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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2일 오늘의 역사
2023년 한국 쇼트트렉 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금메달 은메달 획득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 간판 박지원(서울시청)이 국제빙상경기연맹(ISU)월드컵 1500m에서 또 한 번 정상을 차지했다. 박지원은 네덜란드 도르드레흐트에서 열린 2022-2023 ISU 쇼트트랙 월드컵 6차 대회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17초200의 기록으로 이동현을 제쳤다. 이로써 박지원은 1차 대회와 3∼6차 대회까지, 올 시즌 월드컵 1500m에서만 5차례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 은메달은 이동현(의정부광동고·2분17초310)이 차지했다
2023년 신지애 호주 여자프로골프(WPGA) 투어 빅토리아오픈(총상금 42만 달러) 우승
2019년 태평양전쟁 때(1942) 침몰된 미국 항공모함 76년 만에 5,400m 심해에서 발견됨
2019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학생 250명 3년 만에 명예졸업
경기도 안산 단원고는 12일 오전 10시 본관 4층 단원관에서 '노란 고래의 꿈으로 돌아온 우리 아이들의 명예 졸업식'을 열었다.
이번 명예 졸업식은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당시 2학년 학생 325명 중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희생당한 250명(미수습 2명 포함)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2017년 독일 대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사회민주당) 당선 18년 만에 좌파 대통령
2017년 북한 고체연료 사용한 지대지중거리탄도탄(IRBM) ‘북극성-2’ 발사 성공
2016년 어드밴스드 라이고(망원경) 아인슈타인이 1916년 예측한 중력파 검출
2014년 알제리 군용기 추락 77명 사망
2013년 북한 함경북도 길주 풍계리 지하 핵실험장에서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3차 핵실험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이 위치한 함북 길주군에서 이날 오전 11시 57분 53초에 M 5.1의 인공지진이 감지됐다. 이날 인공지진의 규모는 2009년 2차 핵실험 때의 M 4.5에 비해 더 강력한 것이다. 규모가 0.2 커질수록 폭발력은 배로 증가하기 때문에 지진파의 크기만 따지면 폭발력은 2차 핵실험의 8배 정도라고 기상청은 밝혔다.
이날 오후 2시 43분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12일 북한이 제 3차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공식 발표
2013년 불교국가 부탄이 살충제 제초제 전면금지 등 나라 전체 유기농전환 선언
2011년 이집트 민주화 시위 18일 만에 29년 4개월 집권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물러남
이집트의 군인·정치가. 사다트 대통령에 이어 1981년 이집트의 대통령이 된 후 30년간 이집트를 철권통치했다. 친미, 친이스라엘 노선을 계승하여 아랍권에서는 서방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했으나 대내적으로는 장기 독재 정권을 유지했다. 2011년 아랍권에 불어온 반독재·민주화 운동이 이집트에서도 반정부 투쟁으로 이어지자 2011년 2월 하야한 후, 재임시의 부정축재와 무력진압에 대한 재판을 받아 수감과 자택연금을 반복했으며, 지병에 시달리다가 2020년 2월 25일 사망했다.
2009년 미국 여객기 뉴욕주 추락
2009년 2월 12일 오후 10시 15분께(현지시각) 미국 뉴욕주 버펄로 인근 주택가에 소형여객기가 추락해 탑승자 49명 전원과 주민 1명 등 50명이 숨졌다.
미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사고기는 뉴저지주 뉴어크 리버티 공항에서 출발해 버펄로 나이애가라 공항으로 향하던 콜건항공 3407편으로, 50인승 소형 여객기인 이 비행기에는 모두 44명의 승객과 4명의 승무원, 비번인 조종사 1명 등 총 50명이 탑승해 있었다.
사고기는 목적지인 나이애가라 공항까지 불과 10㎞가량을 남겨두고 착륙 5분 전에 클라렌스센터라는 마을에 추락했으며, 당시 결빙상태에서 자동운항을 한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보인다. 콜건항공은 결빙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조종사가 수동으로 조종하도록 권장하고 있고 특히 심각한 결빙 상황에서는 수동조종을 하도록 돼있다.
사고 당시 기상은 약한 눈발이 날리고 구름과 안개가 낀 상태로, 시속 27㎞ 가량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는 거센 화염이 솟구쳐 소방당국이 불길을 잡기 위해 긴급 출동했고, 현장 인근의 주택 12채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모두 긴급 대피했다.
사고기는 74인승 쌍발 프로펠러기인 ’봄바르디어 대시(Bombardier Dash) Q400’ 이라는 모델로, 피너클항공의 자회사인 콜건항공이 컨티넨털항공의 발주를 받아 ’컨티넨털 익스프레스’라는 브랜드로 뉴저지-버펄로 노선을 운항 중이었다. 콜건항공은 컨티넨털항공 외에도 유나이티드항공과 US항공 등 다른 메이저 항공사들이 발주한 지역노선들을 다수 운항하고 있다.
2009년 로스쿨 개원 3주전 '변호사시험법(法)' 부결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개원을 불과 3주 앞두고 새로운 변호사 선발방식을 규정한 '변호사시험법' 제정안이 2009년 2월 12일 국회에서 부결됐다. 전국 25개 로스쿨의 신입생들은 졸업 후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첫 학기를 시작하게 됐다.
로스쿨 설치에 관한 법률은 2007년 7월 국회를 통과했으며, 이날 변호사시험법까지 처리되면 로스쿨을 축으로 한 새로운 법조인 양성체계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야당도 아닌 여당의 '내부 혼란'으로 변호사시험법이 부결되는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변호사시험법안은 변호사 시험의 응시횟수를 5년 내 3회로 제한하고, 필수 과목 7개에 논술형 필기시험을 치르면서 실무 평가 항목을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아울러 현행 사법시험처럼 과목당 최저 합격선을 넘지 못하면 탈락시키는 과락을 인정하고, 로스쿨 출신이 아니면 변호사시험을 보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그런데도 투표에 참여한 여야 의원 218명 가운데 100명이 반대표(기권 40명)를 던졌고 찬성은 78명에 불과했다.
2003년 동국무역 창업자이자 섬유업계의 대부 백욱기 별세
1919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난 백 회장은 일제 말기 대구 서문시장에서 포목상으로 시작해 1950년에 동국직물(현 동국무역의 전신)을 창업한 뒤, 국내 굴지의 섬유업체로 성장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동국무역은 한때 국내 30대 재벌에 포함되기도 했다.
대구상공회의소 부회장과 대구· 경북 섬유산업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그는 대구 경제계의 `대부(代父)`로 대접을 받았다. 검소하기로 소문난 백 회장은 돈이 모일 때마다 공장을 세워 한때 종업원이 1만명을 넘었고,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10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해 대구지역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평소 기업이익보다는 국가이익이 앞서야 한다고 강조해온 백 회장은 수출에 역점을 둬, 1992년에는 5억1000만달러를 수출, 섬유직물 단일업체로는 최초로 5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1979년에는 `동국장학재단`을 설립, 소년소녀가장과 불우학생들을 지원했다. 지역 사회 발전과 수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84년), 국무총리 표창(89년), 금탑산업훈장(95년) 등을 받았다.
2002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前 유고대통령 전범 재판 개시
2001년 게놈지도 완성 공식 발표
영국의 과학자 존 술츠톤이 기자회견을 열고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제 인간게놈 연구 컨소시엄’(IHGSC)의 미국 등 6개국 합동 연구팀과 유전공학회사 셀레라 제노믹스가 2001년 2월 12일 워싱턴, 런던, 파리, 베를린, 도쿄 등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인간게놈지도’의 완성을 공식 발표했다. BBC는 게놈지도 완성 발표를 ‘끝의 시작’이라고 불렀다. 염기의 위치를 모두 표시한 것 자체가 큰 과학적 이정표임에 틀림없지만 그 정확한 기능을 알 수 있는 유전자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로 유전자치료법 등 의학 발전은 물론 생물학, 공학 등 관련산업 발전의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컨소시엄’은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스’를 통해, ‘셀레라’는 영국의 ‘네이처’를 통해 각각 연구결과를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 발표를 인간의 달 착륙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지만, 게놈프로젝트 결과는 이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인류에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이번 발표로 인간은 약 31억개의 염기가 있으며 이 안에 약 3만 5000여개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게놈은 생물의 생로병사와 관련된 유전정보 전체를 뜻하는 용어로 ‘유전정보의 전달자’인 유전자(gene)와 ‘유전자를 담는 그릇’인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다.
2001년 미국 무인 우주탐사선 슈메이커호, 지구에서 3억2천만km 떨어진 소행성 `에로스`에 착륙
미국의 무인 우주탐사선 슈메이커호가 2001년 2월 12일 오후 3시7분 지구에서 3억2000만km 떨어진 소행성 착륙에 성공했다. 1996년 소행성 `에로스`를 향해 발사된 슈메이커는 연료가 바닥난 후 동체착륙을 시도, 무사히 착륙함으로써 인류 우주탐사의 역사에 획을 그었다.
슈메이커호는 2000년 2월 에로스 궤도 진입에 성공한 후 당초 예상을 10배나 뛰어넘는 16만장의 사진을 지구로 전송했다. 또 이번 착륙을 전후해서는 10cm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할 만큼 고해상도의 사진을 보내 옴으로써, 소행성 구조와 성분을 연구하는 데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로써 미 우주탐사선 슈메이커호가 착륙한 소행성 에로스는 금성, 달, 화성에 이어 인간의 우주선이 착륙한 네 번째 천체가 됐다.
슈메이커는 4개의 태양전지판을 부착한 쓰레기통 모양으로 보통 자동차 정도 크기다. 슈메이커라는 이름은 지질학자 진 슈메이커로부터 따온 것으로, 1997년 교통사고로 숨질 당시 그는 호주에서 소행성 충돌로 생긴 분화구를 연구하고 있었다. 지구와 3억2000만km 떨어져 있는 에로스는 길이 33km의 고구마 모양이다. 지구에서 몸무게가 90kg인 사람이 에로스에서는 50g에 불과할 만큼 중력이 약하며, 하루에도 섭씨 100도와 영하 150도를 오갈 만큼 일교차가 심하다.
2001년 MP3 음악 무료교환하는 냅스터 위법 판결
음반회사가 인터넷을 통한 음악파일 무료 교환서비스를 둘러싼 저작권 침해 논쟁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2001년 2월 1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 항소법원 재판부는 그동안 저작권 시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냅스터에 대해 음악파일 배포금지 명령을 내렸다. 판결은 그동안 냅스터에 대해 저작권 침해 주장을 펴온 음반제작자와 음반유통회사쪽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냅스터는 판결에 따라 저작권이 있는 음악 거래를 중지하고, 냅스터 회원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들어있는 MP3 파일을 서로 연결해주는 기능을 제거함으로 냅스터를 통해 음악 MP3 파일을 교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1999년 서울대 황우석 교수, 복제 송아지 `영롱이` 분만 성공(동물복제로는 세계 5번째, 젖소복제는 세계 1번째)
1999년 2월 19일 서울대 황우석 수의학과 교수가 경기도 화성의 한 농장에서 암-수 교배없이 체세포를 복제해 암컷 젖송아지를 지난 12일 출산시키는데 성공했음을 발표했다. 국내 최초로 태어난 송아지는 영롱이(Young-Long)로 이름이 붙여졌으며, 출산 당시 체중이 43kg으로 매우 건강한 상태였다. 또한 황교수는 영롱이와 세포를 제공한 성우의 DNA를 분석한 결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하였다.
넓게 보아 영롱이의 어미는 3마리로, 우유를 많이 생산한 우량 암소에서 자궁 세포를 얻은 후 다른 암소에서 난자를 채취해 유전물질이 든 핵을 제거했다. 자궁 세포를 '비어 있는' 난자에 집어넣고 전기충격으로 융합시켰다. 이렇게 해서 자궁 세포의 유전자를 가진 수정란이 만들어졌다. 수정란은 시험관에서 며칠 자란 후 또 다른 암소의 자궁에 이식됐으며, 275일 후 영롱이가 태어났다.
황 교수팀은 1993년 국내 최초로 시험관 송아지를 생산했으며, 1995년 2월 수정란 복제 송아지(쌍둥이 복제)를 생산해내 국내-외 학계의 주목 을 받아왔다. 동물 복제에 성공한 것은 영국-일본-미국-뉴질랜드에 이어 다섯번째이며, 젖소가 복제되기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우리나라에도 복제양 `돌리`처럼 체세포를 복제해 만든 복제 젖소가 태어났다. 동물복제에 성공한 것은 영국-일본-미국-뉴질랜드에 이어 다섯번째이며, 젖소가 복제되기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1999년 클린턴 미국대통령, 탄핵안 부결
미국 상원이 1999년 2월 12일 낮 12시 미 역사상 두번째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투표를 실시, 빌 클린턴 42대 대통령에 대한 위증과 사법방해 등 2개항의 탄핵안을 모두 부결시켰다. 이로써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양과의 성추문으로 초래된 정치적 위기에서 13개월 만에 벗어나 2001년 1월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상원은 이날 위증혐의는 찬성 45표, 반대 55표로, 사법방해 혐의는 찬성 50표, 반대 50표로 부결시켰다. 위증혐의에 대해 민주당의원 전원과 공화당의원 10명이 반대에 가담했으며 사법방해혐의에 대해서는 공화당 의원 5명이 이탈, 반대표를 던졌다.
1997년 외무부,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신청사실을 발표
1996년 중소기업청 발족
1996년 서울대 암연구소, 유전성 유방암유전자 `BRCA1` 국내 최초 발견.
1995년 이스라엘-PLO-요르단-이집트-미국, 테러행위 대처 등 4개항의 `중동평화안` 합의
1995년 멕시코, 농민반란군 지지 시위
1994년 제17회 동계올림픽 개막(노르웨이 릴레함메르)
1992년 삼성전자, 8비트 마이컴 국내 첫 개발했다고 발표
삼성전자가 1992년 2월 12일 고기능 TV를 비롯한 고급 전자기기, 자동차의 자동기능분야, 휴대용 전화기 등 첨단기능제품에 두루 쓰이는 8비트 마이컴(마이크로 컴퓨터)을 국내 최초로 개발, 시험생산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기업소자를 반도체칩 하나에 내장한 마이컴은 미국의 TI 모토롤러 등 일부 기업들 만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기술이전을 기피하고 있는 대표적인 첨단제품이다. 지난 1983년 4비트 마이컴을 개발한 삼성전자는 8비트 마이컴 개발에 착수한지 2년 만에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는데, 8비트 마이컴은 1백개의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어 VCR 등 가전제품 통신기기 자동차 등의 각종 인공지능 제품에 사용되고 있다.
이 8비트 마이컴은 컬러TV용과 VCR용인데 컬러TV는 타이머예약, 채널 및 볼륨조정, 색상조정 등 각종 자동제어기능과 화면에 문자를 나타내는 장치인 OSD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VCR용은 데크 튜너 예약녹화 등을 할 수 있다.
1991년 남북한,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에 합의
1991년 2월 12일 남북한은 판문점에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할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1963년 첫 논의가 시작된지 28년 만의 일로, 국민들은 `스포츠 남북통일` `남북은 하나`라며 더없이 흥분했다.
선수단 명칭은 코리아, 선수단기는 흰색 바탕에 한반도를 하늘색으로 그려 넣기로, 선수단가는 `아리랑`으로 합의했다. 탁구단장은 북한이, 축구단장은 한국이 맡기로 하는 등 후속작업도 일사 천리로 진행됐다. 4월 24일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에는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남북한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경기 결과보다 더 큰 관심거리였다.
현정화, 홍차옥(한국)과 이분희, 유순복(북한) 4명으로 짜인 여자단체가 중국을 3대2로 꺾고 우승,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청소년축구팀은 서울-평양에서 한차례씩 평가전을 치러 선수를 선발한 뒤 6월 포르투갈대회에 출전했다. 남북단일팀은 예선서 아르헨티나를 제압하는 등 선전, 8강에 올랐다
1991년 미국 국방부, 전 지구적 제한공격방어계획 (GPALS) 발표
1988년 금호그룹에 제2민항 인가
1987년 AIDS환자 국내 첫 사망
후천성면역결핍중(AIDS) 항체 양성반응자로 서울 서대문시립병원에서 격리치료중이던 윤모씨가 1987년 2월 12일 뇌중추신경계 감염으로 인한 호흡장애로 사망했다. AIDS항체양성반응자 중 사망한 내국인은 윤씨가 처음이었다.
윤씨는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교포사업가로 감기증세로 케냐현지병원에 입원, 진료를 받던 중 AIDS 양성반응자로 판명돼 귀국조처됐다. 윤씨는 한국 도착 즉시 국립보건연구원에 의해 항체반응검사를 받았으며 이때도 양성반응을 나타내 격리수용됐다. 보사부방역관계자는 "윤씨가 AIDS환자는 아니지만 AIDS환자로 발전할 수 있는 전단계증세를 보였다."고 말하고 "AIDS바이러스가 뇌중추신경계를 감염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윤씨가 다른 세균에 감염,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윤씨가 2년전 말라리아를 앓아 현지에서 수혈받은 적이 있는데, 이때 AIDS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미국 의학계에 따르면 케냐는 전국민의 약 20%가 AIDS바이러스 보균자인데도 케냐인들은 독특하게 AIDS 증세를 거의 보이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감염을 시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고 말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정치활동 규제에서 해금된 야당 정치인들이 선거를 불과 25일 앞두고 창당한 신한민주당이 1985년 2월 12일 실시된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신당 돌풍을 일으키며 제1야당으로 등장했다. 투표율 84.6%는 11대 총선의 78.4%보다 6.2% 높아 유권자들의 2.12총선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총선결과 전체의석 276석(전국구 92석 포함) 가운데 민주정의당이 148석(전국구 61석), 신한민주당 67석(전국구 17석), 민주한국당 35석(전국구 9석), 한국국민당 20석(전국구 5석), 무소속 4석, 신정사회당 1석, 신민주당 1석을 확보했다. 신한민주당은 선거 후 민주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탈당, 합류함에 따라 103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양대 정당 구도를 형성했다
1983년 소련 SSNX20 핵잠함서 발사성공
1981년 비동맹회의 뉴델리선언 채택
1981년 이탈리아, 스페인 공산당, 소련 공산당대회 불참 선언
1981년 한국-레바논, 국교수립
1980년 미국, 아라비아해에 해병대 1,800명을 처음으로 파견
1979년 이란, 석유 국유화.
1975년 사이클론,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 강타
1975년 유신헌법 찬반국민투표 실시
박정희 대통령이 1975년 1월 22일 야당과 일부 재야세력의 헌법논쟁에 따른 정국의 혼란을 예방하고 국론통일을 위해 유신헌법과 유신체제 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이와 더불어 특별회담을 통해 이번 국민투표는 현행 헌법에 대한 찬반 뿐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신임(信任)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국민이 원할 경우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임을 밝힙니다. 음력설 다음날인 1975년 오늘 유신체제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습니다. 총유권자 1천6백78만 8천8백39명 중 1천3백40만4천2백45명이 투표해 이 중 73.1%인 9백80만2백6명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박 대통령은 유신체제가 이같은 국민들의 호응을 얻자 3월 15일 긴급조치 1호와 4호로 구속한 1백48명에 대해 구속집행 정지처분을 내려 전국 8개 교도소에서 가석방했습니다.
1971년 월간 `다리` 김상현-윤재식-윤형두,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정부는 1971년 2월 12일 월간 `다리`지에 게재된 평론가 임중빈의 `사회참여를 통한 학생운동`을 문제삼아 사장인 김상현 의원을 비롯 필자와 발행인 윤재식, 주간 윤형두씨 등을 반공법 제4조 1항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검찰은 임씨의 논문이 `국외 공산당계 활동을 찬양-고무-동조해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했다`고 주장했지만 목요상 1심 판사는 `이 논문은 반공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해 관계자 전원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사건발생 4년 만인 1974년 5월 대법원의 무죄원심 확정판결로 해결됐다.
1961년 소련, 금성로케트 발사 성공
1961년 콩고의 루뭄바 살해
1961년 2월 12일 콩고의 전수상 파트리스 루뭄바가 피살됐다. 그는 콩고의 초대 수상으로 형무소를 탈출하다가 반대파부락민들에게 살해되어 콩고뿐 아니라 전세계를 경악케했다. 루뭄바를 지지해온 소련은 하마슐드 UN사무총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져 콩고의 혼란은 절정에 도달하고 말았다.
카탕가로 루뭄바를 옮겨가는 자체가 수상했고 카탕가정부는 탈출한 루뭄바를 살해한 부락민에게 8천불을 지불하였으니 이사건은 계획적인 살해라는 추측이 떠돌기도 했다. 유엔 조사단은 부락민에 의한 살해가 아니라 카탕가주의 주장 촘베의 앞에서 살해되었다는 보고로 더 한층 루뭄바의 죽음에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촘베는 루뭄바의 죽음이 전적으로 카탕가 내부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협조를 거부했다.
36세의 젊은나이에 콩고의 수상이된 루뭄바는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로 레오폴드빌 우편국 흑인노동조합위원장으로 지내다 콩고 국민운동당(MNC)의 총재가 됐다. 그는 중앙집권주의를 고집하고 소련측으로 지나치게 편향했다. 친서구적이고 연방국가를 주장하는 카사부부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혼란은 가중됐고 결국 루뭄바는 해임됐다.
1961년 선거법안 통과
1959년 일본, 재일교포 북송 한국에 통고
1958년 미국, 최초의 유도탄 부대 결성
1957년 영국, 요르단 조약 폐기
1951년 팔레비 이란 국왕 두번째 결혼식
1947년 전국문화단체 총연합회 발족
1947년 크리스찬 디오르 `뉴룩(New Look)` 발표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오르가 1947년 2월 12일 파리 몽테뉴가에서 열린 그의 첫 패션쇼에서 `뉴룩(New Look)`을 발표했다. 패션쇼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몇시간 만에 디오르는 서양 여성들의 실루엣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좁은 어깨에 날렵한 선의 재킷, 돋보이는 가슴, 꼭 끼는 허리선에 꽃송이가 펼쳐진 것처럼 아래로 길고 넓게 퍼진 A라인의 스커트 등 과거 옷들과 달리 전혀 새로운 선의 옷으로 꾸며진 충격적인 패션쇼였다. 이른바 '코넬라인'이었다.
몇 개월 후 패션지 `하퍼스바자` 편집장 카멜 스노는 디오르의 디자인을 `뉴룩`이이라고 명명했다. 사실 디오르의 뉴룩은 1900년대 전후의 사치스럽고 자유분방했던 '라 벨라 에포크(La Belle Epoque·좋은 시대)' 때 유행한 옷을 재현한 것이었다.
2차대전의 상처에 찌든 여성들에게 그는 우아하고 고급스럽고 세련된 `뉴룩`을 제안, 패션계에 전설을 탄생시켰다. 2차 대전으로 인한 물자통제로 군복처럼 심이 들어간 어깨와 짧은 치마를 강조한 이전의 디자인과는 달리 뉴룩은 작은 어깨, 자연스런 허리선, 풍성한 치마가 특징이었다.
첫 컬렉션으로 혁명을 일으킨 그는 1948년 첫번째 향수인 `미스 디오르`를 선보였으며 연이어 화장품도 내놓았다. 뉴룩 이후에도 튤립라인, A라인, H라인 등 이른바 '라인'시리즈를 선보이면서도 '종착역',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등의 영화의상 제작도 맡았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상표등록하는 한편 패션업계 최초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디오르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1957년 10월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1946년 홍사익장군 구출운동 전개
1941년 사상범예방구금령 공포
1936년 조선소작조정령 개정공포
1926년 프랑스 화가 존 미첼 출생
1923년 미국 작곡가 거슈인 뉴욕 초연
1921년 총독부관제 개정(한국인 임용확대)
1912년 선통제 부의 퇴위, 청조 멸망
1912년 2월 12일 청의 멸망과 함께 청조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 부의가 퇴위했다. 청은 제국주의시대로 이행해 가는 심각한 위기감을 인식, 전통체제 변혁을 위해 변법자강운동을 불러일으켜 반전의 반전을 거듭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 중국 민중의 동향은 혁명의 기운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멸만흥한의 민족주의가 화교, 유학생, 민족자본가의 반봉건주의와 합류, 손문이 주도하는 중국혁명동맹회로 결집돼 1911년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1912년 선통제 부의 퇴위와 함께 청왕조는 종말을 고했다.
4년 전인 1908년 11월 14일에 큰아버지인 광서제가 죽자, 3세의 나이로 제12대 황제가 된 부의는 1912년 12월 11일 아침 통치권을 포기, 전권을 북경정부 총리대신 원세개에 위임해 국체를 공화제로 변경한다고 선언했다. 진시황제 이후 2천년간에 걸친 중국 왕조의 역사는 이로써 막을 내렸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화국이 탄생했다.
부의는 1924년 북경에서 빠져나와 천진에 있는 일본 조계에서 지내다가 1934년 3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황제로 즉위했으나 제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45년에는 소련에 억류됐다. 1950년에는 전범 재판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송환됐다. 1967년 부의는 마침내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1912년 노르웨이 의학자 헨리크 한센 사망
1909년 신문관, 국내 최초 문고본 ‘십전총서(十錢叢書)’ 의 첫 권 `걸리버 여행기` 간행
1909년 2월12일, 신문관(新文館)에서 우리나라 최초 문고본 ‘십전총서(十錢叢書)’ 첫 권이 발간됐다. 십전총서는 10전이라는 저가에 구입할 수 있다고 붙여진 이름. B6사이즈(18cm x 13cm)로 요즘 문고본과 비슷한 크기다. ‘문명의 이기를 빙자해 백주에 공연히 남을 속이고 재물을 빼앗는 책 도둑을 없애려 한다’는 발간 취지의 한 대목은 책 도둑을 지금보다 더 경계했음을 알려준다.
‘최초 문고본’은 아일랜드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가 1726년 10월 발간한 ‘걸리버여행기’ 번역본(54쪽)였다. 책명은 ‘걸늬버유람긔((葛利寶遊覽記)’. 발간 예정표에는 10여권의 책명이 더 소개됐으나 ‘산수격몽요결’을 두 번째로 발간하고 중단됐다. 육당 최남선이 1907년 설립한 신문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청소년잡지 ‘소년’ ‘붉은 저고리’ 등을 발간했다. 최남선은 십전총서가 중단되자 1913년에는 더 저렴한 ‘륙젼쇼셜문고(六錢小說文庫)’를 기획, ‘홍길동젼’ 등 10여 종의 순국문 소설을 발간해 문고본 보급에 힘썼다.
세계 문고본의 효시는 1841년 독일 타우흐니츠 문고. 100여년간 5290종을 펴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펭귄문고는 1935년 ‘담배값으로 책 한권을’이란 슬로건으로 영국에서 나왔고, 일본은 1938년 발간된 이와나미(岩波) 신서가 문고본으로 유명하다.
1901년 화폐조례공포, 금본위제 채택
1896년 총리대신 김홍집 피살
1895년 청일전쟁 종전(청 북양함대 사령관 정여창, 일 함대에 항복)
1881년 러시아 발레리나 파블로바 출생
1880년 미국 노동운동가 루이스 출생
1874년 프랑스 건축가 페레 출생
1861년 독일 작가 루안드레아스 잘로메 출생
1818년 칠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칠레가 261년간의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고 1818년 2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1557년부터 에스파냐의 통치를 받아온 칠레는 나폴레옹의 에스파냐 침입을 계기로 독립의지가 표면화되어 에스파냐와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1810년 임시정부를 산티아고에 수립하자 스페인은 통치권을 주장하며 칠레를 압박했다. 지도자 베르나르도 오이긴스는 아르헨티나로 피신했다가 아르헨티나의 지도자 데 산 마르틴의 도움을 받아 1817년 스페인군을 물리쳤다. 결국 이날 오이긴스를 국가원수로 하는 독립국가가 공식 선포됐다. 이후 1878년~83년에 볼리비와-페루와 영토전쟁을 벌여 옛 영토를 회복했다.
1809년 영국 생물학자 다윈 출생
1809년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 출생
1804년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사망
1777년 독일 소설가 푸케 출생
1763년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마리보 사망
1593년 권율장군의 행주대첩 시작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이 행주산성(幸州山城)에서 왜군을 대파한 행주대첩 (幸州大捷)이 1593년 오늘 시작되었다. 권율은 임진왜란 초에 광주목사(光州牧使)로 있으면서 군사를 일으켜 전공을 세워 전라도 순찰사(巡察使)가 되었는데, 그 뒤 중국 명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서울을 수복하려고 군사를 이끌고 수원성(水原城)에 머물다가, 1593년(선조 26) 2월 1만여 병력을 행주산성에 집결시킨다. 권율은 조방장(助防將) 조경(趙儆)을 시켜 행주산성을 수축하게 하고 목책을 만들게 하였으며, 병사(兵使) 선거이(宣居怡)는 금주(衿州:始興),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은 강화(江華), 충청감사 허욱(許頊)은 통진(通津:金浦)에서 각각 그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한편 일본군은 이 무렵 총퇴각을 감행하여 서울 부근으로 집결할 때였으므로 그 병력이 대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1월 말의 벽제관(碧蹄館)에서 승리한 직후여서 그들의 사기 또한 충천해 있었다. 2월 12일 새벽 일본군은 3만여 병력으로 내습, 여러 겹으로 성(城)을 포위하고 3진으로 나누어 9차례에 걸쳐 종일토록 맹공격해왔다. 이에 권율은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왜군과 맞서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였으며, 심지어 부녀자들까지 동원되어 관민(官民)이 일치단결하여 싸웠다. 이때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서, 석전(石戰)으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는데, 여기에서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당시 행주산성의 싸움은 치열하였다. 마침내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는데, 권율은 이를 추격하여 130여 명의 목을 베었으며 적장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깃카와 히로이에[吉川廣家] 등에게도 부상을 입혔다. 행주산성의 전투는 임진왜란의 3대첩(三大捷) 중의 하나로, 권율은 이 공로로 도원수(都元帥)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