어주어 남정네들에게도 즐거운 추석이 되었다. ====================== 3일차 2023년 07월 22일 (토) 흐리고 비 선상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자다가 시계를 잘 못보아서 3시에 깼다. 아내도 잠이 설쳤지만 그래도 잘 되었다. 일어나 바로 일기를 정리하였다. 날이 샜다. 5시경에 9층으로 올라간다. 태양이 지지 않고 수평선에 걸쳐있다. 수평선과 구름 사이가 갈라지고 빨갛게 불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기하다. 사진으로 그 광경을 남겨두었다. 식사는 6시 30분부터다. 내가 1번으로 왔는데 뒤에 있던 나이 든 아주머니가 어느 사이에 새기를 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원이 뛰어가며 그 사람을 부른다. 식권을 내지 않았으니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다. 나는 순서대로 1번으로 식권을 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아주머니는 여행을 많이 해 보기는 했어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중에 5층으로 선상 밖으로 나오는 순서에서도 이상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행을 뒤로하고 가운데로 뚫고 들어가려다 제지를 당하기도 했지만 잘못 했단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맨 앞의 선수 부분에 가운데 탁자에 앉았다. 해가 동쪽 하늘에 비치는가 싶더니 구름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간다. 갑자기 앞 유리에 물을 뿌리는 청소차가 지나가는 듯 요란하다. 소나기가 세차게 유리창을 때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뒤에는 아까의 하늘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한다. 타이타닉호에서 연인 앞에서 두 손을 양쪽으로 펼치던 여인인 것 같은 생각난다. 그 자리에서 예법을 지켜가며 옆눈질 하며 식사를 하던 것은 어쩐지 오래 기억에 남겨두고 싶다. 고기 절임을 종류대로 담았다. 빵도 가운뎃 부분을 긴 나이프로 잘라서 한 조각을 올려놓고 소스와 야채를 곁들였다. 과일 큰 바구니에는 빨간 사과와 오렌지와 푸른 사과와 골덴 등이 야성적으로 놓여 있다. 칼로 잘라 먹기보다는 한 입 크게 베어 문 다음 어금니로 씹으면 사과 특유의 냄새가 나는데 단 향기가 더 물씬 풍기는 것이 신기하다. 따끈한 커피와 온수가 있어서 보랏빛 녹차를 담가 가지고 와서 아내와 번갈아 마신다. 아내가 향이 좋다고 한 입 더 마신다. 배는 우리가 여유를 갖고 식사하는 동안에도 계속 달려간다. 8시경에는 얼마나 달렸는지 작은 육지가 보이고 작은 섬들과 큰 빨간 화물선 두 척이 산처럼 크게 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크루즈 배는 육지와 육지 사이로 들어가는데 이 길이가 엄청나다. 한 시간을 가도 거기가 거기인 것 같다. 산이 보이더니 깨끗한 집들이 조화있게 펼쳐지고 그 동네 해안에는 정박한 요트들이 부요함을 보여준다. 그런 광경을 몇 번 지나니 10시가 다가온다. 우리들은 다시 줄을 서서 내릴 준비를 한다. 여러 사람들이 분주하고 아래층으로 바삐 내려가는 사람들은 승용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다. 배가 정박하자 순서대로 내려서 탈 때와는 반대 순서가 되었다. 내리자 마자 하늘이 검어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옷을 입은 사람. 우산을 쓴 사람. 옷가지를 걸친 가지가지의 사람들이 자기가 탈 버스를 기다린다. 우리 버스가 조금 늦게 나왔지만 로컬 가이드와 같이 올라 투어를 시작한다. 여기는노르웨이 오슬로다.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다. 어업, 석유 산업 및 서비스업이 유명한 나라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노르웨이는 북이라는 뜻의 nor, 길이라는 뜻의 way가 합쳐진 말로, 북극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란다. 면적은 385,207km2로 남북한의 1.5배의 크기로 490만 명 정도의 인구란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인구 밀도가 작은 나라다. 대부분이 동쪽의 스웨덴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노르웨이의 북쪽 지역은 남쪽은 핀란드, 동쪽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쪽의 스카게라크 해협의 건너편에는 덴마크가 있다. 수도는 오슬로다. 북극해와 바렌츠해와 접하고 있는 해안선은 피오르로 유명하다. 인구가 68만 명 정도인데 특히 수도권 안에 인구가 200명인 도시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르웨이는 석유, 천연 가스, 석탄, 목재, 우라늄, 석회석, 유황, 수은 등이 풍부하며, 지형을 이용한 대량의 수력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원 매장량은 엄청나 2011년 기준으로 세계 3위의 천연 가스, 5위의 석유 수출국이기도 하며, 관련 산업이 전체 국민소득의 2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인 1970년에는 스웨덴의 총 경제 규모의 1/3밖에 되지 않았으나 결국 자원에 힘입어 2009년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2배에 달하는 옛 종주국 스웨덴을 총 경제력마저 추월하였다. 노르웨이는 유럽 연합의 회원국은 아니나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고, 또한 미국의 대표적 우방국 중 하나이다. 유엔에 경제적으로 가장 크게 공헌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며, 유엔군에도 참여하여, 특히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수단, 리비아 등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06년, 그리고 2009년부터 가장 최근의 통계까지 노르웨이는 인간 개발 지수에서 세계 정상을 기록한 대표적 선진국이다. 2010년 기준으로 연간 근로시간은 약 1,400시간으로 주당 37시간 정도이며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국민 중 하나다. 국토의 72%는 빙하의 침식을 받은 평탄한 꼭대기를 지닌 산지이다. 삼림이 24%를 차지하며 경지는 매우 적다. 해발 2,000 m 이상에는 만년설이나 빙하가 지금도 남아 있다. 스칸디나비아산맥은 북부·중부에서는 스웨덴과의 국경으로 되어 있으나, 남부는 노르웨이 안에 펼쳐져 있으며, 이곳이 가장 높고 요텐헤임(2,452 m) 폭도 가장 넓다. 서해안은 거대한 피오르 지형이 나타나는데 인근에 5만 개 이상의 섬이 있고 2,500 km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남쪽 덴마크와의 사이는 스카게라크 해협이라고 부른다. 한대성 기후이기 때문에 12월에는 오후 3시만 되어도 일몰하고 기온은 영하 15℃ 이하이지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겨울 기온이 떨어지고 강우량이 적다. 눈이 자주 오며, 북극처럼 백야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단다. 멕시코만 난류가 서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흐르므로, 높은 위도에 비하면 온도가 낮지 않고 강우량이 많아서 남부 서해안의 베르겐은 겨울의 월평균 기온이 1.3∼1.5℃이며, 여름에는 약 15℃로 위도에 비하여 비가 많이 오는 편이다. 9세기에서 11세기까지 노르웨이의 바이킹은 대대적인 해상 원정을 벌였다. 노르웨이인의 후손이 아이슬란드에 뿌리를 내렸고 한때는 지금의 캐나다의 일부까지 이르렀다. 1000년 무렵 바이킹은 그린란드와 미국을 발견하였고, 기독교가 노르웨이에 들어갔다. 1015년 올라프 2세 성왕이 노르웨이 전체를 완전히 통일하고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2세기에 걸친 바이킹의 습격은, 994년 왕이었던 올라프 1세가 기독교를 승인한 이후로 점차 줄어들었다. 종교 개혁 운동으로 1539년 크리스티안 3세는 노르웨이를 루터교로 개종시켰는데, 현재도 노르웨이 기독교인들의 거의 대부분이 루터교 신자들이다. 1959년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며 한국 전쟁때는 유엔군으로 참전하여 야전병원 등의 의료지원을 하였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해 노르웨이를 방문하였다. 대강의 가이드의 설명과 내가 미리 공부한 내용을 마음속으로 정리하며 대부분이 잠든 시간에도 나는 명상에 잠겨 노르웨이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는 해저 터널을 지나 오슬로 명동거리인 강서지방을 지난다. 서울 한강의 강북과 강남을 비교하면 여기 강서지방이 명동거리라고 한다. 강동지방은 산업도시로 이민자들이 많고 환경도 열악하여 인기가 없는 곳이고 강서지방은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살며 건물을 지을 때도 세계의 유명한 조각가들이 참여하는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다고 한다. 길거리가 중세 건물들이 대부분이지만 유럽풍의 모습을 유지한다. 프랑스 풍의 건물과 거리가 맘에 들었고 부러웠다. 시청사는 꼭 들러봐야 한다. 도로 옆의 파란색 지붕을 한 커피숍 앞에서 모이기로 하고 청사의 건물을 들어가는 순서를 밟는다.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한다. 청사 광장마당에는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신혼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회랑으로 들어가는 양 입구에는 목판 조각판이 16개나 붙여 있다. 노르웨이를 지금으로 만든 신들의 역사를 조각한 것이다. 청사로 들어갈 때는 몸 검색이 엄격하다 공항보다도 오히려 더 강한 검색을 한다. 검색대에 물건을 올려놓고 검색을 마친 후에 입장하니 정면에 벽화로 꽉 찬 홀이 나온다. 홀 안은 텅 비어 있었고 허전한 느끼도 들지만 여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노벨평화상 시상식 장소인 오슬로 시청사는 창립 900년을 기념해 1931년 착공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50년에 완공되었다. 1층 대형 홀에서 해마다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며, 지난 2000년 우리나라 김대중 전대통령이 이곳애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시청사 옆에는 노벨평화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벽면에는 어디를 가든지 뭉크의 그림들이 꽉 차 있다. 뭉크는 그림을 자기가 죽은 후에 시청사에 기증한다는 서약을 하고 모든 그림을 여기에 전시하였다. 뭉크의 기념관도 있다고 하지만 관람은 생략하였다. 청사를 관람하고 나서 거리로 나온다. 일직선으로 국왕 하랄 5세가 거주하고 있는 노르웨이 왕궁과 평화상을 수상한 자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그랜드 호텔을 관람하며 20분을 기다린다. 최대 번화가이자, 차가 없는 칼 요한스 거리인데 오슬로 최대 번화가로 중앙역부터 노르웨이 왕궁까지 길게 이어지는 이 거리는 오슬로의 샹제리제라고 불린다. 2륜차와 자동차가 없는 거리로 마음 놓고 거리를 걸으며 카페, 상점, 레스토랑등 쇼핑을 즐길 수 있으며, 오슬로대학, 국회의사당, 국립극장 등이 있다. 비겔란의 조각품들로 조성된 비겔란 조각공원을 관람할 때는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가득하다.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과 그의 제자들이 제작한 조각작품 200여개가 전시된 공원이다. 정문으로 들어가는데 가운데 정문은 여지껏 한 번도 통과한 사람이 없단다. 국왕도, 외국의 국빈도 거기서는 옆문으로 들어간다. 인간의 겸허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교훈이 깃들어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양 옆으로 숲길이 있고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다리가 있는데 다리 난간에 벗은 몸의 형체를 한 조각들이 칸마다 서 있고 중앙에는 하늘을 보며 울고 있는 꼬마 상이 있다. 이것이 유명한 것은 이 꼬마상의 다리를 누가 잘라 갔는데 아쉬움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대통령도 방송으로 제발 그 동상의 다리를 돌려달라고 호소하였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훔쳐간 꼬마상을 쓰레기 통에 버린 것리 발견되었고,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다시 찾아 붙여 두었고 그 뒤로 그 소년 아기상은 더 인기를 얻었다. 손 부분이 하도 사람들이 만지는 바람에 금빛처럼 닳아 빛이 난다. 공원에 전시된 가장 유명한 것은 멀리서 보면 커다란 기둥처럼 보이지만 121명의 남녀가 영켜 정상으로 올라가려는 듯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며 안간힘을 쓰는 군상이 있다.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며 실제 인체 크기로 조각되어 더욱 역동적은 느낌을 보여준다. 아내가 TV에서 보던 것을 지금 눈으로 보고 있다고 좋아한다. 돌아오는 길에 분수대의 사면에 조각된 명품을 볼 새도 없이 비가 오기 시작하여 우리는 달리다시피하여 차를 탄다. 중세 르네상스 양식의 아케르스후스 요새는오슬로 항구 동쪽 언덕에 세워져 있는 중세의 성채다. 호콘 5세가 도시 방어를 위해 1299년에 건립하기 시작한 것으로, 노르웨이 왕이 머물던 성이다. 17세기 초 크리스티안 4세 때, 성을 개조하면서 현재와 같은 르네상스 양식의 외관을 갖추게 되었단다. 바다에 면해 있는 이 성채는 수도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전체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사실상 아케르스후스 성을 지배하는 자가 노르웨이를 지배하였다고 한다. 어떤 외국군도 요새를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인들이 덴마크에서 이유 없는 살상을 저지르는 것을 본 뒤인 1940년 노르웨이 정부가 전투 없이 수도를 완전히 비웠을 때 요새는 비로소 점령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성은 왕과 노르웨이 정부의 연회장으로 개조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군사 지역이지만 낮에는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성 이외에도 노르웨이 군사 박물관, 노르웨이 르네상스 박물관이 안에 있다. 바닷가 언덕 위에 세워져 오슬로 항구를 조망하기에도 좋다.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비라도 쏟아질 듯하여 발결음을 재촉하여 버스에 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차에 오르고 나서부터는 소나기가 쏟아진다. 그래도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10분간 이동하는 사이 비는 그쳤다. 점심은 한식이라고 한다. 중국인이 경영하는데 김치맛과 된장찌개는 우리나라 맛과 다름이 없다. 두 그릇을 먹고 무료 화장실도 다녀온다. 물도 마음껏 마시고 빈 병에 물을 채워주는 주인의 아름다운 마음씨도 보았다. 이제 우리는 노르웨이의 북쪽을 향해 달린다고 한다. 출발하자마자 긴 호수를 만나는데 매사 호수다. 여기서 두 시간의 거리 즉 200킬로가 넘는 호수다. 릴레함메르와 오타로 이동하는데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단다. 가는 길이 감탄만 자아낸다. 240킬로를 가는 동안 우리는 이곳이 스위스나 오트스리아가 아닌가 의심을 하게된디. 노르웨이의 대자연은 이런 것인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가까운 도시 부근에 공동묘지가 있는 곳을 지난다. 공원이라고 해야 할 듯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240킬로를 가는 동안 우리는 이곳이 스위스나 오트리아가 아닌가 의심을 하게된디. 차는 북쪽으로 북쪽으로 이동한다. 차안에서 가이드는 설명을 더하여 노르웨이는 물건 값이 비싸다고 하며 구입하는데 유의하자고 한다. 네 시간 기사는 운행을 하고 반드시 쉬고 가야 한단다. 좋은 교통의 법규라고 생각한다. 릴함메르를 지난다. 릴레함메르는 노르웨이 남부 내륙의 오플란주에 있는 도시다. 인구는 2만 7천 명이다. 오플란 주의 주도이며, 1994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이다. 노르웨이 남부 내륙의 여러 산에 둘러싸여 있고, 여러 호수가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선사 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나, 이 곳의 공식적인 역사는 1390년에 시작된다. 교통의 발달과 함께 19세기 이후 내륙지대의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주변의 아름다운 산과 스키를 즐기기에 적당한 기후조건으로 동계스포츠의 명소로 알려지게 되었고, 1994년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92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시그리드 운세트가 1919년 이 도시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침입을 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1949년 생을 마칠 때까지 이 도시에 거주하였다. 릴레함메르에서 잠시 쉰 다음 우리는 오타로 향한다. 릴레함메르를 떠난지 약 2시간쯤 지나 우리가 오늘밤을 지내게 될 오따란 곳에 도착했다. 오타는 릴레함메르와 함께 오프랜드지역에 속해 있는 마을로 풍광도 좋고 매우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오타는인랜디트 카운티 셀 문니시페리티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오타 강의 이름을 따서 지었단다 . 오타는 고속도로를 따라 오슬로와 트론헤임의 주요 도시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다. 오타역 은 지나가는 여객 열차가 모두 정차하는 계곡의 유일한 역 이기 때문에 도부레반넨 철도 노선 의 중요한 연결 고리이기도 하다. 노르웨이말로 숫자 8 뜻한다는 Otta, 이 마을 이름이 8을 뜻하는 오따가 된 데는 슬픈 유래가 있다. 1380년경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이 이 마을도 어김없이 비켜가지 않았는지 마을 주민이 거의 다 죽고 8명만 살아 남았다 해서 생겨난 이름이란다. 유럽 여행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는지 보고 듣고 했어도 실감이 안났는데, 흑사병과는 비교도 안되는 신종플루로도 한동안 떨어보니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흑사병 앞에서 얼마나 큰 공포를 느꼈을지 짐작이 간다. 1612년에 이 지역은 크링겐 전투가 있었던 곳인데 전설에 따르면 전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셀 출신의 여성인 프리나르구리를 묘사한 동상이 있다 . 시내 중심가에 교회가 없는 노르웨이의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인데 오타에는 중앙에 낡은 교회가 하나 우뚝 서 있다. 통나무와 목재를 만들어진 이 교회는 멀리서 보아도 묵직하고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믿음의 보루가 될 만 하다고 느꼈다. 릴레함메르를 떠난지 약 2시간쯤 지나 이곳에 도착했다. 풍광도 좋고 매우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묵어갈 곳은 마을에 있는 호텔이 아닌 산 속에 있는 일종의 산장 같은 호텔이기에 우리는 마을로 가는 길이 아닌 산길을 오르고 있는 중이다. 노르웨이 국도는 오타에서 시작하여 오타달렌 계곡을 거쳐 서쪽으로 이어지며 노르피요르드를 따라 산을 넘어 스트린까지 이어지며 마침내 노르웨이 서해안의 말뢰이 마을에서 끝난다 . 오타역 은 지나가는 여객 열차가 모두 정차하는 계곡의 유일한 역이다. 공원에는 고도가 2,000미터가 넘는 여러 산이 있다. 긴 호수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많다. 밀, 보리, 귀리 감자가 주산물인 이곳에는 농촌 풍경이 제대로 나타난다. 광활한 평지에는 자작나무 숲이 주를 이루고 거기에 맞게 붉은 색을 띤 적송이 역시 긴 숲을 이룬다. 우리나라 소나무가 많다고 하지만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비는 그치고 톨게이트도 없는데 여기가 고속도로라고 한다. 신호등도 없고 카메라도 전혀 없다. 도로 옆으로는 전기차가 달리는 철길이 있다. 전봇대가 콘크리트나 철이 아닌 나무로 되어 있어서 다시 한 번 놀란다. 나무는 오래 되어 못쓰게 되어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습성이 있단다. 메다호수를 지나는 중간에 목재로 지은 24층의 건물이 있다. 미에스토르네는 노르웨이 헤드마르크주 부루문달에 위치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이자 목조 호텔이다. 이 건축물은 특이하게도 목재로 신축한 건축물로 화제를 낳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높이는 85.4m이며, 총합 18층 짜리의 건축물이기도 하나, 2019년 3월 정식으로 준공되었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목재의 건물은 기네스북에 오른 건물이란다. 이 건물로 인하여 브로문 다리 동네가 친환경 동네로 이름이 났단다. 또한 이 건물로 인하여 친환경 건축의 줏가가 올랐단다. 릴래함메르 스키 점프대도 유명하고 성화봉송대는 도로가에 아직도 우뚝 서 있다. 크담을 동과하여 우린 숙소로 올라간다. 가이드는 이 정취에 맞는 솔베이지의 노래를 틀어준다. 평서 듣던 음악을 정경에 맞게 들으니 음악감상의 새로운 맛도 생긴다. 노래를 듣는 사이 우린 산속의 산장호텔로 들어왔다. 인기척도 없는 산속, 나무숲이 있어서 좋지만 너무 한적하다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우리들이 하루 묵어가기는 너무 좋은 안락함이 있었다. 산장호텔 입구에서부터 압도적으로 환경이 좋았는데 흰곰의 박제가 두 마리나 세워져 있다. 입에 내 머리를 넣었더니 쏙 들어갈 만큼 크기도 하고 발톱은 내 손바닥의 반절만큼이나 컸다. 만약에 곰과 인간이 만나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으니 지금은 박재여서 안심을 한다. 짐가방을 내려 놓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어본다. 식당으로 들어가 노르웨이식 식사를 한다. 내 취향에 맞는 식사도 너무 좋았다. 산속의 동화같은 느낌으로 짐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멀리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림직도 하다. 내일 아침은 7시에 식사 7사 30분에 출발한단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켜주시니 감사합니다. |
첫댓글 풍성한 한가위 명절 잘 보내셨군요. 대식구에게 자유시간을 주는 센스있는 아버지, 할아버지...ㅎㅎ
북유럽 여행기보며 복습해 봅니다.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