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날개(부제:詛呪)
- 죽지 못해 살게 될 그대를 위한 레퀴엠.
러시아의 한적한 골목.
새하얀 웨딩드레스에 보기 싫게 잔뜩 튄 흙탕물 따위는 신경쓰이지 않는 다는 듯
쓰레기 더미 옆에 주저 앉아 숨을 고르는 여인.
면사포를 이리 저리 뜯더니 쓰레통에 그대로 버려버리고는 큰 배낭에서 바지를 꺼내어 드레스 안으로 입는다.
누군가 오지는 않을까 시선을 이리 저리 굴리던 여인은 웨딩드레스마저 부끄럽지 않다는 듯 휙 벗어 던져 버리고
박스티 하나를 걸친 채로 모자를 눌러쓰고 서둘러 골목을 벗어난다.
" 핀이 덜 빠졌잖아. 젠장… "
모자에 눌린 핀이 두피를 살짝 긁은 건지 머리카락에 잔뜩 얽힌 핀을 빼내고
남은 핀이 없나 하고 검은 웨이브가 진 머리를 휘젓는 여인의 손길에 짜증이 잔뜩 묻어난다.
더운 여름날, 라떼 한 잔씩 손에 들고 환하게 웃으며 걷는 연인들의 모습에 쓴 웃음을 짓던 여인은
큰 가방을 이리 저리 뒤적여 핸드폰을 찾아내 전화를 건다.
" 성공했어, 뒤지게 맞기 전에 도망쳐 왔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
- 사랑해, 자기!
" 꺼져, 나 피곤하니까 욕조에 물 좀 받아놓고. "
- 오냐. 빨리…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린 여인은 무더운 날씨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처음 보는 신기한 거리에 이리 저리 고개를 돌리며 구경하는데,
멀리 보이는 골목 끝에서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오고 있다.
흠칫 놀랐지만 머리를 틀어 묶고 모자를 푹 눌러쓴 여인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지나쳐간다.
제발 그냥 지나가. 하긴, 붕어 대가리로 날 알아볼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냥 쌩까고 가라.
너네한테 걸리면 오늘부로 내 인생 쫑나는 거니까 그냥 저 멀리 나가 떨어져줘라.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사내들을 지나친 여인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사내들 뒤로 가운데 손가락을 올린다.
" 앞으로 마주치지 말자. 피식. "
ː
딩동- 딩동-
- 화진이냐?
" 엉. "
모자를 벗으며 룸에 들어선 화진은 문을 열며 웃는 남자에게 슬그머니 웃어보이면서 가방을 던진다.
흡족히 웃어보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 남자는 화진의 옆으로 와 어깨에 손을 두르며 입을 연다.
" 수고했어! 피곤하지? 들어가서 씻어! 물 받아 놨어! "
" 오다가 그 새끼들 마주쳤어. "
" 진짜?! 그래서? 그래서! "
" 이렇게 온 거 보면 모르냐. 돌대가리들이 이 얼굴을 기억하겠냐고. "
" 다행이다. 아참, 드레스는? "
" 버렸어. "
버렸다는 말에 울상을 짓던 남자는 '아, 그거 되게 예뻤는데…'라며 아쉬워했지만
곧 인상을 피고 소파에 앉아 가방을 뒤적여본다.
" 요번엔 꽤 괜찮은데… "
" 주원아! 가운 좀 부탁해! "
" 오냐. "
머리를 털며 TV 채널을 돌리던 화진은 주원이 가져다 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가방을 쳐다본다.
그러다 가방 옆 전화기 메모지에 써있는 글씨에 눈길이 닿고, 조심히 들어 읽는 순간.
" 뭐야, 이건. "
" …. "
" 신주원, 이리 앉아. "
" …. "
주원은 레몬색 머리를 이리저리 뒤적이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화진의 시선을 피하고,
주스 잔을 탁자 위에 신경질 적으로 내려놓은 화진은 메모지를 들어보이며 소리친다.
" 뭐냐구, 이거! …선주가 와서 또 협박했어? 그런거야? 말 좀 해봐! "
" …커스가 왔었어. "
" 뭐…? "
" 직접 왔었어. 그가 널 찾고 있어. …메모에 써있는 날짜. 그 시간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
" …. "
" 아저씨를 죽이겠대. "
" …! "
" 잭 아저씨가 갇혀있어, 커스의 저택에. "
화진은 밀려오는 두려움과 불안함, 그리고 잭에 대한 미안함에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이미 고개를 떨군 주원은 아무런 힘도 없이 그대로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로 있을 뿐이었고,
지난 날의 기억이 필름처럼 지나가는 걸 막지 못한 채 괴로워 하는 화진을 그대로 볼 수 밖에 없는 자신에
괴로웠지만 내색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 …내가 대신 갈까. "
" 무슨 말이야. "
" 커스는 너와 날 동시에 원하고 있어. …둘 중 하나가 돌아가야 나머지 하나가 편해. "
" 그래서. "
" …커스에겐 내가 갈게. "
" 미쳤니, 너?! "
" 그럼! 그럼 네가 가려고? 그래서! 가서 어쩌려구! 너, 그 날 우리가 어떻게 도망쳤는 지 잊은 건 아니지? "
" 너도… 너도 가면 다신 못 나오잖아… "
울먹이던 화진은 이내 울음을 터뜨린채로 수없이 많은 눈물을 쏟아내고,
그런 화진을 안은 채 함께 눈물 짓던 주원.
이내 마음을 먹은 듯 일어나선 방에 들어가 가방을 가지고 나온다.
" 너 미쳤어! 미쳤다구! "
" …내가 커스의 곁에 있으면 적어도 너만은 안전할 수 있으니까 난 괜찮아. "
" 넌… 넌 커스를 몰라! "
" …. "
" 커스는 널 이용해 먹을 대로 이용하고 날 또다시 잡아갈거야! 날 또 가둘거라구! "
" …. "
" 제발… 제발 나 혼자 두고 가지마…. 이제… 이제 남은 건 너 뿐이잖아. 난… 난 이제 혼자잖아! "
떨리는 몸을 겨우 이끌고 주원의 옷 한 자락을 겨우 잡은 화진.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더 꽉 쥐어보인다.
한참을 서로 부둥켜안고 이 빌어먹을 세상에 원망하던 그 때.
" 눈물 겨운 장면이군. …오랜만이야, 이브. 그간 더 예뻐졌군. "
" 더러운 손 치워! 약속한 날짜까지 갈거야. 그러니까 당장 내 눈에서 꺼져! "
문을 잠그지 않았던 건지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낯익은 걸음 소리가 화진과 주원의 귀를 자극했고,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진의 몸은 더욱 떨려오기 시작했다.
하얗고 고운 손으로 쓰다듬는 커스의 손을 매섭게 쳐낸 화진이 더욱 많은 눈물을 쏟아내며 소리친다.
"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지금 나와 함께 가지. "
" …! "
" 너도 함께 가자, 하인츠. "
" …내가 다시 복귀할테니 이브는 그냥 둬. "
" 하하하… 하하하… "
" …. "
" 하인츠, 네 머리에 확실히 박아둘게 있다. "
주원의 레몬색 머리칼을 손아귀에 한 움큼 쥔 커스는 귓가로 입을 가져가 속삭인다.
" …이브는 내 여자다. "
" …! "
" 최고의 스나이퍼가 되어 돌아오겠다며 떠난 네가
이브와 함께 있다는 것에 널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그렇게 좋아하던 총으로 한 방에 보내줄까. 날이 가고 밤이 새도록 굶겨 잔뜩 초췌해진 모습으로 마지막을 장식할까.
사지를 갈기 갈기 찢어서 저 까마귀의 먹이로 줄까. 아니면… 이브의 손으로 직접 널 죽이게 할까… "
" …! "
상황과 어울리지 않은 상냥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말하는 커스에 두려움이 밀려와 아무말도 못하고 떨고만 있는 화진.
그런 화진을 품에 안은 채 일어선 커스는 뒤 따라온 사내들에게 손짓을 하고 이내 주원은 사내들에 휩싸여 사라진다.
" 주원아! 주원아! … 주원일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
" 죽이진 않으마. 아직 쓸데가 많은 놈이니. "
" 제발… 제발… 지난 2년간 난 행복했어!
당신에게 있었던 시간도 행복했지만 당신은 내 자유를 빼앗고 날 가뒀잖아! "
" …. "
" 난 당신 곁에선 숨을 쉴 수 조차 없어. 가슴이 답답하고 메어와서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아! "
" …. "
" 당신은 내 모든 걸 빼앗아갔잖아. 아버지도! 선주도! 그리고 주원이까지! 뭘 더 바래! "
" 전부 널 내 곁에 두기 위한 수단이었다. …더 이상 쓸데 없는 발악은 그만 하고 돌아와. "
날 곁에 두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을 망쳐놓고, 죽이고. 그런 거였어?
아버지를 죽이고! 선주를 엉망 진창으로 망쳐놓고!
날 내놓지 않겠다던 바텐더를 그렇게 보낸 게 그거였어?
…이건 사랑이 아니야. 이건 그저 어린애의 투정밖에 안 된단 말야!
" 날 사랑하니? "
" …. "
" 날 사랑하냐구. 대답해 봐. "
" …. "
" …당신은 날 사랑하는 게 아냐.
단지 갖고 놀던 인형을 누구에겐가 뺏겨서 다시 찾으려하는, 그런 맘 뿐이라구! "
" 더 이상은 날 시험하지마라. …2년 동안 난 변했어.
날 그 전으로 돌리려거든 계속 지껄여봐. "
커스를 밀쳐낸 화진은 소파에 앉아 벨보이를 불러 보드카를 주문하고,
머릿 속에서 자꾸만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지우려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그런 화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커스.
미안한 표정이 얼굴이 가득 서리지만 화진이 눈을 뜨고선 자신을 쳐다보자 표정을 굳힌다.
" 당신이 날 처음 안던 그 날. "
" …. "
" 난 당신만이 내 햇살이라고 생각했고, 당신은 날 지켜줄 거라고 믿었어. "
" …. "
" 날 원한 것도 당신이었고, 그 곳에서 날 꺼낸 것도 당신이었으니 날 소중하게 생각해줄 거라고 믿었어. "
" …. "
" 그거, 나 지금도 믿어. "
" …. "
" 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해.
다시 당신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
" …! "
" 당신이 내 자유를 빼앗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다시 주원이의 손에 총을 쥐게 하지 않는 다면. "
ː
회상(回想)
" 하인츠. "
" 응. "
" 집이 쓸쓸해. "
" 앞 뒤 다 잘라먹고 말하지 마. 난 머리 안 좋아서 못 알아 듣는단 말이다. "
" …집에 여자 하나만 데려다 놔. 밥 잘하고, 목소리 예쁜. "
" 목소리는 왜? "
" 아침에 날 깨워야 할텐데, 너같은 목소리면… 아침이 괴로울거야. "
" 딱 나같은 사람이 적임자네! "
" 피식. 글라디 올러스란 바에서 경매가 진행될거야. 저녁 7시에.
이름은 화진. 나이는 18살이고, 한국인이야. "
" 그거면 충분하지. "
러시아 최고의 스나이퍼 하인츠. 독일계 한국인으로 보스인 커스의 오른팔.
스나이퍼 하인츠와 보스 커스가 지배하는 마피아계는 생각보다 암울했고, 어두웠다.
그런 곳에 들어올 여자가 어딨겠냐며 그냥 사업하는 남자라고 말해두겠다 했던 하인츠였지만
극구 반대하며 " 마피아 보스라고 확실히 말해둬. " 라는 커스의 말에 고개를 절레 절레 젓는다.
<글라디 올러스>
꽃의 이름이기도 한 이 곳은 러시아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바(Bar)다.
한가지 다른 바와 이 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경매가 있다는 것.
최고의 값을 부른 사람이 최고의 여인을 얻는 경매.
이런 바를 조직의 일과 부모님 외엔 관심이 없는 커스가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지만
이내 밑에서 자신을 데리러 올라오는 웨이트리스에 의해 걸음을 옮긴다.
" добро пожаловать. "
(어서오세요)
" From the stage it entrusts with the near place and The vodka first cup give to me "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로 부탁합니다. 보드카 한 잔 갖다 주시구요.)
" Come with this piece. "
(이 쪽으로 오십시오.)
러시아에 온 지 3년이 조금 넘었지만 아직은 영어가 익숙한 지 멋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던 하인츠는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이제 곧 시작할 경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떠오른 것이 이 경매가 어느 나라 말로 진행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
싱긋 웃으며 아까 자신을 안내한 웨이트리스에게 눈짓을 하자 총총 걸음으로 걸어오는 그녀.
" What this it needs? "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 Is this auction advanced with which country language? "
(이 경매가 어느 나라 말로 진행되나요?)
" Only Russian it knows until the foreigner, in order to attend it is advanced with English."
(러시아인뿐아니라 외국인까지 참석하기때문에 영어로 진행됩니다.)
" It is like that. "
(그렇군요.)
" There isn't a thing which is more necessary? "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 It will entrust the vodka first cup than to the bedspread. "
(보드카 한 잔 더 부탁할게요.)
" Only short time to wait.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웨이트리스의 주머니에 1만 루블을 팁으로 넣어준 하인츠는 주위를 둘러본다.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무대 위에 올라와 자신이 낙찰 되기를 기다리는 이 경매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로 와 앉고
자세히 바라보니 사무실을 자주 찾던 정치인부터 돈 많은 여자들까지 잔뜩 흥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바텐더 중 하나가 무대의 옆으로 올라와 마이크를 잡고 경매의 시작을 알린다.
" Ladies and Gentleman everybody it waited long!
From now under starting keyss it buys an auction the attention do as a favor. "
(신사 숙녀 여러분, 오랫 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경매가 시작되겠사오니 모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호명하는 번호에 따라 올라오는 남자와 여자.
취향대로 고르라는 듯 1번부터 10번까지 한꺼번에 올려보낸 웨이터는 1번부터 소개를 시작한다.
" The name of the first woman Lucy. Her age is Russian with 16 flesh.
Wants the minute when holds the hand. "
(첫번째 여성의 이름은 루시입니다. 그녀의 나이는 16살로 러시아인 입니다.
원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하인츠는 바텐더의 말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고작 16살밖에 안된 소녀가 이런 경매에 나와 저렇게 야한 옷을 입고 웃음을 팔다니.
곱상하게 생긴 소녀를 사려는 음흉한 남자들이 번호판을 들고 값을 매기기 시작한다.
" 10 callers, 3000 dollars! Compared to above it isn't? "
(10번 손님, 3천달러! 더 이상 없으십니까?)
사람의 몸 값이 3천달러라니.
10번이 누군가 고개를 돌리니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신사다.
" 쓸려면 팍팍 좀 쓰지. 3천 달러가 뭐야. 하여튼 있는 놈들이 더 해요. "
버릇처럼 튀어나온 한국어에 고개를 갸우뚱 하던 맞은편 테이블에 있는 여자가 싱긋 웃는다.
잘생긴 건 알아가지고.
속으로 조심히 읊조린 하인츠는 예의상 웃어주며 다시 무대로 고개를 돌린다.
벌써 9번째.
도대체 화진이라는 그 여자애는 언제 나오는 거야.
지루한 기색이 역력한 하인츠.
그런 하인츠에게 비장한 미소를 남긴 바텐더는 자신감이 가득찬 목소리로 외친다.
" Last they are 10 times! Name of this young girl Hwajin Who is a Korean!
Age wants with 18 flesh the minute when to write the number plate and a bidding misfortune."
(마지막 10번입니다! 이 한국 소녀의 이름은 화진입니다!
나이는 18살로 원하시는 분은 번호판과 입찰액을 적어주십시오.)
지루함을 느끼고 돌아나가려던 찰나, 귀에 정확히 들어오는 한 단어. 'Korean'.
뒤를 돌아보니 하늘하늘한 검은 원피스를 차려입고, 아랫 입술을 앙 다문 소녀가 관객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으켰던 몸을 다시 앉히고 무대를 바라보니 조금씩 떨려오는 소녀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보물은 맨 마지막에 나온다더니 이 소녀를 두고서 웃음짓던 바텐더가 떠오른다.
뒤를 돌아보니 쉴새없이 올라가는 가격들.
최고 낙찰가격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눈을 감고 기다리니 바텐더가 잔뜩 흥이 난 목소리로 말한다.
" 6000 dollars. Compared to it isn't? It was like that…"
(6천달러. 더 없으십니까? 그럼…)
낙찰을 알리려던 바텐더의 말을 끊는 목소리.
" 10000 dollars. "
(1만 달러.)
ː
달리는 차 안.
운전을 하는 하인츠는 슬금슬금 옆에 앉은 화진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사탕이 든 통을 찾아 화진의 무릎 위에 올려주며 입을 연다.
" 이름이…. "
" 장화진. "
" 아…. 18살이랬지? "
" 응. "
" 캔디 좋아해? "
" 응. 잘 먹을게. "
처음부터 반말을 하는 화진에 당황한 하인츠였지만 사탕을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에 웃어보인다.
아무 말 없이 창 밖을 바라보는 화진이 안쓰러웠던지 다시 대화를 시도하는 하인츠.
" 너를 산 건 나지만 앞으로 네가 모시게 될 사람은 내가 아니야. "
" 알아. "
" 어? 알아? "
" 당신이 누군지도, 지금 내가 누구한테 가고 있는 지도 알아. "
" …? "
" 하인츠 칼도르프. 독일계 한국인. 나이는 19세. 마피아 보스인 한국인 커스 로빈의 오른팔.
몇 일전에 정치인들과 마피아 조직에 관련된 인사들이 바에 들렸었어.
그 때, 내가 정치인 중 한 명의 시중을 들었었는데 바텐더가 그러더라구.
보스가 내가 경매에 나오는 날짜를 묻고 갔다고. "
자신의 신상명세를 자세히 꿰뚫고 있는 이 소녀. 아니, 장화진.
놀란 듯 자신을 쳐다보는 하인츠의 눈길에 고개를 돌리고선 말을 하는 화진.
" 난 러시아에서 10년을 살았어. 7살 때 입양 되서 살고 있지.
우리 양아버지가 미국계 러시아인인데, 꽤 오랫동안 마피아 조직에 있었거든.
아버지께 물어봤지, 당신과 보스인 커스에 대해서. "
" 그래?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 지 물어봐도 될까? "
" 잭. 로버트 잭. "
끽-하는 소음과 함께 도로변에 차가 세워지고 하인츠는 놀란 얼굴로 화진을 바라본다.
그에 반해 아무렇지 않게 사탕을 오도독 씹어먹는 화진.
" 왜. 나 배고파. 아무리 무서운 마피아 보스라도 굶기진 않겠지? 빨리 가자. "
" 지금 로버트 잭이라고 했니? "
" 응. "
" 스나이퍼 로버트 잭? "
" 저격수가 스나이퍼야? 그럼 그런가봐. "
화진은 어서 차를 몰아야 될 것 아니냐며 재촉했고,
아직도 반쯤 얼이 빠진 하인츠는 커스의 집에 겨우 도착했다.
무테 안경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소파에 눕는 하인츠.
그런 하인츠를 피식 웃으며 쳐다보던 화진은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한다.
주방도 둘러보고, 응접실도 둘러보고, 테라스에서 밖을 내려다보다 이내 위층으로 올라간다.
수많은 방 중에 유일하게 불이 들어와있는 한 곳.
조심히 들여다보자 서류를 읽고 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 거기 누구지. 하인츠냐? "
" …. "
단숨에 눈치 챈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화진은 발 뒤꿈치를 들고 조심히 복도를 걸어 가는데
가다가 발 앞꿈치에 무게가 너무 실려 앞으로 넘어져버린 화진.
쿵 하는 소리에 놀란 커스가 나와 보니 실실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원피스의 소녀.
" 화진? "
" 헤헤…. 잘 부탁드립니다. "
" 왜 그렇게 앉아있지? "
" 그게, 저…. "
" 뭐지? "
" 죄송한데요오…. 제가 발목을 삐어서 그런데요…. "
" 빨리 말해. 돌려 말하는 건 딱 질색이니까. "
" 저 좀 업어서 거실까지 데려다 주실 수 있으신가요? "
자신이 생각해도 황당한 말이었지만, 그래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자꾸만 찌릿찌릿해져오는 발목.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화진의 발목을 바라보던 커스는 인상을 찌푸린다.
단번에 화진을 품에 안은 커스.
얼굴이 붉어져 커스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화진.
쿵 소리에 놀라 올라와서 둘의 모습에 더 놀란 하인츠.
이것이 커스와 화진, 그리고 하인츠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