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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와 문학 스크랩 슈나미티즘
은하수 추천 0 조회 9 23.10.08 16:28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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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10.08 16:33

    첫댓글 고경숙 시집『고양이 집사와 봄』대담/ 최보슬 시인 2023. 5. 5 고경숙 시인과 함께 『고양이 집사와 봄』을 출간하신 고경숙 시인님과의 짧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1최보슬 : 시인님 여섯 번째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제가 시를 쓸 때 자주 연습하고 상상하는 부분이어서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시인님의 이번 시집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고경숙 : 반갑습니다. 최 시인님, 저는 다작을 하는 편은 아니어서 다른 분들에 비해 그리 왕성한 창작활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여섯 권이라는 책도 의도하지 않게 묶다 보니 평균 3-4년에 한 권씩 발간한 것이지요. 초기에는 나름대로 차기 시집에 대한 주제도 얘기하곤 했는데, 결국 그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쓰다 보면 길은 제가 가고자 했던 것이 아닌 다른 곳에 당도해 있곤 했거든요. 지나고 보니 제 시집 여섯 권은 ‘나 자신에 대한 성찰’도 있었고,

  • 작성자 23.10.08 16:34

    ‘사랑과 이별’에 대한 시집도 있었네요. 그리고 소외된 곳에 대한 사회문제 등도 쓰고자 노력하면서, 이번 시집처럼 ‘소외된 존재들의 사소하지만 빛나는 서사’에 관심을 두기도 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작고 평범한 것들에 관심이 커졌거든요. 이번 시집도 그런 시선으로 써 내려간 것들이 많아 다소 산만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기억의 편린 속에 유장하게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들 또한 그것들이란 측면에서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2 : 한 편 한 편 다 소중한 시편들이시겠지만 이번 시집에서 시인님께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시가 될는지요? 고경숙 : 시인의 손을 떠난 시는 모두 결핍이고 부끄러운 것들이라서 자신 있게 꺼내놓기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윗의 잠」을 들고 싶습니다. 수많은 시의 소재거리가 되는 ‘잠’이라는 명제는 들춰보면 들춰볼수록 양파 속처럼 무궁해서 시인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지만, 제가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동서양의 공통된 관심인 ‘회춘’에 관한 얘기를 쓰고 싶었거든요. 신화적 요소와 인간 본능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몰입해보고자 하는 시도였습니다. 재미있는 작업이어서 각별하게

  • 작성자 23.10.08 16:36

    다윗의 잠-슈나미티즘(Shunammitism) - 공들인 잠을 자고 있네

    태초의 숲속 어디에도 길은 없었네 발을 들어 옮길 때마다 꿈은 물방울로 변하고 비루한 몸 어디에 남아 있었는지 모를 마지막 근력이 사력을 다할 때, 시간은 미궁으로 빠지네 당신은 얼마나 걸었을까 팔레스타인 바위산을 지나 척박함이 극에 달할 때 토막 난 심장의 일부가 가슴뼈 사이로 분출하고 다시 매몰되기를 반복하며 환상방황을 하네 죽음은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을지도 모르네 절망과 속수무책의 갈증이 호흡을 가쁘게 해 그때 당신은 점점 몸이 가벼워지고 있었던가 시야가 흐려졌던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허공에 손을 저어 두려움을 떨치려 하네 손에 잡히는 감촉, 늑골처럼 가로지른 나뭇가지에 나풀대는 리본인가 꿈이던가 생시던가, 형체 없이 그저 감촉으로 온기가 느껴지네 천만년 동안 당신을 기다려온 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당신을 인도하네 베인 발바닥에 약풀을 비벼 대주고 한기 가득한 몸을 품어주네 꿈속의 잠이어도 잠 속의 꿈이어도 상관없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재생되는 잠, 침대에서 소녀가 빠져나가네

  • 작성자 23.10.08 16:37

    3.최보슬 : 벌써 여섯 번째 시집을 내셨는데 어떤 마음이신지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시작 활동 계획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급합니다 고경숙 : 아무리 백세시대를 논하지만 육십을 넘긴 나이는, 은퇴의 시기란 명확한 증거 앞에 달리 내놓을 무엇은 없어요. 어쩌면 그냥 건장한 늙은이일 뿐일지 모릅니다. 많은 것과 이별할 시기란 얘기일 겁니다. 부유했던 경제와의 이별, 품었던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감각적 이별, 향기로운 여성성과의 이별이고, 사랑과의 이별이고 관계와 명예와의 이별이 줄을 잇는 시기입니다. 이때 애착을 가지면 힘이 들고, 내려놓겠단 마음가짐이면 다음 2막이 씩씩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꽤 괜찮게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깁니다. 탈인간화, 몰개성화가 만연해져 각박함을 넘어서 일반적인 인간관계까지 위협하고 있는 시기, 평범함을 유지하는 것조차 얼마나 큰 노력과 열정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일천한 제 문학세계가 사회의 소외된 곳이나 위로가 될 수 있는 작은 불씨이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시의 본질이란 생각 하나만으로 나아간다면, 2막의 문학적 삶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작성자 23.10.08 16:38

    3.: 아무리 백세시대를 논하지만 육십을 넘긴 나이는, 은퇴의 시기란 명확한 증거 앞에 달리 내놓을 무엇은 없어요. 어쩌면 그냥 건장한 늙은이일 뿐일지 모릅니다. 많은 것과 이별할 시기란 얘기일 겁니다. 부유했던 경제와의 이별, 품었던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감각적 이별, 향기로운 여성성과의 이별이고, 사랑과의 이별이고 관계와 명예와의 이별이 줄을 잇는 시기입니다. 이때 애착을 가지면 힘이 들고, 내려놓겠단 마음가짐이면 다음 2막이 씩씩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꽤 괜찮게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깁니다. 탈인간화, 몰개성화가 만연해져 각박함을 넘어서 일반적인 인간관계까지 위협하고 있는 시기, 평범함을 유지하는 것조차 얼마나 큰 노력과 열정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일천한 제 문학세계가 사회의 소외된 곳이나 위로가 될 수 있는 작은 불씨이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시의 본질이란 생각 하나만으로 나아간다면, 2막의 문학적 삶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작성자 23.10.08 16:40

    고양이와 집사와 봄 /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봄입니까? 고양이는 대답 대신 눈을 지그시 감고 꼬리를 흔듭니다 남자는 일어섰습니다 예식장에도 들어가 보고 초등학교 열린 교문으로 들어가 운동장을 거닐어보기도 했습니다 느티나무 가지에 파랗게 싹이 나오는 데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점심상 차려놓은 지가 언젠데 안 온다고 ‘솔’ 톤으로 약간 격앙됐습니다 미나리무침과 쭈꾸미숙회입니다 꽃무늬 앞치마를 펄럭이며 동네를 뛰어다닙니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서 우체부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아저씨는 잘 만났다고 오토바이를 세우고 우편물을 건넵니다 시집입니다
    우체부가 지나가고, 여자가 집에 들어가고, 남자가 대문을 괴어놓고, 그 틈으로 고양이가 들어갑니다 고양이는 마당을 사뿐히 건너 부엌으로 갑니다 부뚜막에 천천히 자리를 잡습니다 부엌문 너머 낮술 얼큰한 남자에게 고양이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봄입니까? 남자는 대답 대신 눈을 지그시 감고 발가락을 까딱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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