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두고두고 후회할 일 청나라 황실의 무제한 妻妾供給(처첩공급) 制度를 따라 배우지 않았다. 마중가(중국 전문가)
<亡兆(망조)가 든 金氏王朝> 중국 淸나라 황제는 登極(등극)한 날부터 두 가지 중요한 일을 한다: 1. 아들을 많이 나아서 후계자를 선택 하는 것과 2. 죽은 후 묻힐 '陵(능)'을 건축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병자호란 때 2만 마적떼를 이끌고 조선을 노략한 청 2代 황제 청태종 황타이지는 청나라 元祖 누르하치의 8번째 아들이고 선양에서 베이징으로 遷宮(천궁)하여 황제가 된 順治는 황타이지의 9번째 아들이다. 황타이지란 놈은 누르하치의 아들중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살인마인데 누르하치가 그 점을 낙점했다고 한다. 順治의 아들 康熙는 70세까지 살았는데 妻妾이 68명이고 아들이 35명이었으며 딸이 20명이었다. 사실 나라의 황제는 온 나라의 국부를 독점할 수 있고 온 나라의 모든 여자를 자기 妻妾으로 삼을 수 있다. 북한의 金氏王朝도 세습국가이기 때문에 청나라와 비슷한 제도가 많다 그중 가장 닮은 것이 있다면 바로 중앙당 五課(5과)가 한다는 여자 선택 제도이다. 기쁨조 만족조 복무조도 비슷하다. 그런데 오직 한 가지 : 청나라 황실의 무제한 妻妾供給(처첩공급) 制度를 따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중대한 난관에 부딪쳤다: 즉 아들이 없다. 이는 왕조의 국운을 좌우하는 중대한 전략적 실수다. 중국 청나라 황제들은 그것을 미리미리 알았기 때문에 매일 저녁 可妊期(가임기)의 궁녀를 임금님 침상으로 들여 보냈던 것이다. 김씨왕조가 이것을 소홀히 했다. 김정은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청 왕조가 멸망의 徵兆(징조)가 나타난 것은 제 八代 황제인 咸豐 황제 때다. 그는 31세에 죽었는데 女婢 서태후가 요행 아들을 나아준 것이 제 九代 황제 同治다. 동치는 19세에 죽었는데 그는 아예 생육을 못했다. 제 十代 황제는 光緖(동치의 사촌)인데 그도 性不能이어서 자녀가 없었다. 제 十一代 光緖(서태후의 외조카)는 38세(1908년)에 죽었는데 그도 성불능이었고 그가 죽은 이튿날 50년 동안을 攝政(섭정)한 西太后도 죽었다. 제 十二代 마지막 皇帝 푸의는 光緖의 조카인데 1911년 辛亥革命(신해혁명)으로 청 왕조는 멸망하고 후에 괴뢰국 만주국의 괴뢰 황제가 됐으나 죽을 때까지 성불능이다. 지금 북한에서 金主愛란 10살짜리 딸을 후계자로 양성한다는 것은 왕조 멸망의 시작이다. 이런 어린이를 후계자로 早期 選定하면 일찍 죽는다. 同齡의 학생들과 뛰어 놀지도 못하고 互學互助(호학호조)도 못하며 결국에는 不治의 心身衰弱(심신쇠약)증에 걸린다. 그래서 早卒(조졸)하기 쉽다. 김씨왕조가 단명왕조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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