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DCtouot15cA
어떤 침묵은 고요하다. 그러나 어떤 침묵은 귀를 막을 만큼 시끄럽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한다.
휴대전화 알림은 쉬지 않고 울리고, SNS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글이 올라온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상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
왜 그럴까. 말은 넘쳐나는데, 정작 서로를 향한 마음은 점점 닫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사이먼과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가 떠오른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멜로디의 포크송인 줄 알았다. 그러나 들을수록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사라지는 소통부재와 삭막해져가는 세태를 노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는 이렇게 말한다.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말은 하지만 진심을 전하지 않고, 듣는 척하지만 마음으로는 듣지 않는다.
이 짧은 두 줄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놀라울 만큼 낯설지 않다.
사람은 말을 못 해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들어주지 않아서 멀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부부도 그랬고, 부모와 자식도 그랬으며, 오래된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대답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끝까지 들어줄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노래는 또 이렇게 말한다. “The words of the prophets are written on the subway walls
and tenement halls, And whispered in the sound of silence.”
예언자의 말은 화려한 강단이 아니라 지하철 벽과 낡은 아파트 복도에 남아 있다고 한다.
세상은 중요한 진실을 늘 큰 소리로 말하는 것 같지만, 정작 삶을 바꾸는 말은 대부분
속삭임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침묵에도 소리가 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의 소리. 끝내 전하지 못한 후회의 소리.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랐던 외로운 마음의 소리다.
1960년대에 쓰인 이 노래가 지금도 낡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말은 그 어느 시대보다 많아졌지만, 진심으로 듣는 사람은 오히려 더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만 준비한다.
이기려 하고, 설득하려 하고, 증명하려 말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은 잊고 산다. 바로 들어주는 일이다.
좋은 말보다 좋은 귀를 가진 사람이 더 귀하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는 굳이 강한 척할 필요도 없고,
설명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사람은 이해받았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래서 이 노래는 침묵을 노래하면서도 사실은 ‘경청’을 노래한다.
반세기가 넘도록 이 노래가 사랑받는 이유도 멜로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이 노래는 조용히 일깨워 준다.
어쩌면 침묵이 그토록 크게 들리는 것은,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이 아직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첫댓글 소통이 단절된 현대 사회의 쓸쓸함, 무관심, 고독을 이야기 한다는 사이언 앤 가펑클의 노래라고 하지요. ^^*
맞습니다.
언제들어도 좋은 노랩니다.
감미로운 포크 록과 클래식의 조화
한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듀오였죠.
어쿠스틱 기타와 잔잔한 음색만으로도
매료되었던 곡 오랫만에 즐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