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삼색
조성자
I
오래된 냉장고 소리가 바야흐로 장난이 아니었다. 한 오년 전부터 “브으”를 시작하더니만 작년부터는 기세를 더하여 거의 디젤엔진 소리를 냈다. 시도 때도 없이 시작해서 짧게는 수분 길게는 십분 이상 계속되었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마무리는 “털털털”인데, 문제는 냉장고 자체의 성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동차를 비롯하여 온갖 가전제품을 10년 이상 쓰는 것을 가문의 전통으로 삼는지라 가족 중 그 누구도 이 냉장고를 처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 냉장고 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부엌 옆방에서 자는 딸이 문제 제기를 했다. 자신이 꾸는 악몽의 원인이 심야에 더 커지는 냉장고 소음이라는 것이었다. 고려하기는 했으나, 냉장 시원하게 잘되는 물건을 쉬이 바꾸는 게 어려웠다. “기찻길 옆에서도 사람들 잘 살잖니?” 하고 참을성을 요구하자, “소음에의 연속 노출이 인간의 수명을 얼마만큼 단축 하는가”에 대한 논문이 있을 꺼라나 머라나.
날이 더워지자 나도 방문을 열어놓고 잘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우리 집의 심야를 점령한 냉장고 소음에 두 손 들고 말았다. 들려오는 소리는 작년에 듣던 소리와, 또 그 전해에 듣던 소리와 달랐다. 저음에서 시작하여 웅장한 바리톤 소리로 거의 두 옥타브가 올라가서는 웅웅웅을 몇 분이고 외친다. 방앗간 피대 풀어지는 듯한 마무리 털털털은 더욱 지속시간이 늘었다. 거기 까지도 참으려 했지만 결정적인 소리가 들렸다. 바리톤 소리 이외에 아주 높은, 허스키한, “허어 허어”하는 소리가 더해진 것이다. 바리톤이 시작하면 조금 있다가 허스키가 듀엣을 한다. 바리톤이 “우우우”하면 처음엔 수줍게 시작하던 허스키도 “흐응 흐응 허어잉”하면 호흡을 맞춘다. 볼레로는 한동안 계속되다가 문득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우당탕 털털털털” “히이우우웅”하고 총 마무리를 짓는데 듣고 있던 나도 그제야 숨을 내쉰다. 냉동실과 냉장실 문을 번갈아 열었다 닫아도 소리의 격렬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뺨을 쳐보기도 하고 열이 심한가하고 윗부분까지 물걸레질을 해보기도 하고 테트리스 하듯이 이리저리 냉장고 속의 그릇들을 옮겨보아도 바리톤과 허스키는 매일 함께였다. 모텔방도 아니고 상상력도 부족한 편이 아니라서 매일 밤 컴컴한 부엌에서 들려오는 적나라한 소리에 결국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새 냉장고 구입 결정. 이렇게 매일 밤 테크놀로지가 만들어 내는 소리에 휴먼이 괴롭힘 당하는 건 말이 안 돼. 기계를 만든 건 인간이잖아. 핸드폰을 손에 들고 급히 홈쇼핑에서 신형 냉장고를 구입한 시각도 소리가 한창인 새벽 한시 반이었다.
II
“일어나. 지각할거야. 일어나. 지각할 거야”를 반복하는 요란한 스마트폰 알람소리에 잠에서 일어난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언제부터 이렇게 자연스럽지 못했을까. 아주 이른 아침이면 채 눈도 뜨기 전 어느 때 쯤 “꼬끼요오”하고 이웃집 닭이 울어야하는 것 아닐까. 한참을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릴라 치면 아버지가 싸리비로 마당 쓰는 소리. 창밖에 “짹짹” 새소리. 엄마가 장독대에서 항아리를 여닫는 소리가 들려왔었던가. 할머니가 곰방대를 창틀에 터시는 소리도 있었지. 두부장수 종소리가 나고 우리 집 진돗개 베스가 “컹컹컹” 검둥이도 “멍멍멍.” 제대로 짓는 개소리를 들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험한 몰골에 눈에는 눈곱이 덕지덕지 붙은 유기견을 데려다 기른 지 일 년 만에 깔끔하고 건강한 개로 만들어놓은 내 동생이 하던 말, “아파트에 살려니까 캐시의 성대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 예쁘다고 쓰다듬으면 “키엘케골, 케골” 꼬리를 흔들면서 짖는다. 아니 짖으려 한다.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아파트의 개들이 내는 그 소리들. 그 다양하고 짠한 소리들은 우리가 잘 곳 주고 사료주고 강제로 바꿔 버린 소리들이다. “커어커어,” “쉭쉭,” “헥헥,” “끄으끄으”로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받으려는 생명체들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 우리 집 고양이 아인슈타인도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말았는데 사춘기가 되면 암컷 그리워 어떻게든 뛰쳐나간다는 말에 겁도 나고, 그 때 고양이들이 내는 소리는 아파트 안에서 굉장한 소음이라며 수의사가 권했었다. 소리를 빼앗고 인간들이 얻으려 하는 것들의 미미함에 부끄러울 뿐이다. 테크놀로지를 빌어 외로움을 “멍멍멍”과 상쇄시키고 변명꺼리 근사하니 지어내고. 우리가 포기하고 얻은 것들이 이제 우리들 자신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혹은 테크놀로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귀 고막 안에 스물 네 시간 이내에 의무적으로 집어 넣어야하는 일정량의 비 자연음 내지는 머신 소리가 있는 건 아닌지. 그 적정량 밖의 모든 자연의 소리를 의식적으로 무의식 적으로 삭제해 버리는 건 아닌지. 먼 옛날 반고의 침묵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 내지는 인내심 부족일까. 자연의 소리에 대한 향수의 변질일까. 아니면 인공소리에 대한 면역력 상승일까.
가마솥에서 김 새 나오는 소리. 엄마와 할머니의 도란거리는 소리. 도마질 소리. 그릇들 달그락거리던 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전기밥솥이 정확히 예약된 시각에 “취사가 완료 되었습니다”를 어김없이 두 번 반복한다. “띠리리리” 현관 벨이 울리고 주문한 치킨 택배가 도착한다. 설거지도 머신이 “쏴아”해낸다. 강물 흐르는 소리나 빨래방망이 두드리는 소리는 기억조차 희미해지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삽시간에 임무를 완성한 세탁기가 “삐리리릭” 소리를 낸다. 머신들이 내는 소리에 길들여져 가는 줄 알면서도 집안일을 대충 끝내면 손에 쥐는 건 텔레비전 리모컨. 사람목소리들이 텔레비전 이라는 머신에서 쏟아져 나온다. 뉴스소리, 드라마 소리, 광고소리 또 다른 광고소리. 저녁 식사 시간에도 가족들끼리의 대화가 끊긴 곳에 쉼 없이 텔레비전 소리가 채워진다. 이렇게 소리를 몸속에 담는다. 하루에 들어야할 소리를 가득 채웠다싶으면 머신을 끈다. 텔레비전 끄고 컴퓨터도 끄고 스마트폰 모닝콜 예약하고 자리에 눕는다. 오늘 들어야할 소리의 정량에 부족을 채우기라도 하는 듯 한밤 중 어디선가 구급차소리가 급하니 들려온다. “띠웅 띠웅 띠웅.” 가즈오 이시구로의 『네버 렛미고(Never Let Me Go)』를 펼치는데 슬그머니 나타난 아인슈타인이 나의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팔베개를 한다. “그르릉 그르르릉.”
III
메르스로 온 시내가 조용하다. 마치 중동서온 이 바이러스가 인간들과 테크놀로지가 합작하여 만들어내는 사운드 앤 퓨리(sound and fury)를 집어 삼켜버린 듯하다. 온 나라에 찾아든 갑작스런 고요함이 문득 문득 어색해진다. 고요가 불안을 준다. 시부모님이 걱정되어 시댁에 가보았다. 구십이 넘으신 시아버지는 원래 건강하신 분이었지만 나이 탓에 많이 쇠약해지셨다. 가장 빨리 약해진 부분이 청력이었다. 귀가 서서히 나빠져 가는 동안 집안 식구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시아버지가 옆에 계시지 않을 때에도 가족끼리 서로 악을 쓰며 대화하다가 놀래기도 한다. 보청기로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지 근래에는 아예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으신다. 큰소리로 대가족을 호령하시던 기개도 완전 꺾이어서 그저 사람 들거나 날 때 방글방글 웃으실 뿐이다. 아들딸 내외들 손자들 모두 앉혀 놓고 위쪽 몇 대조 어른 이야기부터 증조부 묘 자리 만드신 이야기까지 보통 한두 시간은 일장 연설을 하던 분이 그저 침묵으로만 일관하신다. 메르스 무서우니 절대 바깥출입 마시라고 구십의 시어머니께 단단히 이르고 시댁을 나섰다. 소리가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구십 넘게 살아오신 인생은 또 얼마나 이런저런 소리들로 가득 찼었을까. 최신 테크놀로지가 청력회복을 보장한다면 냉큼 사드려야 할까. 무슨 소리를 찾아드려야 할까.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프링크스님. 제가 작년에 등단해서 겁대가리 없이 써붑니다요.ㅋㅋ
일상에서 항상 느끼지만 재미있는 시각으로 재밌는 얘기 만드셨네요.^^
저도 18여 년 된 온갖 소리를 내는 애마 코란도의 안위를 핸들 잡을 때 마다 걱정하고 살고 있답니다.
동경에 어머니로 모시는 할머니가 계신데 할아버지 청력이 안 좋으셔서 ㅡ 보청기는 필요시 마다 장착하지만 ㅡ 항상 귀에 대고 큰소리로 말씀 하시길래 백엔샵에서 깔때기 하나 사다 드렸어요 ㅡ 사진 벽에 걸린 ㅡ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깔때기로 말할 땐 소리지르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ㅋ 효과 좋은 듯...
수상 다시 축하드리고 글 자주 보여주세요~~~^^
하하하..깔대기를 어찌 생각하셧는가요. 할머니가 굉장히 미녀십니다. 18년 코란도라니 얼마나 관리를 잘 하시는 분인지 짐작이 갑니다. 명주님의 글도 제가 읽어볼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글도 재미지게 잘 쓰시구... 읽다보니 숲소리가 나는 산에 가고싶어지내요. 왜 휴가때마다 자연으로 가고마는지 알것같아요. ㅎ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믹스커피님. 이곳 카페의 덕도 큽니다. 제작년부터 추리소설들 읽어제키게 해준 카페.
세상이 변하면 소리도 변하는구나...ㅠㅠ 촉수가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축하드립니다...^^
애꾸눈 잭님이 축하해 주시니 더욱 신이 납니다. 연륜이 좀 붙고 수필쓰기에 질리지 않으면 아주 묘하니 미스테리한 수필을 한편 써보고 싶어요. ㅋ
인공지능이 쓴 글보다 만배쯤 휼륭하세요~~ 추카추카!!
웜마, 대단한 칭찬을 받네요, 수나님. 인공지능만 생각하면 비포어와 애프터 이세돌전으로 인류역사를 나눠야할 것만 같어요. 무섭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머시기.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글은 작년 메르스때 썼는데 얼마 안있다가 12월초에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울프님.
과학은 최신 것을 문학은 옛 것을 읽으라는 글을 어디선가 봤는데 '소리삼색'은 두 가지가 모두 들어있는 글인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 복님. 나이 예순에 등단하여 장님 문고리 잡는 격입니다 시방.
에세이를 아주 오랫동안 안 읽었는데 맛이 좋네요. 감동적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감사합니다, 허버트슨님.
브으응 찌지직 찌끄릉 팔팔팔 피유우으으으우우웅웅 펑 하게 느꼈습니다. 고막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ㅋㅋㅋ 땡큐 본격 애호가님.ㅋ
@땅바닥 좋은 작품 올려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