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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봄을 기다린다[동아광장/김금희]
출처 동아일보 :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30228/118117380/1
토로와 복수는 있되 이해와 용서 없는 현실
막막함 타개하고 다독일 ‘어른의 말’ 아쉬워
마음속 어른 꺼내야 타인 어른됨 볼 수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바보야’를 시청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존경받은 사표일 것이다. 1969년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으로 서임되고 30여 년간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그가 책임져야 했던 시대는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요약한 대로 ‘암흑’이었다.
한국가톨릭 수장으로서의 발자취 이외에도 내가 흥미롭게 받아들인 건 사제로 입문하기 전 어린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었다. 1922년생으로 일제강점기를 그대로 체험한 그는 3·1운동이나 독립운동가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항일 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 뜻에 따라 예비 사제로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주권을 빼앗긴 조국이라는 ‘현실’은 어린 그에게 신앙 못지않은 중요한 주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윤리 시험에 천황의 은혜에 대한 감상을 적으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준비했던 시험 내용과는 상관없는 것이었고 그의 평소 생각과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는 시험지에다 결국 “일,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니다” “이, 그러니 소감이 없다”라고 적어냈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 일에 대해 겸양의 의미를 담아 반항심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그것은 신념이었을 것이다. 아직 자라고 있는 존재가 지니는 풀잎처럼 맑고 여린 신념 말이다.
이후 그는 당연히 교장실로 불려갔고 그가 신학생이기에 거기에는 그 당시 주교까지 도착해 있었다고 한다. 이제 학교에서 쫓겨나겠구나 생각하며 들어갔을 때 그는 조선에서의 공부를 마친 뒤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라는 주교의 명을 받는다. 그를 둘러싼 어른들은 그의 신념을 꺾거나 벌주는 대신, 미래를 위한 가능성으로 보고 가치 있게 여겼다.
어제는 외출을 나갔다가 도산공원을 둘러보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념하는 그 공원에는 기념관도 조성되어 있었다. 전시품 중에 내가 가장 골똘히 들여다본 건 안창호 선생이 주축이 되어 만든 조직에서 해외 동포들에게 발급한 일종의 주민등록 서류였다. 떠나온 곳, 같이 사는 사람 등의 항목이 요즘 같은 딱딱한 한자어가 아니라 한글로 풀어 씌어 있었다. 이방인들의 나라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서류화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고국에서부터 이어진 역사적 존재임을 인식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서류의 항목들조차 때론 안부를 묻는 일처럼 뭉클하게 다가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창호 선생은 탁월한 사상가인 동시에 독립을 위한 실질적인 자주와 자치, 자립에 방점을 둔 재정 조직가였다. 3·1운동 직후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행한 연설에서 그는 말과 사상으로 하는 운동뿐 아니라 실질적인 물적 토대의 조성을 통한 독립운동을 강조하며, “내가 며칠 후에는 피 흘리는 이에게 절하겠소마는 오늘은 돈 바치는 이에게 절하겠소”라고 역설했다.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한인 노동조직을 만들기도 한 그는 “오렌지 하나라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다”라며 자기 자신이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중심이라는 실천적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의 유명한 표어인 ‘애기애타(愛己愛他)’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야 이후를 도모할 수 있다는 ‘어른’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념관을 둘러보는데, 한 초등학생이 엄마와 함께 전시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나이 든 관리자분이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혹시 엄마가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지켜보았는데 대화는 내가 우려한 대로 흐르지 않았다. 그분은 아이에게 독립운동가들 이름을 아는지 물었고 아이는 스스럼없이 대답하기 시작했다. 아홉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는 꽤 많은 이름들을 알고 있었다. 안중근, 유관순, 이봉창 하는 아이의 그 낭랑한 호명은 ‘와’ ‘대단하네’ 같은 그 어른의 추임새와 함께 어제의 가장 희망적인 장면이 되었다.
사실 요즘 나를 가장 힘 빠지게 하는 것은 막막함을 이겨낼 귀한 말을 듣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토로는 있되 이해는 없고 복수는 있되 용서는 없다. 누군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어른이 없을까 기대하기도 했는데, 기념관을 나오면서는 이제 그런 것을 기대하기에 우리 모두가 이미 어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산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부터 먼저 어른이 된 뒤에야 타인의 어른됨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3·1절과 함께 시작되는 이 봄에 각자 마음속에 있는 어른을 이제 좀 꺼내봤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면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조차도 바로 그 어른들의 협심을 통해 오지 않았던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빛명상
김수환 추기경님이 준 로사리오(묵주)
2004년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고속철도가 개통하면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타던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승객이 없어 거의 텅 빈 듯 보이는 비행기 객석 한 자리에 앉아 이륙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앞자리에 앉은 한 사람의 모습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어디서 많이 본 분인데…….”
나는 가벼운 점퍼 차림에 머리가 허연 노신사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알 듯 모를 듯 자꾸만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내 무례한 시선을 눈치 챈 노신사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몹시 겸연쩍어진 나는 엉겁결에 이렇게 외쳤다.
“추수한 추기경님과 많이 닮으셨네요!”
“허허, 추수환이가 아니고 김수환 추기경과 닮았다는 얘기는 자주 들어요.”
노신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는 그제야 내 실수를 깨닫고는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검은 뿔테 안경너머 노신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어허! 빛(VIIT) 선생 아니시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노신사는 더욱 반갑게 말했다.
“이게 얼마 만이오?" 어서 이리 오시오!”
수행원도 없이 소박하신 모습에 잠시 내 기억이 혼란해진 틈을 타 추기경님이 먼저 내 얼굴을 알아내신 것이다.
“어, 진짜 김수환 추기경님이 맞네요?”
“허허, 김수환이 아니라 빛(VIIT) 수환이오.”
변함없는 위트와 여유가 다시금 그분임을 확인시켜주는 듯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반가운 만남이었다. 나와 추기경님이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틈에 50여 분의 비행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난 후 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먼 옛날을 떠올리듯 말을 꺼냈다.
기억 저편, 7년 전 그분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1997년 어느 날,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뵈어 온 정달용 대구 가톨릭대 학장님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정 신부님은 나의 학창 시절 복사단 지도신부이기도 하고, 가톨릭 교수협의회 지도신부로 있을 때 윗분의 분부라며 전체 교수들 앞에서 빛(VIIT)에 대한 강의 겸 시연회를 열게 했던 분이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시네.”
“추기경님께서요?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시는지요?”
나는 추기경님께서 어떻게 나와 빛(VIIT)에 대해 알게 되셨는지, 그리고 대체 무슨 연유로 나를 보자고 하시는지 궁금한 나머지 약속 날짜를 잡았다.
마침내 김수환 추기경님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20여 년이 넘도록 복사를 서며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과연 그분은 빛(VIIT)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실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기대 반 궁금증 반으로 추기경실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낯익은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 나타났다.
“빛(VIIT)선생이시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빛(VIIT)선생 이야기 참 많이 들었습니다.”
추기경님은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자리를 권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광호라고 합니다. 이렇게 추기경님을 직접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나도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허허, 영광일 것까지야 있겠소. 오히려 바쁘신 분을 오라 가라 하며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 또한 가톨릭 신자로서 이렇게 추기경님을 직접 뵐 기회가 생긴 걸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러시다니 다행이군요. 저도 빛(VIIT)선생께서 우리 신자라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그래 신앙생활을 하신 지는 오래되셨는지요?”
“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성당에 나갔으니 족히 40년은 넘었을 겁니다.”
종교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일까?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추기경님과 나 사이에는 아주 편안한 대화가 오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추기경님은 권위적이거나 위엄을 내세우는 분이 아니셨다. 편안한 모습으로 말씀을 하시고 혹은 조용히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 퍽 여유로워 보였다. 가톨릭과 신앙생활에 대한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의 주제는 차츰 빛(VIIT)으로 옮겨졌다.
“빛(VIIT)선생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참 많은 분들로부터 별의 별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만.”
추기경님께서 나를 부르신 핵심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추기경님께 직접 여쭈었는데 자세한 말씀을 내게 해주셨다.
“지금까지 빛(VIIT)선생님에 대한 수많은 보고를 직 · 간접적으로 받아왔지만, 결정적으로 부르게 된 이유는 지난 ‘이화여대 111주년 사건’ 때문이었지요. 이후 학교 간부들이 나를 찾아와 그날을 상기하며 빛 선생님이 비를 멎게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이다. 그날 이화여대 111주년 행사에 나도 초대를 받아 현장에 있었습니다. 전역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이화여대가 위치한 신촌 일대에는 비가 오지 않고 내내 맑다가 행사가 끝나자마자 곧 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참 기이한 말이라 생각했지요. 하나님의 축복이란 생각도 들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빛(VIIT)선생님이 관여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이화여대 간부들은 정 선생님이 펼치는 일이 종교나 과학에서도 불가능한 일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 오후 2시에 정확히 다시 비가 쏟아진다고 예견했던 이야기가 일치하니 우연이라 우길 수도 없고……,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추기경님께서는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여쭈고자 왔습니다.’ 하더이다.”
“……”
나는 차마 대꾸도 못 한 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추기경님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시다가는 다시 말씀을 이어나갔다.
“음, 나 역시도 그들이 나를 방문한 뜻을 한참 동안 생각했지요. 가끔 나를 찾아온 그분들의 끝말은 정 선생님을 이대로 두고 보아도 됩니까라는 이야기였어요. 그럴 때마다 정 선생님이 지나온 길을 김영환 몬시뇰로부터 줄곧 들어 왔었지요. 사진도 보았고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마침 제 주변에 임종을 앞둔 두 분이 계시니, 그분들을 한 번 보여드리고 내 앞에서도 빛viit 선생님의 초광력超光力, 그 빛(VIIT)현상에 대한 결과를 보고 난 다음 내가 어떤 판단을 해야 될지 생각해 보겠노라고 하곤 되돌려 보냈지요. 그래서 정 선생님을 이리 부르게 된 것이지요.”
추기경님의 솔직한 답변이었다.
그 숱한 보고에 직접 본인 앞에서 확인한 후 그 어떤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추기경님의 고심이 느껴졌다.
“네, 이화여대 111주년 행사 때의 일은 저도 참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어디까지나 생명 근원이신 빛(VIIT)마음에 의한 것이지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그 일이 있기 전에도 빛(VIIT)선생께서 주위의 어려운 분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니 분명 천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셨겠지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그저 제게 주어진 능력이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해 널리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제가 빛(VIIT)선생을 여기까지 오시라고 한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아, 뭔가가 제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저도 추기경님께서 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 줄곧 궁금했던 참입니다.”
“허허, 그러셨군요. 앞의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게 되는군요.”
“무슨 부탁이신지요?”
추기경님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계속 말씀하셨다.
“아까 말한 것처럼 제 주변에 위중한 환자가 있습니다. 혹시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중 하나가 우리 성소국장 일을 맡아보는 김자문 신부입니다. 아무튼 그분이 요즘 건강이 위중하여 큰 걱정입니다.”
“아, 그런 일이 있으시군요. 그렇다면 제가 그분을 직접 만나봐야 하겠는데요.”
"그래, 주시겠소?"
추기경님의 부탁을 듣고 나니 처음 추기경실에 들어설 때 가졌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가장 높은 어른으로서의 추기경께서 종교 밖의 힘이라 불릴 수 있는 이 힘을 스스럼없이 구하는 모습이 참 의외로 다가왔다. 과연 추기경님은 이 힘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 걸까? 나는 이전부터 가슴에 담고 있었던 질문을 추기경님께 직접 해보기로 했다.
“추기경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 분이 그렇게 딱한 처지에 놓였다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참으로 고맙군요.”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추기경님께서는 과연 이 힘이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비단 추기경님 뿐만 아니라 내가 만난 여러 다른 분들, 즉 다른 종교 지도자라든지, 도인들에게 물어보았던 것이기도 했다. 나는 추기경님이 무어라 대답하실지 자못 궁금해졌다.
“허허, 그거야 정 선생께서 더 잘 알고 있지 않으신가요?”
“지금까지 이 질문을 다른 분들에게도 많이 해보았습니다만 추기경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꼭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추기경님이라면 진정 바른 답을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라고 뭐 다른 답이 있겠습니까? 빛(VIIT)선생이 말씀하시는 빛(VIIT)이란 바로 그분으로부터 오는 성총이겠지요.”
추기경님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웃음을 지으며 다시 찬찬히 말을 이어 나갔다.
“글쎄, 저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 힘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정 선생께서 널리 형제자매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계시다니, 우리에게 그 힘을 보내주신 천주님께 감사드리며 소중히 받아드릴 뿐이지요.”
추기경님은 대답을 마친 후 ‘그렇지 않소?’ 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내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종교에 얽매여 마음을 열 줄 모르는 좁은 소견의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른 지혜롭고 포용력 있는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추기경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참 기쁩니다. 사실 그 질문은 다른 누구에게보다 저 자신에게 수없이 던졌던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번 그 질문을 할 때 마다 제 마음속에 울려오는 말은 하나였습니다. 그저 이 무한한 사랑과 행복의 빛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자는 것입니다.”
“부디 빛(VIIT)선생이 가진 힘을 좋은 일에 두루 써주시기 바라오. 자, 이건 내가 늘 손에 쥐고 기도하던 거요.”
추기경님은 특유의 잔잔한 미소와 함께 작은 로사리오(묵주) 하나를 내밀었다. 추기경님의 고유 문장이 새겨진 십자가와 마더 테레사에게 받으셨다는 타원형의 푸른 성모패가 달려있는 귀한 로사리오였다. 한 눈에 봐도 보통의 로사리오와는 달리 그분께도 큰 의미가 있는 성물임에 분명했다.
“앞으로도 저희들이 하지 못하는 좋은 일을 대신해서 많이 해주세요.”
추기경님은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가톨릭의 최고 지위에 계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밖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는 빛(VIIT)을 이처럼 스스럼없이 구하시는 추기경님의 모습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 날 나는 거의 임종을 앞둔 김자문 성소국장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았다. 그 자리에는 김수환 추기경님도 함께였다.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빛(VIIT)선생이 우리 성소국장을 한 번 봐주시오.”
“네, 제 힘이 아닌 우주마음을 통해서 오는 빛(VIIT)에너지를 드려보겠습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김자문 성소국장의 이마에 손을 얹은 채 나직이 외쳤다.
“일어나세요!”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김수환 추기경님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다 됐나?”
네가 무슨 2,000년 전의 예수도 아니고 일어나라 한다고 일어날까 하는 표정이셨다. 빛(VIIT)을 준다고 하면 무슨 거창한 주문이나 요란항 행동을 취하기라도 하는 줄 알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해서 인사를 하고 대구로 내려왔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 선생이오? 나 어제 만났던 김수환 추기경이오. 지금 10시 비행기를 예약해 놓았으니 그걸 타고 다시 나를 만나러 와줘요.”
느닷없이 김수환 추기경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 내게 말했다.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또 무슨 영문인가 싶어 대구 공항으로 나가 비행기를 타고는 김포공항에 내렸다.
그러지 ‘정광호’라는 피켓을 든 한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정광호요.”
“정말 정광호 선생이 맞아요? 네?”
그 남자는 몇 번이나 내게 정광호가 맞느냐며 확인을 하였다. 하긴 김수환 추기경님이 부른 사람이라면 뭔가 거창한 놈이 올 줄 알았다가 늘 입고 다니던 차림 그대로 추레한 차림으로 나타나니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 남자는 바로 김수환 추기경님의 운전기사였다. 그는 공항을 떠난 후에도 중간 중간 어디쯤 가고 있노라며 전화 보고를 하였다. 마침내 기사는 나를 명동성당 입구에 내려주었다. 그때였다.
“아이고, 정 선생!”
김수환 추기경님이 성모상 앞까지 직접 나와 나를 끌어안으며 반겨주었다.
“추기경님,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어제까지만 해도 빈정대던 비서실 사람들도 목례를 하며 예를 갖춰 나를 맞이해주었다.
“내가 정 선생을 이렇게 부른 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요. 어제 김자문 성소국장 병실에 다녀온 후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소.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데 누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지 뭐요. 세상에, 그 사람은 바로 어제 정 선생이 일어나라고 한 성소국장이 아니겠소? 내가 깜짝 놀라 ‘너, 사람이라? 귀신이라? 하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며 "추기경님 , 저 자문입니다.’ 이러는 게 아니오?”
“아, 그분이 일어나셨군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 소식을 듣자 나도 진심으로 기뻤다.
“성소국장이 그러는데, 어제 정 선생이 "일어나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어두웠던 터널이 밝아지면서 눈을 번쩍 떴다고 합니다. 그 순간 ‘내가 천당에 왔나?’ 하고 방안을 두리번거렸더니 천당이 아니라 자신이 누워있는 병실이었다는구려. 그래, 어제는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수염을 깎고 나를 만나러 왔다는 겁니다.”
추기경님은 여전히 신기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그때 마침 한 신부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성소국장, 이 분을 알겠는가?”
김수환 추기경님이 나를 보며 물었다.
“일어나셔서 참 다행입니다.”
내가 웃으며 인사를 하자 성소국장이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 어제 저한테 ‘일어나세요!’ 라고 말씀한 그분 목소리와 똑같군요.”
"바로 그분이시네."
“아, 저를 살려주신 분이군요! 고맙습니다!”
김자문 성소국장은 위중했던 환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하고 환한 얼굴로 내게 인사를 하였다.
“하하, 제가 한 일이 아니라 생명 근원이신 우주마음께서 추기경님의 뜻과 성소국장님의 선한 마음을 보시고 빛(VIIT)을 주신 겁니다.”
나도 덩달아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지 김수환 추기경님이 다시 내게 말했다.
“오늘 내가 정 선생을 부른 건 우리 성소국장을 일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것과 지난번에 말한 두 분 중 나머지 한 분을 더 부탁드리려는 것입니다. 지금 모 대학 총장으로 계시는 수녀님인데 지금 위암 말기로 병원에 있습니다. 빛(VIIT)선생께서 좀 도와주실 수 있겠는지요?”
“네, 그러지요.”
나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진심 어린 부탁을 받아들여, 수녀님께도 우주마음이 보내는 빛(VIIT)을 보내드렸다. 그러자 수녀님도 경과가 좋아져 자리에서 일어나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수환 추기경님을 다시 만났을 때였다.
“허허, 빛(VIIT)선생을 만난 일이 알려지고 난 후 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옵디다. 한번은 젊은 사제들이 내게 왜 빛(VIIT)선생 같은 이단자를 만나느냐며 항의를 하는 게 아니겠소. 그래서 내가 ‘그분의 힘이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는 알 수 없네! 그저 성경 좀 읽고 사제가 되었다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교만 아니겠는가?’ 하고 크게 꾸짖어 돌려보냈지요. 추기경인 나도 이런 일을 겪는데 그동안 좋은 일을 하면서도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소. 그분(빛viit)의 뜻에 따라 묵묵히 가십시오. 저도 빛(VIIT)선생님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추기경님은 빙그레 웃으며 나의 두손을 함께 잡아 주었다.
“아, 참으로 대단한 분이구나.”
김수환 추기경님은 내게 최고 지위의 종교지도자 이전에 하나의 빛(VIIT)마음, 즉 우주마음의 빛(VIIT)과 이어지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마음을 지닌 분으로 여겨졌다.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신 후, 나는 누구보다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줬던 그분과의 아름다웠던 인연을 떠올리며 근원으로부터 오는 사후 영원한 빛(VIIT)을 드렸다.
출처 : 나도 기적이 필요해 2017년 4월 17일 초판발행
2017년 5월 3일 초판 3쇄 P. 35-47
감사합니다
이날 그리운 날
귀한 빛의 글 볼수있게해주셔서진심으로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또다시한번 깊은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볼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내 마음 속 어른 꺼내야 타인 어른됨 볼 수 있다." 는 글이 마음속 깊이 와 닿네요.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시절을 읽으며 참 맑고 깨끗한 성품이었음을 느낍니다.
종교 밖의 힘이라고 볼 수 있는 빛을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시고 학회장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순수한 빛마음을 보고 존경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