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다음의 두 글은 인간과 동물의 본래적 지위에 관해 상반되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두 제시문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인간과 동물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가) 나는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이다. 권리를 인간에게만 한정시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물론 동물은 인간이 가진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동물은 읽을 줄도 모르고 수학을 할 줄도 모르며 책장을 짤 줄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 중에도 그런 것을 할 줄 모르는 이들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이 존재의 본래적 가치와 존중 받을 권리를 다른 사람보다 덜 갖는다고 말하지 않으며, 또 그렇게 말해서도 안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유사성이다.
참으로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유사성은 우리 각각이 삶의 경험적 주체라는 점이며, 타자에게 유용하건 않건 간에 각자의 안녕을 도모하는 의식적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는 욕구와 취향, 믿음과 느낌을 가지며 과거에 대한 회상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기쁨과 고통, 만족과 좌절, 지속되는 삶과 갑작스런 죽음,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각자 경험하고 있는 삶의 질에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동물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성립한다. 동물도 삶의 경험적 주체로서 고유한 본래적 가치를 지니는 존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동물이 본래적 가치를 갖는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만이 그런 가치를 갖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과연 오직 인간만이 자율성, 이성 혹은 지성을 갖는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이것들을 결여한 인간도 많은데,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이 본래적 가치를 지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 '제대로 된 종(種)'에 속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이것은 명백한 종 차별주의이다. 어떤 근거에서 동물이 인간보다 본래적 가치를 덜 지닌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자율성, 이성 혹은 지성이 결핍되었다는 이유로? 이런 이유가 성립하려면 이를 결여한 인간에 대해서도 동일한 주장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지진아나 정신착란자가 당신이나 나보다 본래적 가치를 덜 갖는다는 말은 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삶의 경험적 주체로서 동물도 본래적 가치를 덜 갖는다고 말할 수 없다. 본래적 가치를 지니는 존재는 그것이 인간이건 동물이건 모두 동일한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동물도 동일한 본래적 가치와 존중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동물 권리 운동은 인권 운동의 한 부분이다. 동물 권리의 합리적 근거를 마련해 주는 이론은 인권의 근거 또한 마련해 준다. 동물 권리 운동에서 고려되는 사항은 여성의 권리, 소수자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고려되는 사항이다.
(나) 처음에 인간은 모든 동물처럼 신의 목소리라 할 수 있는 본능에 따랐다. 본능은 그에게 어떤 것을 음식으로 먹게 하고 또 어떤 것은 먹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곧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성이 활동을 개시했다. 그래서 이성은 본능과는 다른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본능을 넘어서까지 음식물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켰다. 인간은 이제 새로운 사실에 눈뜨기 시작했다. 그는 동물과 같이 한 가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자신 속에서 발견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점을 발견함으로써 순간적으로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불안과 걱정거리가 생겨났으니, 그것은 새로 발견한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었다.
음식물에 대한 본능 다음으로 두드러진 것은 성적 본능이다. 동물의 경우 성적 흥분은 대부분 일시적이고 주기적인 충동에 근거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상상력을 통해 그러한 흥분을 더 지속시킬 수 있었고 증가시킬 수도 있었다. 이 상상력은 대상이 감각기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자신의 기능을 더욱 적절하게 수행한다. 이것은 이미 충동에 대한 이성의 지배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 결과 감각적인 매력은 정신적인 매력으로, 동물적인 욕구는 사랑으로, 그리고 쾌적한 느낌은 아름다움에 대한 취미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성이 이룩한 세 번째 진보는 인간이 미래에 대한 의식적인 기대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순간적 삶에 만족하지 않고 다가올 먼 시기를 현재화하는 능력으로서, 인간의 결정적인 장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불확실한 미래가 야기하는 걱정과 불안의 고갈되지 않는 원천이기도 하다. 이와는 달리 동물은 그러한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 있다.
인간을 동물보다 훨씬 우월하게 하는 이성의 마지막 진보는, 인간이 본래 자연의 목적이고, 이 점에서 지상의 어떤 동물도 자신과 견줄 수 없다는 점을 인간 스스로 파악했다는 데 있다. 인간이 처음 양에게 "네가 입고 있는 가죽은 자연이 너를 위해 준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준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리고 양으로부터 가죽을 벗겨 내어 자신의 몸에 걸쳤을 때,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보다 우위를 점한다는 천부의 특권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다른 동물을 자신과 같은 차원의 창조물로 여기지 않게 되었으며, 자신의 의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같은 인간에게는 적용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은 모두 자연의 혜택을 동등하게 누릴 권리가 있다는 믿음을 포함한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간은 이성을 통하여 의지를 도덕적으로 제한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제한이야말로 인간 사회를 건설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다.
<유의사항 >
1.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500자 내외(1400∼1600자)로 서술할 것.
2. 시험 시간은 150분임.
■ 이화여자대학교 논술 문제 해설
1. 출제의 기본 방향
본교 논술고사의 출제 방향은 기본적으로 '대학교육에 필요한 기초적 자질로서의 논술 능력을 평가한다'는 기본 방침을 준수하면서, 1998년도 논술고사 시행을 앞두고 서울 시내 12개 대학에서 결의한 '동서고금의 고전에서 출제한다'는 출제의 기본 원칙을 참조하였다. 고전 중심의 출제는 그 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실행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고전의 정의를 '동서고금의 고전'이라고 구체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제자나 수험생들이 다같이 그것을 '고대(古代)의 명작'으로 축소해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지난 몇 해 동안 출제된 문제들을 보더라도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고전 중심의 출제는 다양한 독서체험을 권장한다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특정 작가와 작품에 국한하는 제한된 글읽기를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본교는 지난 수년 간의 출제 경험을 통해서 드러난 문제점을 고려하면서 2002학년도 논술고사 문제를 출제하였다.
(1)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이수한 학생이면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보편적이고도 구체적인 주제로서 사고의 폭과 깊이을 측정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하도록 한다.
(2) 대학교육에 필요한 글읽기·글쓰기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취지 아래 인문계와 자연계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유형의 문제를 출제하도록 한다.
(3) 2002년 6월에 시행한 본교의 모의고사 문제 유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문제를 출제함으로써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출제하였다.
2. 출제 의도 및 문제의 성격
이번 출제에 사용된 제시문은 현대 미국의 철학자 레이건(Tom Regan)의 {동물 옹호론}(In Defense of Animals)(1985)과 독일 철학자 칸트의 [추측해본 인류 역사의 기원]에서 발췌된 것이다. (가)의 제시문은 동물도 인간과 같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과 동일한 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나)의 제시문은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점에서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상반된 주장은 인간과 동물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상호 대립되는 입장을 갖게 한다.
이번 문제는 현대 사회의 여러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관계, 특히 동물과 같은 생명체에 대한 관계가 과연 어떠해야 할지를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해보도록 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뱀과 곰 등의 야생동물을 비롯하여 많은 동물들을 약이나 보신, 또는 실험 등의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어떤 종의 경우에는 남획으로 인한 멸종의 위험에 놓여있기도 하다. 이번 문제는 학생들로 하여금 이러한 문제들을 좀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보도록 한 것이다. 제시문은 다소 극단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므로 학생들은 제시문이 지닌 함축을 정확히 읽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것이 기대된다.
3. 채점 방법
1) 채점의 기준과 배점 비율
논술고사에는 평가의 주관성이 개입되기 쉽다는 우려가 있다. 본교에서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채첨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출제위원의 선정에서부터 채점 작업에 이르는 전 과정을 총괄하는 논술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철저한 준비와 엄정한 관리를 하고 있다.
금년도 논술고사의 채점에는 지문의 이해력·분석력과, 주장에 대한 논증력·사고력, 자신의 생각을 글로서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표현력을 종합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객관적 평가 기준을 수립하였다. 이에 따라 표현영역(표현력)과 내용영역(사고력)이라는 두 개의 채점 영역을 설정하고, 그 배점 비율을 4 : 6의 비율로 하였다. 각 영역의 배점과 평가 내용은 다음과 같다.
ㅇ총점 : 25점
ㅇ표현력(10점): 어법(띄어쓰기, 맞춤법, 원고지 사용법), 언어구사 능력(적절한 어휘, 바른 문장, 표현의 유려성·참신성), 구성력(단락·전체 구성·논지 전개력) 등의 세 관점에서 평가
ㅇ사고력(15점): 이해 능력(문제 및 제시문의 이해 정도), 논증 능력(비판의 적정성, 예시의 적절성, 논지의 타당성), 종합적 논술 능력(창의력, 사고의 폭과 독서경험, 기타 논술능력) 등의 세 관점에서 평가
2) 채점의 과정과 채점 방식
(1) 채점위원 구성 : 채점 위원은 전원 본교의 전임 교수 중에서 선발된 인원으로 하며, 강사 및 대학원생은 채점 과정에서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2) 채점 위원 연수 : 모든 채점위원은 채점에 들어가기 전에 출제위원과 함께 일정 시간의 연수 과정을 가진다. 이 과정을 통해 모든 채점자들은 출제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채점에 임한다.
(3) 채점 방식 :
㉠하나의 답안지에 대해 표현력과 사고력을 구분하여 채점하고, 이들 각각의 항목에 대해 2차에 걸쳐 채점하게 한다.
㉡각 채점위원은 소수 첫째자리까지 채점할 수 있으며, 1차와 2차의 채점 결과가 일정 한도 이상의 차이를 보일 때 3차 채점을 통해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게 한다.
㉢전체 답안지를 계열별, 학부별로 구분하여 동일 답안지는 동일한 채점위원들이 채점하게 함으로써 평가의 일관성을 유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