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외에 누구도 섬기지말라(인용은 정확하지않을것입니다. 취지상이라고 하고...)
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신도 섬기지 말라라는 말이 되나 봅니다.
물론 어떤신도 섬기지않는-주체적삶을 이야기할려면 야훼도 그안에 포함되어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아래 곧바로 고대인들이 생각했던 야훼의 진의를 목격하게 됩니다.
야훼는 <익명의 신성>으로 해석되고야 맙니다.
고대인의 신에 대한 개념이 그 논거가 되는데
신은 만질수도 없고 볼수도 없는 신의 이름조차 감히 부를수없는 체제밖의 신이라고 명명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알고있습니다.
고대일수록 신은 사람의 곁에서 사람과 동행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인격적인 모습을 한다는것입니다.
분석글의 저자는 체제라는 말을 상당히 교묘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외의 정치적성격을 내포한 신을 체제라는 묶음속에 두었는데
우리는 야훼마저도 그안에 포함될수있음을 잘알고있습니다.
요컨데 <하나의 신을 섬기라는 말은 다른 어떤이도 섬기지 말라는 의미가 된다고 합니다.
물론 그럴려면 하나의 신은 익명적신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피신앙자가 주체적자아를 획득했다 말할수있을것입니다.>
요부분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만...
그예가 바울이라는데는 상당히 유감일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신앙적 고백이요. 다른 사악한?말로 표현하자면 망구 지생각이라는 말입니다.
야훼에게 익명적 신성이 나타난 시기는 바빌로니아유수이후로 되짚어볼수있겠습니다.
사상은 물흐르듯 변하는것이고 살과 뼈가 덧붙여져 새로운 사상(예수사상 포함)이 잉태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신관은 당대의 바리세인들에게서도 -대부분 외면하지만-그꽃이 피어났었습니다.
사상은 늘 새롭게 조명되고 발전합니다.
바우님의 의견도 그가운데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과거자체가 왜곡되어서는 곤란하다 하겠습니다.
사실 야훼의 익명적 신성이 획득된 데에는 다른 많은 사상의 유입이 그원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솔직하게 어느부분은 어떤 사상을 참조했다고 말할수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신은 변신중입니다.
시나이산을 꼭지키고 있던 번개와 폭풍을 다루던 고집스런 신에서 다른신들을 흉내낸 웅대한 우주를 포함하고 삶과
죽음을 뛰어넘은 위대한 신으로 말입니다.
또한 그영웅적 신에서부터 이제는 개념적(비이원적 비인격신) 신으로까지...
첫댓글반가운 글을 발견하고 답변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 사이 또 하나 글을 남겨주셨군요. 기독교의 신이 변신중이라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최근에 <<요한복음>>을 다시 찬찬히 읽어봤는데, 이 짧은 한 책 속에서조차 하나님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 부분에서 예수의 말과 끝 즈음에서 예수의 말을 비교하면 분명하지요. 이것은 "지금까지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했지만, 이제부터는 너희를 친구라고 하겠다"는 예수의 말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또 한 편의 글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역사적 고증이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의 신이였던 초기 야훼 신앙이 노마드의 신이었다는 것은 학문적 근거가 있는 주장입니다. 또한 "익명의 신성"을 출애굽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출애굽기를 비롯한 토라가 정리, 기록된 것은 바빌론유수 이후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다윗 왕조 이전 야훼 신앙이 제가 말하는 "체제", 구체적으로는 왕권에 반대했다는 것은 사무엘기 상 8장에 기록된 전승에서 드러납니다. 심지어 야훼는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에 대해 민중이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까지 말하지요. 실제로 다윗 왕조는 떠돌이 신 야훼를 성전에 가두고, 야훼 신앙을 체제화, 제도화시킵니다.
저는 시편의 노래들을 볼 때면, 극명한 전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거기에는 체제를 수호하는 야훼를 찬양하는 노래와, 체제의 억압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노래가 뒤섞여 있지요. 야훼 신앙은 하나가 아닙니다. 예언자들은 체제화된 야훼 신앙에 대해 야훼의 이름으로 맞서 싸운 이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고증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사도들의 성경 해석은 뭔지 모르게 제멋대로입니다. 예를 들어 신들더러 "너희들은 신이다"라고 하는 시편 82편 구절을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다"라고 해석해버리지요.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주의 종"을 예수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렇죠. 앞의 글에서 잠깐 언급했던 다석 류영모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구절에서 "나"를 "자신"으로 해석해버립니다. 길, 진리, 생명은 밖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겠지요. 이런 해석들은 분명 문자적으로나 맥락적으로나 엉망진창이지만 언어의 여백과 균열 속에서 의외의 진실을 발견하게 합니다
물론 균형이 중요합니다. 창조적인 경전 해석은 학문적 방법이나 다른 기준에 의해 제한될 때 더 풍부한 의미를 드러냅니다. 단지, 저는 독선적인 교리가 그것을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곁에 있는 사람(플레시온)을 사랑하라" 이 두 가지 계명으로 예수는 율법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아마 팔레스타인 사막 토속신 야훼를 생각해낸 유대인들조차 스스로의 부모나 친구, 스승등 어떤 의지의 대상들을 모델로 야훼란 신의 이미지를 만들었을테죠. 그렇기에 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과 유대인의 관계등을 보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임금과 신하의 관계, 사회와 개인의 관계등을 대입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런면에서 성경은 꽤나 교훈적인 책에 속합니다. ㅎㅎ
첫댓글 반가운 글을 발견하고 답변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 사이 또 하나 글을 남겨주셨군요. 기독교의 신이 변신중이라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최근에 <<요한복음>>을 다시 찬찬히 읽어봤는데, 이 짧은 한 책 속에서조차 하나님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 부분에서 예수의 말과 끝 즈음에서 예수의 말을 비교하면 분명하지요. 이것은 "지금까지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했지만, 이제부터는 너희를 친구라고 하겠다"는 예수의 말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또 한 편의 글이 필요하겠지만..
나 이외의 신을 섬기지마라 하는말은 기독교가 눈에 보이지않는 여호와 신을 교주로 믿고 종교로 계속 이어간다면 이해가 갑니다.그러나 저 같은 놈은 아예 신을 인정 하지않으니 별 볼일없고....저는 현실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자이며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자 입니다.
언어화된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이해 정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인격신"이라고 하는 것은 인격인 인간은 그 내적 구조상 하나님도 인격으로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하나님 경험 또한 인격적입니다. 아빠같고, 엄마같고, 친구같지요.
저는 역사적 고증이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의 신이였던 초기 야훼 신앙이 노마드의 신이었다는 것은 학문적 근거가 있는 주장입니다. 또한 "익명의 신성"을 출애굽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출애굽기를 비롯한 토라가 정리, 기록된 것은 바빌론유수 이후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다윗 왕조 이전 야훼 신앙이 제가 말하는 "체제", 구체적으로는 왕권에 반대했다는 것은 사무엘기 상 8장에 기록된 전승에서 드러납니다. 심지어 야훼는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에 대해 민중이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까지 말하지요. 실제로 다윗 왕조는 떠돌이 신 야훼를 성전에 가두고, 야훼 신앙을 체제화, 제도화시킵니다.
저는 시편의 노래들을 볼 때면, 극명한 전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거기에는 체제를 수호하는 야훼를 찬양하는 노래와, 체제의 억압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노래가 뒤섞여 있지요. 야훼 신앙은 하나가 아닙니다. 예언자들은 체제화된 야훼 신앙에 대해 야훼의 이름으로 맞서 싸운 이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고증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사도들의 성경 해석은 뭔지 모르게 제멋대로입니다. 예를 들어 신들더러 "너희들은 신이다"라고 하는 시편 82편 구절을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다"라고 해석해버리지요.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주의 종"을 예수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렇죠. 앞의 글에서 잠깐 언급했던 다석 류영모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구절에서 "나"를 "자신"으로 해석해버립니다. 길, 진리, 생명은 밖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겠지요. 이런 해석들은 분명 문자적으로나 맥락적으로나 엉망진창이지만 언어의 여백과 균열 속에서 의외의 진실을 발견하게 합니다
물론 균형이 중요합니다. 창조적인 경전 해석은 학문적 방법이나 다른 기준에 의해 제한될 때 더 풍부한 의미를 드러냅니다. 단지, 저는 독선적인 교리가 그것을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곁에 있는 사람(플레시온)을 사랑하라" 이 두 가지 계명으로 예수는 율법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아~ 이래서... <꿈보다 해몽>이란 말을 조상들이 남긴 거군아...ㅎㅎㅎ... 정말 웃기는 야그넹...ㅋㅋ
바우선생은 완전 기독 중독자 입니다.눈에 보이지않는 電氣. 風 등등 과학적 증명으로 또 인간들이 의심없이 받아들이지만 아무것도없는 허공을 향해서 하나님이라고 중얼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육하원칙에의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요.인간과 인간사이에서 돈거래를 하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육하원칙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요.식사하기전에 하나님 감사 합니다 하는이유도 육하원칙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요.그리고 예수쟁이들은 왜 보이지도않는 여호와 개잡신을 입만열만 하나님 말끝마다아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육하원칙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요.
'하나님'을 '인간'으로 해석한다고 하셨어요.. ^^;;
아마 팔레스타인 사막 토속신 야훼를 생각해낸 유대인들조차 스스로의 부모나 친구, 스승등 어떤 의지의 대상들을 모델로 야훼란 신의 이미지를 만들었을테죠. 그렇기에 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과 유대인의 관계등을 보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임금과 신하의 관계, 사회와 개인의 관계등을 대입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런면에서 성경은 꽤나 교훈적인 책에 속합니다. ㅎㅎ
다들 한가지 오해하시는것들이 있습니다. 마땅히 종교인/신앙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나름의 정체성이라고 하는게 있습니다. 신=사람이라고요? 거짓말하시면 곤란합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기독교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않을테죠
하지만 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애초에 신이라는것 자체를 인간이 생각해냈으며 그 인간이 주변의 다른 인간들을 모델로 그 이미지를 생성한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설마 외계인을 모델로 만들지는 않았을테고 ㅎㅎ
미가님 당연하죠. 저의 지론중 천상의 것은 없고 지상의것을 모사한것 뿐이라고하는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종교인이란 천상의 것이 별도로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니라면 그는 진정 보통사람(종교가 없는 사람)이겠죠.
신이 사람이라는데 뭘 승계하고 자시고...그래도 기독교라는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