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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콧멍 백래시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같이 보고싶어서 쓰는 글
1부 2부 3부 4부 나눠서 글 쓸 예정
본문에 대한 의견 교류 대환영!
서치해서 나올 만한 질문ㄴㄴ 네이버 이용 부탁
한국어판 해제 - 역사가 된 기록,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페미니즘 선언 ㅣ 손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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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0년대 말부터 대중문화에서 여성혐오가 특정한 성격을 가지고 두드러지기 시작했으며, 이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한 백래시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강화되는 여성 혐오 문화는 단순히 여성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물리적 폭력을 점증시킴으로써 여성의 실존을 위협하기 때문에 문제적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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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페미니스트 이데올로그들은 "페미니스트들도 여성 징집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너희들이 시끄럽게 구니 "까다로운 군대 문제로 입을 막겠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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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백래시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부당한 것에 'NO'라고 말하는 여성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좌절의 회로에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악질적이다. 여성의 불행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면서 여성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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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들은 그 자체로 일종의 거대한 '헛소동'
...
백새리가 부르는 화려한 오페라들이 날조된 프레임 안에서 쓰인 판타지임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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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의 고통과 과로는 페미니즘의 실패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기획의 산물이라 보는 게 더 정확하다. 팔루디의 말처럼, 여성들의 비참과 불행은 페미니즘 탓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충분하지 않은 탓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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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필요한 기술 :
한계 안에서 싸우고
반복 속에서 버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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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루디는 "호전적인 낙태 반대 운동의 대변인들은 대중 앞에서 페미니스트들을 '영아 살패자'라고 불렀지만,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창녀'나 '레즈비언'으로 불렀다"고 지적하면서, 기실 낙태를 둘러싸고 선고된 페미니스트의 죄목은 '살인'이 아니라 '성적인 독립'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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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공격하는 것이 보수 우익을 선동하기에 얼마나 '좋은 자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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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 위에서 억압과 착취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렇게 반복되는 역사와 벌이는 싸움은, 시대적 계급적, 인종적인 한계를 안고 있을지라도, 그 한계에 갇혀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운동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 운동이 야기하는 인식의 전환은 다른 문제들을 사고하는 데 뚜렷한 족적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팔루디가 멈춘 자리가 우리가 멈추는 자리는 아니기를 바란다.
15주년 기념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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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탈란테의 황금사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들이 상업적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마치 세 개의 황금 사과처럼 우리 발밑을 굴러다닌다. 경제적 독립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구매력이라는 황금 사과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구매력은 대부분 여성들에게 카드 빚과, 터져 나갈 것 같은 옷장, 그리고 절대 끝나지 않는 허기를 안겨 줄 뿐이다. 허기가 절대 채워지지 않는 건 물질적인 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졀정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자기 계발'이라는 황금 사과로 변신했다. 이 자기 계발은 주로 외모와 자부심, 그리고 젊음을 되찾으려는 헛수고에 바쳐진다.
1장 프롤로그 : 그건 페미니즘 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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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비참해진 것은 페미니즘 탓이라는 요란스러운 주장은 어처구니 없고 엉뚱해진다. 뒤에서 보겠지만, 고난의 원인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모두 허황된 믿음이다. '남자 품귀 현상'에서부터 '불임 유행병', '여성의 번아웃', '유해한 어린이집'에 이르는 소위 여성의 위기는 여성이 처한 실제 삶의 조건이 아니라, 미디어와 대중문화, 광고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닫힌 시스템 안에 그 기원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은 여성성에 대한 거짓된 이미지를 영속시키고 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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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여성들이 불행해진 것은 (여성들이 아직 손에 쥐어 보지 못한) '평등'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평등에 대한 여성들의 탐색을 중단시키려는, 심지어는 역전시키려는 압력이 점점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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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상당히 간단한 개념이다. 1913년에 리베카 웨스트가 표현했듯 "나는 페미니즘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건,
내가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결심을 표현할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2장 [신화] 남자 품귀 현장과 불모의 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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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츠먼 자신도 페미니즘에 대한 법조계의 적개심 때문에 오늘날 이혼 여성에 대한 가혹한 처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부 변호사와 판사들은 복수를 위해, 더 큰 사회에서 평등을 요구하는 여성들에 대한 반격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복수를 위해, 법의 성 중립적인 언어와 '평등' 개념을 이용해서 '동등한 처우'를 명령한다"고 그녀는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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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혼 후 발생하는 남녀 간의 불평등을 교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간단하다. 직장 내 임금 불평등을 교정하는 것이다. 연방의 한 자문위원회는 1982년 만일 성별 임금 격차가 없어진다면, 여성 가장 세대의 절반은 가난에서 즉각 벗어나리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여성들이 보수가 좋은 일자리에 접근하게 되면 많은 이혼 여성들이 생활수준의 추락을 면할 수 있음을 확인한 던컨은 "직장 여성의 극적인 증가는 이 취약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보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지적에 따르면 여성들이 보수가 좋은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대체로 여성운동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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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평등한 교육과 경제에 대한 여성들의 요청은 생식력과 임신을 향상시킬 뿐이었다. 더 나은 교육과 더 두툼해진 월급 봉투는 더 나은 영양과 건강, 의료서비스를 가능케 하고, 이 모두는 생식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연방의 통계학자들은 대졸 고소득 여성의 불임률이 고졸 저소득 여성보다 더 낮음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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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의 화살을 쏘아 날릴 곳을 찾는 와텐버그에게 여성운동은 주요 희생양이 되었다. 그는 '대체 수준 이하로' 출산율을 급격하게 떨어뜨린 것은 바로
결혼과 엄마가 되는 것은 지연시키는 여성들의 사심, 자신의 교육 수준과 경력을 발전시키려는 여성의 욕망, 낙태를 합법화한 여성들의 고집, 그리고 '여성해방' 일반이라며 잘못을 뒤집어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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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들은 재빨리 와텐버그의 출산 부족 슬로건을 채택하고는 불길한(그리고 인종주의적인) 어조로 "문화적 자살"과 "유전적 자살"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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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성들은 백인 기혼 여성들이 아이를 갖기를 바라는 만큼이나 흑인 싱글 여성들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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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미 밝혀졌듯이, 사회과학자들이 싱글 여성의 정신 건강에 대한 확인한 사실은 단 한 가지다. 그것은 바로 고용이 싱글 여성의 정신 건강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1983년의 획기적인 인생 흔적 연구는 싱글 여성에게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은 부실한 결혼 가능성이 아니라 부실한 고용 상태임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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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이건 생산직이건 직장 여성은 주부보다 우울증을 더 적게 경험한다. 그리고 도전적인 업종에 종사할수록 심신의 건강은 더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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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우울증이 세 배 더 많다고 보고되었다. 하지만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수집한 역학 표집 지역의 데이터에 따르면
'우울증 격차'는 2 대 1 이하로 줄어들었다. 사실 일부 종적인 검토에서는 우울증 격차가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다. 우울증 격차가 축소된 데는
여성의 정신 건강 향상도 약간 영향을 미쳤지만, 그보다는 남성의 정신 건강 하락이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했다. 역학 연구자들은 2, 30대 남성 사이에서 특히 우울 장애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여성의 불안 수준은 감소했지만 남성들의 불안 수준은 증가했고, 여성들의 자살률은 1960년대 정점을 찍은 뒤 하락 중이지만 남성의 자살률은 늘고 있었다. 자살 기도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빨리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남녀의 자살 기도율 역시 수렴 중이었다. 여성운동이 여성들을 우울하게 만든 것은 아닐 수 있지만 많은 남성들을 괴롭힌 것은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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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의 '고용의 질 조사'에 대한 1986년의 한 분석에서는 "남성들은 맞벌이를 신분 하락으로, 여성들은 신분 상승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직장 여성의 남편들은 주부를 아내로 둔 남성보다 심리적인 고통이 더 크고 자존감이 낮으며 우울증을 더 많이 겪었다. "평등주의적인 생활양식이라는 장식 이면에는 시간만으로 치유할 수 없는 남성들의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고 이들은 결론지었다. 이들에 따르면 "개인의 평가라는 측면에서는 젠더 평등이라는 현대적인 수식어보다는 관례적인 남성성의 기준들이 아직 더 중요"한 게 사실이다. 미시건 대학교, 일리노이 대학교, 코넬 대학교의 연구자들이 팀을 이루어 진행한 역할 관련 스트레스에 대한 1987년의 연구 역시 이와 동일한 관계를 발견하고서 남성의 심리적 행동은 아내가 일을 하는 순간 크게 위협받는 듯하다고 밝힌다. 이들은 "젠더 역할 변화에 대한 기본 연구들이 남성은 무시한 채 여성에게만 집중되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 같은 결과는 이런 강조가 잘못되었고 여성의 역할 변화가 남성의 삶과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3장 [역사] 반격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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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가 앤 더글러스는 "다른 유형의 '진보'와는 달리 우리 문화 내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은 항상 이상하게 원상회복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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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사학자 데일 스펜더는 "남성들이 타고난 전통을 발판으로 꾸준히 전진하는 동안, 여성들은 반복되는 유실과 발견의 순환 속에 갇혀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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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성들이 역사를 가로질러 진보해 온 모습을 정확히 기록한다면 그 고리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자유의 선을 향해 좀 더 가깝게 움직이는, 한쪽으로 약간 치우친 나선형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이 나선형은 결코 목적지에 닿지 못한 채 무한을 향해 나아가는 수학적인 커브와 유사하다. (미국) 여성들은 몇 세대를 끝없이 돌고 있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 채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가까워지기만 하는 이 점근성 나선에 갇혀 있다. 혁명은 매번 자신이 그녀를 이 궤도에서 해방시켜 줄, 그녀에게 마침내 완전한 인간의 정의와 존엄을 인정할 '그 혁명'이 되겠노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늘 나선은 결승선 바로 앞에서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간다. 늘 (미국) 여성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한다, 조금만 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무대 위에 오를 시간이 아직 좀 남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심지어 그녀는 강압으로 인한 지체를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거나 자랑거리로 여기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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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성은 자신을 대중보다 더 높은 지위로 승격시켜 주는 가문의 문장을 내세우지 못할 경우 자신이 남성이라는 사실 자체를 일종의 족보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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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 신부'로 (미국) 식민지에 첫발을 들인 (유럽의 백인) 여성들은 버지니아로 수송되어 운송 가격에 독신남들에게 판매되었다. 신부는 '합의하에 판매'되었다는 이유에서 이 거래는 노예 사태가 아닌 선택으로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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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투표권을 쟁취하고 소수의 주에서 입법기관이 여성에게 배심원으로서의 의무를 부여하고 동일임금법을 통과시키자 페미니즘에 대한 또 다른 역습이 개시되었다. 미국 전쟁부는 재향군인회와 애국여성회의 지원 속에 여성운동 지도자들을 상대로 빨갱이 사냥을 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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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여성 참정건 운동가들을 헐뜯었다. 잡지의 기고가들은 페미니즘이 '여성의 행복을 파괴'한다고 조언했고, 대중소설은 '직장 여성들'을 공격했고, 성식자들은 '여성 반란의 유해함'을 질타했고, 학자들은 페미니즘이 이혼과 불임에 기름을 끼얹는다고 비난했고, 의사들은 산아제한이 '정신이상, 결핵, 브라이트 병, 당뇨, 암의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잡지의 작가들은 젊은 여성들이 더 이상 "그 모든 페미니즘 소동"에 시달리기를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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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기간 동안) 여성의 노동에 갈채를 보냈던 고용주들은 이제 직장 여성들이 무능하거나 '태도가 불량'하다며 비난했다. 그리고 남성보다 75퍼센트 더 많은 비율로 여성들을 해고했다. 조언 전문가들은 뻔한 경고로 서점을 메웠다. 교육과 일자리는 여성들에게 여성성을 빼앗아 가고 결혼과 모성을 부정하게 만든다, 여성들은 고용으로 인한 '피로'와 정신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보육 시설을 이용하는 여성들은 이기적인 '모피 코트를 두른 엄마들'이다 등등. 여기에 꼬리를 물고 아이비리그의 또 다른 결혼 연구가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코넬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대졸 싱글 여성이 결혼할 가능성은 65퍼센트뿐이었다. ≪선데이≫에서 발행하는 잡지인 ≪디스위크≫는 여성 독자들에게 대학 졸업이 "여러분이 노처녀가 될 가능성을 폭증하게 하므로" 조심하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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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여성의 권리 옹호자들은 정치적 폭풍이 형성되고 있다는 신호를 다시 한 번 지적하려 했다. 1948년 수전 앤서니 4세는 여성운동을 "쓰러뜨리려는" 움직임이 계획 중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인적자원위원회에서 여성자문위원회의 대표를 맡았던 마거릿 히키는 "은밀한 방법들과 날조된 변명들로 이루어진 작전"이 여성들을 정부 내 고소득 일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대두분의 여성운동 집달들은 자신들의 대의를 배신했다. 얼마 가지 않아 히키 자신부터가 "낡고 이기적이며 공격적인 페미니즘의 시대는 갔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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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페미니즘적 광기를 자극하고 지속시킨 것은 여성의 가정으로의 후퇴가 아니라 바로 이런 여성의 수그러들 줄 모르는 직업 시장으로의 유입이었다. 현실에서는 아홉 시부터 다섯시까지 일하는 여성들이 오히려 고분고분한 집순이이자 노리개라는 문화적 환상을 고조시켰던 것이다. 문학 비평가 샌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가 전후 시대에 대해 논평한 것처럼 "뇌를 써서 돈을 버는 여성들이 늘어날수록 소설, 연극, 시에서 여성을 육체밖에 없는 존재로 재현하는 남성들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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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크기를 제한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 여성의 상황을 개선시켰지만, 이는 임신부의 행동을 규제하고 자녀 없는 여성에게 낙인을 찍는 보수적인 사회 캠페인에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반격의 시기가 되면 산아제한은 더 어려워지고, 낙태에는 족쇄가 채워지며, 이를 활용하는 여성들은 '이기적'이거나 '비도덕적'이라는 말로 매도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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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전개된 여성의 권리에 대한 공격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지점은 언급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인지 모른다. 언론은 점점 늘어나는 반격의 증거들을 대체로 무시했고 오히려 반격이 날조해 낸 '증거들'을 홍보했다. 미디어는 여성의 진보를 결혼 좌절과 생식 실패에 연결시키는 결혼과 불임에 대한 거짓 데이터를 유통시키거나, 늘어나는 불평등과 부정의를 감추는 잘못된 정부 미 민간 보고서를 그대로 보도했다. (가령 성별 임금 격차가 갑자기 줄어들었다는 노동주의 주장이나 직장 내 성희롱 감소세에 있다는 평등고용기회위원회의 주장, 혹은 강간율이 정체되었다는 법무부의 보고서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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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간 현대의 대중문화가 펼쳐 보인 잘못된 여성상은 여성의 현실을 가리면서 오히려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거대한 벨벳 커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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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잘못된 전선으로 인해 여성들은 그 거울의 타당성을 의심하고 비반사면이 가리고 있는 것을 들춰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대량생산된 거울의 이미지에 자신이 부합하지 않는다며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반격이 힘을 얻게 되자 많은 여성 집단과 개별 여성들은 맞서 싸우면서 그 힘을 폭로하는 대신 날조된 환경 속에 섞이려고 하다 덫에 갇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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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여성은행에서부터 여성을 위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10년 전에 설립된 페미니즘 성향의 기관들은 중립적인 느낌의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들의 의도를 위장했고, 정계의 여성들은 이제는 여성의 권리가 아니라 '가족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주장했으며, 아이비리그 출신의 직장 여성들은 대중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감춰버렸다. 많은 여성들이 불의를 공격하는 대신 거기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화내는 대신 침울해졌고, 단결하기보다는 갈가리 쪼개져서 자신의 고통과 좌절을 내부로 돌렸는데 때로 이는 지극히 육체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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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명 여성들은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 이 시대를 풍미하는 조언들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법이 아니라 자신의 기대치를 낮추고 더 큰 권력에 굴복하는 방법을 배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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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여성들이 느끼는 불만과 상실감은 행방이 빨라서가 아니라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혁명이 잦아들면서 실제 진보의 가능성이 다시 한 번 차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많은 여성들이 낙심과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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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 사회적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안전한 은신처를 찾는 것에 어쩔 수 없이 더 끌리게 된다. 거대한 남성 문화와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특정한 남자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더 긴요한 일이 된다. (페미니즘의 모든 강력을 조용히 지지하고 있더라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신중한 자기 보호 전략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조건에서는 사회 부정의를 치유하려는 충동이 부차적으로 미뤄질 뿐만 아니라 잠재워질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 작가 수전 그리핀의 말처럼 "혼자라고 느끼는 상태에서는 억압을 알고 있어도 침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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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성이 일생을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할 필요가 없게 되면 남성들은 여성의 사랑과 힘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고,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야 할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베티 프리던, ⎡여성의 신비⎦
프리던의 고전 마지막 쪽에 나오는 이 장쾌한 선언은 한 번도 실현되어 보지 못한 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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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도리스 스티븐슨은 1900년도 초 진 빠진 어조로 "해방된 남성은 우리의 희망과 영원한 염원에서 튀어나온 신화라고 확신하다"고 말했다. 마거릿 컬킨 배닝은 1935년 여성의 권리에 대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성과가 있었고 ...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남성들의 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말없이 크고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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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회조사관들은 '남성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항상 '여성 문제'에 쏟던 열정의 10분의 1도 쓰지 않았다. 남성성에 대한 연구는 서가에서 보기 드물다. 문헌을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우리는 남성성이 여성성에 비해 덜 복잡하고 덜 짐스러우며, 유지하는 데 손이 덜 간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의 상태에 대해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연구들은 이를 절대 장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이런 연구들은 남성성이 연약한 꽃, 꾸준히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영양을 공급해줘야 하는 온실의 난초와 같다고 맑힌다. 사회 연구자 조지프 플렉은 "성 역할의 위반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거릿 미드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남성다움은 절대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는 매일 유지하고 다시 획득해야 하는데, 그것을 규정하는 데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는 양성이 진행하는 모든 경기에서 여성을 이기는 것이다." 남성성의 꽃잎을 가장 처절하게 짓뭉갠 것은 페미니즘의 가는 빗방울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는 단 몇 방울도 폭우로 인식된다. 대단히 미미한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기이할 정도로 과장된 남성들의 대응에 당혹스러워하는 많은 사회학자 중 한 명인 윌리엄 구드는 "남성들은 존중, 혜택, 기회를 아무리 조금만 잃어도 큰 위협으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여성들의 힘이 워낙 드세져서 내 집 안에서 우리의 독립이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공공연하게 짓밟히고 깔아뭉개지고 있다." 기원전 195년 로마 여성들 몇 명이 여성들은 전차를 타지도, 색깔 있는 옷을 입지도 못하게 금하는 법을 폐지하기 위해 나서자 카토는 이렇게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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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는 미국 여성에 대한 특별 호에서 나약한 미국 남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1956년의 이 기사는 여성들이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에 "오늘날의 미국 남성들이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경향을 보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재계에서는 ≪월스트리트저널≫이 1949년에 "여성들이 득세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룩≫은 "여성의 지배"가 도래했다며 탄식했다. 이 잡지는 여성들이 처음에는 주식시장을 장악하더니 이제는 "권력을 휘두르는 임원직"으로 진출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1980년대에는 우익 목사인 제리 폴웰에서부터 좌익 시인이자 강연가인 로버트 블라이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을 막론하고 남성 성직자, 작가, 정치인, 학자들이 미국 남성성의 쇠락에 집착하면서 남성들의 불안이 다시 한 번 반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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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그랬듯 이런 식으로 반격이 진행되는 동안 여성들의 근근한 진보에 대한 터무늬없는 과잉 반응이 종종 폭넓게 나타난다. 아직도 고위 경영진은 변함없이 남성 일색인 상태에서 한두 명의 여성들이 승진만 해도 많은 직장 여성들은 다시 남성 동료들로부터 "여자들이 득세하고 있다"는 불평을 듣게 된다. 뉴스룸에서 남성 기자들은 여성과 소수자들만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판에 박힌 불평을 늘어놓는다. 여성과 소수자의 수가 사실상 줄어들고 있다는 발표가 종종 나오는데도 말이다. 문학 교수 캐럴린 하이블런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남자들이 정색을 하고서 평등한 임금을 요구하는 일부 여성들을 가리켜 대학을 뒤집어엎고 자기들이 대학을 경영하려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밝혔다. 보스턴 대학교에서는 존 실버 총장이 영문과가
"망할 가모장제"로 넘어갔다고 씩씩거렸다. 영문과 교수 스무 명 중 여성은 여섯 명뿐이었는데도 말이다. 한 준장은 페미니스트들이 펜타곤(미합중국의 국방부 청사)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고 투덜댔다. 군 인력 중 여성은 10퍼센트도 되지 않았고 이들은 페미니스트라고 보기도 어려웠으며 대부분 말단직이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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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켈로비치의 수석 부사장 수전 헤이워드는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들 저소득층 남성들은 아버지들만큼 많이 벌지 못하고 여성운동으로부터 가장 많은 위협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여성의 역할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20퍼센트의 인구를 대변한다. 이들은 취직이 어려웠고 취업한 뒤에도 해고 1순위였으며, 저축도 없고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다른 설문 조사들 역시 이런 관찰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1980년대 말경 '미국 남성 여론 지표'는 일곱 개의 인구 집단 중 가장 큰 집단이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임을 확인했다. 이 24퍼센트의 인구 집단은 주로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고, '화에 차 있고', 자신들은 변화하는 사회의 '낙오자'라고 확신하고, 페미니즘에 가장 적대적이다. 하지만 이들 남성만을 지목하여 삿대질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반격의 공개적인 의제를 설정하고 확산시켜 온 것은 도전자들보다 훨씬 많은 부와 영향력을 가진 남성들, 미디어와 재계, 정계를 주름잡는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거나 교육 수준이 낮은 남성들은 반페미니즘 태제의 창시자들이라기보다는 수용자들이다. 이 메시지에 가장 취약한 저소득층 남성들이 반격의 나팔소리를 듣고 이를 정신 사나울 정도로 높은 볼륨으로 재생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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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경제적 희생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미래를 훔쳐 달아났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절도범이 여성이라고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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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남성들 중 일부가 보기에 분명 자신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낸 것은 여성인 것 같았다. 3만일 여성의 평등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있는 것이라면 이런 남성들은 그 대가를 자신들이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의 많은 기간 동안 미국 대통령은 이런 관점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레이건은 1982년 경제 연설에서 "직업 시장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고, 숙녀들, 뭐 난 아무도 불쾌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일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실업은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큰 침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실에서 지난 10년의 경제적 고통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에게 지나치게 큰 피해를 강요했다. 그리고 레이건 재임 시절 직장 여성들의 소위 성과라는 건 남성들의 손실과는 눈곱만큼과 관계가 없었다. 여성들이 레이건 시절의 1.56퍼센트라는 연평균 일자리 성장률에서 남성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채 가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건 오직 이런 새로운 취업 '기회'를 두고 여성에게는 남성 경쟁자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이 새로운 일자리의 약 3분의 1이 빈곤선 이하였는데, 이는 10년 전의 4분의 1보다 늘어난 수치다. 그리고 유통업과 서비스 산업 내의 하찮은 '여성' 서비스직이 1980년대 전체 순 일자리 성장의 77퍼센트를 차지했다. 소위 일자리 성장은 시급 2달러짜리 저임금 노동, 최저임금 이하의 가정 기반 노동, 판매원, 미래에 대한 그 어떤 보장도 없고 수당도 없는 패스트푸드점 직원 같은 부문에서 일어났다. 이런 자리는 남성이 여성에게 패배하는 곳이 아니다. 이런 자리는 남성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여성들은 남자가 아예 없거나 실직 상태거나 불안정 고용 상태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받아들이는 생애 막다른 곳에 있는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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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을 신경 써야 하는 남성이 문제에 휘말렸을 때 여성, 특히 페미니스트는 전천후 희생양이 되어 범죄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이는 종종 부조리극으로 막을 내렸다. 군 장교들은 부패에 찌들고 무기를 낭비하는 일이 넘쳐나서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국방부의 문제는 "전투 효율을 떨어뜨리"려는 페미니스트들과 "미국 군대의 여성화" 때문이라며 성토했다. 분대 지휘관들은 여성 장교들의 임신 (이는 어떤 시기이든 등록된 총사병의 1퍼센트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은 무장 병력의 "단일 사안 중에서 가장 큰 예고된 문제"라며 펜타곤에 조언했다. 매리언 베린 워싱턴 D.C 시장은 코카인 문제로 위신이 실추된 것은 어떤 "망할 년"때문이라고 비난했고 목소리가 큰 지지자 중 한 명인 작가 이쉬마일 리드는 한술 더 떠서 나중에 이 사건 전체를 페미니즘의 음모로 재구성했다. 조엘 스타인버그(입양아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으로 유명세를 탄 인물)의 변호사는 이 악명 높은 아동 학대자가 "히스테릭한 페미니스트들" 때문에 파멸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햄실이 바르지 못했던 올리버 노스 대령은 이란-콘트라 사건(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가 레마논에 억류되어 있던 미국 인질을 석방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대금 일부를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에 지원한 사건. 1986년 레기너 정부의 외교 스캔들로 손꼽힌다.)에서 자신이 겪게 된 법적인 문제들은 모두 "극도로 호전적인 오만한 페미니스트 부대" 탓이라고 주장했다.
1부 신화와 회상 [신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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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대중문화에서의 반격1 [미디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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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대중문화에서의 반격2 [TV] [패션] [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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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반동의 기원 [선전] [정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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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반격의 결과물1 [심리] [일터]
4부 반격의 결과물2 [신체]
첫댓글 오 이거보니까 책 읽고 싶어진다 공유 고마워 여시
책 알려줘서 고마워 구매해서 다 읽어봐야겠어!!
와 이 책 진짜두껍던데 알려줘서 고마워!! 그리고 글도 정성스레 써줘서 넘고마워!! 이 글에 유독 조회수도, 댓글도 적은게 이미 백래쉬가 만연한거같기도해서 씁쓸
와 그 두꺼운 책을 이렇게 정리해줘서 고마워 쭉 읽어 보는데 한남이냐 양남이나 찌질한거 여자탓하는거 똑같다 ㅋㅋ 성별 문제가 맏다.,,ㅎ 유사 인류..
사놓기만 하고 못 읽고 있었는데... 읽으면서 여시 글 또 보러오고 그래야겠다 고마워!!
와 지금부터 정독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