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여 폭포를 향하여 걷다보니 맑고 푸른 물이 눈 앞에 펼쳐있어 나는 깜짝 놀랐다.
천지연 폭포가 이렇게 변해 있었다니...
1970년 그때 그러했고, 1972년 천지연 폭포가 이러지 않했고, 1994년 천지연은 이러지 않했었다. 나는 이 천지연을 도합 세번 내지 네번은 방문 안 했었나 생각한다. 지난 가을 폭포를 방문했을 때 천지연 폭포는 너무나 변해 있었다. 예전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한 20여분 걸어들어가면 이 천지연 폭포하나 보고 나오면 폭포관람은 끝이었다. 맨 처음 아버지를 따라 갔을 때인 1970년대 그러했고 국민학교 수학여행 때 역시 변함이 없었으며 1994년 조카들을 데리고 방문했을 때 내가 맨 처음 천지연 폭포를 바라 본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폭포방문에서 천지연으로 가는 길은 엄청나게 주변 조경사업을 서귀포시에서는 했던 것 같다.
폭포로 진입하는데 건너는 물가에는 다리가 놓여있었고, 그 물가에는 청둥오리, 원앙새들이 천지연 폭포에서 떨어진 폭포수 물가에서 한가롭게 물갈퀴 질을 하고 있었으며 그 개울 바닥에 노니는 물고기를 잡아먹으려 백로가 이곳 저곳 앉아있다 표면에 떠오른 물고기를 포착했는지 우아한 비행을 하여 뾰족한 부리를 물 속에 쳐박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흡사 내가 어느 동물원에 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함에 휴양차 떠나 온 제주여행은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할 수있는 곳이 아닌가 여겨진다. 장사 속 밝은 상인들은 어느 때 부터인가 이 새들을 유혹하는 먹이를 좌판대에 진열하여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폭포를 가기 위해선 다리를 건너야 하며 그 다리를 건너면 저 멀리 토산품 가게와 주전부리를 할 수있는 가게들이 있다. 그 가게 앞에는 숲속 카페가 있어 원탁과 그늘막 우산이 처져 있는데 때는 이른 초 겨울이라 야외에 놓여진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엔 조금 추웠는지 일회용 커피를 손에 들고 몇몇 관광객이 숲 속에 서서 커피를 훌쩍 거리고 있었다. 건너편 토산품 가게에선 제주의 전통 노동복 갈옷을 팔고 있었으며 그 갈옷의 원단을 이용하여 만든 여러 형태의 모자를 팔고 있었다.
갈옷= 갈중이
우리 제주사람들은 땡감에서 나오는 액을 이용하여 물들여 놓은 옷을 갈중이라 한다. 보통의 광목 옷에 노란 땡감의 색을 입혀 미국의 개척시대 카우보이들이 사나운 소떼몰이를 할 때 쉽게 헤어지지않게 청바지를 입듯이 제주사람들에게는 노동복으로 이 갈중이를 입었었다. 한 여름에 이 옷을 입으면 땀이 바람이 통과 하지못해 무겁고 칙칙한 땀을 젖셔놓았기에 무척 더운 옷이지만 척박한 제주땅에서 농사를 지을 때 모든 사람들이 입었던 갈옷인데 어느 때 부터인가 옷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핸드백, 그리고 피크닉용 모자를 만들어 색다른 모습을 하는 제주의 이 갈옷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라 찾고 있는 상품이다.
이 갈옷을 전국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사람은 1960년대 우리에게'꽃반지끼고'란 노래를 불렀던 가수 은희씨 덕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녀는 70년대 결혼과 함께 가수 생활을 접고 가정 주부로 있다가 90년 초반에 고향 제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이 갈옷을 상품화한데서 부터 시작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가족들과 제주여행을 온 관광객들이 천지연 폭포쪽으로 이동하고있다.
사진 좌측에는 천지연에서 떨어진 폭포수가 흐르고 있고 이제 폭포가 다가오는지 물소리가 쏴아아 소리를 내며 방문객들을 향하여 어서오라 재촉하는것 같다.
제주는 계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때가 있다. 앞에 보이는 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때의 서귀포는 겨울을 향해 가는데 이처럼 활짝 꽃들이 피어있어 10월 마지막날의 제주는 봄을 향해 가고 있지 않나 착각을 느끼게 한다.여느 때 처럼 이곳 서귀포는 비교적 한 겨울에도 바람만 없으면 포근하다. 내가 제주에 있을 적에도 느꼈지만 한 겨울 제주시와 서귀포의 기후는 다르다.
제주는 한 겨울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제주시 서쪽 모슬포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육지의 겨울과 같이 매우 춥다. 하지만 한라산 남쪽에 있는 서귀포는 비교적 온화하여 한 겨울의 정취를 한라산 백록담을 제외하고는 느끼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바람이 없는 서귀포 감귤이 제주시에서 자라는 귤보다 맛있는게 바람에 휘둘리지않아 비교적 자신이 갖고있는 영양분을 그대로 열매에 전달해서 맛이 더 있지 않나 생각 되어진다.
드디어 나의 눈 앞에 천지연 폭포가 펼쳐졌다.
45년 전 아버지와 왔을 때도,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을 왔을 때도, 그리고 친구들과 고등시절 친구집 찾아 왔을 때도 이 폭포를 배경으로 하나 같은 형태의 사진을 찍곤 했었다. 떨어지는 폭포를 배경으로 눈망울 초롱이던 눈빛으로, 짧은 머리 청바지, 청저고리를 입고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 흑백사진 속에 집어 넣었던 그 때의 그 모습들이 주마등 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사라진다.
때 마침 어느 교회의 고등부 학생들이 왔는지 한 떼의 청소년들이 이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려 하는데 카메라를 든 학생이 일행 중에 빠질걸 염려하여" 아저씨!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함에 나의 카메라 실력을 어김없이 보여주고 정작 나 자신의 사진을 박아 둘려니 쑥쓰러워 부탁을 못해 그냥 떨어지는 폭포수만 바라보며 옛날의 추억만 캐내다 돌아선 천지연 폭포!
그 천지연 폭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김없이 천지연의 연못에 하얀 물보라를 남기며 떨어지고 있었다. 주위에 관광객들은 지금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폭포 앞 솟아있는 바윗돌에 올라서서 다 같이"김치"하며 추억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나는 이 폭포를 나갔다 어두컴컴해지면 다시 들어올려한다. 아름다운 천지연 폭포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 그때의 폭포를 보고싶어서...
과연 그림 엽서에서나 봐 왔던 폭포의 모습이 나에게 펼쳐질 수있을까하는 기대감을 안고 천지연 폭포 광장에서 벌어지는 음악회를 보기 위하여 나는 이제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천지연에서 내려오는 천 길을 따라 오다보면 이렇게 백로가 고고하게 천지연의 하늘을 비행하다 잠시 한숨을 돌리려는지, 아니면 먹이를 찾아 내려 앉았는지 호시탐탐 돌부리에서 물길을 쳐다보곤 하였고, 그 앞 청둥오리는 유유히 물쌀을 가르고있었고, 물속에선 천연기념물인 무태장어가 흐느적거리며 몸뚱아리를 흐느적 거리고 있을 것이리라.
여기서 천지연에 얽힌 전설을 한 마디 하고 넘어 가야겠다. 자고로 우리의 명승지나 심심유곡에는 나름 옛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하나씩 있는데 천지연폭포 역시 그런 이야기가 없으면 팥없는 찐빵이 아니겠는가!
옛날 천지연에는 용이 한 마리 살고있었다.
이 천지연이 있는 바닷가 마을에 어여쁘고 마음씨 고운 '순천'이라는 여인이 동네 남정네에게 겁탈을 당하려는 순간에 연못에서 용 한마리가 솟구쳐 나와 겁탈하려던 남자를 입에 물고 하늘로 올라가며 그 용이 물고있던 여의주를 놓치고 올라간지라 나중 정신을 차린 여인의 발밑에 영롱하게 반짝이는 구슬 하나를 발견하여 그 구슬을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 후로 그 여인네의 집안은 날로 번창하여 후손들 역시 하나같이 입신양명하며 잘됐다고 하는 전설이 남아있다. 사진은 그 용의 여의주가 있는 야외공원이다.
이처럼 천지연 야외공연장에는 이 설화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는데 떨어지는 폭포 가운데 있는 여의주를 두 마리 용이 지키는 모습을 형상화하여 세워져 있는데 이 여의주를 만지면 집안이 번창하다고 하니 혹여 나중 이 천지연 폭포를 들리면 여의주를 만지고 오는것도 잊지 마시길....(믿거나 말거나)
이제 이 징검다리를 건너면 주차장으로 나가는 길이다. 벌써부터 주차장 야외공연장에서는 가을 음악회를 앞두고 미리 악기들 화음맞춰 두려고 튜닝하는 소리가 들린다. 창소리도 들리고, 서울페밀리의 '내일이 찾아오면'이 간혹 들리기도 하고 어느 성악가의 가곡도 들린다. 이게 왠 떡인가? 천지연 폭포도 방문하고 졸지에 음악회 구경도 할 수 있으니 이를 보고 양수겹장이라 했던가? 그러나 벌써부터 몸이 한기를 느끼는것 같다. 오랜 시간동안 음악회를 보느라 앉아있으면 초겨울의 서귀포 밤 바다는 추울텐데 그 시간까지 자리를 지킬수나 있을런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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