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국방부 상황실 입구에서 근무한
헌병(김종술씨)의 5.18 북한특수군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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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북의 공작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증언합니다>
저는 소위 육본 지하벙커로 불리며 박정희대통령의 시해 당일 밤
임시 국무회의가 열렸던, 국방부 지하 상황실 입구에서
5.18 사건 당시에 근무하던 헌병입니다.
당시 광주지역 사령부 등에서 실시간으로 육군본부 상황실로
텔렉스로 보고가 올라 오는데 그것이 육본 정보참모부와
국방부의 지휘체계로 보고가 됩니다.
그것을 텔렉스실 사병이 상황실로 정보장교에게 전달하러
가는데 제가 당시 출입문의 경비근무 중이었기에 보여 달라고
해서 먼저 보았는데 시가전 전문 교육을 받은 헌병으로서
그 날 당시에 딱 보니 이건 일반 시민들이 일으키는 소요가
절대로 아니고 특수 전술전략에 고도화된 군사전문 지휘부의
지휘에 의한 특수 시가전이었습니다.
초비상사태라는 생각과 함께 바로 고정간첩 등의 주도로
북한의 공작과 조종에 의해 주도된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모든 헌병은 논산훈련소 등에서 1개월 기본 교육 수료 후
성남의 종합행정학교에서 2달간 헌병 병과교육을 받고 자대에
배치되는데 그 때 일반 보병들의 야외 야전 전투훈련과 달리
헌병은 폭동진압과 시가전에 대한 특수교육 및 훈련을 받습니다.
그런데 당시 광주 소요 현황을 한눈에 파악하는 위치인
육본 정보참모부 겸 국방부 정보 상황실에 긴박하게 올라오는
텔렉스 보고를 보니, 반란 세력이 전남도청 점거, 광주 MBC점거,
방화,무기고 동시 탈취, 교도소습격, 공수부대를 공격,
유언비어 유포 내용 등의 전개하는데, 그 상황을 보니
전술전략 면에서 매우 전문적인 고차원적이었고,
모종의 지휘본부의 지령에 의한 고도의 전문화된 특수세력이
개입된 것이 분명했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군과 경찰을 무력화 시키고 그렇게 전개해
나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당시 바로 알았고
그건 결국 고정간첩세력과 북한의 조종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내무반에 가서 광주사태를 모르는 동료사병들에게 광주지역이
심각한데 북한 간첩세력들이 주도하는 것 같다고 얘기도
했습니다(당시는 북한에서 특수군이 왔을 것이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전남도청 점거 까지만 해도 그냥 강한 시위인 줄로만 알았는데
광주MBC 방송국 점거, 방화, 무기고 탈취, 공수부대공격,
교도소 습격,유언비어 내용 등 전개상황을 볼때 그렇게
고차원의 전문 전략과 일사분란하고도 과격한 폭력 사태의
전개를 학생과 일반인이 도저히 실행할 수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수 있었습니다.
직장인 은행에 근무하면서도 늘 "광주사태는 시민과 학생들의
순수 민주화운동을 이용한 북한 대남공작에 의해 광주 지역시민과
국민들이 이용당한 시대의 비극임"을 아프게 느끼고만 있었읍니다.
당시 현장의 수많은 공수부대, 시민들과 육본 정보참모부 및
국방부 장교들 중 누군가가 사실을 증언해 주리라고
믿고 지내 왔는데 요즘 5.18을 두고 너무 국민들이
사실을 바로 알지 못하고 공작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왜곡으로 분열된 양상인 것을 보고 제가 체험한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자고로 손자병법에서도 성동격서 (동쪽에서 소리치고 서쪽을 공격 한다),
만천과해(하늘을 속인 후 바다를 건넌다)라고 하여,
전쟁과 싸움의 기본은 상대를 속여야 하는 것이고,
북한의 오랜 공작이 있어 왔음은 분명한 사실인데,
군사전략의 비전문가들인 정치인들과 일반국민 들은
적화공작이 지하에서 이뤄지는 이런 부분을 너무나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당시 저는 고정간첩 및 그와 연계된 세력이 남한에 이렇게
많았는가 싶어 너무 놀랐습니다.
내란이나 전쟁으로 번질 염려도 되었습니다.
정의로운 광주시민들의 아픔을 마땅히 달래 드려야 할 것이나
북한이 주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는 것과 이를 당시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는 것을 역사와 국민앞에 증언합니다.
당시에 그 텔렉스 전문을 본 군인 이라면 제 아니고 누구라도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아마 국방부에 그 전문들이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확인이 가능할 것입니다. 전 은행원 출신이라 정치에 관심도
없고 좌우 어느 쪽을 편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사실을 밝힐 뿐입니다.
(참고로 저는 10.26 당일 밤에도 그 상황실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신현확 국무총리에게 제가 경례를 하고는,
다음 국무위원들이 도착하는 중간에 교대시간이 되어
나머지 국무위원 들은 제 헌병 한 기수 후배가 근무 하는
시간에 모두 모여 김재규의 박정희대통령 시해 후 첫 국무회의가
거기서 열렸습니다.
박선호 박흥주 등 김재규 휘하의 재판과 5.18 재판을
육본 법무감실 법정에서 진행했습니다.
김대중대통령 군사 재판 현장에도 있었고 사형선고 당시
현장에서 기절한 이희호 여사를 차에 실은 옮겨 것도 저였는데
당시 허청일 헌병 대장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상황은 아직도 서거하신 김대중 대통령도 이희호여사도 모르십니다.
12.12의 전개과정 중 알려지지 않은 핵심부분도 증언할 수 있습니다)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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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14. 카톡방 글 펌)
●5.18 광주에 북한군이 왔다!
확실한 수많은 증거들
(링크 보세요)
https://t.co/GfK1iYyS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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