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북부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 산지가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북부에서는 여름 내내 백야(白夜)현상이 지속되는 나라. 노르웨이하면 과연 무엇이 떠오르는가. [상실의 시대]라고도 번역되어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나 그 소설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비틀스의 노래 ‘Norwegian Wood’ 정도가 아닐까. 또 1985년 ‘Take On Me’란 곡으로 전세계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노르웨이 그룹 아하(A-ha)를 기억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어쩐지 차갑고 어두운 이미지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노르웨이는 ‘어두움의 음악’ 블랙 메탈이 상당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나라다. 메이헴(Mayhem), 새티리콘(Satyricon), 고고쓰(Gorgorth), 이모틀(Immortal) 같은 블랙 메탈계의 정상급 밴드들이 노르웨이 출신이다. 그들의 음악은 암울하고 음침한데다가 광기 어린 듯 극악무도하게 내지르는 음악이다. 이제 소개할 노르웨이의 팝스타 파피움(Popium)은 그러나 앞서 말한 팀들과는 전혀 다른, 아주 듣기 편하고 멜로딕한 팝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다. 비틀스, 킹크스(Kinks)부터 오아시스(Oasis), 블러(Blur)까지 영국 팝의 전통적인 스타일에 영향 받은 아름다운 하모니와 코러스로 꽉 찬 기타 팝을 선보인다.
파피움은 항구도시 베르겐(Bergen)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비틀스 등 여러 밴드들이 배출되었듯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이자 가장 중요한 어항인 베르겐도 많은 록 그룹들이 탄생된 곳이다. 1990년대 초반 ‘베르겐 팝 웨이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포고 탑스(Pogo Tops), 바비 본즈(Barbie Bones), 초콜릿 오버도즈(Chocolate Overdose) 등이 도시를 대표하는 밴드. 파피움은 바로 앞서 말한 그 밴드들에서 활동했던 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그룹이다. 말하자면 ‘베르겐의 슈퍼밴드’랄까. 이들은 현재 노르웨이 팝의 지평을 연 인디 팝 듀오 킹스 오브 컨벤션(Kings Of Convention)의 뒤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프랭크 햄얼슬란드(Frank Hammersland, 보컬/기타), 프르드 운네란드(Frode Unneland, 드럼), 잉베 새트레아(Yngve Saetre, 키보드), 마틴 홈스(Martin Holmes, 기타), 크리스터 오테센(Christer Ottesen, 베이스) 등 그룹 멤버들은 이미 여러 그룹을 거치며 10년 넘게 연주한 베테랑 뮤지션들이다. 이중 보컬을 맡은 프랑크 햄얼슬란드는 포고 탑스에 재적하며 많은 스타덤을 누렸으며, 베이시스트 크리스터 오테센은 의외로 1990년부터 1999년까지 패러플리직(Paraplegic)이라는 데스 메탈 밴드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팀을 구상한 것은 싱어 송 라이터 프랭크와 드러머 프르드. 약 10년 전쯤 그 둘은 서로에게서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함께 그룹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은 각자 다른 그룹으로 흩어졌으며 그곳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 마침내 프랭크와 프르드는 의기투합해 팀을 조직한다. 잉베 새트레를 프로듀서로서 영입하고 프랭크는 그룹의 첫 앨범을 위해 곡을 쓰기 시작했다. 때마침 기타리스트 마틴 홈스가 그룹과 계약했고, 얼마 후 데스 메탈 밴드에서 활동했던 크리스터 오테센이 우연치 않게 그들과 만나 처음으로 팝 음악을 하게 되었다.
노르웨이 느낌을 담은 완벽한 브릿팝 사운드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앨범 [Popium]은 해외에서는 2001년에 발매된 그들의 데뷔작이다. 파워 넘치는 사이키델릭 기타 리프와 드럼 연주, 그리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팝 편곡들로 누구나 상쾌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들을 담고 있다. 비록 매끄러운 영국적 감성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곡마다 배어있는 서늘한 정서는 역시 이들이 노르웨이 밴드임을 잊지 않게 해준다. 노르웨이 라디오 전파를 장악했던 ‘Favorite Blunders’, ‘I Can’t Get That Lovesong Outta My Head’ 등이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여행을 떠나는 듯 신나게 진행되는 첫 곡 ‘Favorite Blunders’는 그룹의 대체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노래다. 폭발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한 기타와 드럼, 달콤한 선율의 코러스, 그리고 발랄한 하모니 등 깔끔한 모던 록 스타일을 들려준다. 특히 보컬 프랭크의 음색은 더 버브(The Verve) 리처드 애시크로프트(Richard Ashcroft)의 유약함과 오아시스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의 거친 느낌이 반쯤씩 섞인 듯 들린다. 사이키델릭과 스페이스 록의 역량도 드러나 있다.
두 번째 트랙 ‘Dream Me Upon A Dream’ 역시 훅을 동반한 경쾌한 록 넘버로, 킹크스 등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 그룹들의 로큰롤이 연상된다. 미드 템포의 블루스 일렉트릭 기타가 주도하는 ‘Closer-Closer’는 다소 거친 메인 보컬과 가성 코러스의 묘한 섞임, 그리고 몽환적인 키보드 연주가 매력적이다. 스트레이트한 로큰롤 넘버 ‘I Can’t Get That Lovesong Outta My Hand’는 질주하는 기타, 베이스 연주, 그리고 간간이 양념 치듯 등장하는 현란한 키보드 연주로 인해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곡.
그밖에도 차분했던 연주나 보컬이 점차 고조되며 극적인 진행방식을 보여주는 ‘Faith (The Greatest Plan)’, 브라스, 일그러진 기타, 소음 등을 동원해 마치 블러처럼 떠들썩하며 다채로운 음악 패턴을 선보이는 ‘The Lazy Days’, 드림 팝 트랙 ‘Sometimes When It Rains’, 선율이나 연주 형태가 정말 오아시스의 음악을 듣는 듯한 ‘Free Your Mind’ 등이 비교적 친근하게 귀에 들어온다.
파피움의 데뷔음반은 단 한 곡도 버릴 게 없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수작이다. 연주나 곡 짜임새도 나무랄 데 없다. 다만 브릿팝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 하지만 그것은 밴드의 취향 문제라 뭐라 말하기 힘들다. 그보다는 노르웨이 밴드가 이 정도로 완벽하게 브릿팝 사운드를 재생해낸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본 작으로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파피움은 얼마 전인 올해 4월 15일 2집 [Permanently High]를 내놓았다. 현재 자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이들에 의해 과연 노르웨이 음악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에서도 6월 초쯤에 발매 된다는 군요.....정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