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지은이 : 에바 틴드(Eva Tind)
옮긴이 : 손화수
원서명 : Ophav
쪽 수 : 430
판 형 : 140*205
ISBN : 978-89-6545-734-3 03850
가 격 : 18,000원
발행일 : 2021년 7월 10일
분 류 :
소설/시/희곡>세계의 소설>북유럽소설
어떤 일은 우리의 삶을 영원히 바꾸기도 한다.
“집을 나가서 독립하려고 결심했어요.”
허공을 떠도는 그녀의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한국계 덴마크 작가 에바 틴드의 장편소설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1살 때 덴마크로 입양된 그녀는 소속감에 대해서, 우리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해가는 과정에 대해서 탐구한다.
<뿌리>는 예술가 미리암, 건축가 카이, 그들의 딸 수이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대륙을 넘나드는 여정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한국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던 카이는 열여덟 살이 된 딸 수이의 독립을 지켜봐야만 한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아이를 떠난 미리암은 두 번째 남편의 사고사 이후 깊은 상실감을 겪는다. 이들은 삶의 어느 순간 찾아온 상실의 순간에 각자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인도의 대안 커뮤니티, 스웨덴의 깊은 숲, 그리고 한국의 마라도로 여행을 시작한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이별과 여행을 거듭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
세계적인 아티스트 미리암은 카이와의 만남으로 수이를 낳게 되었지만 성공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엄마의 역할을 포기한다. 미리암이 떠나고, 세계여행을 꿈꾸었던 카이는 건축설계사 일을 하며 평범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수이를 키운다. 아버지 손에서 자란 수이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집을 떠나 독립하기로 결심한다.
수이가 독립하면서 카이는 평온했던 삶의 위기를 맞는다. 어렸을 때 한국인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그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했고, 타인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마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는 자기 자신을 다시 찾기 위해 인도의 대안 커뮤니티 오로빌로 떠난다.
그 즈음에 수이는 7살 때 헤어진 엄마 미리암의 갑작스런 초대를 받는다. 미리암은 두 번재 남편 히로키의 죽음 이후 세상을 등지고 스웨덴의 황량하고 외딴 숲, 달라르나에 홀로 살면서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을 거대한 원시적 숲속 공간을 만들던 미리암은 그곳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신의 뿌리를 만나게 된다.
미리암과의 우울한 만남 이후 수이는 한국인 할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 한국에 도착한 수이는 해녀들로 이루어진 작은 모계사회, 마라도에 발을 디딘다. 마라도에서 해녀인 미옥 할머니를 만나 끝없는 자유를 느낀 수이는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내린다.
용기를 내어 내면의 고요함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발걸음
소설의 원제목인 ‘Ophav’는 근원, 혈연, 기원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삶의 근원적 장소, 또는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이들의 삶을 그린다. 에바 틴드가 말하고자 하는 고향은 구체적인 장소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뿌리를 말하는 대안적 형태의 개념이다. 그 고향은 자연이 될 수도, 자신의 가슴속에 담고 있는 미지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근원을 알고자 한다면 그 대답은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정의할 수 없는 막연한 그 무엇의 정체부터 찾아야 한다고. 그것은 일상의 채우는 온갖 소리 뒤에 자리한 내면의 속삭임이다. 용기를 내어 스스로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각자의 뿌리를 찾게 될 것이다.
에바 틴드, 당신의 기원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질문하다
에바 틴드는 1974년 1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마산 출신이며, 아버지의 고향은 신의주이다. 아버지의 가족은 1946년, 신의주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이렇다 할 집안 배경은 없었지만 학교에서 항상 뛰어난 성적을 유지했던 아버지는 좋은 대학에 입학을 했고, 성공을 이뤘다. 그는 부산 바닷가의 모래사장에서 키가 매우 크고 아름다운 한 여인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가난한 시골 출신이었던 어머니와 사회적 성공을 거둔 아버지의 결혼은 쉽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그들의 사랑을 막지 못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세 명의 자식을 낳았다. 에바 틴드는 그중 막내로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러나 에바 틴드가 만 한 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내연녀 때문에 가정을 버린다. 여자의 몸으로 세 명의 자식을 건사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막내딸을 덴마크로 입양 보냈다. 그녀가 덴마크에서 새 삶을 시작한 지 반 년 후, 부모님은 재결합을 했지만 이미 한국의 가정에는 에바의 자리가 없었고 돌아갈 수 없었다.
20여 년이 흐른 후, 그녀는 한국의 부모님과 가족을 다시 만난다. 자신의 정체성처럼 둘로 나누어진 모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한국 이름은 이미 잃어버린 후였다. 그녀의 혈통적 근원은 깊은 심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에바 틴드는 우리의 기원이 무엇으로 형성되며 어디에서 오는지 깊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그러한 그녀의 질문이 작품 속 스토리텔링을 통해 펼쳐진다.
첫 문장
우윳빛처럼 하얀 빗방울이 안개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책 속으로
p. 13 수이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었던 일은 물론, 주변의 모든 일을 매일 수첩에 기록했다. 손수 만든 옷과 헐렁하고 이상한 바지를 입은 그녀는 마치 고대 신화에 나오는 님프처럼 보이기도 했다. 갸름한 얼굴과 긴 갈색 머리, 아몬드를 닮은 두 눈. 그녀의 두 눈에서는 항상 생기와 배려심을 볼 수 있었다. 이제 그 두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텅 빈 집에서 술로 외로움을 달랠 내 모습이 떠올라 두려움에 휩싸였다. 혼란스러웠다. 난생처음 어떤 일을 경험했을 때의 그 느낌과 기분은 반복되지 않는다. 처음으로 자식이 품을 떠날 때의 느낌은 세상의 빛이 사라지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수이의 첫니가 빠졌을 때, 그것은 너무나 작아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_「코펜하겐, 2010, 카이」
p. 16 그리고 지금: 내 딸이 집을 나가 독립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내 삶은 달라졌다. 이전과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시간을 멈추고 그녀를 막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설사 그렇게 할 수 있다 치더라도 다음 순간 나는 후회할 것이 틀림없다. 절망감에 손을 깨물거나, 부엌문에 망치질을 하다 부어오르는 손가락을 보며 끝내는 아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높은 하늘 위로 돌멩이를 던지고 눈을 감는 심정이었다. 그 돌멩이가 아이의 머리 위에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돌멩이는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다가, 손으로 쓴 듯한 ‘이곳에서 쇼가 시작됨’이라는 조악한 표지판을 스쳤다. 새로운 삶. 그녀의 앞에는 뒤에 남기고 간 삶보다 더 큰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_「코펜하겐, 2010, 카이」
p. 23-24 나는 홀로 딸을 키우는 남자로 지내며 항상 나 자신을 여행자로 생각해왔다.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내 속에는 방랑자의 모습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중동 지역, 남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대학에서 건축학 공부를 마치면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아버지가 되어버렸다. 수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나는 평범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다. 오랜 친구 핀과 함께 설립한 건축 회사는 번창을 거듭했다. 최근에는 건축 일에서는 손을 떼고 의뢰가 들어오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위해 설계만 할 뿐이다. 나는 알 수 없는 동경과 그리움을 잠재우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옌센은 내게 스스로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은 자주 그 실체와는 달리 더 흥미롭게 여겨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지난 18년 동안 나는 보금자리를 만들고 딸을 키우는 데 삶을 헌신했다. 이제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44세의 중년 남자가 되었고,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겨우 삶의 절반밖에 살지 않았다. 남은 삶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아직도 내겐 방랑자의 기질이 남아 있을까? 아니, 내 삶은 이미 얼어붙은 폭포수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문득 내가 활짝 열린 세상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자유의 몸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_「코펜하겐, 2010, 카이」
p. 169 “그 작품의 제목은 무엇입니까?”
“로디니아입니다. 약 10억 년 전 존재했던 초대륙의 이름을 딴 것이지요. ‘로디니아’는 러시아어로 ‘조국’이라는 뜻입니다. ‘로디트’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탄생하다’ 또는 ‘출산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같은 계열의 단어로는 ‘어딘가에 속하다’ 또는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의 ‘로드노이’가 있습니다. 또 다른 슬라브계 언어에서는 ‘로디니아’가 ‘가족’ 또는 ‘고향’, 그리고 ‘풍성한 과일’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저는 저절로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작품을 후세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물론, 저는 완성된 작품을 살아서 보기 어렵겠지요. 저는 그 작품의 기초와 바탕만 마련할 뿐입니다. 제가 죽은 후 수백 년이 지나서 마침내 제가 만든 천국을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무언가에서 해방된 듯한 홀가분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예술계를 향한 저의 저항이자 타협안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선 무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거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술가의 사후에야 그 참다운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창조하는 것도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인터뷰, 달라르나, 2010, 예술 매거진 『룩킹 글래스, 뉴욕』에 실린 미리암과 앨리스 쉬어의 인터뷰」
p. 345 붉은 흙으로 뒤덮인 길을 달려 ‘유니티’로 되돌아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만약 내가 한국에 간다면 아버지를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를 향한 나의 낯선 감정은 어떻게 숨길까?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오로빌에 눌러살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이전의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확실한 생각이 나를 감쌌다. 그 생각은 마치 거센 소용돌이처럼 내 가슴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집을 떠나며 리-메이의 조언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내 주변의 세상을 회의적인 눈으로 보지 않고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나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문을 열어젖힌 것 같은 느낌이 스쳤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콕 집어 말할 수 없었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이 느낌. 어쩌면 그것은 다시 오로빌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아련한 슬픔이 아닐까. _「오로빌, 2010, 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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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각자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이 책은, 인간이 물 속에서 헤엄을 칠 때와 마찬가지로 강렬하고 빠른 전개로 독자들을 매혹시킨다.”_<노르드위스케>
“서로 다른 주제와 사고의 조각들이 면밀히 엮인 광범위하고 힘이 넘치는 이야기”_<인포르마티온>
“이 책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강렬한 방식으로 휴머니즘과 페미니즘을 다룬 이상적인 소설이다. 버림받은 과거의 트라우마, 가족의 결속력과 연대감, 사회적 관계, 사랑과 동질성, 냉소와 화합, 그리고 죽음으로 이르는 인간의 연대기를 볼 수 있다. 에바 틴드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이 책을 통해 야성과 추상을 표방하는 재능 있고 유일무이한 작가로 다시 한 번 자리매김했다.”_<위크엔드아비센>
지은이 에바 틴드(Eva Tind)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덴마크로 입양되었다. 2009년 『죽음』이라는 시집으로 데뷔했다. 2010년에는 이 작품으로 ‘덴마크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클라우스 리프비예르그Kluas Rifbjerg’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작가는 두 권의 시집과 소설 『로젠베이(장미의 길)』를 출간했다. 2014년에는 소설 『한』을 출간했는데, 이 소설은 입양된 여인이 친아버지를 찾기 위해 북한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2015년, 3년 기한의 덴마크 국립 예술 후원금을 받기도 했다. 2016년에는 무성영화 주인공인 아스타 닐센의 개인적 발자취를 그린『 아스타의 그림자』를 출간했고, 같은 해에 ‘오토 룽’ 작가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손화수(Hwasue S. Warberg)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했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노르웨이로 이주해 크빈헤라드 및 스테인셰르 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며 전문 노르웨이 문학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번역, 출간된 문학서는 『나의 투쟁』, 『벌들의 역사』, 『자연에 거슬러』, 『피레네의 성』, 『유년의 섬』, 『케플러62 시리즈』, 『꼭두각시 조종사』 등 80여 권이 있다. 2012년, 2021년에는 각각 올해의 번역가 및 노르웨이 예술인 상을 받았고, 2019년 한·노 수교 60주년을 즈음하여 노르웨이 왕실에서 수여하는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