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민본적 법치주의 : 독창적인 문자 체계인 한글 창제와 함께 법치주의를 수호했던 왕의 이야기
[출처] 세종대왕의 민본적 법치주의 : 독창적인 문자 체계인 한글 창제와 함께 법치주의를 수호했던 왕의 이야기|작성자 대한민국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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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종대왕은 글을 알지 못하는 가난한 백성들이 재판을 받을 때 자신의 억울함을 표현하지 못해 어려워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세종대왕은 누구나 쉽게 글을 배워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하늘, 땅, 사람과 발음기관을 본떠 표음 문자 체계인 28개의 배우기 쉽고 간편한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백성을 사랑하는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사법 절차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백성들은 훈민정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설명할 수 있었으며, 고발당한 사람은 자신의 속 사정을 털어놓아 부당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심각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에 대해 최종심 재판관으로서 직접 재판하기도 했습니다.
2. 재판관으로서 세종대왕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사람이 죄에 빠지는 것은 그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종 15년 3월 5일
이제 언문(한글)으로 그 말을 곧바로 쓰고 읽어서 듣게 한다면,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모두 쉽게 알아서 억울함을 품는 자가 없을 것이다.
세종 26년 2월 20일
세종실록 곳곳에서 세종대왕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법의 정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백성들이 글을 알지 못해 어떤 법령이 제정되고 시행되는지 알 수 없어 죄를 범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는 내용 등입니다. 세종대왕은 이를 바탕으로 백성이 억울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재판을 하였습니다.
황해도 양민 약노 사건
고문을 당해 사람을 죽였다고 거짓으로 자백을 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준 사건
세종대왕은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였다는 약노라는 여인의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그런 일로 벌을 내린다면 억울할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를 보내 다시 조사하게 했습니다. 약노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했지만, 이는 매를 맞고 고문을 받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세종대왕은 약노를 즉시 풀어주고, 집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에게 벌을 심하게 주지 말고, 죄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덮어씌우는 일이 없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양 대성산 떼강도 사건
나이 어린 죄수에게 형벌이 아닌 갱생(다시 살 수 있는)의 기회를 준 사건
떼강도들이 집단 탈출 사태가 있었는데, 도망가다 잡힌 어린 죄수(13세) 이영산 등을 처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관리가 법대로 처형하라는 명령과 나이 어린 이영산 등을 사면해 주라는 명령을 순서대로 내릴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영산 등에게 처형이 이루어진 후 사면해 주라는 지시가 전해질 것이고, 그렇다면 법령을 올바르게 집행하면서도, 백성들은 왕의 덕을 알게 될 것이란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임금이 되어 아랫사람을 이렇게 교묘하게 속이는 것은 옳지 않다’며 나이 어린 죄수에게 갱생(다시 살 수 있는)의 길을 열어주는 판결을 하였고, 이영산 등은 생명을 건지고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3. 재판에서 한글은 어떻게 사용되어 왔을까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조한 이후 곧바로 관청에서 훈민정음이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17세기 광해군 대에 이르러서는 훈민정음으로 작성된 ‘소지’(所志, 조선의 청원서를 통칭하는 용어)가 거리낌 없이 접수되고 처리되었습니다.
한자가 아닌 한글이 국어로 자리 잡은 것은 1894년 11월 21일 발표된 ‘공문식’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글을 기본으로 한자 번역을 첨부하거나 한글과 한자를 섞어서 문서를 작성하도록 정한 것입니다. 이는 판결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공문식’ 반포문과 제14조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작성한 한성재판소 판결서, 1895. 9. 1. (법원기록보존소 소장)
일제시기에 사법권을 빼앗겨 조선총독부 재판소에서 일본어로 재판을 받는 등 암울한 시기가 있었지만, 광복 이후 한복을 입은 한국인 판사가 우리말로 재판을 하였습니다. 이를 보기 위해 예전 대법원이 있었던 서소문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조진만 대법원장님은 1961년 12월 29일 ‘법원공문서규칙’을 공포하여 1962년 1월 1일부터 법원의 모든 문서를 한글로 간명하게 기술하고 정자로 가로 띄어쓰기를 해서 작성하도록 하였습니다.
세로 작성 서식에 한글전용 가로 띄어쓰기로 작성된 판결서(1961. 9. 21. 선고)
최근에는 더욱 쉬운 말로 재판을 하고 판결문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어린 청소년이나,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서는 더욱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내용으로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예를 들어 사진과 그림 등을 추가하여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이는 백성을 사랑하고, 억울하게 벌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세종대왕의 뜻을 이어가기 위함입니다.
[출처] 세종대왕의 민본적 법치주의 : 독창적인 문자 체계인 한글 창제와 함께 법치주의를 수호했던 왕의 이야기|작성자 대한민국 대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