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폭포, 그 삶의 숨결
오인순
오수에 빠진 정방폭포 앞바다가 기지개를 켠다. 질퍽한 갯내가 쏟아진다. 바람 없는 굼뉘는 광목 치마를 펼친 듯한 해안선을 따라 일렁일렁한다. 경계가 사라진 수평선 물띠가 허공을 부둥켜안고 대답 없는 고요를 흔들어 댄다. 배롱나무 붉게 피었던 꽃자리의 숨결이 소리를 죽이고 바다로 흐른다. 역사 기행 나들이하던 날, 임철우 소설가 <돌담에 속삭이는> 작품 속 배경 장소인 정방폭포에 머물렀다. 계단 입구 '정방폭포 4-3 학살터' 안내판이 또렷하다. 잠시 머뭇거리다 발을 멈춘다. 군부대 정보과에서 취조받던 주민중 즉결 처형 대상자 255명이 무고하게 이 아름다운 해안절벽에서 스러졌다니. 온몸에 얼음 같은 소름이 확 돋는다. 놀란 내 심장이 물고기처럼 팔딱 팔딱 뛴다. 코로 역겨운 피비린내가 솔바람 사이로 스며드는 듯하다. 굽이 치는 파도 소리에 잊지 못하는 이름들이 너울거린다. 영문조차도 알지 못하고 죽어간 영혼의 끔찍한 장면을 생각하니 가슴이 시려 무너진다.
침묵으로 뒤척이던 수많은 아픈 기억의 흔적들이 몽돌에 내려선다. 몽돌의 문양에서 억겁의 풍화가 느껴진다. 어둠의 심해에서 잠들었던 시간, 유구한 세풍에 뭉개 짓이기며 많은 상처를 안으로 삭인 몽돌. 비릿한 젓갈처럼 절규하던 4ㆍ3 영혼과 절인 세월이 얼마나 깊었을까. 지난 시간의 무늬가 바다 울림소리 로 들린다. 그 울림을 바닷속에서 뒤척이며 다 들려주지 못한 숨비소리 같은 애절한 노래이리라. 몽돌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물 밖 세상을 그리워한 생채기가 내 몸에서 털어내지 못한 멍 자국처럼 애처롭다. 잔물결 춤추듯 밀려오는 파도가 몽돌 위에 짜디짠 하얀 물거폼을 게워놓는다. 몽돌은 멍든 가슴을 열어놓고 초연한 듯 고요하게 받아들인다. 어찌할까. 몽돌은 서글픈 영령처럼 견디며 살아내야 하는 게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4ㆍ3사태로 두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의 초점을 잃어버린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날 홀연히 사라져 버린 두 아들. 젖은 맨발로 미친 듯 찾아다니시던 할머니의 애끓는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자식도 잃고 고향도 잃어 숨죽이며 "속솜하라" 통곡하던 그 눈물이 정방폭포에 젖는다. 가슴에 터진 구멍은 무엇으로 메우며 흐르던 눈물은 누가 두아주랴. 시절을 원망할 수도 없고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날을 잊지 않으려고 아들이 좋아하던 빙떡 지지던 할머니가 아픔으로 다가선다.
비단 같은 폭포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거침없이 떨어진다. 병풍 같은 천상만태의 점은 절벽이 정방폭포를 품으며 칼로 벤 듯 속살을 드러낸 채 침묵으로 서있다. 수천 년 전 들끓던 마그마 분화구가 솟구쳐 시뻘겋게 요동치던 흔적인 주상절리다. 미끈하게 깎아지른 수직 암벽이 수려하다. 부서지고 찢기면서도 바람으로 말하고 밀려온 하얀 물거품을 받아내며 외롭게 서 있다. 어느 조각가가 저리 거대한 작품을 경이롭게 빚어낼 수 있을까. 주변을 둘러싼 소남머리 풍경까지 어우러지니, 마치 자연이 빚어낸 야외 미술관에 온 듯하다.
폭포는 소나머리 절벽 아래로 따스했던 봄의 시절을 기다리며 역동적으로 쏟아낸다. 해안절벽 위에 소나무가 많아서일까, 폭포의 물줄기가 붓끝에서 단숨에 내려 그은 듯 세차게 귓전을 때린다. 우렁찬 우렛소리 물줄기가 정령들의 통곡하는 울음처럼 강렬하다. 마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 심장을 두드리며 전율한다. 가슴 밑바닥에서 풀무의 불씨 같은 동계動悸가 서서히 일기 시작한다. 조용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운명에 굴복할 수 없는 듯 두려움 없이 토해내고 있다. 깊은 내면을 두드리며 포기할 수 없는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살이 고통과 슬픔이야 어디인들 없으랴. 정방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 어둠과 절망뿐이었던 소남머리가 푸른 바다를 응시한다. 언젠가 읽었던 기사 내용이 스쳐 지나간다. '부모님이 마지막 죽기 전 주먹밥을 건네주던 곳, 소남머리. 비애가 차고 넘치는 칭원함이야 어찌 다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통한의 세월을 폭포에 묻은 채 살아온 날들이 매운 바닷바람처럼 쓰고 아리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물떠러지가 왜 아프지 않았겠는가. 뼛속까지 들어찬 아픈 울음을 견디고 참아낸 폭포의 삶이 바닷속 영혼으로 스며든다. 그래서일까. 비단처럼 고운 물빛이 애련하다.
빗살무늬 번지는 해안선을 걸어가는 무리의 여자들을 본다.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청색 물감을 풀어놓은 바다를 걷고 있다. 양팔을 벌리고 깔깔거리며 얽어매던 삶의 고통과 어두운 그림자를 털어내고 있다. 딸의 죽음으로 아파하던 어머니의 슬픔을 푸른 바다색으로 희망을 불어넣고자 했던 피카소처럼, 바람을 가르듯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보며 걷고 있다. 걸어온 길은 바다에 묻고 걸어갈 길을 바다에 내며 정방폭포의 시원한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하늘을 태우며 붉게 물드는 까치놀이 수평선에 걸쳐진다. 간물때에도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너울에서 할머니의 마음도 읽힌다 정방폭포는 까맣게 타들어 가면 서러운 멍울도 보듬고 비워내며 물 한 방울차도 흘리지 않고 바다로 떠나보낸다. 행인들 놀던 자리의 물거품이 꽃처럼 피어나며 등불 켠 밤이 가만가만 드리워진다. 비경의 정방폭포에 서린 아픔을 물줄기 털어내고 나니 소남머리에서 솔바람 향기가 날아든다.
오인순 ohsoon9651 @hanmail.ner
<제주헤럴드> <화요에세이> 와 <오여사의 수랏간, 그유혹> 필진 탐라문화제 전국글짓기
공모전 '한라상' 한국해양재단 주최 '해양문학상' 은상 수상
수필집 <서리달에 부르는 노래> <그날은 빙떡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