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령에서 장유사로
일월 둘째 일요일이다. 결혼식 청첩이 두 군데 있었다만 축의는 지인 편으로 전하고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1번을 탔다. 어제는 내가 몸담은 학교 교장 따님 예식으로 통영 걸음을 했더니 꼬박 하루 걸렸더랬다. 학업을 마쳐 어려운 여건에도 직장을 구하고 배우자를 만나는 젊은이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그들을 반듯하게 키워준 부모들이야 더 장하다.
버스는 창원대학과 도청을 둘러 대방동으로 향했다. 대암고등학교를 지날 때 내려 등산로로 들었다. 대암산 등산로로 오르지 않고 삼정자동 아파트 뒷길 따라 걸어 용제봉으로 가는 임도로 들었다. 여름날 숲에서 영지버섯을 따고 발을 담그려 두어 번 찾고는 가을은 건너 띄었다. 일요일이라 산행객이 간간이 보였다. 용제봉 산기슭은 사계절 어느 때나 산행객이 많이 찾을 듯하다.
창원 근교에서 숲이 우거지고 계곡이 깊기로는 불모산과 용제봉이 꼽힌다. 바깥에서보다 안에 들어가 보면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의 물도 많다. 두 곳 다 여름철이면 계곡에 흐르는 시원스런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특히 장마 끝난 뒤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지는 물줄기를 볼 수 있었다. 이제 여름 건너편 계절 겨울이니 숲의 식생이나 계곡의 모습은 여름과는 사뭇 달라졌다.
삼정자동 아파트단지에서 길게 이어진 임도를 따라 걸어 상점고개와 용제봉 갈림길에 닿았다. 계곡에는 겨울임에도 물이 제법 많은 양으로 흘렀다. 용제봉으로 가는 등산로로 드니 본격적인 숲을 걸었다. 소나무가 간간이 섞인 높이 자란 낙엽활엽수림들이었다. 일부 구역은 수종갱신을 해서 편백나무가 심겨져 잘 자라고 있었다. 산허리 대암산과 용제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산정으로 향하지 않고 산허리 길을 따라 상점고개로 향했다. 송전탑을 세울 때 중장비가 지나면서 생겨난 길인 듯했다. 그 길은 산행객이 잘 다니질 않아 묵혀 있었다. 진행 방향에서 불모산 송신소와 안민고개 산등선이 드러났다. 상점고개에서 불모산 송신소로 올라 안민고개로 건너갈 수도 있으나 장유로 내려갈 생각이다. 상점고개 못 미쳐 배낭을 풀어 도시락과 곡차를 비웠다.
보온도시락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먼저 마트에서 마련해 간 국순당을 한 병 꺼내 목을 축였다. 그때 고개에서 비탈로 내려오는 한 사내가 있어 같이 잔을 비우자고 인사를 건넸더니 내가 앉은 쉼터로 다가와 고마웠다. 나는 그에게 잔을 채워 권하며 어디서 왔는지를 여쭈니 대방동에 산다고 했다. 불모산 숲속 길을 걸어 고개에서 되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넘을 거라 했다.
점심 식후 장유계곡으로 가는 길로 내려섰다. 용제봉에서 뻗쳐 내린 남향 산기슭은 참나무 계열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었다. 장유계곡으로 가는 지름길과 장유사로 둘러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시간에 걸리더라도 절간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가랑잎이 덮인 길을 한참 지나 산등선에 서니 장유 시가지와 김해 일대 들판이 드러났다. 건너편 불모산 송신소와 화산 공군기지도 가까웠다.
산허리 등산로에서 돌계단을 내려 절간에 이르니 참배객이 더러 보였다. 아이들과 동행한 젊은 부부도 보였다. 단청이 알록달록한 법당 처마 밑에 메주덩이 수십여 개가 눈길을 끌었다. 절과 인연이 닿은 보살과 처사들이 지난해 가을 메주를 쑤어 틀에 디뎌 그 높은 곳까지 매다느라 힘이 들었지 싶었다. 이제 두어 달 지나 곰팡이가 피어 잘 띄어 장을 담글 좋은 재료가 될 듯했다.
산문 밖에서 포장된 길을 벗어나 산등선을 따라 나목이 된 숲을 걸었다. 장유사로 오르는 차도로 나가니 아스팔트가 포장된 길이 이어졌다. 장유폭포에 이르니 예년 이맘때와 다른 풍광이었다. 얼음이 꽁꽁 얼었어야 할 폭포는 하얀 물줄기로 쏟아져 내렸다. 소한 무렵 제법 많은 겨울비가 내렸는지라 폭포수도 양이 많았다. 한파가 없이 겨울을 보내니 기후가 아열대로 바뀐 듯했다. 20.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