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고백하고 선포하며 증거하게 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시한 그 백성들에 있어 선한 목자이신 분이고..
정말 마치 목자들이 그 양들에게 하는 것과 유사하게 말씀 그대로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영혼을 소생케 하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하더라도 두렵지 않도록 함께 해 주시고, 그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시며, 원수의 목전에서 보란 듯이 상을 차려 주시고, 잔이 넘치듯이 영화롭게 하시며,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전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진정 제대로 된 목자들이 양들을 위해 주야로 힘쓰면서 가장 좋은 것들로 먹이고, 아플 때면 제 몸이나 자기 자녀들이 아픈 듯이 밤을 새서라도 돌보며, 이리나 늑대 같이 위험한 짐승들이 공격을 하면 목숨을 걸면서 대신 싸워 주고, 그 어떠한 상황들 속에서도 최선을 찾으면서 최고의 것으로 책임져 주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인데 그렇지만 그에 있어서 서로 간 차이가 없을 수는 없는 것으로 그러한 목자들은 그 스스로가 연약하고 한계들이 많으며 그 자체부터 부족하고 실수들도 많으며 생각보다는 자주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고 최선을 다했으나 얼마든지 최악도 될 수 있는 경우들도 허다한 것이나..
그러나 온 세상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주재자이시며, 선악 간 심판주이시고, 전지전능하심으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있어서는 모든 일들, 상황들, 형편들, 순간들 등에 있어 완벽하시고, 그 어떤 연약이나 한계나 부족이나 실수 등이 있을 수 없으시며, 게다가 크고 작은 문제와 위기들, 수십 수만의 절망과 불가능들에서도 방법들이 있으시고, 뿐만 아니라 온갖 은사와 은혜와 응답과 예비와 이적과 기적들 등으로 차고 넘치게 하시며, 무엇보다 생각지도 못하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최악들일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최고들로, 가장 좋은 타이밍에, 상상 이상의 신실하심으로 책임져 주시고 역전되게 하시며 은혜와 역사들, 복과 열매들로 뒤바꾸어 주시는 분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다윗이 아래의 본문과 같이 고백하고 찬미하면서 시편 27편 1~4절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라고 증거된 대로 고백하고 선포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편 6편 1~7절에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라고 증거된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대로 마치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들 한가운데 빠진 상태인 것으로 어렵지 않게 예상되고 보이는 상황에서 다윗이 처절하게 긍휼을 구하면서 간구하는 것에서도 잘 발견할 수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백성들일 지라도, 게다가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일지라도 아무나에게, 아무렇게나, 무조건적으로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 등으로 기뻐하시며 역사하시는 분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인 것이고, 실상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일들에 있어서의 절대적인 전제와 기준은 말씀, 말씀의 신앙이 아닐 수 없는 것임을 잘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참으로 단 한 순간이라도 잊거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물론 더 크고 놀라우며 복된 계획과 예비와 영광을 위하고 필요한 준비와 단련과 연단을 위해 적지 않은 경우 의로운 시련과 박해와 위기들을 허용하시고 또한 어떤 면에서는 의도하시기도 하는 분인 것이지만..
그와 다른 차원에서 꽤 많은 경우 아래 본문 당시의 시기에서의 다윗과 같이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들이 아닌 반대의 경우들에 있어서는, 특히 죄악들에 있어서는, 다시 말해 세속과 정욕과 음행과 미움과 거짓과 우상과 온갖 불신앙들 등과 같은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 아닌 신앙들에 있어서는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와는 정반대로 보이는 일들을, 곧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아비의 심정으로 오히려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그의 시간까지 평안과 응답들, 승리와 복들 등은 막으시곤 하는 것이고, 대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이며, 게다가 마치 출애굽 후의 광야 40년과 같이 많은 시간들을 돌고 방황케도 하곤 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실제로 아래 본문의 다윗만 하더라도 훗날에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을 마치 살인 교사와 같이 죽게 했을 때 그 자신 뿐 아니라 그의 배다른 자녀들, 더 나아가 온 나라 전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와 참혹들, 더 나아가 위기와 비참들 등이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자신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도 등에 따라 오랜 시간들에 걸쳐 생각 이상으로 차고 넘쳤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이치와 원리에 있어서는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세를 통해 모든 일과 사안과 영역들에 다 해당되는 것이라고, 심지어는 떡 반죽 그릇 하나에 있어서의 복과 저주에 있어서까지 직결되는 것임을 강조하시고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와 진행과 결과에 있어서는 조금도 어려울 수 없는 것인데 사실 여기서도 늘 강조하고 반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성경 전체에 있어서, 하나님의 세계 전체에 있어서, 복음의 세계, 믿음의 세계에 있어서 근간이자 핵심이며 전부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이고,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하고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도록 하며 순간순간 그 이름을 의지하고 간구할 수 있게 하는 길과 열쇠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중보자이시며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모든 실제와 역사와 경험들에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으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이며..
실상 그렇듯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23:1~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7월 12일(금)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