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활안선사부도의 중암 선생 글씨를 보고 걷기 시작하니 11시를 지난다.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장군봉이든 선암사든 다녀올 참이다. 미세먼지 많은 하늘에 조망이 없을 듯하니 장군봉 포기하고 그나마 조망이 열린 천자암봉으로 오른다. 예상대로 산줄기들은 꼬리가 없다. 송광굴목재로 내려가는 길엔 더러 눈이 쌓여 있고 발자국이 이어진 게 보일 정도로 드물다. 12시가 못 되어 보리밥집에 도착해 밥 하나에 막걸리 반되를 13,000원에 주문하고 지네발란꽃을 찍는다. 여어르신이 꽃을 좋아하시나보다고 딸에게 말하는데 난 우리 어머님이 잘 가꾸신 꽃이에요 라고 속으로 말한다. 둘씩 넷씩 짝지어 들어와 밥을 먹는다. 막걸리를 먹지 않고 난로에 불을 피우는 나이 지긋한 남자들은 목사님들인 듯하다. 30분이 걸려 막걸리를 마시며 점심을 먹는다. 장군봉은 포기한지라 선암사로 간다. 큰굴목재를 넘어가는데 호랑이턱걸이바위 앞에서 모자를르 뒤집어 쓴 이가 올라온다. 인사를 하니 여자 목소리가 답한다. 발을 보니 이상해 자세히 보니 맨발에 윗쪽만 헝겊으로 덮었다. 눈 흐르는 차가운 돌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이를 한번 더 보고 내려간다. 편백숲을 지나 선암사가는 기렝서 대승암 0.5km를 보고 들어간다. 큰 기와집의 암자 하나가 나타나고 계속 차가 드나들 수 있는 길이다. 서어나무가 크다. 뒤돌아보니 장군봉이 뾰족하다. 대문이 낮으막하다. ㄷ자 대웅전은 큰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조용한데 댓돌 위에 신발은 보인다. 왼쪽으로 돌아 화장실에 가니 불일암처럼 저 아래 배설물이 보인다. 더러 흰 화장지가 보이지만 참나무 낙엽이 덮여 있다. 삼인당 앞엔 해설사 앞에 젊은일행들이 서 있다. 승선교를 보고자 내려가 아랫쪽 홍교를 보고 계곡을 건넌다. 길로 오르지 않고 승선교 아래를 옹색하게 지나 강선루 기둥 아래서 올라온다. 지나가는 이들이 쳐다보는 듯해 고갤 숙이고 온몸에 힘을 주고 올라온다. 선암사 계단을 올라 대웅전 앞에 가니 마당의 흙은 조금씩 들어간다. 조사당 앞에서 달마 혜능 임제 스님의 초상을 문에서 본다. 매화나무는 안 보고 원통각 뒤를 돌아 국사전인가는 대충 본다. 염재와 근원 화순 사람들의 글씨를 본다. 낙관이 작은 글씨로 노완인 무량수전은 추사의 글씨인지 판각인지 애매하다. 대각암엔 오르지 않고 작은굴목재로 갈까 고민하다가 다시 내려가 왔던 길을 걷기로 한다. 시간이 많이 자났다. 호랑이턱거리바위를 지나 가파르게 큰굴목재에 올라 배낭을 벗는다. 날이 포근하다. 아껴 둔 캔맥주 하날 마시며 숨을 고른다. 보리밥집쪽에서 앳띤 남자가 올라와 두리번 거린다. 선암사는 저쪽이라 하니 자긴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중국인인가보다. 배도사대피소를 지나 송광굴목재 앞에서 왼쪽의 천자암 가느느 길을 걸을까 망설이다가 오후의 천자암봉을 한번 더 보기로 한다. 천자암봉의 조망은 오전보다 더 먹탕이다. 차로 돌아오니 5시가 다 된다. 천자암에 뜰어가니 개 한마리가 짖으며 다가와 꼬리를 흔든다. 쌍향수를 보고 물 한바가지 마시고 온다. 윗집 금식이 동생이 산불감시원 수당 탔다고 치킨을 시켰다고 선아네로 내려오란다. 선아 창고에 먼지에 쌓여있는 양주까지 마시고 취해 오는데 범재등 위로 둥근 달이 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