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고기를 사려고 푸줏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은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여봐라, 고기 한 근만 다오."
"예, 그러지요."
함께 온 다른 사람도 말했습니다.
"여보게, 나도 고기 한 근 주게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금 전보다 공손한 태도로 답변한
주인은 고기를 더 넉넉하게 잘랐습니다.
그러자 먼저 말한 사람이 화를 내며
"이놈아, 같은 근인데 어떻게 해서
내 것보다 크게 자르는 것이냐?"
"예, 별것 아닙니다.
손님 고기는 '여봐라'가 잘랐고
이분 고기는 '여보게'가 잘랐을 뿐입니다."
이 글은 <정재원>의 <삶의 쉼표>에
나오는 글인데, 우리에게 겸손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목이 뻣뻣할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 모두, 누리고 있는 것 모두,
존재 자체 생명 자체가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의 것인지 그 분수와 한계를 할 때,
우리는 땅처럼 겸손할 수밖에 없다.
라틴말로 겸손이란
'Humilitas'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Humus'(땅, 흙)이다.
우리 발에 밟히는 게 땅이요 흙이며,
인류 최초의 사람(아담)이란 말도
'Adama'(흙)에서 나왔고,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니,
사실 흙처럼 땅처럼 겸손해야 한다.
인류 최초의 사람도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하느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려는,
자신이 하느님이 되려는 교만과 불순명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잃었다.
그러나 죄없으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겸손과 순명으로,
강생과 십자가의 구속의 신비를 통해,
멸망과 저주와 지옥으로 치닫는
인간사(세속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꾸어
주셨다.
익은 벼는 머리를 숙이지만,
열매없는 쭉정이, 가라지는
하늘을 향해 대항하듯 뻣뻣하게 서 있다.
사람들은 모두가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가 권력가요, 박사요, 재산가요, 재능가요,
인물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겸손하면 모두 존경하고 호감을 갖는다.
겸손은 성령의 9가지 열매
(갈라 5, 22;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에도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겸손하기 때문에 숨어 있고,
모든 덕의 기초이고, 당연히 닦아야 할
덕이기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
(야고 4, 6)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루카 17, 10)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18, 14)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 29)
난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교만한 사람들을
만났고, 내 자신도 타인에게 교만한 자로
비쳐졌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인 나도, 교만한 자가 싫고
겸손한 사람들이 좋고 잘 해 주고 싶은데,
하물며 하느님께서는 당신 대전에
어떤 사람을 좋아 하실지 생각해본다.
지금도 오래 전에 뉴욕에 있을 때,
주일미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한 자매를 잊을 수가 없다.
그 자리에는 그 자매의 남편과
남편의 친척 세 분이 함께 동석했다.
나는 그녀의 언행과 태도가 못마땅해,
식사하다가 몇 번이나 한마디 쏘아 부치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남편이 '한국 가톨릭 무슨 무슨 ~~회장'이고,
본인은 뉴욕 주립 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다.
나이도 별로 많지도 않은 자매가,
그리고 잘 생기지도 못한(?) 자매가,
남편 직책 때문에 교회 안에서 항상
고위 성직자들을 쉽게 만나서 그런지,
내 앞에서 거드름 피우는 모습이
꼴불견이었다. 아마도
그 여자가 학부만 나와도 이 정도인데,
대학원을 나와 석.박사를 하고,
교회 안의 더 높은 분들과 친분이 있었다면,
나같은 말단 성직자는 식탁 밑에
무릎을 꿇고 밥을 먹어야 했으리라~
나는 그날까지 내가 살아온 여정에서 가장
교만하고 건방지고 거드름을 피우는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저런 여자를 안 만나고
혼자 살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앞으로 남녀 할 것 없이 사람 만날 때,
'참으로 조심해야지~~'
그날, 속으로 몇번을 다짐하고 다짐했다.
이건 좀 차원이 다른 이야기 같지만,
사실 우리가 하느님 대전에 기도를 안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도와 말씀에 대한 영적 무지 때문에,
아니면 게으름 때문에...등등" 무엇 때문일까?
사실은 교만하기 때문에
기도를 안하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구석이, 하느님 말고 자신 안에
그리고 이 세상 것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자신의 손에 뭔가를 움켜잡고
있을 때는, 하느님께 합장할 수도 없고
빌 수가 없다.
우리의 두손이 비어 있을 때,
비로소 하느님께 빌게 된다.
비단 기도뿐만 아니라 우리 피조물인
인간들의 삶의 자세와 태도가,
하느님 대전에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출처: 피앗사랑 (신부님 묵상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