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산을 내려와
새해 첫 달이 절반 지난 일월 중순 수요일이다. 방학 중이라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도시락을 싸 길을 나섰다. 동정동 마트에서 곡차를 한 병 마련해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녹색버스를 탔다. 천주암을 지난 굴현고개에서 내렸다. 두어 달 지나 청명한식 무렵이면 진달래꽃을 보러올 상춘객 발길이 이어질 천주산이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붐빌 때는 산자락은 찾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천주산에서 굴현고개를 거쳐 구룡산이 이어진다. 무학산에서 천주산을 거쳐온 낙남정맥이 구룡산에서 신풍고개를 거쳐 창원컨트리클럽 산등선 따라 정병산으로 연결된다. 굴현고개를 일일 산행 기점으로 삼았다. 들머리 산불감시초는 아직 근무자가 나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암반의 골산이 아닌 흙바닥 육산을 걸었다. 구룡산은 화양고개를 지나 백월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였다.
비탈을 조금 올라서니 소답동으로 내려서는 갈림길 이정표가 나왔다. 나는 여러 차례 구룡산을 올라도 그 길은 아직 다니질 않았다. 소답동은 구룡사와 창원향교로 내려가는 곳인 듯했다. 갈림길에서 산줄기는 북으로 방향을 틀어 구불구불 나아가는 형세였다. 근래 구룡산에는 규모가 큰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다. 북면 감계 아파트단지에서 동읍으로 곧장 연결되는 터널공사였다.
북면 지개리에서 진입도로가 생겨나고 동읍 용전마을과 용암마을 산기슭에는 접속도로가 아주 길게 뚫리고 있었다. 산등선을 따라가니 좌우 양쪽에서 바위를 뚫는 중장비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인간 생활 편리를 위해 숲이 훼손됨이 안타까웠다. 특히나 구룡산은 내가 봄날이면 취나물을 뜯어오는 남새밭이나 마찬가지다. 감계에 신도시가 들어서 조롱산 텃밭도 망가진 참인데.
산등선을 따라 가며 뒤돌아 천주산을 바라봤다. 천구산은 봄날이면 근동에서 진달래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정상부에서 북사면 응달에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진달래꽃이 필 때면 상춘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와 나는 그 산을 찾아가질 않는다. 옅은 미세먼지가 끼어 창원 시가지의 높고 낮은 건물들은 희미하게 보였다. 감계는 거리가 가까워 아파트단지가 훤히 보였다.
산등선 따라 설치된 쉼터에 앉아 쉬었다가 다시 걸었다. 대한마을과 용강마을로 내서는 잘록한 고개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대한마을보다 용강마을로 가는 길이 사람이 더 다녔던 흔적이 보였다. 낙남정맥은 용강마을로 내려서 신풍고개에서 창원컨트리클럽 산등선이 정병산으로 솟구친다. 구룡산 정상을 향해 산비탈을 오르다가 도시락을 열어 곡차와 함께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도시락을 비우고 낮은 봉우리를 하나 지나 구룡산 정상에 닿으니 동읍 일대와 진영까지 보였다. 남해고속도로와 국로에는 오가는 차량들이 줄을 이었다. 경전선 철로에도 열차가 지나고 있었다. 산등선을 따라 북으로 계속 걸어 산마루 끝에서 다시 갈림길 이정표를 만났다. 신방초등학교로 가는 길과 백월산 사는 길로 나뉘었다. 구룡산을 오른 이는 대부분 신방초등학로 내려선다.
백월산으로 가는 비탈로 내려서니 경사가 가팔랐다. 오리나무와 졸참나무 가랑잎이 쌓여 등산로가 미끄러워 조심조심 내려섰다. 화양고개까지는 가야할 길이 멀었고 백월산은 더 멀리 있었다. 백월산까지 갈 생각이 없어 잘록한 산허리에서 개척 산행으로 숲으로 드니 단감 과수원이 넓게 펼쳐진 고암마을이었다. 구룡산 산기슭 고암은 논농사는 없고 단감농사만 짓는 산중 마을이다.
고암마을에서 승산 들녘을 지나 지인 농장으로 찾았더니 묶어둔 개가 컹컹 짖었다. 지인은 비닐하우스에서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들고 있었다. 전날 방문객이 있어 귀가를 않고 관리사에서 잠을 잤다고 했다. 배낭에 남겨둔 곡차를 꺼내 같이 잔을 채워 비웠다. 그간 밀린 안부와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었다. 농장을 나오려니 지인은 오지 장독에 가득 담아둔 동치미를 퍼 담아주었다. 2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