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었던 이중섭전시관 수장고가 하루 아침에 꽉 차게 됐다.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대표의 기증으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23일 오후 가나아트센터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이승찬 서귀포시 문화공보실장에게 50점의 회화작품을 기증하겠다는 협약서를 전달했다. 기증품은 ‘풍경’ 등 이중섭의 회화 7점과 그와 교유했던 장이석, 박영선, 이응노, 중광 등의 작품 43점. 이중에는 박수근의 회화 2점도 포함돼 있어 더욱 눈길을 모았다.
이중섭전시관은 지난해 11월 28일 작가의 생가 바로 옆에 개관했으나 외양만 갖췄을 뿐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원화는 한 점도 없이 몇 장의 복사본만 확보한 상태였다. ‘이중섭 예술과 삶’ 주제의 개관전(25일까지)에는 그의 은지화 등 73점이 출품됐으나 모두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임차해온 것이었다.
평생 가난에 시달리다 요절한 이중섭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에 서귀포로 피난을 와 1년 가량 살았다. 아내, 두 아들과 함께였다. 그는 이곳에 머무는동안 ‘황소’ ‘서귀포의 환상’ ‘게와 아이들’ 등 대표작 30여점을 그리며 예술혼을 불살랐으나 이듬해 가족이 일본으로 떠난 이후 외로운 만년을 보내야 했다.
서귀포시는 그의 삶과 예술을 기리기 위해 재정여건이 넉넉지 않음에도 복원된 그의 생가 바로 옆에 전시관을 지었다. 연건평 200여평, 지상 2층짜리 건물로 10억4천만원의 사업비가 들어갔다.
전시관은 문을 열었으나 작품이 확보되지 않음은 물론 직제조차 갖추지 못한 채처음부터 어려운 살림을 꾸려야 했다. ‘미술관’이나 ‘기념관’이 아닌 ‘전시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고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관장은 공석이고 하부 직제마저 부실해 운영이 효율적으로 되겠느냐는 의문을 사왔다.
이호재 대표의 이번 기증으로 전시관은 지금까지의 어려움을 일거에 털고 작가의 예술을 조명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미술계는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기념전시공간이 구색을 갖출 수 있게 됐다며 무척 반기고 있다. 그러면서 관할자치단체인 서귀포시가 기증자의 뜻을 잘 살려 전시관 운영에 지혜와 정성을 쏟아줄것을 당부하고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