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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콧멍 백래시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같이 보고싶어서 쓰는 글
1부 2부 3부 4부 나눠서 글 쓸 예정
본문에 대한 의견 교류 대환영!
서치해서 나올 만한 질문ㄴㄴ 네이버 이용 부탁
6장 [TV] 10대 천사와 결혼하지 않은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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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텔레비전 한번 보세요. 희극 몇 편을 빼면 대체 여성들이 주도하는 쇼가 얼마나 됩니까? 거의 없어요."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텔레비전에서 두드러졌던 1987~1988년 시즌에는 새로운 황금 시간대 드라마 스물두 편 중에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은 세 편이었고, 이 중 성인은 두 명뿐이었다. ... 이 시즌에 시리즈물로 시작된 드라마의 60퍼센트에는 고전적인 여성 캐릭터가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여성이 미미한 배경 인물로만 등장했는데, 이는 앞선 시즌과 비교했을 때 급격한 하락이었다. 20퍼센트에는 여성이 아예 없었다. 그리고 합법적인 성관계가 가능한 연령을 넘긴 여성들은 특히 찾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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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에 황금 시간대를 차지한 한부모 가정 시트콤에서는 자녀의 3분의 2가 아빠나 남성 보호자와 함께 살았는데, 실제 세상에서 이런 경우는 11퍼센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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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는 여성을 오로지 피해자 소녀로만 포함시키는 새로운 종류이 액션 어드벤처 시리즈가 좀 더 균형 잡힌 드라마들을 몰아내기 시작했고 1985~1986년 시즌이 되자 여성들이 위축되었다. 당시에 비평가들이 걱정스럽게 논평한 것처럼 이런 새로운 종류의 프로그램에서는 젊은 여성 캐릭터를 상대로 한 공격의 잔인함이 사이코패스가 잔혹한 살인을 일삼는 슬래셔 무비를 뺨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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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남성 악당들이 여성들을 때려눕히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꾸준히 방영 중인 시리즈물에 등장하는 남성 주인공들은 점점 더 행동을 거칠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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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성해방에 대한 텔레비전의 공세는 필연적으로 할리우드보다는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성들의 영향력은 극장에서보다는 텔레비전 앞에서 더 크다. 그러니까 여성들은 시청자의 다수를 점할 뿐만 아니라 광고주들이 가장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이다. 1987~1988년 시즌에 텔레비전 프로그래머들이 꼴사나운 남자들과 시든 여자들의 모습을 억지로 보여 주려 하자 큰 충격을 줄 정도로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을 그냥 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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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반적으로 1980년대의 반격은 텔레비전에서 건강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을 축소시키고 그 자리에 향수로 범적된 비정치적인 '가족' 여성의 초상을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 먼저 1980년대 초에는 페미니즘 사안들을 지워 버렸다. 그러고 난 뒤 1980년대 중반에는 교외의 주부가 최상층에 있고 직장 여성이 그 아래 단계에 있고 싱글 여성들이 맨 밑바닥에 있는 '전통적인' 여성 위계를 재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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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자들은 충분히 부드럽지 않잖아요. 이런 여자들은 충분히 여성스럽지 않아요." 할리우드의 임원들은 심지어 여성들이 '더러운 말'을 입에 담는다고 불쾌해하기도 했다. '젠장', '빌어먹을' 같은 말들이 몇 번 나오는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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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네트워크는 실제로 페미니즘 주제에 초점을 맞춘 에피소드를 단속했다. ... 일곱 곳의 가맹 방송국들이 여성의 권리라는 주제가 여성 시청자들을 불쾌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방영 시간 몇 시간 전에 이 에피소드 전체의 방영을 취소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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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그니와 레이시라는 강인한 두 여성에게 불편해한 건 여성 시청자들이 아니라 바로 CBS의 남성 프로그래머들이었다. 베커는 당시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성들이 "지나치게 거칠고 목소리가 크며 따스함이 없다"고 불평했다. 또 다른 CBS 임원은 ≪티비가이드≫에서 이 여성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여성해방에 경도되어 있고 ... <캐그니 앤 레이시>에 나오는 이 여성들은 경찰 일을 하는 것보다 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데 더 혈안인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 이들은 동성애자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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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고그램은 최고의 드라마 시리즈물 상을 포함해서 에미상을 다섯 번 더 수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가을 CBS는 <캐그니 앤 레이시>를 정규 시간대에서 빼내 비인기 시간대에 재배정했다. 다음 시즌에 <캐그니 앤 레이시>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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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 황금 시간대 시리즈물에 나오는 수십 명의 여성 캐릭터들은 '아기 열망'에 굴복했고, 불임 클리닉으로 달려갔으며, 심지어 방송 중에 출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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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텔레비전은 1950년대의 텔레비전에 나오던 가정의 천사들을 찬양하느라 정신이 없는 한편, 감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온 엄마들을 비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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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병원이 나오던 1960년대의 많은 프로그램에서 싱글 여성들은 환자로만 등장했고, 이들의 병은 보통 낙태를 하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가장 빈번하게는 의사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과 같은 어떤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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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면허를 얻기 위해 기꺼이 눈높이를 낮추는 텔레비전 속의 글 여성은 무어의 이웃만이 아니다 <케이트 앤 앨리>의 제작자들은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압력에 못 이겨, 이혼한 엄마인 앨리를 그녀가 안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재미없는 구혼자와 결혼시켜 버렸다. 같은 시즌 <블루문 특급>에서는 임신한 매디 헤이즈가 기차에서 만난 따분한 회계사와 만나자마자 결혼을 했다. 매디 역의 시빌 셰퍼드는 이런 어이없는 반전에 단호하게 반대했고,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로 넌더리를 냈다. 사실 너무 많은 분노의 편지들이 빗발치는 바람에 제작자가 결국 결혼을 취소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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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일반적으로 싱글 여성들이 결혼식장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자신들의 '선택'인 것처럼 제시하지만 그 줄거리는 때로 싱글 남성들의 소망 충족이라는 그 저변의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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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실세계에서 에이즈 환자 중 여성은 8퍼센트뿐이었다. 하지만 낮 시간대 텔레비전에서 에이즈 환자는 전부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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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적인 역할로 밀려난 싱글 여성들은 두 가지 상투적인 유형, 냉정하게 계산하는 출세 지향주의자거나 깊은 우울증에 빠진 노처녀로 되돌아갔다. 싱글 여성에게는 아예 감정이 없거나 아니면 감정적으로 만신창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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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몇 살> 이 드라마의 제작자인 에드워드 즈윅과 마셜 헤르스코비츠가 처음에 시험 방송용 대본을 작성했을 때는 각 인물들의 짧은 전기가 담겨 있었다. 남성 인물들에 대해서는 직장 생활에서의 목표와 취미, 신념 같은 것들을 묘사해 놓고는 호프 스테드먼에 대해서는 "호프는 마이클과 결혼했다"라고만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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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에 굶주린' 30대 싱글 여성이라니? 이런. 그런 건 20대에나 하는 일이잖아요. 30대가 되면 직업을 갖고, 내가 쓸 돈은 내가 벌고, 맹리 개인 소식란이나 읽는 것보단 더 나은 일을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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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몇 살>은 두 번째 시즌에 이르러 유머 감각이라곤 없는 페미니스트 수재나 인물을 만들어 낸다. 수재나는 빈민가의 복지센터에서 노숙자와 구타당한 여성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전일제 사회복지사다. 수재나는 이런 이타적인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그녀를 인간미 없이 차갑고 뻣뻣하며 툭하면 으르렁대는, 친구 하나 없는 관념적 페미니스트로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호프 무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녀를 싫어하고 '과도한' 독립성과 쿨하지 않은 정치적 열정을 조롱한다. 심지어 천사 같은 호프마저 뒤에서 수재나를 비웃는다.
결국 이 페미니스트 말괄량이를 길들이는 건 독신남인 게리다.
7장 [패션] 인형 옷 입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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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19일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럭스' 컬렉션
라크루아는 이 옷들은 "어린 소녀처럼 차려입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라크루아의 가격표는 어린 소녀들에겐 걸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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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제조사들은 '인형처럼 차려입은 여성'이라는 개념을 홍보하기 시작했고, 소매상들은 불룩하게 부풀린 푸프스커트와 미니스커트, 파티 걸 드레스, 그리고 몸을 꽉 조여서 허리를 3인치까지 줄여 주는 옷들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패션계 언론들은 '요정처럼 매력적인 말괄량이 룩'을 홍보하고 1987년을 '드레스의 해'로 선언함으로써 순항을 도왔다. 하지만 이 모든 준비는 허사였다. 그해 봄 여성들이 더 이상 옷을 구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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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부터 1986년까지 여성들은 집, 자동차, 외식, 보건 의료 서비스에 지출하는 돈은 늘리면서도 속옷을 비롯한 의류에 지출하는 돈은 줄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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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많은 점포들이 옷 가격을 올릴수록 여성들은 더욱 옷을 사지 않았다. ... 여성들은 정가표를 한번 들여다보고, 허벅지 길이의 드레스를 쳐다본 뒤 가게를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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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디자이너들은 이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평균적인 미국 여성을 몸무게 약 64킬로그램에 10이나 12사이즈의 옷을 입는 32세 여성으로 상정하고 '어린 소녀' 드레스와 '호리호리한 실루엣'을 밀어붙였다. 키가 162센티미터가 넘거나 14보다 작은 사이즈를 입는 미국 여성은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패션복의 95퍼센트가 여기에 맞춰 디자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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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루아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여성해방운동 때문에 여성들의 패션 감각이 떨어졌"고 워낙 많은 부유층 여성 고객들이 고급 여성복을 저버리는 바람에 "아랍 공주들과 고풍스러운 노부인들만 고객으로 남았다." 고결한 여성성은 해방된 여성들의 관심을 뒤엎으려는 역공이었다. 고결한 여성성을 주도적으로 기획하는 데 참여한 패션 디자이너 아널드 스카시의 설명에 따르면 이 새로운 패션 칙령은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대응이고, 일종의 전쟁이었다."
라크루아와 동료 디자이너들의 사명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여성들이 말을 듣게 만들고 때로는 말 그대로 이들에게 고삐를 채우는 것이었다. 라크루아는 자신의 패션쇼에 화물용 밧줄에 묶인 '카우 걸' 모델을 내세운 적도 있었다. 여성들이 옷을 많이 사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여성들은 고급 여성복 디자이너들이 사라고 명려한 옷을 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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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업계는 반격의 나팔을 울릴 때마다 가혹하게 몸을 구속하는 옷을 토해 냈고 패션계 언론은 여성들에게 이런 걸 입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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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에 여성의 패션 쇼핑 습관에 대한 가장 큰 연구 중 하나를 수행한 웰스리치그린은 여성들이 자신감과 독립성이 높아지면 쇼핑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고, 일을 즐기면 즐길수록 옷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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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패션계 언론들은 원래 소비자들이 알아차리기 훨씬 전부터 '트렌드'를 선언하지만 라크루아의 사례에서 업계의 주도적인 신문 ≪우먼스웨어데일리≫는 디자이너가 1986년 7월 파리에서 열린 쇼에서 선을 보이기 이틀 전에 라크루아의 첫 '아기 인형' 라인이 대박이라고 선언 ...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여성 관중들은 라크루아와 동료 디자이너들이 런웨이 위에서 아무리 '판타지 패션' 공세를 퍼부어도 감동받지 않았다. ... 숙녀들의 반응이 영뜨뜻미지근해도 ≪우먼스웨어데일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 날 한 번 더 1면에 라크루아와 고결한 여성성을 떠들썩하게 예찬했다. ... 라크루아가 "난폭함, 재미, 고결한 정신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복원"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라크루아가 여성들에게 재미를 주었을까? 아니면 그저 여성들을 재미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만 했을까? 그는 런웨이를 걷는 자신의 모델에게 학창 시절 학습 부진아에게 씌우던 바보 모자를 씌웠고, 사제들이 착용하는 빳빳한 칼라 같은 디스크로 목을 조였고, 가슴에는 마분지로 만든 원뿔을 씌웠고, 엉덩이에서 움이 튼 것 같은 위치에 서양 장미를 꽂았고, 머리에는 쟁반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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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루아가 고급 여성복계의 왕관을 쓰고 있는 상태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디자이너들은 왕좌에 오르기 위해 극심한 경쟁을 벌였다. 에마뉘엘 웅가로부터 칼 라거펠트에 이르는 디자이너들은 훨씬 더 많은 주름 장식을 덧댔고 훨씬 더 큰 버슬로 스커트를 부풀렸다. 고결한 여성성이 여성적인 곡선을 강조하려 했다면 이런 광적인 기형 장식들은 인물로서의 여성을 흐려 버릴 뿐이었다. 그 많은 주름 장식과 곷 장식 때문에 몸의 형태를 거의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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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루아의 매장에서 관심을 끌 만한 유일한 품목은 평범한 오버코트와 맞춤 재킷이었다. ... 삭스의 구매를 담당하는 유럽 의류 수입상인 로렌스 윌스만은 불만스러워하면서 이렇게 말햇다. "온갖 장식에, 물결에, 레이스에, 주름 따위. 여자들은 그런 거 별로 원히자 않는 것 같아요. 그들은 좀 더 차분하고 현실적인 물건을 원하는 것 같아요. 입었을 때 진지한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옷 말이에요. 난 여성들이 불필요해 보이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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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클라인은 또다시 미니스커트를 들이밀면서 "이건 디자이너의 지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우린 여성들이 원하는 것에서 단서를 얻어요. 여성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어요." 로스앤젤레스의 의류 제조업체 컴포닉스의 대표는 "나이 든 여성들은 이제 직장에서 섹시해 보이고 싶어 한다"며 고집을 세웠다. "그들은 남자들이 자신을 여자로 봐 주기를 원해요. 내 견적서가 아니라 다리를 먼저 봐 달라는 거죠." ...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건 베테랑 디자이너 존 웨이츠 뿐이었다. 그는 소녀 같은 드레스를 떠들썩하게 요구하는 건 여성들이 아니라 ≪우먼스웨어데일리≫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바뀐 게 아니라 언론들이 바뀐 거예요." ... "결국 그건 사라지게 될 거고 여성들은 알록달록한 얼음과자가 아니라 강인하고 단호한 인간의 모습을 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웨이츠가 솔직할 수 있었던 건 남성복을 디자인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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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패션계 홍보 요원들이 어떤 주장을 시도해도 여성들은 옷을 사지 않았다. ... 칼럼니스트인 캐슬린 퓨리는 ≪워킹 우먼≫에서 "남자들이 롬퍼즈(아래위가 붙은 유아복, 우주복)를 입고 출근하면 새로나온 그 짧은 치마를 입겠다"고 선언했다. 내셔널퍼블릭라디오의 법률 담당 기자 니나 토텐버그는 방송 중에 여성 시청자들에게 "기다리세요. 사면 안 돼요. 그러면 미니스커트는 잠잠해질 것"이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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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들이 1988년 가을용으로 내놓은 제품을 살펴보기 위해 시장에 모여든 소매업체 구매 담당자들 앞에는 너무나 놀랍게도 다시 한 번 주름 장식이 잔뜩 들어가고 갈비뼈를 으스러뜨릴듯 몸을 옥죄는 스타일의 옷들만 잔뜩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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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미니스커트는 참담했어요." ... "프루프루도 별로 신통치 않았죠. 여성들은 여전히 정장을 원해요. 아직은 그게 제일 많이 팔려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관찰이 디자인계에서는 씨알도 안 먹히리라는 점을 알고 있다. "평균적인 디자이너는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에 있는 그림들을 보죠. 아마 드레스가 매장 창문에 서 있는 마네킹한테 입혔을 때 훌륭해 보일지에 대해서나 신경 쓸 거예요. 그게 다죠. 난 일반 디자이너들이 애써 이 문제에 대해 여성들과 이야기해 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성에 대해 파악하는 건 가장 후순위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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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에는 디자이너들이 다시 여성들에게 훨씬 짧은 미니스커트와 뼈를 으스러뜨릴 것 같은 코르셋, 가슴골을 부각시키는 상의, 투명한 쉬폰의 물결을 입히려고 하...
의류 제작자들은 여성들이 푸프 스커트를 입으려 하지 않으면 또 다른 비하성 패션을 강요하곤 했다. 중요한 건 스타일의 내용이 아니라 그걸 강제로 입힌다는 사실이었다. 여성 소비자층의 고령화에 대한 시장 보고서가 넘쳐나는데도 이들의 디자인이 여성의 영아성으로 자꾸 퇴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다. 여성의 형태를 최소화하는 것이 여성에 대한 디자이너의 권위를 극대화하는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1980년대 말 런웨이에서 많은 이들이 그랬듯 테디베어를 안고서 아장아장 걷는 여성은 지시를 따르는 어린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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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키의 사장인 하워드 쿨리
조키의 연구자드릉ㄴ 수십 명의 여성들에게 수백 가지 팬티를 입어 보고 어느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여성들은 위로 말려 올라가지 않고, 세탁 시 해지지 않으며, 라벨에 적힌 것과 실제로 같은 사이즈인 속옷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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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훈육의 위협을 앞세운 또 다른 패션 메시지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 패션 광고에서는 구타당하고 묶여 있거나 시체 운반용 가방에 들어간 여성이 주 메뉴였다. 주요 백화점 창문에 서 있는 여성 마네킹들은 난데없이 가죽옷을 입은 남성에게 구타당한 피정복자로, 쓰레기통에 쑤셔 박힌 시체로 연출되고 있었다. ≪보그≫에 실린 "숨은 기쁨"이라는 제목의 패션 지면에는 코르셋 끈으로 눈가리개를 질끈 동여맨 모델과, 다리가 묶인 또 한 명의 여성, 그리고 옷을 입지 않은 몸통과 팔을 끈으로 결박시킨 또 다른 여성이 크게 실렸다. 다른 주류 패션 잡지들도 목에 개 목걸이를 한 채 구속복을 입은 여성이나 벌거벗은 채 비닐 쓰레기 봉지에 담긴 여성들로 패션 기사란을 채웠다. 동일한 맥락의 패션 광고들도 확산되었다. ...
8장 [미용] 미용 산업과 생명을 얻은 마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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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미의 트렌드를 결정하는 건 마네킹들이었고, 실제 여성들은 거기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인체 모형이 '생명을 얻은' 반면 숙녀들은 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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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여성운동이 등장하면서 화장품과 향수 회사들은 1년간 판매 정체와 감소로 고전했고, 모발 제품 회사들은 장기적인 슬럼프에 빠졌으며, 미용사들은 많은 여성 고객들이 단순하고 저렴한 커트를 하기로 결심하고 저가의 남녀공용 미용실로 떠나가는 광경을 무력하게 바라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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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성들이 1980년대 성형외과 의사들의 명령을 따르다가 말 그대로 병들었다. 주름 방지 트리트먼트는 여성들을 발암물질에 노출시켰고, 산성의 얼굴 필링제는 피부에 화상을 입혔고, 실리콘 주입은 고통스러운 기형을 유발했고, '미용' 지방 흡입술은 심각한 합병증, 감염, 심지어는 사망의 원인이 되었다. 내적인 면에서 1980년대 미용 관련 요구들은 섭식 장애가 유행병처럼 번지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미용 산업은 여성들이 겪는 문제가 사회적 압력과는 무관한 순전히 개인적인 병폐일 뿐이며 이는 개별 어성이 자신의 육체를 바꿈으로써 보편적인 기준에 몸을 맞추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치유 가능하다는 재현을 강화함으로써 1980년대의 많은 여성들이 느낀 심리적 고립감을 악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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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광고 속의 여성들은 아기를 가진 어머니가 아니라 본인이 점점 아기가 되어 갔다. 향수 회사들이 너도나도 새로운 여성상의 상징으로 사춘기 소녀들을 택했던 것이다. 짙은 화장을 하고 금발의 곱슬머리가 통통한 볼에 도발적으로 흘러내리는 어린 소녀 롤리타의 사진을 내세운 ≪보그≫ 광고에는 "향수는 여성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라는 설명이 딸려 있었다. 로드앤테일러의 향수 크리지아는 1989년 광고 슬로건이 "여성을 찬미하며" 였지만 이 광고에서 찬미의 대상이 된 여성은 빅토리아시대의 옷을 입고 눈을 얌전하게 내리깐 미취학 아동이 전부였다. 또 다른 향수 광고는 "당신은 날 때부터 천생 여자"라고 속삭였다. 이 광고에 나온 숙녀스러운 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레블론의 새로운 "대단히 찰리스러운" 여성 중 한 명은 열 살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판매 전략은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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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결혼, 어린 아이로 아무리 유혹해도 충분치 않다 향수 광고 캠페인은 약하고 순종적인 여성의 이상화를 극도로 밀어붙이고 급기야 여성 시체를 다시 끄집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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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슴협회의 전국 대변인 로버트 하비 박사 ... 가슴 확대 시술을 원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자체적인 동기"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가슴을 확대하는 건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은 '미 네저레이션(1970년대의 자기중심적인 세대)'이에요. 수술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대부분의 경우 이들의 남편인 ㅏ남자 친구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일정은 여전히 남성 전용 클럽의 연설 약속으로 빈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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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성형재건수술협회는 1983년부터 엄청난 양의 언론 보도 자료와 '시술 전후 사진', 환자 '교육용' 브로셔와 비디오테이프를 뿌려 대며 '업무 개선'에 들어갔다. 이들은 '신체 조각'이 안전하고 효과적이고 비싸지 않고 심지어 여성의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라고 홍보했다. 이 협회에서 발행한 한 홍보물에서는 "이런 기형[작은 가슴]이 실제로 질병임을 보여 주는 다수의 의학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
이 협회가 난데없이 홍보에 열을 올린 이유는 간단했다. 수요와 공급에 작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 1981년 의사들이 미용성형 부문에 대거 진출하면서 미용성형은 미국 의료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부문이 되었고, 이들은 수술대에 눕힐 몸이 더 많이 필요했다. ...
≪보그≫, ≪타임≫ 같은 언론들은 여성들이 가슴 확대와 지방 흡입에 '투자'할 것을 촉구하는 수십 가지 기사들을 양산함으로써 의사들을 도와주었다. ... 텔레비전 토크쇼들은 공짜 미용성형수술을 놓고 대회를 벌였고, ...
광고 캠페인은 효과가 있었다. ... 환자의 약 85퍼센트가 여성이었고 이들은 돈 많은 응석받이 노부인이 아니었다. 한 성형외과 협회가 1987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환자 중 연 소득이 2만 5,000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절반이었다. 이런 여성들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고 집을 담보로 잡히기도 했다.
이 모든 변화를 이끌어 낸 건 의료 기술의 혁신이 아니라 매스미디어의 주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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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광고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의사들은 환자들의 통제감을 향상시키는 것보단는 환자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을 향상시키는 게 더 눈이 멀어 있었다. 자기 아내의 몸에 아홉 번이나 시술을 한 성형외과 의사 커트 와그너는 "나에게 수술은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그 누구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경기장에 들어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마취된 여성들은 말대꾸를 못하니까.
1부 신화와 회상 [신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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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대중문화에서의 반격1 [미디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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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대중문화에서의 반격2 [TV] [패션] [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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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반동의 기원 [선전] [정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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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반격의 결과물1 [심리] [일터]
4부 반격의 결과물2 [신체]
첫댓글 진짜 치졸하고 역겹다ㅜ 그래도 그 당시엔 안 넘어간 사람들도 많았네.. 요즘 죄다 짧은 크롭티도 같은 맥락일듯..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네..
고마워!