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노이어는 바이에른 뮌헨 역대 최고의 골키퍼인가?
"독일과 바이에른 뮌헨에는 언제나 좋은 골키퍼들이 있었다.
이에대해 이야기할때 제프 마이어 또는 올리버 칸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나는 마누엘 노이어가 골키핑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고갔다고 생각한다. 그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이고, 개인적으로 그를 역대 최고의 골키퍼라고 생각한다."
바이에른 뮌헨의 ceo 루메니게가 했던 말이다, 그의 말이 옳을까?
분데스리가 공홈은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마누엘 노이어 위치를 평가해본다.
제프 마이어 (1962-80)
바이에른 분데스리가 출전 경기 수: 473
실점 : 653
클린시트: 137
바이에른 뮌헨이 1965년 분데스리가로 승격한 이래 24명의 골키퍼들이 바이언을 대표했다.
그중 마이어가 첫 골키퍼 였다.
마이어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422 경기 연속 출장을 포함한 분데스리가 473 경기를 뛰었고, 클럽의 지배적인 운명을 만들가는 동안 최후의 방어선 역할을 잘해줬다. 1969년~1976년 사이, 바이에른 뮌헨은 4번의 분데스리가 우승, 4번의 포칼 그리고 3번의 유로피언 컵을 우승했다.
마이어는 고양이 같은 그의 반사신경과 그가 어린시절을 자랐던 바바리안 지방의 작은 지자체 덕분에 '안징의 고양이' 라는 별명을 얻었다. 게다가 그의 고양이같은 반사신경, 그의 예측력- 그는 골라인을 떠나 종종 위험의 원천을 미리 차단했었다- 그를 현대 골키핑의 선구자로서 뽑게하였다.
여러방면에서 노이어는 그는 노이어의 원형이였다. 자세한것은 나중에
장 마리 파프 (1982-88)
바이에른 분데스리가 출전 기록 : 156
실점 : 166
클린 시트 : 57
마이어가 교통사고로 인해 1979년 35세의 나이로 그의 커리어를 끝냈을때, 만프레드 뮐러와 발터 융한스가 3 시즌을 공유했다.
세대별 선수들을 교체하는 것은 싶지않지만 1982년 벨기에에서 온 장 마리 파프의 도착은 바이에른 뮌헨 골키퍼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자책골로 패배한 그의 데뷔전에서 그는 변칙성을 증명했다: 파프는 3개의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들어올리고 1987년 유로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다.
바이에른 뮌헨은 파프가 뛴 분데스리가 156경기에서 57% 승리를 해였고, 이는 마이어가 뛴 경기 승률인 52%보다 높다.
평균적으로 마이어는 시즌 당 46실점을 하였으나 파프는 27.6실점을 하였다. 파프는 84분마다 실점했으나 마이어는 65분마다 실점하였다.
1974년 월드컵 우승자 마이어처럼, 파프의 클럽 폼 또한 국가대항전으로 이어졌다. 1986년 월드컵 8강전에서 벨기에를 위해 스페인을 막아냈다.
그의 바이에른 뮌헨 경력은 6년간 지속 되었다.
라이몬트 아우만 (1982-94)
바이에른 분데스리가 출전 기록 : 216
실점: 229
클린 시트: 81
파프에대해 연구하는 것은 라이몬트 아우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아우만은 그의 6회 분데스리가 우승중 3회를 파프 대체자 역할로 바이에른 뮌헨의 완전한 주전 골키퍼로서 따냈고, 216실점은 85분당 실점하였고 분데스리가 216경기중 81개의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바이에른 뮌헨은 마이어(25.5%)와 파프(17.3%)보다도 라이몬트 아우만이 골대 있을때 가장 패배 비율이 적다.(16.6%)
그러나 그의 경기력이 국제적으로 쾰른의 보도 일그너의 자리를 빼앗을만큼은 아니었다. 1990년 월드컵에서 서독이 월드컵을 들어올렸을때, 그는 넘버 2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국대에서 주인공이 아니였다는 점이 클럽에서 아우만이 클럽의 근본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는 1991년 유명한 수비수 클라우스 아우겐탈러로부터 바이언 주장 완장을 물려받았다.
올리버칸 (1994-2008)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출전 기록 : 429
실점 : 407
클린 시트 : 169
다음 바이언의 위대한 리더는 칸이였다. 칼스루헤에서 온 후 뮌헨에서 14년동안 헌신하며 당대 분데스리가 골키퍼 레코드 이적료였던 2.5m 유로를 정당화 그 이상을 해냈던.
스프링이 달린 듯한 반사신경과 나일 악어보다 더 많이 물어뜯는 경쟁 심리, 칸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의 세대중 최고였다.
그의 우승컵 컬랙션에는 8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00/01 챔피언스리 우승컵이 포함되어있다.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연속으로 수상한 그는 또한 01년과 02년 발롱도르 포디움 3위에 선정되었다.
그의 분데스리가 204경기 무실점 기록은 여전히 남아있다.
얼마나 오래갈지는 그의 장기적 후계자인 노이어 손에 달려있다.
마누엘 노이어 (2011-현재)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출전 기록: 268
실점: 186
클린 시트: 138
칸의 은퇴와 노이어가 그의 고향팀 샬케에서 이적해오기까지는 3년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 시간 동안,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2위, 1위 그리고 3위를 했고, 포칼 1회 우승과 09/10시즌에 인터밀란에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패했다.
마누엘 노이어가 입성한 뒤로, 바이에른 뮌헨은 전례없는 9시즌의 분데스리가중 8회 우승, 포칼 5회 우승, 2013와 2020 대륙 트레블에 포함되는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가져왔다.
96번의 국대 출전, 반복된 17/18시즌 중족골 장기 부상으로 빠졌지만, 그게 아니였다면 언제나 그가 존재했다.
2008년도부터 오른쪽 발에 금속판을 박은 채로 뛰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자체로 엄청난 기록이다.
그러나 노이어는 매우 뛰어는 운동 선수이다.
그는 올리버 칸의 90분 이상을 깨끗히 채운 분데리가 클린시트 기록은 이미 추월했으며, 올리버 칸보다 100 경기 이상을 덜 뛰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올리버 칸이 골키퍼를 설떄 60.6%의 승률을 기록한다. 노이어와 함께라면 77% 까지 상승했다.
2020 FIFA 최고의 골키퍼상과 IFFHS 세계 최고 골키퍼 5회 수상자는 분데스리가에서 129분당 한골을 먹히고 있다. - 구단 최고 기록.
이 숫자들을 뒷받침하는 다른 수준의 선방 능력과 1대1 선방 능력뿐만 아니라, 이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의 주장은 장갑을 낀 리베로로 발전했다.- 그자신의 바운더리를 훨씬 넘어서까지 상대 공격을 막아낼 수 있고, 빌드업 플레이에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있는.
게임 최초의 '스위퍼 골키퍼'는 아니지만, 노이어는 스위퍼 골키퍼의 '기준'이 되었다.
오픈 플레이부터의 그의 패스 정확도는 19/20시즌 33경기의 분데스리가에서 84.9%를 기록하였다.
심지어 그의 전 감독 펩 과르디올라는 루메니게의 허락을 받고 노이어를 미드필더로 기용할 생각을 하였다.
루메니게는 펩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노이어의 온더볼 능력을 고려하면 그 제안이 그렇게 이상한 제안이 아니라는데 동의하였다.
"나는 그가 미드필더에서도 잘했으거라 확신하지만. 노이어는 골키퍼가 축구선수가 되는 예술을 발명한 뒤 자신의 포지션을 혁신시켰다." 그는 구단 잡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다.
루메니게는 이런 말을 처음한 사람이 아니고, 그가 이런 말을 할 마지막 사람도 아닐 것이다.
마이어와 파프 아우만 그리고 올리버 칸은 매우 위대한 골키퍼였지만, 노이어는 바이에른 뮌헨의 논란의 여지가 없는 GOAT 이다.
https://www.bundesliga.com/en/bundesliga/news/is-manuel-neuer-bayern-munich-s-greatest-ever-goalkeeper-kahn-maier-14637
첫댓글 경기수가 너무적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